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인기스타가 된 덩샤오핑

2014-12-29     조르단 푸유
   
 

대부분의 중국인들에게 덩샤오핑은 중국을 개방하고 번영과 자본주의로 이끈 공산당 지도자로 남아있다. 현 지도자들이 더 높이 평가하고 싶은 사람이 바로 이 인물이다. 심지어 현 지도자들이 덩샤오핑을 주인공으로 한 대하드라마를 만들었는데, 이 드라마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작은 집의 안쪽 깊숙한 곳에서 한 아버지가 하지가 모두 마비된 자식의 등을 주무르고 있다. 미래의 중국 지도자인 덩샤오핑은, 조심스럽게 침묵을 유지하고 부드러운 눈길을 주면서, 8년 전 문화혁명 때 학교 건물 4층에서 홍군에 밀려 떨어진 자신의 아들 푸팡을 편안하게 해주려고 신경을 쓰고 있다.

 

덩샤오핑의 영광을 재현하는 드라마 인기

 

지난 8월 8일부터 9월 8일 사이 매주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중국의 국영방송 CCTV1은 시청자들에게 두 편의 45분짜리 일일드라마를 방영했다. 이 시리즈는 1976년과 1984년 사이에(1989년 천안문 사태 진압 이전) ‘리틀 조타수’라 불렸던 덩샤오핑의 업적과 생을 조명하고 있다. 이 TV 프로그램은 1976년부터 중국의 개방을 추진했던 덩샤오핑의 탄생 110주년 기념식에 맞추어 방영되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1976년 9월 9일 마오쩌둥이 사망했을 때도 여전히 자신의 집에 연금된 채 가족들과 생활하고 있는 덩샤오핑의 일상을 묘사하고 있다. 박해 받고 있는 몇몇 안경 낀 지식인들이 여전히 베이징의 달동네 공중변소를 청소하고 있을 정도로, 문화혁명은 공식적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출입 금지된 도시의 서부의 시단구역(베이징 최대의 금융가이자 핵심 상업지구) 자유의 벽에 혁명의 메시지들이 여전히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러나 군대는 ‘4인방’ 체포절차에 들어간다. ‘중국을 혼란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 장교가 말한다. 소식을 알게 된 덩샤오핑의 부인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지만, 그의 남편은 줄담배를 피우고는 자기 아이들을 포옹한다. 그들의 억류상태가 끝난 것이다. 덩샤오핑은 더 이상 박해 받지 않을 것이고, 어쩌면 새로운 운명을 꿈꿀 수도 있을 것이다.

드라마 제작에 준비기간 5년, 촬영기간 112일, 편집기간 7개월에, 제작비 1억 2천만 위안(1천 4백만 유로)이 투입되었다. <역사의 기로에 선 덩샤오핑>이라는 제목의 이 드라마는 <후궁견환전>이나 <신탐 적인걸> 같이 더 경박한 시리즈물과 그럭저럭 경쟁하고 있다. 프로그램 첫 자막에 명망 높은 공직자들인 중국공산당 중앙문헌연구실 주임 렁룽과 덩샤오핑이 태어난 마을의 공산당 서기인 왕둥밍이 고문자격으로 등장한다.

인민일보에 따르면,(1) ‘공산당 간부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이 시리즈의 DVD가 1만 장 제작되어 간부 모두에게 배포되었다. 시사회는 인민의 대(大)전당에서 개최되었고, 방송용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는 영웅의 고향인 쓰촨성 내 학교들에서 방영되었다. ‘친근’이란 개념이 연출가들의 키워드로 여겨진다. 덩샤오핑은 농부의 아들이었는데, 그를 연기한 배우가 쓰촨성 사투리를 심하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1977년부터 중국공산당이 그에게 다시 중국을 맡겼을 때, 그는 보좌관들을 베이징의 가장 좋은 호텔로 초대한다. 그는 그들의 손을 어루만지며 그들에게 부드럽게 말을 한다. 덩샤오핑은 곧바로 따뜻한 마음을 지닌 개혁가의 모습으로 변한다.

 

실용적인 지도자의 고뇌 보여줘

 

또한 이 드라마는 수십 년간의 혁명으로 좌절된 국가의 재건을 위해 고심하는 실용적인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실천만이 진실의 유일한 기준’이라는 그의 유명한 좌우명을 연출가 자신이 철저히 적용하고 있는 것 같다.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권력의 속성과 선택이 다뤄지고, 그 다음 에피소드는 현장에서 그 선택들이 적용되는 모습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1978년 대학이 다시 문을 열고 모두를 위한 입학시험이 시행된다는 발표가 난 후에, 드라마 시리즈는 도시 청소년 한 세대 전체가 70년대 말까지 강제로 수용된 농장들을 오랫동안 묘사한다.

시청률은 비밀에 부쳐져 있지만, 이 시리즈는 나름대로 시청자를 확보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정치는 사람들이 외부에서만 관찰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시청자는 참으로 많은 비밀모임에 참석했다!”라고 베이징의 사무원인 34세의 딩딩 여사가 말한다. 딩딩 여사는 다른 많은 중국인들처럼 이 시리즈를 인터넷으로 다운받아 자신이 편한 때에 시청하는 열혈팬이다.

중국은, 과거 혁명시절을 뒤로 하고서, 덩샤오핑과 더불어 자본주의로 선회한다. 이 시리즈는 외국의 공장, 광산, 항구, 대학, 연구소를 방문하기 위해 3천 명의 관리를 파견하는 장면을 통하여 자본주의로의 선회를 보여준다.

일본을 공식 방문했을 때 덩샤오핑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일본의 한 기자에게,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 영유권 분쟁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드러낸다. “적어도 10년간은 이 문제를 제쳐놓는 것이 좋다. 다음 세대가 대처하고 해결책을 찾아낼 것이다.” 이 문제가 외교정책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고 국내 선전활동을 조장하는 시점에서, 덩샤오핑이 현 주석인 시진핑에게 텔레비전을 통해 주는 조언이다.

드라마는 그 시절의 예언가와 현재 지도자 간의 봉화전달식, 바통 물려주기 예식으로 기능하고 있다. “시청자들은 시진핑이 덩샤오핑과 똑같은 의무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8월 13일 인민일보가 평가했다. 1주일 후 인민회의 궁전에서 시진핑은 좌중을 진정시키기 전에, ‘위대한 인물’이라는 말을 28번이나 사용하면서 덩샤오핑을 극구 칭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망설임 없이 개혁과 개방의 길을 계속 추구해 갈 것이다.”(3)

그러나 이 드라마에는 배우들이나 공산당 관리들이 개입할 수 없는 한 장면이 들어 있는데 베이징의 회색 하늘이 바로 그것이다. 강제 행군식의 개발의 열매라 할 수 있는 2010년대의 ‘스모그’는 거의 모든 에피소드에 등장했다.

 

글·조르단 푸유 Jordan Pouille

 

번역·고광식

 

(1) “덩샤오핑 시리즈는 중요한 몇 년간의 베일을 벗기고 있다”, <인민일보>, 2014년 8월 13일, http://french.peopledaily.com.cn

(2) 같은 신문에서 인용

(3) “시진핑은 중국이 선택한 유례없는 길을 지속해가면서 덩샤오핑의 유산을 영속화하고 있다”, <신화통신>, 2015년 8월 20일, http://french.xinhua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