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거리는 사회적 저항의 지정학
[기획/혁명은 왜 일어나는가]
농산물 가격 폭등으로 세계 민중 생활여건 악화
올해 들어 항의운동, 전염병처럼 전세계 휩쓸어
혁명은 끝없는 추방의 대상이었고, 자체적인 이탈로 역사의 묘지에 묻힌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혁명의 이런 ‘실종’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모든 것이 변할 것이라는 거대한 희망이 집단의식 속에 움트고 있고, 여러 사건들을 통해 그 것이 출현하고 있다. 사실, 수 세기 동안 전 세계를 휘감았던 이 혁명의 붉은 끈은 한번 도 끊어진 적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노동 운동, 여성해방 운동, 민족해방 운동의 고단한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릴 것인가? 경제 위기로 촉발된 대중의 분노 앞에 보수주의자들은 긴장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철학 모델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혁명의 징후를 우려하고 있다. 또 다른 세계가 등장할 것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최근 경제위기를 맞아 세계를 휩쓰는 저항과 혁명의 본질과 의미를 집중 분석한다.편집자
수 차례의 작은 지진이 대규모 강진을 예고하는 것처럼 2008년 세계 곳곳에서 촉발된 저항 운동은 현 경제 혼란의 전조였다. 각국 사회를 흔들어 놓은 사회적, 민족적, 언어적 갈등은 나라별로 상이한 형태를 취한다. 그러나 이 민중 봉기들은 명백히 확인할 수 있는 원인들로 인해 발생했다.
먼저 1990년대 초부터 본격화한 세계화 확대는 한편으로는 부를 창출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빈곤을 심화시켜 국가와 국민 전체를 낙오자로 만들어버렸다. 경제 위기는 수백만 명의 생존 수단과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고 위기 전부터 감지되었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균열을 더욱 악화시켰다.
2008년 봄, 방글라데시, 카메룬, 코트디부아르, 이집트, 에티오피아, 인도, 인도네시아, 요르단, 모로코, 세네갈에서 기아 폭동이 발생했다. 그 중에서도 아이티 폭동이 대표적이다. 포르토프랭스에서 식량 배급을 요구하는 시위대 수천 명의 대통령 관저 점거는 아이티 안정을 위한 국제연합(유엔)군의 개입을 초래했다. 아이티 남부 카이예 지역에서는 주민 네 명이 유엔군과 총격전 끝에 사망했다. 이 사건들로 장자크 알렉시스 아이티 총리는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2007년부터 2008년까지 농산물 평균 가격이 전 세계적으로 두 배나 급등했다. 그 결과 이미 빈곤한 삶을 살고 있던 수억 명의 빈민들은 소득의 상당 부분을 식량 구입에 할애할 수밖에 없었고, 생활 수준이 악화됐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이 놀라운 가격 상승은 두 가지 요소에 기인한다. 첫째, 농업 활동 및 화학비료 생산에 사용되는 석유 및 천연가스 가격의 폭등이다. 둘째, 식량 생산보다 바이오 연료 생산에 할애된 경작지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1)
어떤 면에서 볼 때 이 현상은 미국의 부동산 시장 붕괴와 비교될 수 있다. 두 경우 모두 투기로 인한 가격 폭등과 끝없는 성장 전망이 문제였다. 연료 작물 생산을 위한 토지 용도 변경은 바이오 연료 수요의 지속적인 증가를 감안할 때 적절한 것으로 보였지만 이는 농산물 가격의 거의 자동적인 상승을 초래했다. 따라서 더 높은 이윤을 확보하기 위해 일부러 공급 부족을 조장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었다.
생각을 되돌아봐야
기아 폭동은 많은 이들의 걱정을 불러 일으켰다. 아마도 이들은 어떻게 민중 봉기가 체제 전복에 성공할 수 있었는지 보여주는 폭동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2008년 4월, 당시 자메이카 총리였던 제임스 패터슨이 새로운 사건의 가능성을 언급했을 때 그가 염두에 둔 것도 이런 폭동이었을 것이다. 안티가에서 개최된 G-77 회담에서(2) 패터슨은 이렇게 선언했다. “만약 폭동이 혁명으로 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한다면, 당신의 사고 방식을 재고해야 할 것이다.”(3) 사실 경제위기가 정점에 도달한 상황에서 유가가 하락하고 뒤이어 농산물 가격이 하락해 긴장이 완화되지 않았다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아 폭동은 2008년 갑자기 등장한 경제 혼란의 결과 중 하나일 뿐이다. 이 혼란이 격화되면서 세계 곳곳에서 실업 반대 운동이 발생했고, 정부는 어리석은 악수를 계속 뒀으며, 생활 조건이 악화됐다. 대량 실업이 현실이 되기 시작했고, 정부 및 기업, 기타 책임있는 기관 전체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이는 여러 국가에서 경찰이나 중무장 군대와 시위대의 충돌을 낳았다.
인도의 경우, 여러 지역에서 격렬한 저항 운동이 발생했다. 이 저항 운동들은 민족적, 종교적, 또는 카스트 제도와 관련된 운동으로 간주되긴 했지만 순전히 경제적인 근심과 사회 부패에 대한 감정이 표출된 결과이기도 하다.
5월에는 타지마할로 유명한 도시, 아그라에 수천 명의 목동이 운집해 경제적 요구사항을 제기하며 도로를 봉쇄했다. 시위대는 경찰과 충돌했고 30명이 사망했다. 10월에는 인도 북동부 아삼 지방에서 폭동이 발생했다. 해당 지방의 최빈층에 속하는 주민들이 방글라데시 불법 이민자 유입을 억제하려고 시도한 것이다.(4)
중국 정부는 공장 폐쇄, 소득 감소, 불법 수용에 분노한 노동자나 농민들의 폭동을 ‘대중 사고’라고 부른다. 한 예로, 악덕 사주 때문에 임금도 받지 못한 이주노동자들이 공장을 약탈하면서 경찰과 충돌한 사건을 들 수 있다.
인도와 마찬가지로 세계경제 침체가 초래한 이런 상황의 확산은 위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문제들을 반영한다. 중국의 경우, 여전히 가장 심각한 사회 균열은 대도시 중산층과 농촌인구 간 빈부격차다. 경제가 호황을 누리던 시기에 노동자들은 수출 상품 제조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많은 공장들이 문을 닫았고, 2억 명의 농촌 출신 도시노동자(농민공) 중 20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지도자들은 어떤 보상도 제시하지 않았다.(5)
아테네에서 베이징까지
2008년 12월, 경제 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심화하면서 서유럽과 구소련 국가들로 긴장이 전이되었다. 유럽에서 시위는 장기 실업의 두려움과 지도자들의 해결 능력에 대한 환멸과 불신으로까지 이어지는 신뢰성 상실과 ‘사회 시스템’이 더는 대다수 민중의 염원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감정 때문에 촉발되었다.
그리스는 이 새로운 유형의 폭동이 최초로 발생한 국가들 중 하나다. 아테네는 경찰 발포로 15살 소년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엿새 동안 격렬한 폭력 시위로 몸살을 앓았다.(6) 정부의 사과와 해당 경찰관에 대한 법적 조처에도 폭동은 나라 전체로 확산되었다.
젊은이들이 자주 가는 장소에 경찰들이 지나치게 많았다는 주장을 제기하며 그리스 폭동을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리스 폭동은 젊은이들의 현실적인 절망과 두려움을 반영한다. 그리스 젊은이들은 폭동을 통해 일자리 부족, 낡은 교육제도, 견고한 사회적 장벽, 정부의 부패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 것이다. 심지어 어떤 시위 참가자는 이번 사건이 젊은이들에게 불만을 표현할 기회를 제공했다고 말한다. “우리는 부모님이 젊었을 때보다 더 어려운 미래에 직면해 있다. 이는 전례 없는 상황이다.”
그리스의 상황이 진정되자마자 이번에는 러시아 국민들이 분노를 표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국내 자동차 산업 보호를 위해 일본산 수입 자동차에 세금을 매기기로 한 결정이 계기가 되었다. 우선 일본 중고차 판매상들이 생활 조건 악화를 성토하며 전면에 나섰다. 국산 자동차보다 저렴한 가격 때문에 수입 자동차를 구매했던 자가운전자들이 뒤를 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와 전국의 30개 도시에서 운전자들이 거북이 운전 시위를 통해 분노를 표출했다.
2009년 초에는 동유럽에서 비슷한 사건들이 발생했다. 1월 13일부터 16일까지 라트비아 수도 리가,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했다. 공장 폐쇄, 물가 상승과 생활고, 교통비 상승 등도 원인이었지만, 여러 시스템적 요소들도 문제였다. 결국 지난 2월 아일랜드에서 발생한 시위처럼, 이 모든 시위는 지도층에 대한 분노와 불신을 표현했다.
파키스탄도 경제 위기의 직격탄을 맞았고 매우 심각한 사회적 불안을 경험했다. 미국은 알카에다와 탈레반 색출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다른 이들은 파키스탄 경제 조직의 악화를 경고한다. 하버드 대학 역사학 교수 나이올 퍼거슨은 “파키스탄 중산층은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외환시장 붕괴로 무너졌다.”고 설명하며 “청년실업이 급증하고 있고, 정치적 안정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7)
산유국들도 유사한 위험을 경험할 수 있다. 경제 위기 발생 전에 유가 폭등으로 큰 이득을 본 산유국들은 지난여름 이후 소득이 크게 줄었다. 유가가 연일 최고가를 경신했을 때 산유국 지도층들은 사회보장제도를 지원하고 지도층에 대한 민중의 신뢰에 대해 보상해주며 분열 억제를 위한 치안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재정을 사용했다. 그런데 인구 전체의 소득이 감소하면서 몇몇 국가들에서 사회운동의 폭발이 위험 수위에 달하고 있다.(8)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세계는 수차례에 걸쳐 경기 후퇴를 겪었다. 그러나 1-2년의 후퇴기만 지나면 경제는 다시 성장세를 회복했다. 현 상황은 과거와는 매우 다른 것 같다. 과연 언제 경기가 회복될 것인가, 설령 경기가 회복된다 해도 생활 조건이 개선될 만큼 충분히 유의미한 수준으로 경기가 회복될 것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에 대해 세계은행이 2009년 3월 G-20 재무장관 회담을 위해 준비한 보고서는 매우 우려할 만한 예측을 제시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앞으로 4500만 명이 추가로 빈곤과 영양 부족의 피해자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9) 아르헨티나, 오스트레일리아, 중국 북서부, 미국 서부, 근동지방에서 기록적인 가뭄 때문에 농업 생산량이 감소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또한 보고서는 이 경우 민중의 분노와 공포로 인한 폭동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경제의 지속적인 후퇴, 기존 사회 균열의 악화와 기존 제도를 향한 불신의 확대는 시한폭탄의 고리가 될 수 있다.
<각주>
(1) 세계은행, <2009년 세계경제 전망-기초생산물 시장>, 2009년 3월. 필립 르벨리, ‘브라질의 위험한 도박, ‘녹색에너지’ 에탄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4월.
(2) G-77은 1964년 6월 15일 77개 개도국들이 유엔과의 협상력 강화를 목표로 결성한 연합체이다. 현재 133개 국이 가입했으나 역사적 의미가 강한 원래 명칭을 유지하고 있다.
(3) www.bbc.co.uk 2009년 4월 5일.
(4) 헤더 티몬스(Heather Timmons), ‘시위가 인도 전역으로 확산되다’(Protesters Sweep India in a Season of Unrest), <뉴욕타임스>, 2008년 6월 29일. ‘아삼의 제1 부족이 이슬람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Assam’s Largest Tribe Goes to War with Its Muslims), <이코노미스트>, 2008년 10월 9일.
(5) 이안 존슨(Ian Johnson) & 앤드류 밧슨(Andrew Batson), ‘China’s Migrants See Jobless Ranks Soar‘, <워싱턴 포스트>, 2009년 2월 3일.
(6) 발리아 카이마키(Valia Kaimaki), ‘그들은 은행에는 돈을 주지만 젊은이들에게는 총알을 발포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1월.
(7) 나이올 퍼거슨(Niall Ferguson), ‘The Axis of Upheaval’, <포린 폴리시>, 2009년 3월-4월.
(8) 주요산유국: 알제리, 앙골라, 네덜란드령 안틸레스 제도,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브루나이, 콩고, 아랍에미레이트, 가봉, 인도네시아, 이란, 이라크, 리비아, 쿠웨이트, 나이지리아, 오만, 카타르, 시리아, 트리니다드토바고, 베네수엘라, 예멘.
(9) 세계은행, <어떻게 개도국들이 글로벌 위기에 대처하고 있나>, 워싱턴, G-20 회담 보고서.
글/미카엘 클라르 Michael Klare
햄프셔 대학 평화안보 연구학 교수
번역/박수현domyosie@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졸. 역서로 <세계화의 문제점 100가지>(2007)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