사회주의가 부자들을 위해 존재하나?

2014-12-04     오웬 존스

 

   
 

사회주의가 부자들을 위해 존재하나?

 

오웬 존스 | 기자 및 칼럼니스트

 

TV 스튜디오에서도, 언론 논단에서도, 지배계층은 끊임없이 국가가 기업가 정신을 억압한다고 확성기에 대고 외친다. 그들에게 기업가 정신은 성장, 혁신, 진보의 유일한 매개물이다. 하지만 사실 국가의 인심에 극도로 의존하고 있는 것은 바로 엘리트층이다. 의존의 출발점은 사법제도와 경찰제도상 유상거래 체제를 바탕으로 한 사유재산의 보장이다. 국가는 자산 침해나 제품 도난으로부터 기업을 보호해 주는 역할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발명 제품이나 프로세스를 경쟁자가 사용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영국 특허법이 2013년에 개정되면서, 이제는 유럽연합 전역에 특허를 등록하는 데에 6백 파운드밖에 들지 않게 되었다.

또한 민간업계는 기업활동의 사활이 걸린 R&D에 대한 재정지원을 수시로 국가에 요청한다. 영국 정부의 R&D 재정지원 규모는 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지만 1년에 100억 파운드에 달하며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주요 기업경영자의 모임인 영국 산업경제인연합회(CBI)는 2012년 “과학 및 연구 관련 인프라” 투자의 추가 획득을 자축하며 이러한 추가 투자로 인해 영국이 “R&D와 혁신에 투자하는 기업을 앞으로도 계속해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요컨대 국가에서 재원을 대는 혁신활동 덕분에 직원들의 쪽배도, 경영자의 요트도 호조의 물결을 타고 오르는 셈이다.

 

영국 민간부문에 대한 공공의 미심쩍은 후원

 

경제학자 마리아나 마주카토는 민간분야가 공공의 후원을 직접적으로 수혜하는 일이 가능하게끔 하는 메커니즘의 일부를 재조명했다. 예를 들어 1970년 이래 영국 의학연구회(MRC)는 자가면역질환이나 일부 암 치료에 쓰이는 단일클론항체에 주목해 왔다. 공공기관인 MRC는 순진하게도 “생체의학 연구계에 혁명을 일으키고 수십억 파운드 규모의 세계 바이오기술 업계 성장을 견인했다”며 자축하고 있다.

페이스북 경영진을 비롯한 민간 관계자들의 자산을 어마어마하게 증식시킨 인터넷은 사실 미국 정부에서 재원을 조달한 연구를 통해 탄생했고, 월드 와이드 웹(www)을 만든 것은 공공기관인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일하던 영국인 엔지니어 팀 버너스-리였다. 주식시장가격평가 기준 세계 2위 기업인 구글의 검색엔진은 알고리즘을 제공한 미국 국립과학재단의 호의가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다. 터치스크린에서부터 세계 GPS 위치정보에 이르기까지 국가 재원이 투입된 다양한 혁신기술을 집대성하지 않았다면 애플의 아이폰도 아마 이만큼 근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언론이 현대의 영웅이라며 떠받드는 민간분야 “부의 창출자”들은 도로, 공항, 철도를 비롯해 국가가 제공하는 공공 인프라를 거쳐 가지 않을 수 있을까? 국가의 사회적 지출을 삭감하라는 요구를 멈추지 않던 CBI도 자신들에게 비용이 드는 분야의 공공지출에 대해서는 한 치의 인색함도 허용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해외시장의 신뢰 유지”를 위한 “정부의 공공적자 삭감 정책을 적극 환영”한다고 주장하는 CBI는 실제로 2012년 예산안 검토 후 근로자와 실업자에 대한 실질수당 삭감을 환영했다. 그와 동시에 이들은 다른 것의 삭감도 주장했다. 바로 기업에 대한 법인세이다. 두 마리 토끼까지 잡지 못할 것은 뭔가? 조지 오스본 재무장관의 연례 추계연설 후, CBI는 근로자 대상 수당 삭감으로 발생한 절약분을 “전략적 도로망 확충과 지선도로 순환상 정체 개선”에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기업에게 인프라는 중요하다. 교통망 개선은 경기회복을 위해 필요한 최우선 과제 중 하나다.” CBI의 존 크리들랜드 총재는 이렇게 말했다. 이들의 메시지는 전해졌다. 2013년 6월 영국 정부는 일간지 <가디언>이 “1970년대 이래 최대 규모의 도로사업 지출”이라고 평가한 280억 파운드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다. 도로에 대한 투자의 상당 부분, 그리고 도로망 유지비의 사실상 대부분이 중량화물 운송으로 인해 발생한다. 화물 운송에 필요한 굴대 무게가 공사 작업의 규모를 결정짓고, 일반 자동차의 경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도로 마모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40톤 덤프트럭 한 대가 최소 10만 대의 자동차와 맞먹는 수준의 도로 훼손을 야기한다.

민영화 전까지 국민의 혈세를 들여 공사했던 철도는 민간기업이 공공투자의 혜택을 받은 전형적 사례이다. 2013년 영국 노동조합 총회(TUC)의 의뢰로 사회문화적 변화 연구센터(CRSCC)가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철도에 대한 공공지출은 1993년 민영화 이후 오히려 6배로 늘어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철도운영 기업들은 “2001년 이후 급격히 증가한 재정지출의 혜택을 입었다. 이 무렵 민간 운영기업의 투자가 저조해 국가에서 나서서 메울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정부가 판단했기 때문”이다. 민영화 당시 약속과 달리 철로와 객차는 개량되지 않았고, 철도 차량의 교체주기가 점점 길어지는 동안 수요는 점점 늘어나 감당할 수 없었다. “투자 및 리스크 감행에 소극적인 민간 기업에게” 민영화는 “과거 공공자산이었던 인프라의 가치를, 그것도 막대한 국가의 재정지원에 힘입어 편취할” 길을 열어 준 셈이다. 이번에도 그 비용은 납세자가 소화하고, 이득은 회사가 챙겼다. 보고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런 식이었다. “동전을 던져 뒷면이면 기업이 벌고, 앞면이면 우리가 잃는다.” 2007년과 2011년 사이 4년 동안 영국의 5대 주요 철도기업은 공공 보조금으로 30억 파운드를 챙겼다. 같은 기간 이들은 5억 파운드의 수익을 기록했고, 이는 대부분 배당금 형태로 주주들에게 재분배되었다.

하지만 국가는 이 밖에도 끝없이 많은 방법으로 엘리트를 편애한다. 영국 최상위 부유층은 일반적으로 공교육을 멸시한다. 이들이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내면 연간 세금을 8,800만 파운드나 감면받을 수 있다. 사립학교가 자선기관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사립학교 학생들의 사회적 배경을 감안하면 이들의 학업성적은 공립학교 또래 아이들과 비교해 딱히 더 나을 것이 없다. 그렇지만 역사학자 데이비드 키나스턴이 말했듯 사립학교는 “별로 똑똑하지 않거나 그저 게으름뱅이에 불과한 좋은 집안 아이들이 실패할 수 없도록 하는 기가 막힌 사회적 인맥”을 제공한다. 다시 말하자면 상류층의 특권 향유와 사회계층의 고착화에 국민의 혈세가 직접적으로 투입되고 있는 셈이다.

 

공교육을 무시하는 최상위 부유층

 

근로자의 검증된 노동력에 의존하면서도 기업들은 이들에게 지급하는 급여를 점점 더 줄이고 있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 이후 지금처럼 평균임금이 떨어진 적이 없었을 정도이다. 중도좌파 성향의 싱크탱크인 레졸루션 재단에 따르면 2009년 영국 근로자 중 소득이 런던 외 지역 최저생계 유지 급여에 해당하는 시간당 7.2파운드에 못 미친 사람이 340만 명에 달했고, 2012년에는 480만 명으로 늘어났다. 이중에는 여성 경제활동인구의 4분의 1이 포함되어 있다. 그보다 3년 전인 2009년에는 전체 여성인구의 18%가 이 범주에 속했다. 이러한 저임금 노동자들은 정부가 부담하여 제공하는 세액공제 혜택을 받아 부족한 세후 급여에 보태 써야 겨우 생존할 수 있다. 이들을 위한 정부의 지출은 과연 얼마였을까? 2003년에서 2011년까지 총 1,766억 4천만 파운드였다.

연간 240억 파운드 규모에 달하는 주택보조금 제도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2002년 런던 거주 세입자 10만 명이 이 제도의 혜택을 입었다. 1997년부터 2010년까지 지속된 신(新) 노동당 시대 끝 무렵에는 임대료가 치솟으면서 수혜자가 25만 명으로 늘어났다. 이 통계는 연이어 들어선 그간의 정부가 합리적 가격의 공공주택을 제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신청하는 모든 사람이 보조금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일부는 더 비싼 민간임대 주택을 택해야 했다. 임대인이 올린 집세를 주택보조금으로 메운 셈이다. 한편 주택보조금은 저임금을 허용하는 결과도 낳는다. 2012년 영국 건물 및 사회적 주택 재단(BSHF)에서 실시한 연구 결과, 현재의 보수-자민당 연정이 2010년 출범한 이후 초기 2년 동안 주택보조금 수혜자가 된 가구의 90%는 실업상태가 아니라 근로 중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보조금의 어머니 격이라 할 수 있는 2008년 정부의 은행구제금융이 있다. 민간 금융기업들이 스스로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무너졌고, 자기들이 난파하는 와중에 세계 경제의 일부분을 함께 무너뜨렸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은 납세자의 몫이 되었다. 카메론 정부는 영국 은행들을 구제하기 위해 1조 파운드가 넘는 돈을 투입했다. 극빈층을 구제할 때는 “과다재정지출”이라던 정부의 재정수혈을 금융시장이 받게 된 것이다.

“부유층에게는 사회주의, 나머지에게는 자본주의.” 지배계층의 이데올로기를 이렇게 결론짓는다면 정말 틀린 것일까?

 

글·오웬 존스 Owen Jones

주요 저서로 <제도, 그리고 그들이 제도를 빠져나가는 방법(Allen Lane, 런던, 2014년)> 등이 있다. 이 글은 위 책에서 발췌했다.

 

번역·김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