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의 반(反)카스트로 전략의 파열

2014-12-29     살림 람라니

워싱턴의 반(反)카스트로 전략의 파열

2014년 12월 17일 미국과 쿠바는 양국 국교 정상화를 발표했다. 그러나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라울 카스트로는 담화문을 통해 ‘그렇다고 해서 주요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과연 미국 의회가 금수조치를 해제할 것인지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지난 53년간 미국의 경제 제재는 쿠바 섬의 경제를 옥죄고 있다.

살림 람라니|정치학자

미국의 아이젠하워 공화당 정부는 지난 1960년 처음 쿠바에 경제 보복을 취했다. 당시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 정부가 취한 기업 국유화 정책 때문이었다. 1962년 존 케네디는 경제 제재를 확대하고 금수조치를 선포했다. 그 여파는 엄청났다. 미국은 늘 당연히 쿠바의 중요 시장이었다. 1959년 쿠바 수출의 73%는 북쪽의 미국을 향했고, 또 총수입의 70%는 미국에서 온 것이었다.
이러한 경제 제재를 정당화하는 이유는 세월이 흐르며 바뀌었다. 1960년에 미국 정부는 쿠바의 국유화 조치로 인해 강제수용 당한 미국 기업들의 손실을 내세웠다. 1961년도부터는 쿠바와 러시아 관계가 가까워진 것을 이유로 들었다. 그 이후로는 군부 독재자에 항거하는 미국계 중남미 게릴라들에 대한 지원, 또 아프리카에서 쿠바의 개입이 금수조치의 이유였다.

역사상 가장 오랜 경제 봉쇄

1991년 소련이 무너졌다. 쿠바와 관계를 정상화하는 대신 미국은 제재 강화를 택했다. 당시 그 명분은 민주주의 정립을 재촉하고 인권 존중을 위한 압력을 행사한다는 것이었다.
쿠바의 주요 교역국이었던 소련이 사라진 후 쿠바 역사상 가장 심각한 경제 위기가 시작된다. 1991~1994년, 쿠바의 국내총생산(GDP)은 35%나 급락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집권한 지 3년 후 1989년 미국 의회는 토리첼리법(쿠바 민주주의법)을 통과시킨다. 이 법은 쿠바인들에 대한 경제 제재를 더욱 강화하는 법안이었다. 이 법은 국제법에서는 금지된, 초국적 성격의 법안이었다(프랑스 법이 독일에서 적용되겠는가!). 1992년 이후 어느 국적의 선박이든 모든 외국 선박은 쿠바를 거치면 미국 항구에 6개월간 입항이 금지되었다. 다시 말해 부근 해역에서 운행하는 해운 회사들은 쿠바와 교역할 것인지 미국과 할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딜레마는 금세 결론이 난다. 결과적으로 해상 교역에 크게 의존하는 섬나라 쿠바는 물자 교역을 위해 시장 가격보다 훨씬 비싼 대가를 지불하면서 세계 각국의 해운업체들을 설득해야만 했다. 토리첼리 법안은 쿠바에 지원하는 모든 나라에 대해서도 제재하였다. 가령 멕시코가 쿠바에 1억 달러의 지원을 하면 미국 정부는 그만큼 멕시코에 대한 지원을 줄이는 식이다.
1996년 클린턴 정부는 치외법권 지역에서도 적용되는 헬름스 버튼법(쿠바 자유민주연대법)을 통과시킨다. 국제법이 금하고 있지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이 법 조항을 보면 1959년 쿠바 정부가 국유화한 토지에 입주하는 기업들은 모두(따라서 미국 기업도 포함해) 제재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헬름스 버튼 법은 미국 법에도 위배되었다. 미국 법에 따르면 강제 수용은 오직 국제법에 위배될 때만 처벌 가능하고 또한 그에 관한 기소도 그러한 일이 일어날 당시 피의자가 미국 여권을 소지했을 경우에만, 그것도 미국에서 가능하다. 대부분 기소 요건이 완전히 확립되지 않았다. 그러나 법은 완벽하게 역할을 다해 수많은 투자자들은 보복을 두려워해 쿠바에 입주하길 꺼려했다.
2000년 쿠바에 농산물을 팔기 위한 미국 농업계의 로비가 있자, 미국은 경제 제재를 완화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대신 그 조건은 엄격했다(신용거래나 달러 외의 다른 화폐 사용은 되지 않고, 현금 사전 지불만 가능). 4년 후 조지 부시 정부는 ‘자유쿠바지원위원회’를 창설한다. 그러나 여기서 ‘지원’은 기이한 것으로 쿠바에 대한 새로운 제재를 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쿠바 여행 제한이 시작되었다. 미국 내 외국 국적의 영주권자는 누구든 원할 때 고국에 갈 수 있다. 그러나 2004년부터 쿠바에 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재무부의 승인 없이는 갈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체류기간도 그 이전에는 1년이었던 데 반해 3년간 총 14일로 제한했다. 게다가 방문하려면 가족이 쿠바에 상시 거주한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했다. 사촌이나 조카, 삼촌은 이 가족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았다. 쿠바인들을 대상으로 부시 정부가 규정한 가족의 범위는 형제 자매 간, 부모와 조부, 배우자로 축소되었다. 몬타나 주의 상원의원인 맥스 바우쿠스의 청구로 재무부는 2004년 다음과 같은 내용을 공개했다. 1990년과 2004년 사이 국제 테러리즘과 관련한 93건의 수사를 했고 ‘미국인들이 쿠바를 여행할 권리 행사를 금지시키기 위해(1)’ 1만683명이 여행을 제한 당했다.
부시 내각이 생각했던 ‘지원’은 현금 교환 및 송금도 해당되었다. 미국 영주권자 중에서 쿠바에 14일간 체류할 모든 조건을 갖춘 자는 쿠바에 머무는 동안 하루 50달러 이상을 사용할 수 없었다. 미국 시민권자나 영주권자들은 외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금액 제한 없이 송금을 할 수 있지만, 오직 쿠바 출신의 사람들은 한 달에 100달러 이상은 송금할 수 없었다. 금전적 도움을 받게 될 대상이 만약 쿠바 공산당의 당원이면 아예 송금 자체가 금지되었다.

한국 자동차회사 쿠바산 사용불가

2006년 자유쿠바지원위원회는 ‘외국인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광범위한 의료 프로그램에 이용될 목적’(2)의 의료기기 수출을 전면 금지하면서 쿠바에 중요한 외화 수입원인 국제 의료사업에 제동을 건다. 전 세계적으로 의료 기술의 상당 부분은 미국 것이다.
경제 제재의 치외법권적 적용은 점차 강화되다 못해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지경에 이른다. 일본, 독일 또는 한국의 자동차 제조업체가 미국 시장에 자사 제품을 판매하고자 하면 사전에 미국 재무부에 자사 제품에 쿠바산 니켈을 쓰지 않았다는 점을 증명해야 했다. 같은 식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프랑스 제과업체는 역시 자사 상품에 쿠바산 설탕이 단 1g도 들어있지 않음을 증명해야 했다. 만일 미국 관광객이 프랑스 여행 중에 쿠바산 시가나 하바나 클럽에서 럼주 한 잔을 마시면 1백만 달러에 달하는 벌금과 함께 10년의 징역이 가해진다.
2006년에는 일본 기업 니콘은 불치 유전병인 혈우병을 앓고 있는 13세의 쿠바 소년 라이젤 소사 로하에게 약속했던 수상 경품 니콘 카메라 수여를 거부했다. 이 소년은 유엔환경계획(UNEP)이 주최한 국제 어린이 회화전에서 15위를 한 바 있었다. 그러나 카메라에 들어가는 일부 부속품이 미국산이었고 니콘은 쿠바와 ‘교역한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다.
2007년 7월 스페인 올라 항공사는 ‘미라클’ 프로젝트(3)의 일환으로 안과 질병에 걸린 기타 남미 국가의 환자들을 쿠바로 이송해주기로 쿠바 정부와 약정했다. 그러나 항공사는 쿠바와의 관계를 끝낼 수밖에 없었다. 미국 보잉사에 항공기 수리를 요청했을 때 보잉사가 올라 항공사와의 관계 단절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백악관에서 내린 지령이었다.
2014년 5월 프랑스 BNP 파리바 은행은 2002년부터 2009년까지 쿠바, 이란, 수단에 가해진 경제 제재를 무시했다는 이유로 89억7천만 달러의 기록적인 벌금을 물게 되었다.
미국의 경제 제재로 보건 분야는 직격탄을 맞았다. 의료 분야 특허의 약 80%를 미국계 다국적 제약 회사들과 그 자회사들이 보유하고 있다. 쿠바는 과학기술 진보의 혜택에서 제외되었다. 유엔 고등인권판무관은 “미국의 경제 제제가 가져온 제한으로 쿠바는 의료 과학 신기술과 신의약품을 접할 길이 거의 차단되었다”(4)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가 집권한 뒤 변화가 왔다. 2009년 오바마는 2004년 도입된 쿠바 여행 및 송금 제한을 폐기한다.(5) 2013년 12월 10일 넬슨 만델라 영결식에서 오바마와 카스트로가 ‘역사적’ 악수를 하면서 변화의 신호는 최고조에 달한다.
전임 대통령인 제임스 카터와 빌 클린턴은 나름대로 여러 차례 워싱턴 정책에 대한 반대를 표명했다. 카터는 2011년 3월 두 번째 쿠바 방문 후 “저는 공개적으로 또 사적으로 계속해서 미국의 쿠바인들에 대한 경제 봉쇄, 금융 및 교역 여행 등의 모든 제재를 철회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라고 선포했다.(6) 클린턴도 “‘말도 안 되는’ 제재 정책은 ‘완전히 실패’했다”고 말했다.(7)
미국의 재계 및 주요 다국적 기업을 대표하는 상공회의소도 역시 “경제 봉쇄의 종식을 원한다”(8)고 피력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쿠바 제재를 ‘시대착오적 냉전의 산물’(9)이라고 일갈했다. 보수 매체인 워싱턴포스트도 신랄한 비판을 한다. “미국의 대쿠바 정책은 실패다.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다. 오직 미국이 행한 경제 봉쇄로 미국만 더욱 우스워졌고 전에 없이 무기력해졌을 뿐이다.”(10)
미국의 여론도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에 대해 대다수 우호적이다. 지난 2009년 4월 10일 CNN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시민들 중 64%는 쿠바에 대한 경제 제재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2대 온라인 여행사 중 하나인 오르비츠 월드와이드에 따르면 미국인들 중 67%가 쿠바에서 휴가를 보내고 싶어 하며, 72%는 ‘쿠바 관광이 쿠바인들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가져올 것’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2013년 유엔 연례회의에서 192개 국가 중 188개 국가가 쿠바인의 70% 이상이 이 같은 경제 제재 시작 이후 태어난 점을 들면서, 22년째 연속으로 쿠바에 대한 미국의 경제 봉쇄를 비판했다.

글·살림 람라니 Salim Lamrani
저서로 <쿠바, 객관성의 화두 앞에 직면한 언론>(Estrella, Paris, 2013) 등이 있다.

번역·박지현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2004년 5월 6일 미국 상원의원 ‘바우쿠스가 대쿠바 정책은 ‘터무니없다’며 부시를 비판했다.
(2) Condolezza Rice 와 Carlos Gutierrez, Commission for Assistance to a Free Cuba, 2006년 7월
(3) 쿠바와 베네수엘라가 공동으로 진행한 인도주의 프로젝트로 제3세계의 가난한 안과 질환 환자나 백내장 환자들을 대상으로 무료 수술 치료를 행했다.
(4) Human Rights Council, ‘Situation of human rights in Cuba’, A/HRC/4/12, 2007년 1월
(5) Patrick Howeltt-Martin, ‘Dégel sous les tropiques entre Washington et La Havan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11월호
(6) James Carter, <Trip report by former US president Jimmy Carter>, The Carter Center, 2011년 4월 1일
(7) Christopher Hitchens, ‘ What was Bill thinking?’, <Newsweek>, New York, 2009년 9월 24일
(8) 미국 상공회의소, ‘Testimony on “examining the status of US trade with Cuba and its impact on economic growth’, 2009년 4월 27일
(9) ‘Obama, Cuba and the OAS’ <뉴욕타임스>, 2009년 6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