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소비의 활화산, 남아프리카 공화국

2014-12-29     알랭 비키

과소비의 활화산, 남아프리카 공화국

 

아프리카 대륙 최고의 경제 강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겉보기와 다르게 허약한 경제 대국이다. 2014년 8월, 아프리카 투자은행 아브릴(Ablil)의 파산은 소비 대출의 비대를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소득을 웃도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흑인 신중산층의 광적인 소비 풍조가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를 위험한 투기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알랭 비키 | 기자

 

2013년 말,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민주화 20주년을 맞은 남아공의 경제 종합평가서를 내놓았다. 이 평가서는 특히 남아공 국민의 가계부채 수준이 1994년엔 소득 수준의 57%였지만 현재는 75%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또 평가서는 이 같은 개인의 과도한 부채 경향은 무담보 대출 시장의 성장으로 2007년 이후 대출 규모가 300% 증가한 데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은행들은 대부분 고금리 단기 대출을 해줬기 때문에 위험한 범주에 속하는 대출은 고작 전체 대출 규모의 11%에 불과하다고 골드만삭스는 주장했다. 은행들은 모든 위험에서 벗어나 있는 셈이다.

하지만 2014년 8월 10일, 남아공 최초의 무담보 대출 전문 은행이자 남아공에서 다섯 번째로 큰 은행인 아브릴이 파산하며 중앙은행의 감독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파산 4일 전, 이 은행의 경영진은 5억 2,900만 유로(약 7,340억 원)의 기록적인 손실과 6억 유로의 자본금 부족을 인정했다. 이 여파로 은행장 리안 커르키너스가 사임하고, 요하네스버그 증권 거래소에서 아브릴의 주가가 93%나 폭락했다. 중앙은행은 전면적인 파산을 막기 위해, 이 은행의 부실채권 12억 유로 중 절반을 담보로 잡고 역사상 처음으로 은행 구제금융을 실시했다. 가장 건실한 아브릴의 자산 일부와 남아공 개인투자자들로부터 7억 3천만 유로의 투자를 받아 출범했던 은행의 예기치 못한 파산은 남아공 버전 서브프라임 위기에 먹잇감이 된 남아공 경제 기적의 이면을 보여준다. 남아공의 보도기관인 어카핀(Ecofin)의 아이드리스 린은 “이제까지는 많은 이들이 은행 대출금을 상환하고 있고, 대출로 인한 수익성도 컸다. 하지만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주는 경제 모델은 더 이상 살아남기 힘들다”고 말했다.

2000년대, 아프리카 대륙 최고의 경제 강국인 남아공이 제공하는 ‘작은 행운’을 잡으려고 대출을 받는 세대가 등장했다. 흑인 신중산층의 소비 지출은 본인들의 월 소득 500유로를 웃돌았다. 가전제품과 여행 상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사립학교와 쇼핑몰은 붐볐다. 매년 50만대 이상의 신차가 팔렸다. 모기지 시장과 부동산 대출이 이미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남아공 사람들은 광적인 과소비를 충족하기 위해 무담보 대출을 제공하는 은행과 소액 대출업체를 찾았다. 2013년, 아브릴의 실무자 중 한 명인 태미 소모쿠는 당시 “소비자들은 본인들의 권리를 알려고 하지 않았고, 대출 약관을 읽어보려 하지도 않았다. 이들은 단지 최대한 빨리 대출 받기만을 원했다”며 비웃었다. 2005년, 남아공 정부는 대출 금리를 감독하는 법안을 채택했다. 하지만 규제를 덜 받는 무담보 대출산업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법망을 벗어났다.

아브릴은 35~1만 유로를 금리 연 60%로 60개월 동안 대출해주겠다는 공격적인 광고 캠페인을 벌였다. 이 기간에 연간 물가상승률은 6%대를 기록했다. 아브릴의 뒤를 이어 새로운 대출업체들이 대출 시장에 편승했다. 생명보험회사들이 공영방송에 다양한 광고를 내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마소니자(mashonisa)라 불리는 3만 개의 불법 소액 대출업체들이 월 100%대의 대출 금리로 서민지역을 파고들었다. 2007년부터 최근까지는 국가가 채용한 공무원 25만 명과 중산층 간부급들만 대출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농촌 지역의 가난한 노동자와 광산 노동자들도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남아공 대통령 제이컵 주마가 대출업체의 이 같은 일탈에 관용을 베풀고 있는 것은 유권자의 욕구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주마의 이 같은 불투명한 선동 방식에, 그가 몸담고 있는 정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조차 대출이 경제성장을 이끄는 것은 맞지만 흑인 신중산층이 더 이상 대출을 촉진시킬 수 없다며 주마를 성토해 논란이 되고 있다.

외국 대출업체도 이 향연에 동참했다. 영국 온라인 소액대출업체인 원가(Wonga)는 남아공에 최장 50일로 ‘빠른 소액대출’을 제공하는 자회사를 설립했다. 하지만 남아공 성공회는 영국에서 원가의 연 대출금리가 3,000%를 웃돌고 있다며 분노했다.

사모펀드 업체인 원가는 유동자금으로 남아공의 주식을 사서 이익을 얻었다. 이 업체는 무담보 대출로 촉발된 남아공의 거품을 틈타 5년 만에 200억 달러의 소득을 올렸다. 또한 금융업체들은 소액대출을 무기로 자신의 주주들에게 많을 돈을 안겨줬다. 2012년, 이들은 요하네스버그 증권거래소(JSE) 시가 총액의 20%를 차지하게 된다. 2013년 12월, 골드만삭스는 2013년 (아프리카) 자본시장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아프리카 국경 간 대출 행사에 참여했다. 그 결과 골드만삭스는 아브릴에 4억 1,200만 유로의 소득을 올려줬다. 돈이 돈을 끌어들이는 이 같은 투자는 세계은행(World Bank)의 자회사인 국제 금융회사(SFI)마저도 새로운 대출시장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당시는 세계 금융위기가 ‘무지개의 나라(남아공)’를 덮치기 직전이었다. 2008년 이후, 요하네스버그 증권거래소는 서구 자본의 투기장으로 전락했다. 이 자본은 남아공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금융부문을 주로 공략했다. 이로 인해 물가가 6.6% 상승했다. 또 주택비용(전년 동기 대비 5.8%), 식품비(8.8%), 전기료(4년 동안 두 배), 교통비(8.6%) 등이 급격히 증가하며 가계에 점진적으로 부담을 줬다. 뿐만 아니라, 경제활동인구의 25.6%에 해당하는 470만 명이 실업자다. 2013년 말, 대출을 받은 2,100만 명 중 9백만 명 이상은 대출 상환 기일을 적어도 3개월 이상 넘겼다고 고백했다. 아브릴에서 개인 대출을 받은 320만 명 중 3분의 1은 대출금을 갚지 못하고 있다. 무담보 대출 시장이 시한폭탄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않는다. 아브릴이 파산하기 직전까지도, 세계 4대 컨설팅회사 중 하나인 딜로이트(Deloitte)는 아프리카 중산층의 등장을 반기며 자신의 고객들에게 ‘절호’의 기회인 무담보 대출 시장에 꼭 투자하라고 권장했다.

남아공 자산 관리업체인 카디즈 에셋 매니지먼트(Cadiz Asset Management)의 투자기금 담당관 애드난 하르디언은 아브릴의 붕괴로, 수백만 명의 남아공인들이 대출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은행 주주들은 평균적으로 초기 투자금의 10%만 손실을 입고 경제위기 상황(아브릴의 파산)을 벗어났다. 그러나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인종차별 정책) 종식 이후 태어난 자유로운 영혼들은 민주주의의 가장 쓴맛을 맛보게 될 것이며, 민주주의의 가장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이들의 사회적 지위 실추가 과연 무슨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그 답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남아공의 불평등 격차와 최저임금 도입을 두고 (정치권에서) 격론이 벌어지고 있어, 모든 이들은 제 나름의 답을 가지고 있다.

2013년 9월 19일, 주마 대통령이 임명한 (파업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사망자 34명과 부상자 78명을 발생시킨 론민(Lonmin) 그룹의 백금 광산인 마리카나 광산 파업 때 자행된 노동자들에 대한 폭력 진압의 내막을 밝혔다. 광산 노동자들의 부채도 이러한 임금 파업의 원인 중 하나다. 스텔렌보스 대학의 조교수인 사리엄 파키르는 백금을 추출하는 이 백금 벨트 지역이 합법·불법적인 대출 벨트의 새로운 국경이 됐다고 강조한다. 대출업계는 대출에 대한 법적인 공백을 틈타 고용주들을 통해 빚을 진 광산 노동자들의 임금을 직접 차압하고 있다. 한 달여간의 기나긴 무임금 파업으로 인해 론민의 수많은 노동자와 하청업체들은 자신들의 연체된 대출금을 상환하기 위해 다시 새로운 대출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다.

 

 

<박스 기사>

수필가 T.O. 몰레프는 “상업적인 은행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주며 이들을 비참한 삶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남아공의 극빈층에게 낮은 금리로 대출을 해줄 수 있는 은행을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0년 동안 아브릴에서 근무한 커르키너스 전 은행장의 보좌관 소모쿠는 300만 유로에 달하는 스톡 옵션을 받았다. 가난한 자들에게 대출을 해줄 만큼 용기가 있는 선견지명이 있는 은행가로 평가 받던 커르키너스는 케이프타운 인근 지역에 호화로운 주택을 제공받았다. 그 집은 현재 4백만 유로에 매물로 나왔다. 한편 남아공은 2014년 초반 2.7%로 예상했던 경제성장률을 현재 2.4%로 내린 상태다. 이민자들과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는 남아공의 경제기적은 사실은 속임수가 아닐까?

글·알랭 비키 Alain Vicky

 

 

번역·조은섭 chosub@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