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은 평화를 믿지 않는다

미군 철수, 그리고 내부 분열

2014-12-04     카멜리아 엔테카비파르 |기자

미군 철수, 그리고 내부 분열

 아프가니스탄은 평화를 믿지 않는다

 

미군과 나토(NATO)군 대다수가 12월 31일까지 철수하며 13년 전 9·11테러 직후 시작된 군사 개입의 막이 내리게 되었다. 민주주의와 안정성이라는, 미국이 선포했던 목표는 그 어느 것 하나 달성되지 못했다. 그리고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에 막 수립된 취약한 정부를 위협하고 있다.

 

카멜리아 엔테카비파르 | 기자

 

“평화는 우리의 국가적 야망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평화를 이룩하는 것이 쉬운 일이었다면, 이미 오래전에 이루었을 것이다.” 지난 2014년 11월 1일, 중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카불의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실제로 이 목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요원해 보인다.

하미드 카르자이 전 아프간 대통령은 2009년 대선을 얼룩지게 한 부정부패 선거 혐의로 고발되었을 당시,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서방국가들이 보인 뜨뜻미지근한 반응으로 인해 서방의 주요 지지자와 동맹국으로부터 멀어졌다. 카르자이 전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아직도 화해하지 않았으며, 미국이 탈레반과 평화 회담을 하는 데 성공할 것이라고 더 이상 믿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을 통하지 않고 탈레반과 직접 협상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카르자이 전 대통령은 테러 및 폭동 문제를 해결할 수단이 단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고 믿고 있다. 즉 아프가니스탄에서 외국군을 몰아내고 중재 없이 탈레반과 직접 소통하는 것이다. 그가 아프간의 ‘소중한 형제들’이라고 부르는 탈레반과 평화 조약을 맺기 위한 노력은 임기 마지막 날인 2014년 9월 29일까지 계속되었지만 의미 있는 결과를 거두지 못했다.

아프간의 새 대통령인 가니 대통령 또한 미국이 탈레반과 회담을 재개하기를 바라지 않는 듯 보인다. 중재자를 찾는 과정에서 카르자이 전 대통령이 카타르를 택했다면, 후임인 가니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중국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자 한다. 중국 방문 이후 가니 대통령은 중국이 파키스탄과의 관계에서 힘을 유지하고 있기에 탈레반의 배후 국가인 파키스탄과 아프간과의 관계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줄 수 있으며, 외국군이 철수하는 현 시점에 무하마드 오마르가 이끄는 탈레반과의 협상을 용이하게 해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10월 26일, 최근 몇 년간 더 혹독한 전투를 치렀던 헬만드 주에서 영국 국가인 ‘God Save the Queen’이 울리며 배스천 기지가 아프간 정부에게로 되돌아갔다. 영국군의 철수를 상징하듯 영국 국기가 마지막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비단 영국군만이 아니라 미군 할당병력을 제외한 모든 서방군이 해가 가기 전에 아프간에서 철수하게 되어 있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탈레반이 기다려오던 때이다. 아프간 군의 역량이 심각할 정도로 의심스러운 한편, 탈레반은 동맹군이 철수하고 지역 세력이 아직 취약한 틈을 타 중앙 정부에 강력한 공세를 다시 한 번 날릴 심산이다. 지난 13년간, 아프간에서 가장 유능하고 영향력 있는 군 간부 다수가 살해되었다. 고위급 무자헤딘(아프가니스탄 무장조직-역주) 중 다수가 카불이 점령당한 1996년부터 2001년 9~10월에 몰락하기까지 탈레반에 맞서 싸웠던 북부동맹, 공식명칭으로는 아프가니스탄 구국 이슬람 통일전선 출신이었다. 여러 소수민족 중 영향력이 강한 민족, 특히 타지크 족은 과도기 초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파슈툰 족에게 우대 정책을 베풀었던 카르자이 대통령에 의해 소외당했다.(2) 탈레반은 전쟁에 단련된 무자헤딘들을 의식적으로 제거해왔다. 생존자 중 다수는 현재 개인적인 야망에 충실하거나 은퇴를 준비하는 상황이다. 결국 현재 아프가니스탄에는 군사 세력을 통일할 경험자가 충분하지 않은 셈이다.

카불에서 마주친 평범한 아프간인 대부분은 군대가 자신들을 보호해줄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사무실 직원인 37세의 하이다르는 160유로의 월급으로 부인과 세 아이를 먹여 살리는 가장으로, 불평하듯 말한다. “부자들은 떠날 수 있지만 우리는 그 어디에도 갈 곳이 없다. 우리에게는 무기가 없으니 탈레반이 되돌아오더라도 맞서 싸울 수 없는 것이다.” 하이다르는 예전에 북부에서 탈레반과 맞서 싸운 적이 있었다. “최근 13년간 많은 것이 상당히 변했고 우리는 싸움을 재개하길 바라지 않는다. 이제 결혼을 해 가족을 이루었으니 평화를 바란다. 그러나 속임수로 가득했던 지난 선거들과 외국군이 철수한 상황을 고려하면, 평화라는 생각은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서방국가들에게 아프간 전쟁은 이미 끝난 것이지만, 아프간 국민에게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9월과 10월은 사상자가 가장 많은 달이었으며 희생자 명단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연말부터 아프간 군은 지상전에서도, 공중전에서도 나토군의 지원을 더 이상 받지 못할 것이다. 아프간인들 스스로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 그 어떤 중화기도, 공군 세력도 없이 나라의 안보를 책임질 수 있을지 아프간 군 스스로도 의심스러워하고 있다.

왜냐하면 미국은 수십 억 달러를 지출하고 2,349명의 사상자를 내고도 평화와 민주주의를 바로세우는 데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정확한 수치를 얻기는 어렵지만 아프간 사상자 집계 결과는 참혹한데, 수만 명의 사망자와 수십만 명의 피난민이 발생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군 사령부는 2013년에만 7천~9천 명의 군인 혹은 경찰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유엔 아프가니스탄 지원단의 집계에 따르면, 2014년 상반기에만 1,564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불투명한 오바마의 통합정부 구상

 

2001년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된 이후, 미국 파견군은 두 가지 목표를 추구해왔다. 한편으로는 아프간의 재건을 도우면서 탈레반과 반군에 맞서 싸우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저항 ‘군벌’ 세력 및 여타 영향력 있는 지도자들이 이성을 되찾게 하여 내부 상황을 안정시키며 정치 상황을 면밀히 따라가는 것이다.

1차 투표와 2차 투표(2014년 4월 5일, 6월 14일)에 걸친 대통령 선거는 다시금 대대적인 부정으로 점철되었으며, 모든 국제 관계자에게 비난을 받았다. 세 달간 이어진 정치적 마비는 나라를 내전 일보직전의 상태로 몰아갔다. 만인의 기대와 달리, 가니 후보가 선거의 승자로 밝혀졌으나 라이벌인 압둘라 압둘라 후보는 이에 불복했다. 이 결정적인 시점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부득이한 수단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금이 가 수천 조각으로 찢어지려는 민주주의를 미국의 중재로 어설프게 기워, 외국군이 연말에 철수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찾아낸 해결책은 일종의 통합 정부를 구상하는 것이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의 두 차례 방문과 오바마 대통령의 몇 차례 전화 통화 시도, 그리고 아프간 주재 미 대사의 강력한 노력 덕분에 라이벌 관계의 두 후보 사이에 협약 하나가 체결되었다. 가니 후보는 대통령으로, 압둘라 후보는 새 정부의 ‘최고행정관’으로 임명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 최고행정관이라는 직책은 헌법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그 역할 자체도 모호하다. 이 협약은 매우 위태위태한 상황이다. 임명식 바로 전날에도 부서 분배와 관련하여 두 후보 사이에 대립이 발생했으며 압둘라 후보는 행정부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협약이 유지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두 라이벌 중 압둘라 후보는 2001년 9월 9일 알 카에다에게 살해되기까지 북부동맹군 선임사령관을 지낸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곁에서 탈레반에 맞서 싸운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아프간 국내에서 저명한 정치인이자 카르자이 전 대통령 임기 당시 외무부 장관을 지냈다. 부족 및 소수민족 대부분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신임과 지지를 얻고 있다. 부계는 (칸다하르 시의) 파슈툰 족이며 모계는 타지크 족인 압둘라 후보는 평생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살았다.

한편 가니 후보는 아프간의 주요 민족인 파슈툰 족 출신이지만 서방에서 일생 대부분을 보냈다. 카르자니 전 대통령 당시 재무장관을 지내긴 했지만, 대선 2차 투표 때까지만 해도 아프간인 대부분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다. 반면 세계은행 근무 경력과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의 후임을 뽑는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던 경험 덕분에 국외에서는 어느 정도 지명도가 있는 편이다.

그러므로 이 두 라이벌은 함께 일할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데, 현재는 아프간이 2001년 탈레반 정권 전복 이후 가장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는 시점이다. 단지 32만5,000명의 군대와 경찰 병력만을 가지고 아프간 홀로 맞서 싸워야 하며, 이 병력들조차 자신들의 실효성에 의문을 갖고 있다. 미국과 나토군은 아프간 병력에 대한 평가를 진행했으며 그 결과는 지난 7월에 기밀로 분류되었지만, 국제 관계자 대부분은 그 결과에 의문이 없다. 2001년 이후로 미국 납세자들은 아프간 안보군을 육성하고 훈련시키는 데에 500억 달러 이상을 지출했지만, 안보군의 회복력이나 역량, 나라의 안보를 실질적으로 책임질 열의 등은 신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탈레반은 남부 지방, 특히 영국군의 철수 이후 헬만드 주를 점령했다.

그러나 미국은 아프간에 어떠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반드시 철수하기로 결심했다. 2014년 5월, 오바마 대통령은 전투 임무가 연말에 종료될 것이며 2015년 1월부터는 ‘아프간 군을 육성하고 알 카에다 관련 나머지 작전을 지원하는’ 데에 그칠 것이라고 선포했다. 이 작전에 할당된 병력 9,800명은 모두 2016년 말 이전에 아프간 영토를 떠나게 된다. 나토군 역시 방향을 정했으며 나머지 병력으로 ‘아프간 안보군을 훈련시키고 조언하며 보조하는 비전투’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IS(이슬람국가)와의 전투에 혈안이 된 서방열강들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아프가니스탄은 버림받은 기분을 느끼고 있다. 그렇기에 아프간 정권은 이라크와 같은 운명에 처하지 않고자 아시아 열강들, 특히 중국으로 방향을 돌린 것이다. 한편 아프간 국민은 자신들의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다. 가니 대통령과 압둘라 최고행정관이 함께 이끄는 통합 정부가 성공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 것이다. 외국군이 주둔해 있던 지난 13년간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국외로 자본과 사업을 서둘러 유출하고 있다는 사실은 현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들 중 한 명은 이라크와 걸프 지역의 외국 파트너들과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자신의 기업을 두바이로 안전하게 이전했다고 익명으로 제보했다.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며, 이 부유한 기업가들은 이라크의 과거 상황에서 교훈을 얻어 아랍 에미리트에 자산을 이전시키고 있다. 아랍 에미리트는 쉽게 번 돈에 있어 이상적인 조세천국이라 할 수 있는 곳으로, 망명한 가족들에게도 안전한 환경을 제공한다. 두바이 부동산업 관계자들은 아프간 대선 이후부터 아프간 출신의 고객이 급증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아프간 전쟁은 곧 끝날 전쟁이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의 아들들’을 철수시키겠다는 약속을 국민 앞에서 지킬 수 있다는 사실에 자축할 것이다. 반면 새 정부가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에서 카불과 여타 아프간 대도시의 주민들은 이 과도기를 두려워하고 있다.

 

글·카멜리아 엔테카비파르 Camelia Entekhabifard

<Save Yourself By Telling the Truth: A Memoir of Iran>(Seven Stories press, New York, 2007)의 저자

 

번역·박나리 

연세대 불문학 및 국문학 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조르주 르페브르, ‘La frontière afghano-pakistanaise, source de guerre, clef de la paix’,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10월호

(2) 추정치에 따르면 파슈툰 족은 전체 인구의 약 40%, 타지크 족은 25~30%, 하자라스(시아파) 족은 9~19%, 우즈벡 족은 6~9%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