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불평등과 환경 불평등의 관계는?
사회 불평등과 환경 불평등의 관계는?
사회에 대량 실업 사태가 발생하면 나무의 권리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것이 1990년대 말 잡지 <레젱록(Les Inrocks)>에서 한 저널리스트가 내놓은 주장이다. 그로부터 15년 뒤, 자드 랭갸르(1)는 새로운 삶의 방식, 산업 혹은 원자력이 가져 온 폐해를 조사하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기존과는 다른 경험과 지식을 쌓고 소유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었다. 랭갸르는 다 함께 주거지를 바꾸는 낭시의 주민들 방식을 배워가고자 했다. 처음에는 힘들었고, 두 번째는 갈 길이 멀다는 생각에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랭갸르는 ‘사용의 가치가 교환의 가치를 대신할 것이며 풍성함이 소유를 밀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에세이스트이자 아나키스트 환경운동가인 머리 북친은 “뭔가를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기분이 들면 소유욕은 줄어들게 된다”고 주장했다. 낙천주의자이기도 하면서 자신의 쓰레기통을 보며 절망하기도 하는 유머를 갖춘 북친은 습관의 희망을 확인했다. “정보를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과 직접 행동을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에릭 뒤팽(2)은 조사를 하면서 극단적인 환경보호 운동의 장점을 보게 되었다. 약 2년 동안 뒤팽은 프랑스 투어를 하면서 공동 주택 혹은 대안 학교들을 만났다. 12개 장으로 구성된 저서에서 뒤팽은 조용히 일상을 바꾸는 사람들의 습관에 대해 설명한다. 요즘 도시에서 공동 주택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나타나고는 있지만 공동 주택은 이미 프랑스 오트 잘프의 ‘에코 빌리지(친환경 마을)’처럼 이미 예전에도 있었던 운동이기도 하다.
친환경적으로 세상을 살려면 새로운 질문과 답변을 해봐야 한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의 친환경 마을 ‘토리 수페리오르’(3)는 기부를 시행한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경제의 가치와는 다른 가치에 따라 일하는 것은, 두려운 도전이나 실천이 조금씩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국 뒤팽의 에세이는 경험의 축척과 사회 변화 사이의 관계를 묻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저자 프랑수아 메로니는 “우리가 살 수 없는 환경에 둘러싸여 있다”고 하면서 “모든 것을 잃어야 역설적으로 숨통이 트이게 된다”고 주장한다.(4) 메로니는 소소한 것으로 만족하는 사회를 꿈꾸며, 성장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운동이나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꿈이나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한다. 메로니는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1883~1950, 오스트리아 출신 미 경제학자-편주)가 이론화한 ‘창의적인 파괴’에 기대를 건다.
사회학자 람지그 큐셰안(5)은 ‘환경적인 합의는 있을 수 없으며 사회 불평등과 환경 불평등은 서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녹색 자본주의가 주입하는 새로운 사회관계에 희생되는 것은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이다. 큐셰안은 기후의 전략 지정학, 냉전을 대체하는 녹색 전쟁을 분석한다. 시장 자유주의는 끝없이 옛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내놓는다.
숲 속에서 사는 삶을 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숲 속에서 극도의 소박한 생활을 하는 것보다는 플라스틱이나 원자력 없는 세상을 꿈꾸며 속세에서 소박하게 사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모든 삶은 법칙과 규칙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따라 이루어진다.’
글‧크리스토프 고비 Christophe Goby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번역서로는 <프랑스 엄마처럼>(2014) 등이 있다.
(1) Jade Lindgaard, <내가 기후 위기를 만든다>, La Découverte, 파리, 2014년
(2) Eric Dupin, <선구자들>, La Découverte, 2014년
(3) Geraldine Colotti, ‘이탈리아, 새로운 개념의 경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10월호
(4) François Meyronnis, <진정한 세계 위기 선포>, Les liens qui libèrent, 파리, 2014년
(5) Razmig Keucheyan, <자연은 전쟁터다>, La Découverte, 20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