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크루그먼, 잊지말자, '보수 네트워크'

2009-05-06     한승동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폴 크루그먼 지음·예상한 외 옮김·현대경제연구원북스 펴냄·1만8천원
 조지 부시가 재선된 2004년 대통령 선거가 미국 보수주의 운동의 마지막 축제가 될 것이라고 했던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의 예언은 실현됐다. 공화당이 패배한 대선 한 해 전인 2007년에 출간된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는 단순한 미국 사회 분석·전망이 아니라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를 열망한 미국 진보주의 운동의 철학적 지침서요 행동 강령처럼 읽힌다. 놀라울 정도의 정확성과 적중률을 보인 크루그먼의 생각은 미국 외의, 이를테면 한국과 같은 나라에도 그대로 적용해볼 수 있는 범용성을 지녔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음미해볼 만하다.
 크루그먼이 이 책에서 전하려는 메시지는 이런 것이다.
 
 정치적 양극화가 경제적 불평등 불러
 미국 역사를 돌이켜볼 때,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양극화는 동전의 양면처럼 병행한다. 반대로 모두가 그리워하는 경제적 황금시대와 정치적 황금시대도 시기적으로 거의 일치한다. 계층 간 소득 격차가 줄어들면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 간 이데올로기나 노선·정책 차이도 줄어든다. 그렇다면 미국 사회가 절대다수가 불행해지는 악순환에 빠져들 때 경제적 불평등이 정치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또는 둘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가? 크루그먼이 내린 결론은 정치적 양극화가 먼저라는 것이다. 즉, 정치적 양극화 현상이 소득 격차를 확대해 경제적 불평등을 낳고 이는 다시 정치적 양극화를 가속하는 악순환 고리를 만든다는 것이다. 정치적 양극화는 자신들만의 이익 극대화를 노린 소수 특권층의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행동에 의해 촉발되고 반대 집단의 대응으로 점차 극대화한다.
 따라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정치부터 바꿔야 한다. 크루그먼의 메시지는 구체적이다. “진보주의 운동가가 된다는 것은 당파성을 띤다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말이다. 진보주의 운동의 안건이 입법화되는 유일한 방법은 민주당에서 대통령이 나오고 동시에 민주당이 의회에서 공화당의 반대를 극복할 수 있도록 다수당이 되는 것이다.”
 크루그먼은 중산층을 해체하고 소수의 부유한 엘리트층과 절대다수 빈곤층으로 양극화하면서 미국 사회를 전망 없는 분열로 치닫게 만든 집단은 바로 공화당 우파와 손잡은 보수주의 운동 세력이라 지목한다. 뉴딜 정책의 성과를 뒤엎고 승승장구해온 공화당 30여 년의 ‘보수 혁명’을 이끈 주역들.
 거기에 대적해서 선의의 당파성으로 무장한 진보주의 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실천적 요구를 바탕에 깔고 있는 게 이 책이다. 책의 원제목이 ‘진보주의자의 양심’(The Conscience of a Liberal)이다. 흔히 ‘자유’, ‘자유주의자’로 번역되는 ‘리버럴’(liberal)을, 이 책의 핵심 분석 대상인 컨서버티브, 컨서버티즘(conservatism·보수주의)과의 대칭적 관계를 고려해 진보, 진보주의자로 옮긴 것은 적절했다.
 
승자독식의 도금시대에 제동 건 뉴딜 
 크루그먼은 남북전쟁 시기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남북전쟁 뒤 재건 기간이 끝난 1870년 무렵부터 193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취임과 뉴딜 정책 추진 때까지를 도금시대(Gilded Age)로 잡는다. 마크 트웨인이 동명의 풍자소설로 야유한 그 시대는 약육강식의 탐욕과 부패로 얼룩진 승자독식의 강자들 천국이었다. 1901년에 대통령이 된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거기에 제동을 걸었으나 1929년 대공황을 거쳐 뉴딜이 본격 시행될 때까지 그런 추세는 기본적으로 지속됐다.
 이런 정글 법칙에 제동을 걸고 미국의 진로를 바꾼 게 뉴딜이었다. 루스벨트의 민주당 정권은 대공황의 혼란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시 상황을 배경으로 우파 강자들의 방해를 뚫고 사회보장제도와 실업보험을 도입하고 노동조합 운동을 장려하는 등 법과 제도를 개혁함으로써 미국을 중산층이 지배하는 국가로 바꿨다. 공화당도 도태를 면하기 위해 뉴딜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공화당과 민주당 간의 노선 차이도 거의 없어졌다. 계층 간 소득 격차가 급속히 줄어들고 정파 간 정치적 견해차도 중간으로 수렴된 ‘대압축’(Great Compression)은 법치와 민주주의의 만개로 이어졌다. 그런 변화의 토대는 불과 몇 년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해 달성됐고 그것은 1970년대 초까지 30여 년간 지속됐다는 게 크루그먼의 생각이다. 1953년생인 그가 기억하는 1960년대 유년기의 풍요로웠던 미국은 바로 뉴딜 덕이었던 것이다.
 강자들의 역공은 1951년 보수주의의 원류 윌리엄 버클리가 <예일의 신과 인간>을 출간하고 4년 뒤 <내셔널 리뷰>를 창간함으로써 표면화됐다. 버클리 정신을 현실 정치에 성공적으로 접목시킨 사람이 1960년대에 정치 무대에 등장하고 1980년대에 권좌에 오른 로널드 레이건이다. 공화당 30년 보수 혁명은 레이거노믹스와 함께 본격화한 셈이다. 민권운동, 베트남 패전과 반전시위, 석유 위기, 미국의 절대적 경제 우위 상실과 달러 체제 동요 등을 거치면서 좋았던 시대는 끝났다. 하지만 크루그먼은 중산층이 지배한 행복했던 미국 시대의 붕괴는 그런 사회경제적 격변 때문이 아니라 권토중래를 노리던 공화당 우파와 손잡은 보수주의 운동 때문이었고, 모든 걸 강자들 천국이었던 뉴딜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그들의 반개혁적 정치공작 때문이었다고 정리한다. 부유층 감세, 민영화, 규제 완화, 노조 탄압 등을 앞세운 꼴보수 정치가 법과 제도를 바꿨고 그 결과 소득 균형이 무너졌으며 그에 따라 중산층이 몰락하고 사회는 양극화해 민주주의가 퇴락하고 권위주의가 기승을 부리게 됐다. 그에 따라 다시 공화, 민주 간의 정치적 견해도 양극단으로 더욱 분열되는 악순환에 빠졌다. 보수 우익은 이를 위해 인종주의와 종교, 성적 취향의 차이를 이용했고 반공주의를 활용했다. 워싱턴 컨센서스 강요와 이라크 침략도 그 연장이겠다. 이런 과정을 실증적으로 뒤좇는 책은 관점이 분명한 솜씨 좋은 미국 현대사 입문서처럼 읽히기도 한다.
 
 역습 노리는 ‘정ㆍ경ㆍ언ㆍ학’ 유착
 크루그먼은 그런 세월을 다시 뒤집자고 얘기한다. 뉴딜로 되돌아가자는 것이다. 특히 그가 강조하는 것은 노조운동 활성화와 부국들 중 미국에만 없는 국민의료보험체제 도입이다. 이 두 가지야말로 보수주의 정치 풍토를 날려버리고 평등하고 풍요로운 미국을 장기적으로 정착시킬 새로운 진보 세력을 양성할 토양이기 때문이다.
 크루그먼이 말하는 미국 보수주의 운동은 그냥 정치가 아니라 “사람과 조직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네트워크”다. “보수주의 운동은 공화당과 공화당 소속 정치인 말고도 언론그룹, 싱크탱크, 출판사, 그리고 그 이상을 포함했다. 사람들은 이 네트워크 안에서 평생 동안 일하며 경력을 만들 수 있었고,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보수주의에 대한 충성은 보상받으리라는 믿음으로 심리적 안정을 느꼈다.” 쿠어스, 올린, 스케이프 등 대표적 재벌, 기업들이 자금을 쏟아부어 보수주의 토대부터 착착 확장해간 이 정·경·언·학 네트워크. 미국식 ‘하나회’라고나 할 이 네트워크 확장 방식을 한국의 보수 우파들이 수입해 거대한 21세기형 ‘하나회’를 재결집하고 있다는 지적들이 나오는 건 흥미롭다. 이미 그 네트워크가 실패로 끝난 시대착오라는 게 금융공황 및 공화당 정권 붕괴와 함께 명백히 드러난 지금 뒤늦게 말이다. 그들이 성공한다면, 한국 사회는 소수 우익 특권층에게 수십 년에 걸친 독점적 이익을 보장해주는 대신 20여 년 전에 빠져나온 장기 질곡 속으로 다시 회귀하게 될 것이다.

글/한승동 sdhan@hani.co.kr
<한겨레> 출판 전문기자. 주요 역저로 <대한민국 걷어차기>(2008), <시대를 건너는 법>(2007), <우익에 눈 먼 미국>(200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