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리를 옹호해야 하는가?

2015-01-31     프레데리크 로르동 | 경제학자

샤를리를 옹호해야 하는가?

 프레데리크 로르동 | 경제학자

 죽은 사람들에 대한 추모를 권고하는, 사회적 의례라 할 수 있는 죽음의 ‘변모’ 능력이 사회 전체의 공통적인 감정과 강력히 결합되면서, 그 능력이 ‘나쁜 상황’을 일시 벗어나는 임기응변이 될까 두렵다. 모든 일에는 사회적 시점이 있는 법이고, 또 모든 것은 세상에서의 사회적 시간을 요하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곰곰 고민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깊이 생각할 시간과, 다시 모든 것을 이야기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마땅히 죽은 사람들을 추모해야 한다는 사실이, 비록 가장 강력한 트라우마에 빠져있을지라도, 모든 말이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특히 이처럼 극단적인 사건이 그 자체로 야기할 수 있는 지적·정치적인 복잡한 혼란 속에서 명백한 사실을 어느 정도 밝혀내기 위해서는 깊이 생각해야 하고 또 모든 것을 이야기해봐야 한다.

혼란의 본질은 “나는 샤를리다”라는 한 문장에 투영되어 있는 것 같다. 이 문장은, 수없이 많은 문제들이 이 속에 중첩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명백한 증거처럼 제시되고 있다.

“나는 샤를리다.” 겉보기에는 완벽하게 단순한 문장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어떤 다른 것을 대신하여 어떤 것을 제시하고, 이 어떤 것을 다른 어떤 것과 일관되게 연결시키는 수사법을 우리는 환유법이라 부른다. 그 관계는 원인에 대해 결과를, 용기에 대해 그 내용물을 혹은 전체에 대해 부분을 가리키는 관계다. “나는 샤를리다”라는 문장에서 ‘샤를리’라는 단어의 문제는 그 단어가 다른 수많은 문제를, 환유적 관계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수많은 문제들을 동시에 가리킨다는 사실에서 발생한다. 다양한 문제들은 우리에게 다양한 책임감을 상기시킨다. 그런데 그런 문제들 사이의 환유 관계는 다양한 문제들을 뒤섞어 버리고, 모든 문제들을 구별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샤를리는 다행히도 사적인 보통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을 통칭하여 단지 ‘샤를리’라고 부르는 것은 2명의 경찰과 5명의 민간인들을 폄하하는 것이다. 2명의 경찰 중 1명은 질서 유지 경찰이었고, 또 다른 1명은 우연히 그날 그곳을 방문했던 경찰이었으며, 5명의 민간인 중 4명은 유대인으로 이틀 후에 사망했다. 인간성 자체를 외면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사람들은 이 새로운 살인행위에 경악하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테러를 당한 사실이 당연히 사적인 개인들을 넘어설 정도로 모두에게 드러났기 때문에 감정이 격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샤를리’라는 단어의 두 번째 의미가 파생된다. 다시 말해 ‘샤를리’라는 단어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원칙들의 환유로, 자신의 안전을 개의치 않으면서 표현해야 하는 권리들의 환유로 등장한다. 그런 것들이 우리 삶의 형태의 핵심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샤를리’를, 살해당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한 용어로 생각할 수 있다. 단 얼마 전에 살해당한 지에드와 부나, 그리고 최근에 피살당한 레미 프레스의 경우처럼 희생당한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발생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는 조건 하에서 그렇다. 그리고 대중의 동정이 자주 미묘한 방식으로 배분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조건도 붙는다. 이상하게 대중의 동정이 불평등하게 배분된다는 점을 나는 강조하고 싶다.

또한 우리는 ‘샤를리’라는 용어를 사회에서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사회에서 약속을 표현하는 일반적인 관념으로, 다시 말해 사회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려는 폭행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려는 욕망으로 생각할 수 있다. 가장 강력한 공통분모들 중의 하나를 간직할 줄 아는 하나의 공동체가 자체의 활력을 보여주는 방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샤를리다”라는 문구의 정치성

 

그러나 ‘샤를리’라는 용어가 더 이상 사적인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도 또 일반 원칙들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고, 한 신문사에 모여있는 대중적인 인물들을 가리킬 때 상황은 복잡해진다. 바로 이런 식의 즉각적 해석은 이 용어의 폭력성을 대놓고 강요할 우려가 매우 크다. 우리는 인간적 비극에 짓눌리게 되어 아무런 모순도 느끼지 못한 채, 그 신문이 우리에게 말하는 견해에 동조하게 되었다. 내가 볼 때 그 신문의 견해는 격렬한 정치적 대립을 불러일으킬 대상이었다. “나는 샤를리다”라는 문구를 듣는 것이 상당히 당연하게 여겨졌지만, 만약 그 문장이 ‘샤를리’라는 신문사에 스스로를 동화시키라는 지령이라면 나에게 이 지령은 말도 안 되는 지령이었다. 나는 ‘샤를리’가 아니고 어떤 순간에도 ‘샤를리’가 될 수 없었다.

그 표현이 독촉명령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면 나는 ‘샤를리’가 될 수 있었다. 우리는 감정과 정치가 뒤섞인 명령 체계 속에서 상당 시간 동안 동요했다. 사건 발생 후 삽시간에 “나는 샤를리다”라는 문장이 퍼졌는데, 이때 나는 2001년 9월 12일자 <르몽드>의 ‘우리는 모두 미국인이다’라는 기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무의식적 기억이 확인되는 데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샤를리다”라는 복수 일인칭 문장의 슬로건을 <리베라시옹>이 퍼뜨렸다. 선언된 만장일치의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하지만, 반대자들에게는 불행한 일이다. 비극의 감정과 편집의도에 암묵적으로 내재해 있는 정치적 편향성을 은밀하게 뒤섞으면서 모든 견해차를 짓밟아 버린 채 사고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을 우리는 특별히 축하해야 할 것이다. <샤를리 엡도>가 풍자만화의 재발간을 거부하면, 앵글로색슨 언론들에게 우리 스스로가 위선적이고 연대감이 부족하다는 비난을 받을까봐 걱정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냉정을 되찾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하고,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이 그 사람들의 자유를 우리가 옹호하는 것이지, 그들의 표현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 있는 주장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지령에 의한 만장일치가 아주 교묘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만회할 수 있는 모든 장치들이 여기에 휩쓸려 들어간다. 우선 미디어가 문제인데, 요컨대 정치권력의 사고와 아주 유사한 기회주의적 사고에 빠져있는 미디어는 이와 같은 경우를 파렴치한 언행의 도피처인 ‘언론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미디어와 정치권력이 자신들의 가치가 동시에 하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를 만회하기 위한 방편일 것이다. 예를 들어 <리베라시옹>은 할 수 있는 온갖 과시를 다하면서 <샤를리 엡도>에게 사무실을 대여하고 있다. 성능이 다한 배로 비유될 수 있는 <리베라시옹>은 잠시 스쳐가는 모든 권력에 매수되었고, 온갖 의미로 사용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라는 무덤을 스스로 팠다. 샤를리즘이라는 과당경쟁에 뛰어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미디어들이 <리베라시옹> 뒤를 따를 것인가?

 

‘우리는 미국인이다’가 연상된 ‘나는 샤를리다’

 

“만약 모든 것을 비웃었던 그 사람이 우리 시대로 다시 돌아온다면, 그는 틀림없이 비웃다가 죽을 것이다”라고 스피노자가 자신의 편지에 쓰고 있다. 사회 질서에 복종하는 기관들이 아주 진지하게 반(反)순응주의와 전복의 노랫가락을 부르기 시작한 것은 확실히 오랫동안 우리에게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오랫동안 웃어야 하지만 그래도 너무 웃지는 말아야 한다. 언젠가는 이런 기만에서 벗어날 것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만에서 벗어나는 것은 정치권력의 도움 없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정치권력은 국민을 각성시키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지만, 국가적 결집은 정치권력에 가장 충실한 자원이었다. 국가적 결집 혹은 국제적 결집의 과격한 다른 버전이 우리에게 처방될 것이다. 오르반(헝가리 총리), 포로센코(우크라이나 대통령), 네타냐후(이스라엘 총리), 리베르만(이스라엘 외무장관) 등을 포함하여, 언론의 자유옹호자들 및 교리통합주의자들과 의견을 같이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름난 도덕적 인물들을 초대하여 ‘세계의 수도’인 파리의 수장으로 자신을 빛나게 하려는 프랑수아 올랑드의 만회충동은 어쩔 수 없는 욕망이었다고 해야 하는가!(1)

다행스럽게도 권력이 서둘러 자신의 권한이라고 간주하여 대중을 동원하는 권력남용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가 이미 곳곳에서 들려온다.

몇몇 편집인들에게 미망에서 깨어나는 방에 얼마 동안 머물러 있으라고 권고하고, 그들에게 쓰디 쓴 커피를 가져다주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소망해 보자. 역사의 정상에 서려는 경쟁에서, 심지어 우스꽝스럽고 치명적인 정보투쟁의 경사길 위에서 역사적 사건을 ‘알려주는’ 최초의 선두주자가 되기 위한 경쟁에서, 거리 시위를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외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행태에 대해 비웃는 것이 허용된다면, 거리 시위가 몇 가지 보고내용에서, 적어도 경찰의 참여자 셈법이 시위 주최자들의 셈법보다 우수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고 우리는 말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거리시위가 2002년 극우파 국민전선(FN)의 장 마리 르펜이 대선 1차 투표에서 사회당 리오넬 조스팽 전 총리를 물리치고 2차 투표에 진출하는 이변을 일으켰을 때 FN의 정치적 진원지 카르팡트라(아비뇽 북동쪽 약 25㎞에 있는 농업소도시)에서 일어난 엄청난 반대시위의 상황과 맞닿아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사실로부터 이번에는 이전과 다른 식으로 전개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우리는 만장일치의 정도와 그것의 정치적 무게 사이에 등가성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서둘러서 하지 않을 수 없다. 구조적으로 정치의 소재 자체가 되는 모든 분쟁을 무마시켜버리는 대중의 결집은 비정치적 성향을 띤다. 그것은 바로 혁명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결국 우리가 다양한 의미에서 찬양하는 ‘국가적 결집’의 현실을 질문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엄청나게 대규모였던 파리의 행렬에는 대부분 백인이며, 도시에 살고, 교육받은 계층이라는 놀랄 만큼 사회적 동질성을 가진 사람들이 참여했다. 다시 말해 숫자 그 자체가 대표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구 중에 어떤 하부 그룹의 동원율이 예외적으로 상승하면 똑같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가적 결집’, ‘행진하는 국민’, ‘일어선 프랑스’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용어들을 세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특히 대중의 궐기에 의해 문제의 해결책을 주장하는 이런 방식이 그 문제를 배척하거나 혹은 부정하는 기만적인 방식이 아닌지를 알아내기 위해서도 세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신들의 특이성을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사회에 존재하는 자신들이 사회에 대해 말해야 할 모든 것을 철저히 고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배자들처럼, 어제의 행렬은 교육받은 부르주아가 자신들의 힘을 곱씹어 보고 부르주아 자신에 대한 나르시시즘을 포기하는 장면으로 연출된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행렬이 ‘국가’ 혹은 ‘국민’을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 행렬에 대해 회상할 기회를 앞으로 곧 갖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상상의 역사에 맹목적으로 감탄할 수 있다. 상상의 역사는 실제의 역사를 회피하게 해주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다. 실제의 역사는 모든 환상 밖에서 이루어지며, 대부분 우리도 모르게 이루어진다. 그런데 예상되는 실제의 역사는 정말 더러운 낯짝을 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실제의 역사에 우리 자신을 다시 적응시킬 기회를 얼마라도 갖고 싶다면, 애도의 시간이 흐른 후에, 마비 상태에서 벗어날 것을 생각하고 그리고 정치를 재조직해야 할 것을 생각해야 한다. 진심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이 텍스트는 2015년 1월 12일 파리의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파키르(Fakir) 신문이 주최한 “반대파가 침묵을 지키지 않기를!”이라는 저녁모임의 대화에서 발췌된 것이다.

 

글·프레데리크 로르동 Frédéric Lordon

경제학자, 유럽사회연구소(CSE) 연구팀장. 저서로 <지나침의 위기: 실패한 세상의 재건>(Fayard·2009)이 있다.

 

번역·고광식

번역위원

 

(1) 알랭 그레쉬, ‘<샤를리 엡도>를 위한 시위행렬에 참여한 이상한 언론자유 옹호자들’, <누벨 도리앙>, 2015년 1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