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와 알카에다의 ‘테러 경쟁’

2015-01-31     줄리앙 테롱

 

IS와 알카에다의 ‘테러 경쟁’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지부가 <샤를리 엡도> 테러를 배후에서 지휘했다고 자인하면서 IS의 계속된 인질참수로 언론에서 사라졌던 알카에다가 다시 부각됐다. 두 단체 모두 동일한 목표를 위해 잔인하게 행동하지만 그 전략은 사뭇 다르다.

  줄리앙 테롱 | 분쟁지역 전문가

  1989년 오사마 빈 라덴과 아부 무삽 알자르카위가 소비에트 적군을 물리치기 위해 찾은 아프간 산악 지역에서 서로 만났을 때 두 사람은 모두 급진이슬람을 전파하는 일에서 자신의 역할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빈 라덴은 향후 전 지구적 이슬람 세계의 선택 받은 지도자를 꿈꿨고 알자르카위는 중동 중심에 자리 잡은 요르단에 살라피즘을 뿌리내려 자기가 혐오하는 하심 왕국을 교체하려고 했다. 예지적인 꿈과 명확하고 현실적인 야망, 그들이 꿈꾸는 천년지복설은 두 인물의 역정과 그들이 이끄는 집단인 알카에다와 이슬람국가조직(Islamic State Organization, IS)의 운명과 맥을 같이 한다.

소규모이지만 세계적인 집단인 자마아트 알타우히드 왈지하드(1)의 우두머리인 알자르카위는 2003년 미국의 침공 이후 요르단 내에서 이루어지던 조직 활동을 이라크로 옮기기로 결정하면서 빈 라덴의 지원을 받았다. 미국이라면 치를 떠는 그의 성향은 다양한 전술을 바탕으로 해서 연속적으로 발발하는 과격한 테러행위로 표출됐다. 왈지하드는 이미 표적암살, 폭행, 자동차폭탄 테러 등 냉전 시대에 시작된 전통적 테러방식에 숙달됐고, 알자르카위는 급조폭발물(Improvised Explosive Device, IED), 자살테러, 처형 등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방식까지 도입했다. 왈지하드가 활동하는 영역은 좁았지만 표적은 미군과 협력군, 요르단 대사관, 이라크 정부, 유정, 이라크 경찰, 시아파 사원, 정계인사, 이라크-요르단 국경검문소, 외국계 민간인 인질, 시장에 모인 민간인, 국제연합(UN),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로 다양했다.

알자르카위는 2004년 빈 라덴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왈지하드를 알카에다 이라크지부(AQI)로 전환했다. 지금까지 펼친 전략으로 볼 때 조직 활동이 이라크 내부에만 머무르지 않고,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인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서 성전을 위한 알카에다 지부가 된 것이다. 그는 2006년 6월 미군에게 암살당했다. 4개월 후, 지도자를 잃고 세력이 약화된 왈지하드는 아무 바크르 알바그다디를 필두로 한 이라크이슬람조직(Islamic State of Iraq, ISI)으로 변모했다. ISI는 2007년 레바논 북부를 어지럽히고 알자르카위와 공모해 2002년 요르단 암만에서 미국외교관 로렌스 폴리를 암살한 배후세력으로 의심받는 파타 알이슬람과 동류 집단이다.(2)

 

알카에다와 IS 간 경쟁구도

 

시리아에서 발생한 전쟁은 판세를 뒤집을 것이다.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2011년 봄 엄청난 반발에도 불구하고 과격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을 석방했다. 그중 대부분은 지하디스트로 편입했다.(3) ISI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알카에다가 시리아 지부로 인정한, ‘승리의 전선’이라는 의미의 알노스라전선이 창설돼 혁명을 지하드 조직의 활동으로 규정하는 알 아사드 대통령의 선전에 맞섰다.

알바그다디는 2013년 자신의 지휘 아래 ISI와 알노스라전선을 합병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알카에다의 지원을 받은 알노스라전선이 합병을 거부하고 단절을 선언했다. ISI는 나아갈 길을 모색하다가 이라크 이슬람국가조직 및 시리아 이슬람국가조직으로 활동했고 마침내 IS가 됐다. 독립 선언, 국경을 초월한 활동, 극도로 잔인한 테러방식, 영토 확장이라는 개념 등, 이 모든 것이 조합해 IS로 탈바꿈했다. 이제 하나만 남았다. 직함이랄까, 직위랄까. 상징, 정체성, 목적…. 그것은 바로 빈 라덴도 차마 하지 못했던 칼리프를 선언하는 일이다. 2011년 5월 빈 라덴이 사라지고 나서 알바그다디는 지하드 집단에 큰 변혁을 가져와 자신의 권위를 세우고 일개 아미르에서 칼리프로 등극했다. 평범한 ‘왕자’나 ‘지도자’가 이제 지상권과 교권을 모두 부여 받은, 선지자 모하메드의 뒤를 잇는 이슬람 공동체의 최고지도자로 나선 것이다.

IS와 알카에다 모두 전우 간 형제애를 중시하고 이슬람 공동체인 움마가 정부, 국가, 민족, 문화, 언어와 같은 다른 모든 사회구조를 초월하는 전 세계적 지하디즘을 추구한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

알카에다는 아프가니스탄 힌두쿠시 산맥, 예멘 하드라마우트, 말리 이드라르 드 이포가스 산지 등에서 활동한 무자헤딘 사이에서 형성된 유대감을 바탕으로 설립됐다. 이슬람원리주의자 조직에서 독자적인 영적 존재로 받아들여진 그들은 제한적이고 폐쇄적이며 자의적인 공동체에서 주술적이고 상징적인 메시지를 전하며 수많은 추종자를 이끌었다.

IS에서 추구하는 형제애는 모두를 대상으로 한다. IS는 이슬람계뿐만 아니라 이슬람이 아닌 사람들에게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한다. 그들은 개종하든지 죽든지 선택해야 한다. IS는 전설의 영웅담처럼 공들여 만든 전투 장면을 언론이나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대대적으로 배포하면서 가급적 많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다. 알카에다가 동굴에서 찍은 지도자의 모습을 담은, 화질이 나쁜 비디오를 띄엄띄엄 내보내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런 차이점은 두 조직의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알카에다는 비밀조직 하나가 사라져도 전체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망상 조직으로 이루어졌고, 군사와 종교라는 두 가지 권력을 기준으로 위계질서를 세웠다. 그래서 압델말렉 드룩델(이슬람 마그레브 알카에다, AQIM), 아부 무삽 알자르카위(AQI), 안와르 알울라키(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지부, AQAP)와 같은 배경이 다른 여러 조직의 지도자들과 오마르 뮐러(아프가니스탄 탈레반)와 아흐메드 고단(소말리아 알샤밥) 등 협력조직 수장들이 생전에 종말론을 바탕으로, 대예언자와 그의 추종자의 이미지를 차용해 수호자를 표방한 빈 라덴과 아이만 알자와히리의 지방사령부임을 자처할 수 있었다.

알바그다디가 ‘알라우 아크바(신은 위대하다)’라고 마무리되는 무한반복 교송성가의 대상이 되는 IS에서도 수장이라는 개념은 있지만 지도자의 절대적 우상화가 알카에다만큼 심하지는 않다. 깃발과 검지를 치켜 든 상징적 행동과 언론에 보도되는 익명의 전투원을 통해 알리고 싶은 것은 바로 IS라는 조직 자체이다.

 

알카에다의 점조직 vs IS의 군사적 활동

 

기이하게도 IS는 마침내 아랍어로 ‘기본, 본거지’를 의미하는 알카에다로서 지속적인 표상을 구현하게 됐다. IS는 민중적이자 영토적이고 군사적이며 근간이 되는 본거지이다. 알카에다가 뉴욕, 뭄바이, 마드리드, 발리 등에서 점 단위의 활동을 분산 추진해 지하디스트의 악명을 알렸지만 구체적인 계획 없는 단발적인 시도로 그친 반면 칼리프는 이 본거지를 바탕으로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목표를 이루고자 한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IS는 변화를 꾀했다. IS의 전략은 네 가지 기본적 측면에서 알카에다와 다르다. 첫 번째 전략은 지정학적으로 조직을 안정시키기 위해 항구적 영토에 자리를 잡는 것이다. 두 번째로 IS는 이 영토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대신 통치권을 획득하려고 한다. 알카에다가 조직이 자리 잡은 영토를 직접 관리하기보다는 불안정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대조적이다. 또 IS는 오래된 지역 질서를 무너뜨리기 위해 역사적 의미가 담긴 상징적인 지역(라카, 티그리트, 모술 등)이 포함된 영토를 쟁취하고자 한다. 마지막 전략은 테러리즘부터 재래전까지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조직의 활동반경과 가까운 곳에서 지속적으로 지역투쟁을 이끄는 것이다. 알카에다가 근거지나 협력국에서 제한적 비밀조직을 통해 서방의 상징적인 인물을 해치거나 이해관계에 타격을 입히던 것과는 다른 활동방식이다.

IS 전략의 궁극적 목적은 온건수니파, 시아파, 알라위파, 기독교인, 유태인, 야지디족, 이슬람 알레비 종파 등 그 누구보다 우위를 점하는 것이다. 반시아파주의, 불경한 쿠르드족을 상대로 한 투쟁, 다른 신앙이 이슬람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이 IS의 사상적인 근간이 된다. 알카에다는 서방세계에 적대적인 감정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IS가 보여준 잔인한 폭력성이 뜻하는 바는 명확하다.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알카에다가 인질과 맞바꾼 몸값으로 자금을 조달했다면 IS는 공개적으로 처형을 감행한다. 이런 극단성은 나 아닌 세상 그 누구와도 더 이상 공존할 수 없다는 추종자들을 불러 모은다. 알카에다 조직원은 때때로 그들이 원망하는 사회 속에서 조용히 살기도 했다. IS 조직원은 사회를 버리고 자칭 칼리파 수하로 모여 든다. 단일하고 제한적이며 축자적이고 엄격한 사상인 지하디스트 살라피즘, 다시 말해 모든 인류가 준엄한 칼리프 아래에서 만나 극단적으로 해석, 적용되던 이슬람 수니파 이외의 모든 흔적을 없애는 활동이 확대되는 시발점이 바로 여기다.

IS가 매일 행동으로 옮기면서 야기하는 공포는 가장 적극적이고 과격하며 조직적이고 언론에 많이 노출된다.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세계가 한때 조금씩 적응했던 행위의 재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알카에다가 자행한 하나하나의 테러 행위가 정신적 충격은 야기했지만 알카에다의 이름을 알린 9‧11 테러와 같은 파급력을 갖지는 못했다. 빈 라덴이 사라지자 알카에다는 활동 근거지를 아프가니스탄에서 파키스탄으로 옮겼고, 군사작전, 표적암살, 추격 등 지칠 줄 모르는 공격에 점점 지친 기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IS의 잔인한 언론 플레이

 

2001년 9‧11 테러는 거의 모르지만 2003년 미국 침공에 이은 이라크 내전과 2011년부터 계속된 시리아 정부의 끝없는 탄압을 몸으로 겪은 이라크와 시리아의 수니파교도와 같은 사람들에게 IS의 등장은 지하디즘의 부활을 의미한다.

IS에 가담한 외국용병 대부분은 아마 2001년 이전에 알카에다의 존재를 몰랐을 것이다. 지금 20세 청년이 그 때는 7살이었으니 우선 나이가 어렸고, 아직 이슬람주의의 과격함에 심취하지 않았을 때였다. 추종자들은 물론 아이러니컬하게도 반대자들까지 오늘날처럼 이렇게 급진적인 이슬람주의에 대해 이야기해본 적이 없었다.

1990년대 젊은 북유럽 사람들이나 중국인은 아프가니스탄이나 알제리 무자헤딘을 지지하며 투쟁하거나 타크피르(4) 논리를 수용해 현학적이고 종교적인 성찰에서 선동적인 사상교육으로 전락한 수업을 들으며 이슬람교 학교를 전전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칼리프 수하에 아랍계가 아닌 외국용병의 수는 수천 명에 이른다.(5)

2001년부터 2014년까지, 알카에다부터 IS까지 전 세계적인 교역이 이루어져 정보와 사상과 조직망과 종국에는 전투에 접근하면서 지하디즘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IS는 알카에다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조직으로 자리 잡아 그들의 성지로 사람들을 초대해 순교자의 종말론적 영광을 맛보도록 했다. 알카에다는 마그레브 지역, 사헬 지대,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의 뿔 지역, 아라비아 반도, 근동, 파키스탄, 인도, 동남아시아 등 지역적으로 활동했다. IS는 확장에 앞서 사람들을 결집시키고 끌어 모으고 있다. 알카에다가 중앙으로부터 분리독립적이었다면 IS는 중앙집중적이다. IS는 일부 독립적 집단도 병합했다. 알카에다였다면 사상만이라도 그 집단을 지부로 만들었을 것이다.(6)

AQI에서 시작된 IS는 우선 시리아 전투부대를 흡수했다. 참여하는 조직도 리비아의 안사르 알샤리아(7)부터 ‘서아프리카의 일신교와 성전을 위한 움직임(The Movement for Oneness and Jihad in West Africa, MOJWA)’까지 다양하다. AQIM의 전신인 ‘예언과 결투를 위한 살라피스트 모임’의 설립자 중 한 명인 압델라 오트만 알아키미는 알바그다디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마그레브 지역에 IS의 새로운 지부, ‘준드 알 칼리파(칼리파의 전사)’를 창설했다.(8) 이처럼 알카에다의 핵심 조직도 IS에 관심을 보이며 분열하기 시작했다. 시나이 반도 내 이집트에서 독자적으로 가장 큰 살라피스트 집단인 ‘안사르 베이트 알마크디스’도 IS에 합류했다. 지하디즘의 선동자이자 ‘보코 하람’의 최고지도자인 아부바카르 세카우도 ‘아무 바크르 알바그다디, 알라신이 너를 보호하리라’(9)고 소리 높여 외쳤다.

IS가 알카에다를 이길 것인지는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두 조직이 서로 다른 방식과 표적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동일한 목표를 향해 나란히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글‧줄리앙 테롱 Julien Théron

정치학자, 분쟁지정학 고문

 

번역‧서희정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있다.

 

(1) 아랍어로 ‘일신교와 성전을 위한 모임’을 의미한다.

(2) Rebecca Bloom, ‘Fatah al-Islam’,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New York, 2007년 6월 8일

(3) Armin Arefi, ‘시리아: 바샤르 알 아사드가 어떻게 IS를 이용했나’, <르푸앙>, 파리, 2014년 8월 27일

Ignace Leverrier, ‘시리아. 바샤르 알 아사드의 진정한 적은 ‘세드나야 친구들’이 아닌 개혁자와 민주주의자’

블로그 ‘시리아를 바라보며’, <르몽드>, 2013년 10월 19일

(4) 이슬람 공동체에서 어떤 사람을 축출하는 것으로 ‘파문’을 말한다.

(5) ‘Battle for Iraq and Syria in maps’ 중에서 ‘Origin of foreign fighters in Syria and Iraq’ 지도 참조, BBC, 2014년 11월 28일

(6) Pierre Puchot, ‘Romain Caillet: 파격적이고 감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지하디즘’, Mediapart, 2014년 11월 26일

(7) ‘Libya’s islamist militants parade with ISIS flags’, 알아라비아, 2014년 10월 6일

(8) Mélanie Matarese, ‘AQIM의 전신, 칼리프의 전사’, LeFigaro.fr, 2014년 10월 23일

(9) ‘IS, 아프리카 조직의 충성과 지원 그리고 망설임’, Radio France Internationale, 2014년 7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