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도라도 비판하던 남미의 문학, 위기 맞아

2014-12-04     에리카 베크만

엘도라도 비판하던 남미의 문학전통, 역할 위기 맞아

 

에리카 베크만 | 일리노이주립대 스페인어 및 비교문학 교수

 

대통령 겸 시인?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면 이상한 조합이지만 20세기 초만 해도 콜롬비아에서는 이 두 직업이 한 쌍을 이루는 경우가 많았다. ‘보고타’라는 도시 이름은 라틴 아메리카의 비극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문학의 성지이기도 했다. ‘남미의 아테네’로 알려진 보고타는 1892년부터 1898년까지 콜롬비아 대통령을 역임했던 미구엘 안토니오 카로를 비롯해 저명한 고전주의 문학가를 다수 배출했다.

문학과 정치의 연결고리는 프랑스의 프랑수아-르네 드 샤토브리앙(1768~1848)이나 독일의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 등 다른 곳에서도 사례를 찾아볼 수 있지만 콜롬비아와 같은 나라에서는 특히 더 긴밀하다.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국가건립 과정에서 문학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레트라도’(letrado: 19세기 남미 지식인을 의미)라는 표현까지 생겼을 정도이다. 소설을 짓듯 쉽게 헌법조문을 쓰고, 라틴어 문법 개론을 쓰는 것처럼 외교협정문을 작성할 수 있는 레트라도들은 정치와 예술이라는 동떨어진 분야를 두루 섭렵했다. 이들이 활동하던 시기는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의 전환점이었다.

1850년에서 1930년 사이는 남미가 조금씩 세계 경제에 편입되던 시기였다. 당시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의 시와 소설에는 이러한 격변으로 인한 흥분을 표현하는 줄거리, 인물, 심상이 등장했다. 요컨대 이들 작품이 시장경제 메커니즘의 예술적 정당화를 위한 담론을 제공했던 것이다.

라파엘 우리베 우리베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작품 <백 년 동안의 고독> 속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모델이 된 콜롬비아의 장군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베 장군이 변호사, 커피농장주, 국회의원 등 다른 직업도 갖고 있었던 레트라도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가 1908년 발표한 바나나 농사법에 관한 100페이지 정도의 논설은 깊이나 형식면에서 당시 문학계의 주류 흐름을 잘 보여주고 있다.

논설 서두에서 우리베 장군은 베네수엘라의 시인이자 정치가인 안드레스 벨로의 서정시를 인용했다. 시 제목부터가 <열대지방의 농업에 부치는 시(1826)>이다. 라틴 아메리카 농산물의 유럽시장 수출 증진을 위해 썼다는 이 시는 바나나라는 과일의 특장점을 찬양하고 있다.

 

그리고 그대를 위해 바나나 나무는

그 달콤한 열매의 무게 아래 잠드는구나.

최초의 바나나 나무

이토록 아름다운 선물을 안겨주는

행복한 적도 지방

사람들의 수호신이로다.(1)

 

우리베 장군은 이 밖에도 성경, 산스크리트 문학, 프랑스 소설가 앙리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의 소설 <폴과 비르지니> 등을 인용해 ‘바나나’라는 식물을 에워싼 밝은 미래의 기운을 그려냈다. 그의 글 속에서 바나나는 단순히 평범한 원료가 아니라 ‘식물의 왕’이자 ‘신비의 과일’로 표현된다. 생산활동이 속하는 경제 체제나 수확으로 분주한 농부들의 노동활동을 거론하지 않고도, 우리베는 미학과 정치경제학을 혼합하는 작가들의 전통에 따르면서 세계의 노동 분야에서 라틴 아메리카가 갖는 새로운 역할을 부각시켰다. 그의 논설은 19세기 말 자유주의 신조 중 하나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정치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르도의 소위 ‘비교우위’ 논리는 모든 국가가 각자 ‘자연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할 것을 권했다. 라틴 아메리카의 비교우위는 유럽시장을 겨냥한 원자재 생산과 농산품 수출이었다. 바나나도 그 중 하나였다.

 

위기의 해답을 문학에서 찾았던 레트라도

 

하지만 약속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허구적 문학작품으로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있었다. 자유주의 반대파의 예언대로, 수출 증대를 먹고 자란 환상은 곧 여러 가지 암초에 부딪혔다. 대지주와 소작농 사이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과거 유럽경제 의존에 이은 북미경제 의존으로 불안정성도 상존했다.(2) 19세기 말부터는 많은 작품이 찬란한 미래에 대한 묘사에 등을 돌리고, 경제위기에 대하여 문학의 해답을 찾기 시작했다.

신문기자였던 훌리안 마르텔(1867~1896)은 이 무렵 직업적 문학가의 등장 현상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19세기 아르헨티나 문학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소설 <증권거래소>(1891)가 발표된 것은 당시 주요 전국 일간지의 연재소설란을 통해서였다.

줄거리는 이렇다. 1890년 런던 소재 베어링스 은행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리스크가 큰 투자를 한 탓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자기들이 무너지면 영국 금융계 전체가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협박 끝에 은행은 한 개인투자자 집단의 지원을 받았지만, 이듬해인 1891년 아르헨티나 GDP는 1년 사이에 10% 넘게 곤두박질쳤다. 하룻밤 사이에 투자금이 증발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마르텔은 이 상황을 증권거래소의 ‘허구적 호황’으로 묘사했다. 이 소설의 결말에서 투기로 재산을 탕진하고 파산한 한 투자자가 메두사를 닮은 괴물을 보며 “Yo soy la Bolsa!(내가 바로 증권거래소다!)”라고 절규하는 모습은 기억에 남을 만한 명장면이었다.

국제금융제도가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를 이토록 극적으로 묘사했으면서도, 마르텔은 ‘지금 있는 그대로의 세상’ 밖의 어떤 미래도 추구하지 않았다. 그는 영국식 자본주의의 역할을 부정하는 대신, 통상 희생양으로 묘사되는 유대계 은행가들과 사치스러운 여성들을 한껏 비난했다. 즉, 마르텔은 일부 ‘악성분자’만 재교육한다면(또는 제거한다면) 아르헨티나식 자유주의 모델이 여전히 성공할 수 있다고 믿고 싶었던 것이다.

 

브라질판 엘도라도에 직격탄 날려

 

마르텔과 동시대를 살았던 브라질의 위대한 소설가 조아킹 마리아 마샤두 지 아시스(1839~1908)는 한층 더 신랄했다. 그는 일명 ‘엔실랴멘투(Encilhamento)’라고 불렸던 1890~1891년 브라질 경제위기를 조롱했다. 그는 “모든 금융현상에는 세 가지 맞는 설명과 한 가지 틀린 설명이 있다. 이 넷을 다 믿는 것이 좋다”는 말을 들어 투기세력의 맹신을 비웃었다. 엔실랴멘투 현상에 대한 반향으로 널리 읽히는 그의 소설 <에서와 야곱>(1904)에 이르러서는 단순한 조롱을 넘어 돈의 ‘허구성’에 직격탄을 날리며 시니컬한 비판을 선보였다. <에서와 야곱>에서 마샤두 지 아시스는 브라질판 엘도라도를 그렸다. 프랑스 소설 <캉디드>에서처럼 길거리가 금으로 뒤덮인 것이 아니라, 노예처럼 끊임없이 재생산되어 무한한 배당금을 끌어오는 채권과 주식으로 뒤덮인 엘도라도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위기는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문학계는 제3세계 지역의 자본주의적 현대화에 대해 조금 더 현실적인 이미지를 반영하기 시작한다. 콜롬비아의 변호사 호세 에우스타시오 리베라는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 간 국경분쟁을 해소하기 위해 천연고무액이 나오는 고무나무 산지를 방문했다. 고무산업의 세계 중심이 말레이시아로 넘어가면서, 플랜테이션이 번창했던 호시절은 이미 먼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지폐를 말아 담배를 만들어 피우고 빨랫감은 유럽으로 보내 세탁하는 고무산지 유지들의 가공할 만한 호사보다도 리베라를 사로잡은 것은 귀한 고무를 수확하는 원주민 노예들의 삶이었다. 아마존 고무산업의 전성기를 배경으로 한 1924년 작 소설 <대와(大渦)>에서 리베라는 이전 세대 레트라도들의 눈먼 행태를 고발했다. 주인공 시인은 이상주의적 내용의 서정시를 흥얼거리며 정글 속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지주들의 경제적 욕망에 희생된 노동자들을 만났다. 시인은 결국 그 노동자들처럼 그곳에서 목숨을 내놓았다. 마르텔의 소설 속 인물들이 증권거래소에서 빈털터리가 되었듯이 상업의 정글에서 파산을 맞은 것이다.

1929년 금융위기에 이르러서는 지식인층 안에 균열이 생겼다. 불황은 산업화를 기반으로 한 보호주의 성장 모델(수입대체 모델)의 도입을 부추겼다. 한편으로는 문자해독률 상승, 중산층의 성장,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사상의 유입에 따라 새로운 목소리가 등장했다. 작가들은 여전히 라틴 아메리카의 현대화를 표상했지만, 이들 모두가 예전처럼 상류층 출신은 아니었다. 자유주의 레트라도라는 전형적 이상은 점점 ‘참여적’ 작가의 모습으로 대체되었다. 공산주의 사상과도 대부분 밀접했던 이들은 국내외 엘리트층에 의한 라틴 아메리카 대륙의 착취를 고발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칠레 작가 파블로 네루다(1904~1973)의 <유나이티드 프루트 주식회사>(1950)는 바나나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우리베의 작품과는 달리 이 작품 속 바나나는 노동자의 유해를 가리키는 메타포로 사용되었다.

 

이름 없는 것 하나

땅에 적힌 숫자 하나

죽은 과일 한 뭉치

공동묘지에 쏟아져 있네.(3)

 

이 무렵에는 19세기 ‘라틴 아메리카의 붐’ 패러다임을 그대로 따 이름을 붙인 문학사조가 새롭게 등장했다. 아마도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라 할 수 있을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바로 이 ‘붐 세대’에 속한다. 유나이티드 프루트 주식회사의 바나나 농장이 있었던 콜롬비아의 농촌 시에나가에서 태어난 그는 유년기부터 수출 위주 경제모델의 만연이 낳은 사회적 폐해의 영향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이국적인 분위기로 북미와 유럽 독자들에게도 널리 사랑받았지만, 무엇보다도 이런 의존형 경제의 대물림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기도 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대표작 <백 년 동안의 고독>(1967)은 한 바나나 농장이 생겨나는 시점부터, 기업이 철수함에 따라 말 그대로 이 땅에서 사라지기까지의 서사시를 상세히 담아냈다. 이후에 발표된 <족장의 가을>(1975)에서는 팔 것이 바다밖에 남지 않은 카리브해 연안의 가상 나라 이야기가 그려졌다.

20세기 말 신자유주의가 대두되면서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외국자본에 시장을 추가적으로 개방하고 과거 우리베 장군이 열광했던 경제전략을 부활시켰다. 그렇지만 이들은 이제 더 이상 정책의 합법성을 문학가들로부터 찾지 않는다. 합법성은 경제조약에서 나온다. 정치지도자들도 예전만큼 시를 쓰지 않는다. 안드레스 벨로의 바나나 찬가는 칠레의 군부 출신 대통령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식 자유무역정책의 기초가 된 <엘 라드리요(벽돌)>에 자리를 내주었다. 자유무역주의의 복잡미묘한 면모를 시사한 문서이다.

문학이 권위를 잃고 영향력을 잃기는 했지만 작가들은 붓을 놓지 않았다. 칠레의 작가 디아멜라 엘티트가 발표한 <육체에 대한 세금>(2010)에는 극단적인 상업화 체계의 희생양이 되어 장기를 파는 것 외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모녀가 등장했다. 또 다른 칠레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는 소설 <2666>에서 멕시코 북부 하청공장의 악몽 같은 미래를 그려냈다. 2001년 아르헨티나 경제위기를 소재로 한 아르헨티나 작가 페드로 마이랄의 소설 <악천후(사막에서의 1년; 2005)>는 사막이 모든 문명의 흔적을 삼켜버릴 때까지 역행하는 한 디스토피아적 나라에서 금융제도가 무너지는 모습을 묘사했다. 하지만 경제권력은 더 이상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문학작품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제 문학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은 바로 이들이 손에 쥐고 있는 언론이다.

 

글‧에리카 베크만 Ericka Beckman

일리노이주립대 스페인 문학 및 비교문학 교수. 저서로 <캐피탈 픽션. 라틴 아메리카 수출시대의 문학(2013)> 등이 있다.

 

번역‧김혜경

 

(1) Y para ti el banano/ Desmaya al peso de su dulce carga;/ El banano, primero/ De cuantos concedió bellos presentes/ Providencia a las gentes/ del Ecuador feliz,

편집부 옮김

(2) 의존형 경제 메커니즘(<의존성에 관한 이론>)에 대해서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6월호 ‘브라질, 족쇄에 걸린 거인(르노 랑베르)’ 참조

(3) Una cosa sin nombre/ un número caído/ un racimo de fruta muerta/ derramada en el pudrid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