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고용해 주실래요?

2015-02-01     무스타파 벨로신

 

저를 고용해 주실래요?

 내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를 바라보고, 또 나를 움직이는 주변 상황에 대해 그와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이 둘 사이의 간격을 떨어뜨려 놓는 건 이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관찰하는 여러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이다. 그리고 이 같은 부분이 일상의 기록 및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해내는 문학적 능력과 결합하면 무스타파 벨로신 같은 한 사람의 소설가가 탄생한다. 막막한 불안정 고용 시장을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장본인인 그는 우리에게 이 세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무스타파 벨로신|사회학자

 나는 온천이 좋다. 기포가 올라오는 온탕 속에 몸을 담그면 긴장이 풀리기 때문이다. 파리 19구의 파유롱 수영장에는 관내 시설 가운데 ‘자쿠지’라는 곳이 있는데, 여러 개의 온탕이 있는 더없이 훌륭한 곳이다. 부다페스트의 온천과는 분명 다르지만, 실업자 신분만 증명할 수 있다면 이용요금은 무료다. 실업 확인증만으로는 안 된다. 반드시 최근에 발급받은 증명서가 있어야 한다. 이 점에 유념하여 지갑 속에 이 종이를 곱게 접어 넣어가지고 다녀야 한다. 그런데 이걸 그만 깜빡하게 되는 때도 많고, 차라리 그냥 돈을 내려는 경우도 있으며, 실업자에게 부여된 이 같은 특권을 거들떠도 안 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내게는 나만의 꼼수가 있다. 항상 이력서를 들고 다니며, ‘저를 고용해 주실래요?’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그 날도 내겐 실업 증명서가 없었고, 나는 그저 이력서 한 장 달랑 들고 있었다.

 

- 안녕하세요. 수영장 입장권 하나만 부탁드려요.

- 최근에 발급받은 증명서 갖고 계시나요?

(증명서가 있는 척을 하며 이곳저곳을 뒤적거린다.)

- 엇, 죄송해요. 증명서가 안 보이네요. 하지만 제가 실업자라는 건 확실히 장담할 수 있어요.

- 그걸 어떻게 증명하실 건데요? 갖고 계신 확인증에는 2010년 6월 날짜로 되어있는데요.

- 아니에요, 저는 정말 실업자라고요. 그럼 저를 고용해 주시겠어요?

- 네? 뭐라고요?

- 저를 고용해 주실 수 있겠느냐고요.

- 그야 그렇긴 한데…. 지금 사람을 찾고 있으니….

- 그럼 잘 됐네요. 여기 제 이력서예요. 어떤 자리의 사람을 찾고 있죠?

- 여기 입장권 받으세요.

 

그러면 내 앞에는 작은 기포들이 올라오는 자쿠지가 펼쳐진다.

 

매달 있는 구직자 면담은 순조롭게 진행된다. 내 담당자는 착하고 이해심도 많은 편이다. 나에게 자기가 딱히 해줄 게 없다는 건 이 여자도 잘 알고 있다. 내 경력을 보면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 구직자 등록 연장 처리해 드렸습니다. 다른 질문 있으세요?

- 사실 제 경력도 그렇고요. 사회 편입 규정도 숙지하고 있는 편이고….(이에 덧붙여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할 수 있는 작은 사무실이 있으면 더 좋겠지만) 이걸로 어떻게 고용센터에 취업을 할 수는 없는지 좀 알아볼 수 있을까요?

- 그야 안 될 건 없죠. 그러고 보니 그 분야의 자격 요건은 갖추고 계시네요. 우선 지역 대표 사무국의 인사부 쪽에 서신을 보내야 해요. 여기 주소 알려드릴게요.

 

그렇게 해서 나는 이곳으로 이력서와 지원서를 보냈다. 진짜로 채용이 될 거란 생각을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쩌면 채용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흥분이 됐다. 일주일 후, 고용청 쪽으로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에는 정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나는 무척 행복했다. 비록 일개 인터뷰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이렇게 인터뷰 한 번의 기회를 얻는 것도 보통 드문 일이 아니라서 그게 마치 내 인생의 최종 목적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일이라는 건 밋밋했던 케이크를 일순간 환상의 데코레이션 케이크로 만들어주는 체리 같은 존재다.

나는 누아지 르 그랑 지역 대표 사무국으로 불려갔다. 어둡고 차디 찬 건물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정형성을 탈피한 현대적 건축 양식의 멋있는 건물이었다. 환한 빛이 내리쬐는 널찍한 홀에는 멋진 가죽 소파와 대형 벽걸이 TV, 아름다운 화초들과 더불어 세련된 실내 인테리어가 조성되어 있었고, 반듯한 차림새의 여성들이 안내를 해주었다. 제일 먼저 내 눈에 띄었던 것은 피트니스 공간이었다. 점심시간 동안 간부들이 심폐 기능을 강화하는 러닝머신 위에서 가볍게 운동을 하면서 아이패드2로 메일함을 확인하는 모습이 상상됐다. 근사한 카페테리아도 있었는데, 이곳에서 나는 열심히 궤변을 늘어놓는 내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 친구들이 어디에서 돈을 벌었는지 안단 말이지. 그리고 특히 내가 왜 그 사람들이랑 함께 일을 벌이지 않았는지도 잘 알고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잡소리지만, 나는 한 바탕 운동을 마치고 녹초가 된 몸으로 저 아늑한 안락의자 하나에 널브러져 페퍼민트 티 한 잔을 들면서 주말을 부다페스트 온천에서 보내는 단꿈에 젖어보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업자로 1년을 보내고 난 후, 나는 번지르르한 면접용 발언을 하는 데 이력이 나기 시작했다. 채용 담당자는 내게 급여를 알려주었다. 나로선 과분한 금액이었다. 내가 일할 부서는 보상 업무 파트였는데, 접수계의 고객 상담 업무도 보면서 (독촉 전화와 우편을 담당하는) 백오피스 업무도 함께 맡아야 했다. 더 바랄 게 없었다. 이 담당자는 내 지원 서류가 인사부 내의 다른 분과 쪽으로 전달될 것이라고 말해줬다. 그로부터 이틀 후 연락이 왔다.

 

- 안녕하세요. 여기 고용청인데요. 면접을 한 번 봤으면 하는데 내일 모레 시간 괜찮으세요?

 

고용청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바보같이 나는 나도 모르게 그만 이 사람들의 뒤를 이어 줄을 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면접을 보러 온 게 아니던가? 습관이란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나는 수많은 인파를 가로질러 접수대로 갔다. 직원 한 명이 앉아 있었다. 벌써부터 나는 거기에 앉아있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사람들은 내게 어디로 가면 되는지 길을 알려줬다. 처음으로 나는 -물리적 의미에서- 장벽 너머 저쪽으로 넘어갔다.

 

- 우선 제일 힘든 부분부터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바로 민원 인파를 관리하는 일이에요. 저 아래 사람들 많은 거 보셨죠? 상담원으로서는 사실 이게 시간 낭비예요. 서류 처리할 시간이 그만큼 부족해지거든요. 그런데 사람들 요구는 대부분 구직자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는 것들이에요. 그러니 현재로서는 아무리 행정 업무가 있다 해도 일단 상담 대기조로 계셔야 해요. 우선 최전선에서 사람들을 맞아주셔야 하는데, 사람들에게 1차적인 답변을 처리해주시는 일이에요. 고용청 사이트 알고 계시죠?

- (얘야, 내가 딱 원하던 일이란다.)

- 급여는 총 1,590유로이고, 13개월 보너스랑 휴가비, 식비가 따로 나가요. 그럼 우리는 지원자 분 서류를 검토해볼게요. 어디 다른 데 계약되어 있는 곳은 없으신 거죠?

- 두세 군데 회사에 답을 주긴 해야 하는데 아직 선택을 하진 않은 상태라서요. 비교는 충분히 해보았습니다만 아직 잘 모르겠어서….

 

그로부터 사흘 후 내 계약 체결을 알리는 메일을 받았다. 성대한 세리모니가 울려 퍼졌고, 나는 세례라도 받은 기분이었다. 나는 ‘고급 빵집’으로 달려갔지만 실은 그저 근로 계약이 맺고 싶을 뿐이었다. 그 날은 돈은 안 나오고 보직 임명만 받는 날이었다. 관계자들이 와서 사기 행각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이용자들의 위장 급여, 특히 고용청 직원들의 허위 수당 요청 사례에 대한 이야기였다.

 

- 당신 문건에 대해 관심이 많으리라는 점은 이해가 가요. 동료에게 당신을 위해 한 번 봐달라는 식으로 부탁할 순 있겠죠. 하지만 이것도 안 되는 일이에요.

 

사실 이들이 우려하는 건 ‘이중 급여’였다. 여전히 구직자 행세를 하는 취업 근로자들이 실업 수당과 함께 급여를 이중으로 받는 것이다. 결국 계약 체결의 순간이 다가왔다. 한 달 수습 기간을 거쳐 7개월간 계약직으로 근로 계약을 맺는 것이었다. (나중에 실업 급여를 받을 때 필요한) 임금 완제서가 보기 좋게 구비된 셈이다.

첫째 날 일이 시작됐다. 사람들은 내게 교육을 맡아줄 선임을 소개시켜 주었다. 놀랍게도 이 선임은 임기 말의 계약직 직원이었다. 그가 이곳에 온 지는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가 “매우 유능한 만능 일꾼”이라고 소개했다. 첫 주는 무난하게 흘러갔다. 우편물 분류와 고객 응대, 미팅, 인터뷰 등 주요 업무에 대해 참관하며 시간을 보냈다.

곧이어 재난의 주간이 시작됐다. 우편물은 굉장히 체계적이었다. 깨끗하게 열어 소인 찍고 통 안에 분류한 뒤, 2단으로 된 분류함으로 옮긴다. 나는 뭐가 뭔지 하나도 몰랐지만 그렇다고 그냥 대충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에 질문도 해봤지만 결국 ‘하다 보면 알게 될 것’이었다. 이어 취업 알선 인터뷰 장소로 갔는데, 여기에선 내가 할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브리핑을 하는 동안 나는 이 일이 마음에 든다고, 이걸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사람들은 내 열의를 단숨에 잠재워주었다. 이건 2~3년쯤 후에 직위가 올라가면 할 수 있는 일이란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는 계약직 직원이었으니까.

민원 인파를 관리하면서 수많은 사람들, 특히 불만에 가득 찬 사람들을 만났다. 더욱이 고용청에는 당직 경찰이 한 명 있었다. 험악한 말이 수없이 오고 갔고, 대개 이는 몸싸움으로 번졌다. 사람들은 손에 돈을 쥐려 했고, 자신들이 실업급여 지급명단에서 왜 제외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한 시간쯤 지나자 이미 두개골이 지끈거렸다. 물론 나는 아직 견습 중이었으므로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휴게실은 사회학적 관찰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이다. 휴게실에는 간부용 테이블과 일반 직원용 테이블이 하나씩 있었다. 자신의 실업 수당을 찾으러 온 ‘진상 고객’ 구직자에 대한 농담과 수다는 이곳에서 꽃이 핀다.

 

- ‘내가 분담금을 냈으니 그건 내 돈’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아주 짜증나 죽겠어요.

- 하루는 그 사람이 해달라는 대로 해줬죠. ‘그래, 좋다. 당신이 회사에 다닐 때 낸 분담금을 계산해봤더니 당신에게 줘야 하는 돈이 하루 10유로더라’고 했죠.

- 그 사람 봤어요? 휴가 갔다가 완전 새까맣게 그을려가지고 와서는 ‘뭔 소린지 모르겠다. 내가 왜 제명됐냐’고 따졌던 그 사람 말이에요. 그래서 서류를 뒤져보고 이렇게 얘기해줬죠. ‘지난 번 통지 때 불참하셨더라고요.’ ‘여름휴가를 떠났었는데요.’ ‘하지만 구직자 신분일 때에는 지켜야 할 의무사항이 있어요. 물론 휴가를 떠날 권리도 있으세요. 다만 이를 먼저 신고해야 합니다. 구직자란 실업 수당만 받는 사람이 아니라 열심히 일자리를 찾는 사람을 말해요. 즉, 전일제 노동으로 일자리를 찾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다시 등록 서류를 들고 왔던 그 풍선같이 빵빵했던 여자랑 비슷했어요. ‘임신 5개월에 열심히 일자리 찾을 수 있겠어요?’라고 했던 그 여자 말이에요.

 

차장이 해준 교육은 이랬다.

 

- 어쨌든 내가 당신에게 소프트웨어를 보여주는 건 단지 그냥 한 번 보라는 의미에서 보여주는 것뿐이에요. 자, 어슬렁거릴 시간은 없어요. 난 밀려드는 저 민원인들을 관리해줄 사람이 필요해요. 중기적인 목적은 일단 저기 접수대를 맡아주는 거예요. 전장으로 한 번 나가보세요.

 

이제 이야기는 결론이 났다. 여기에서 나를 고용한 이유는 당직 보초를 서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곳 고용청 사무국은 빈민가에 위치해있다. 즉, 실업률이 상당히 높은 여러 서민 지구 외곽에 있는 곳이었다. 나는 바다 한가운데로 몸을 던져야 했다. 사회적 빈곤 지대의 풍랑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사회복지사로 일했던 제일 마지막 경험을 떠올렸다. 당시 나는 전투를 포기해야 했다. 이번에도 일은 꽤 힘들겠지만 나는 계속할 것이다. 별 것도 아닌 일로 모든 걸 그만 둘 수는 없었다.

다음 날, 예전에 비슷한 일을 했을 때의 경험을 되살렸다. ‘~로 이동’ 혹은 ‘관계 형성’ 등의 용어가 생각나면서 교육자로서의 경험이 떠오른 것이다. 다만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나는 다른 일이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에 이 일을 계속하지 못할 것 같았지만, 문제는 그만두지 않고 계속 해야 한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좀 더 힘을 내보았다. 점심때가 되니 허리가 아파오고 진이 다 빠졌다. 간부가 나를 불렀다.

 

-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저,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이거 뭐라고 해야 할지…. 내가 당신보다 나이도 어리고 해서 조금 불편하긴 한데…. 사람들이 당신 옷차림에 대해 나한테 한마디 하더군요.

- 네?

 

나는 물 빠진 낡은 청바지를 입고 있던 그의 ‘올드’한 옷차림을 봤다. 순간 나는 진심으로 비웃어주고 싶었다.

 

- 뭐, 말하자면 그거예요. 어떤 동료 말이, 당신 청바지가 약간 아래로 내려왔다고 하더라고요. 딱 까놓고 말해 바지를 좀 올려서 입어달라는 거예요. 다음부터는 부디 신경 좀 써줬으면 좋겠어요.

- 네, 알겠습니다. 조심하도록 하죠.

- 당신과 대할 때 좋은 점은 툭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거예요. 실은 어젯밤에 잠을 한 숨도 못 잤다고요. 이 얘기를 아내한테도 했는데, 다른 사람들 안 볼 때 당신과 일대일로 말하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너무 친절하고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나는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마터면 입장을 바꿔서 내가 그에게 사람들이 네 꼬락서니를 보며 다들 한마디씩 하더라고 말할 뻔했다. 하지만 나는 이 일을 끝까지 하고 싶었다. 나는 눈 한 번 더 질끈 감고 뻣뻣이 고개를 든 채 당당하게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 이 반항적 기질에 무너지지 않은 게 기뻤다. 직장이라는 공간 안에 있다는 이 느낌을 갖는 게 중요했고, 불의는 참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일하는 건 불가능했다. 만일 사회적 정의감이 있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경우라면 어떤 직장에서든 5분 안에 해고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나는 나 자신과 싸웠다. 그리고 지배 관계를 받아들였다. 심지어 그런 상태에 있는 게 만족스럽기까지 했다. 내가 완전한 직원이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상관의 지배를 받는 노동자였다. 나는 다시 한 번 속으로 생각했다. 7개월은 계속 할 것이다. 저들은 내게 어떤 짓이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어떤 짓이든 받아들여야 한다.

나흘째 되던 날, 점점 더 허리가 아파왔다. 나는 하나의 장벽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나뉘어 있는 사람들 모두가 고충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수습 기간 중 주말에 차장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차장님, 사실 저는 이곳에 있는 게 무척 좋습니다만 이곳 고용청은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게 특징인 것 같아요. 실의에 빠져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름의 답을 줘야 하는데…. 솔직히 저는 더 이상 못 할 것 같습니다. 즐겁지가 않아요. 우선은 행정 부서 같은 다른 쪽에서 일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데요. 사회복지사로서의 제 신분에 대해서도 생각해봤지만 이건 제 본분하고도 맞지가 않는 것 같아서….

- 우리도 그 점은 눈여겨보고 있었어요. 접수대에서 사람들 대할 때 뒤로 좀 빠져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이건 사실과 달랐다. 나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최대한 많은 답변을 주려고 노력했다.) 내 생각에도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당신의 자질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해두고 싶네요. 당신을 고용하게 돼서 다들 매우 흡족해했어요. 우리가 당신을 택한 건 일단 반응이 빠르다는 점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 믿기 힘들지는 몰라도 서민 계층을 대상으로 한 사회복지사로서의 경력이 결정적이었어요. 게다가 고용청 직원 가운데 여성 직원의 비율이 독보적으로 높기 때문에 남자 직원이 한 명 필요하기도 했고….

- 이곳에 찾아오는 사람들과 제가 문화적으로 친숙하다는 점도 한 몫 했겠군요.

- 아뇨, 그건 아니에요. 그보다는 사실 경력이 더 컸는데…. 뭐, 솔직히 말해 유감스럽긴 하지만 더 오래 끌 필요는 없겠군요. 그게 양쪽 모두에게 좋은 것 같아요. 이렇게 뒤로 빼면서 6개월이나 더 지낼 수는 없겠죠.

 

나는 두 가지 상반된 느낌을 받았다. 일단 미치도 록 좋았다는 것과, 이어 약간의 실망감을 느꼈다는 것 두 가지였다. 기간을 다 채우지 못했다는 점, 충 분히 전략적이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 안타깝긴 했 는데, 그래도 결국 다행인 건 나와 체질적으로도 맞지 않는 일말의 만족감을 느끼면서 이 빌어먹을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다만 내 자신에게 약간의 거짓말을 하긴 했다. 사람들이 내 일을 더 연장시켜주지 않도록 어느 정도 무의식 적으로 갖은 노력을 다 했기 때문이다. 뭐, 그렇게 해서 결국 나는 다시 장벽의 건너편으 로 돌아왔다. 취직해서 일하는 기간은 점점 더 짧 아진다. 작은 자쿠지 온탕에 가야 할 것 같다.

 

에필로그

‘퇴사’ 후, 나는 그 동안 급여를 받았다는 임금 완제서와 관련 서류를 받는 데 죽도록 애를 먹었다. 좀 다른 얘기긴 하지만, 결국 고용청 잘못 때문에 고용청 실업자 명단에서 내가 제외된 셈이 됐다.

 

 

 

글·무스타파 벨로신 Mustapha Belhocine

사회학자 겸 사회복지사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등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