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데모스, 스페인을 뒤흔들다

좌파의 새로운 가능성

2015-02-01     르노 랑베르

좌파의 새로운 가능성

포데모스, 스페인을 뒤흔들다

 

그리스의 조기 총선에서 급진좌파인 시리자가 승리할 것이라는 전망은 유럽위원회를 경고하기에 충분했다.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도 긴축정책에 대해 저항하기 위해 여러 정당들이 만들어졌지만, 이 정당들이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의심받았다. 스페인에서도 주어진 상황을 변화시킬 것 같은 하나의 정당이 창설될 때까지는 오랫동안 비슷한 처지였다.

 

르노 랑베르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2011년 5월 15일 처음에는 수백 명이, 곧바로 수천 명의 시위자들이 스페인 수도의 심장부인 푸에르타 델 솔(Puerta del Sol, ‘태양의 게이트’라는 의미) 지역에 결집한다. 언론은 이들을 ‘분노한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경제에 대한 은행들의 지배와 자신들을 ‘대변하지 못하는’ 민주주의를 규탄한다. 이들의 모임은 공동 조직체의 이름으로 깃발, 정치적 약호를 내걸거나, 발언을 하지 못하게 한다. 곧바로 이들의 대열에서 “단합된 대중은 정당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라는 슬로건이 튀어 나온다.

3년 후 푸에르타 델 솔 광장은 비어있다. 상황이 변한다는 갈망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그 갈망은 돌연변이를 일으켰다. 그 후 갈망은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포데모스(Podemos: 스페인의 좌파정당,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의미)’라는 새로운 정치단체로 구체화된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정당들에 대한 불신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반대로 포데모스는 놀라운 성공을 거둔다.

 

좌파 정당이 명료하고, 공감적이라면

 

“사람들은 믿기 어려워한다. 우리 정당은 2014년 1월에 창설되었다. 5개월 후 우리는 유럽선거에서 8%의 표를 획득했다. 현재 모든 앙케트는 우리 당을 스페인의 제1정치세력으로 꼽고 있다”고 말하며 2014년 11월 포데모스의 파리 ‘서클’이 개최한 모임에서 파블로 에쉐니크 유럽의회 의원이 미소 짓는다. 포데모스의 지도자들은 여론조사가 투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2014년 12월 새로운 앙케트에 의하면 포데모스는 스페인 사회노동당(PSOE) 다음 2위 자리로 밀려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어도 2015년 12월 20일에 실시될 총선거에서 포데모스가 승리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포데모스는 5월 15일 운동이 소멸되면서 탄생한다. “우리 생각에 5월 15일의 운동은 정치의 운동주의 개념 속에 갇혀 있었다. 그런데 세력이 점진적으로 축적되면 필연적으로 정치 모임으로 이어질 거라는 사고는 잘못된 것이었다”고 포데모스의 확대 집행부인 시민자문회의 위원인 사회학자 호르헤 라고가 설명한다. 추방 반대투쟁 단체들이 창설되었고, 건강파손 저항 네트워크가 등장했지만, 전반적으로 운동은 동력이 떨어져갔고, 결국은 해체되었다.

라고는 선거에 대해 실망을 드러내면서도 계속 말을 이어간다. “80%의 국민들이 우리의 운동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투표를 했다.” 2011년 11월의 총선은 보수파의 압도적 승리로 끝난다. 그래서 포데모스 창설자들은 두 가지 가설을 상정한다. 즉 5월 15일의 운동에 호의적인 사람들 중에서 상당수가 적어도 현재에는 여전히 누군가가 그들을 대표해 주기 원한다는 것이고 그리고 국가에 의한 이행(移行)이 사회변혁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라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푸에르타 델 솔에서의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호소와는 차이가 나지만 포데모스는 특히 참여적 자금조달, 투명성, 공동 심의라는 원칙들을 통해 ‘5월 정신’의 계승자가 되고자 한다. 그러나 포데모스 회원들은 집회주의의 몇몇 함정들에 대해서 비판적인 평가를 내렸던 것으로 여겨진다. 지난 10월 포데모스의 첫 번째 전당 대회에서 에쉐니크의 발의안은 분권화, 수평성, 유연성을 증가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파블로 이글레시아스의 발의안은 반대로 운동의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해서 하나의 조직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직을 갖추지 않으면 자신의 고유 기능에 대해 끝없이 성찰하다가 자신의 요구사항들조차 잊어버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에쉐니크에게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한 이글레시아스는 대학교 조교수인 에쉐니크를 당 사무총장으로 발탁했다.

사회운동의 자율성을 가장 중시하는 2011년의 시위자들은, 새 정당이 ‘시스템’의 유용한 바보 노릇을 할 것이라는 배신감에 울부짖기 일부 직전이다. “포데모스가 지난 수년간의 사회 에너지와 집단적인 실험과정을 제도화하는 수단으로 등장한다”고 바르셀로나 공동체의 투사인 누리아 알라바오 여사는 평가한다.(1) 포데모스는 5월 15일의 운동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고, 그 운동에 새로운 투쟁의 축을 제시한 것이라고 이글레시아스 측근 사람들은 반박한다. “사회 운동들은 자신들이 합당하다고 여길 경우, 자신들에게 더 호의적인 어떤 정부를 지지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자율성을 잘 보존하는 사회운동들이 있다”고 라고는 말한다. 하여튼 지지는 비판보다 어려움을 더 적게 낳는다. 사회 운동들이 너무 소심하다고 판단한 정부가 이미 보수주의자들의 공격 대상이 되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 비방자의 대열에 합류해야 하는가, 반대편의 역할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침묵을 유지함으로써 자신의 고유한 투쟁을 배반해야 하는가? 세상 다른 곳에서 그런 것처럼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온전히 남아 있다.

5월 15일 운동과 포데모스의 도약 사이에 직접적인 연속성이 없다고 해도, 포데모스는 5월 15일 운동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5월 15일 운동이 유럽에서는 좀체 주제로 형성되기 어려운 ‘대중’이라는 정치적 주제를 포데모스에게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반란을 생산해 내는 것은 ‘대중’이 아니다. 자신의 대중을 생산해 내는 것이 바로 반란이다”고 익명의 단체인 ‘보이지 않는 위원회’가 자신들의 최근 저서에 적고 있다.(2) 다른 지역에서는 ‘대중’이라는 말이 공허한 단어이며 매혹적인 담론을 응결시키고자 하는 유령 같은 정치적 잠재태로 남아 있는 반면, 스페인에서 이 용어는 광장 점령의 기나긴 밤들을 통하여 구체적 의미를 얻게 되었다.

 

아무 것도 변화시킬 수 없는 정치시스템

 

공동체를 함의하는 ‘우리’라는 용어는, 포데모스가 ‘특권 계급’이라고 부르는 스페인 엘리트들의 파렴치한 짓들 때문에 출현하게 된다. 부패 수준에서 보면 프랑스조차 도덕의 사원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할 지경이다. 거의 2천 개에 달하는 사건들이 현재 사법조사의 대상이다. 적어도 5백 명의 고위 공무원들이 이 사건들에 연루되어 있는데, 국가에 연간 4백억 유로의 피해를 입힌 것으로 추산된다.(3) 두 개의 주요 정당인 PP(대중당, 우파 집권당)와 PSOE(스페인 사회노동당)의 반응은 ‘불법적인 기부를 받은 개인들에게만 책임을 지우고’,(4) 이런 기부를 받아 혜택을 본 정당들에 대해서는 사법기관이 기소를 하지 않기로 합의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나무랄 데 없다고 소문난 왕가도 더 이상 엘리트들에 대한 찬사를 할 수 없게 되는데, 그 이유는 크리스티나 드 부르봉 공주에게 스캔들이 터지기 때문이다.

부패가 이런 수준에 도달하면 부패는 ‘구조적인’(5) 것이 된다고 이글레시아스가 설명한다. 결과적으로 부패와 정책의 일반적인 개념을 구분할 수 없게 되는데, 2012년 7월 11일 국회 본회의에서 마리아노 라호이가 실업수당을 다시 삭감한다고 선포했을 때 보수파 여성 의원인 안드레아 파브라가 내지른 고함이 그 실례가 된다. 파브라 여사는 자신의 기쁨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정부 수반에게 갈채를 보내면서 그녀는 실업자들에게 “지옥에나 가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두 명 중 한 명의 실업자가 실업수당을 못 받게 된 반면, 스페인에서 가장 큰 35개의 회사 중 33개가 세금 천국에 만든 지사들을 통해 세금을 탈루한다.(6) 2009년부터 5백만 명의 어린이들이 빈곤에 처해 있는데 스페인 최고 부자들은 더욱 번성한다. 최고 부자들의 자산은 라호이가 권력을 잡은 이래 평균적으로 67% 더 많아진다.(7) 성난 대중에게서 받을 비난과 위험을 억제하기 위해 지난 12월부터 소위 ‘시민 안전’이라는 법령이 만들어졌는데, 이 법령은 2011년의 대중 결집을 가능하게 했던 모든 것, 다시 말해 공공장소에서의 회합, 전단지 배포, 광장 점령 등을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후안 카를로스 국왕이 왕관을 자신의 아들에게 양도해야 할 정도로 권위를 잃어버리자, 왕정과의 권력이양 협약을 통해 1978년 헌법이 제정되었다. 이 헌법에 의해 성사된 ‘합의’는 물질적 기반들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런데 부동산 거품 붕괴가 이 물질적 기반과 사회적 상승 희망을 산산 조각 내버렸다고 포데모스는 평가한다. “경제 위기가 정치 위기 및 모든 근본적인 사회 변화의 선결조건이 되는 예외적인 상황을 만들어냈다”고 라고는 설명한다. 2011년 5월에 ‘해임’ 절차를 마쳤으니, 국가에 기반하여 국가를 변화시키는 ‘입헌’ 절차에 착수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스페인이 횡단한 시기는 또한 위험이 산재한 시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는 극우파가 물속의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활동하기 때문이다”(2013년 3월)(8)고 이글레시아스가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좌파는 프랑스 좌파에 비하면 혜택을 받고 있다. 상당수의 민족주의 극우파가 공식적으로는 PP에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로서는 프랑스의 국민전선의 담론과 유사한 체제반대 담론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프랑스의 국민전선은 시(市)단위 행정구역 이외의 다른 행정구역을 장악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스페인의 드라마틱한 상황이 포데모스의 최근 도약을 충분히 설명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 오래전부터 IU(통합좌파)가 유사한 정치 프로그램을 주장하고 있지만 정치 질서를 뒤흔들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방법상의 문제 역시 중요하다.

포데모스 지도자들이 볼 때, 좌파는 오랫동안 난해한 분석에 근거하여 불분명한 준거를 대고 이해하기 어려운 어휘를 남용해 왔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떤 사람의 이데올로기, 그 사람의 문화, 그 사람의 가치관과 자신들이 일치하기 때문에 그 어떤 사람을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의견에 찬성하기 때문에 선출한다”(2012년 7월 30일)라고 이글레시아스는 판단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문제의 인물이 정상적이고, 호의적이고, 심지어 익살스럽기까지 하면 더더욱 그 인물을 선택한다.

결과적으로 포데모스의 첫 번째 작업은 민주주의·주권·사회적 권리와 같이 더 많은 지지를 얻어낼 수 있는 주요 담론들에 입각하여 좌파의 전통적 담론을 다시 ‘해석해 내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우리는 자본주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경제 민주주의 사상을 옹호한다”고 라고가 명확히 말한다. 이 경제 민주주의 사상은 ‘좌파-우파’라는 이분법 담론에서 잊혀 버린 사상이다. “분할선은 우리처럼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과 엘리트·은행·시장의 편에 선 사람들을 구분하게 된다. 다시 말해 하류층 사람들과 상류층 사람들 또는 엘리트와 대다수 대중을 구분한다”(2014년 11월 22일)고 이글레시아스가 설명한다.

마르크스 교리 신봉자들은 이런 식의 미분화된 사회 분석을 비난한다. 2014년 8월 23일 한 좌파투사가 어떤 강연회에서 이글레시아스에게 왜 ‘프롤레타리아’라는 용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느냐고 물어 본다. 젊은 정치 지도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5월 15일의 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마르크스와 레닌을 읽은 아주 정치화된 우리 단과대 학생들이 처음으로 ‘정상적인’ 사람들과 더불어 그 모임에 참여했다. 학생들은 곧바로 ‘저들이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학생들은 ‘너는, 비록 네가 그 사실을 모른다 해도, 노동자야’라고 절규하며 말했다. 사람들은 학생들을 외계인처럼 쳐다보았고, 내 학생들은 화가 난 채로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갔다. 적들이 우리에게서 기대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들을 우리가 사용하기를, 우리가 전통적 상징들 뒤로 숨어 소수로 남아있기를 적들이 바라는 것이다. 우리가 거기에서 나아가지 못하는 한, 우리가 적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적들은 잘 알고 있다.”

IA(반자본주의 좌파단체)의 상당수 이슈에 대해 찬성하는 극좌파 투사들을 적어도 일부나마 포용하고 있는 포데모스는 2014년 5월의 유럽의원 선거에서 포데모스를 선택한 유권자들의 10%가 예전에는 우파에 표를 던졌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한다. 또한 포데모스당의 당원 모집은 전국적으로 천 개 이상의 ‘서클’ 설립을 통해 확대되었다. 처음에는 고학력 젊은이들과 도시 젊은이들이 가입하였고 후에는 노동자, 직장인, 시골 거주자들이 가입했다.

그러나 더 나은 배당에 대한 열망이 충족된 순간부터는 이런 식의 계급 동맹이 쉽게 깨진다는 사실을 역사는 보여준다.(9) 포데모스가 똑같은 암초에 부딪히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보장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것을 보장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제기되는 질문이다. 좌파의 전통적인 한계상황 뒤에 숨어있기보다는 차라리 나는 그런 상황에 정면으로 맞서고 싶다”고 라고가 말하면서 인정한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분석들을 추종하는 포데모스 지도자들은 정치 투쟁이 존재하는 경제·사회 구조의 전복으로만 그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문화적 측면에서도 다시 말해 ‘헤게모니’ 측면에서도 혼신을 다해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 헤게모니 측면이 피지배자들에 대한 강자들의 지배를 정당화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분야에서 적들은 자신들의 코드, 자신들의 어휘, 자신들의 극작법을 강요하고 있다. 그리고 ‘상식’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다른 어떤 것보다 강력한 도구가 존재하는데, 텔레비전이 바로 그렇다.

2003년부터 이글레시아스와 친구들은(이중에는 대학교수인 후안 카를로스 모네데로도 포함되는데 그는 현재 포데모스의 대표다) ‘투에르카(Tuerka)’라는 시청각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다양한 지역 텔레비전 채널과 인터넷에서 방영되는 정치 토론 방송인 투에르카는 “레닌주의의 관점에서, 결정적 순간이 다가왔을 때 준비된 상태로 세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이글레시아스, 2013년 3월) 싱크탱크 역할도 역시 수행하고 있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우파의 저명인사들을 초청함으로써 젊은 친구들이 명성을 얻게 되고, 그 명성으로 인해 거대 채널들이 조직한 정치 토론들에 끼어들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적들에게 현장을 넘겨주지 않는다”는 포데모스 전략의 두 번째 기본 개념이다.

현재로서는 거대 채널들의 정치 토론에 끼어준다 해서 포데모스 지도자들에게 인터뷰를 부여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을 아주 호의적인 태도로 대해 주지도 않는다. 2014년 12월 6일 스페인 공중파 최대 채널인 TVE의 주요 정치 토론 프로그램 중의 하나인 ‘24시 심야토론’ 방송이 이글레시아스를 맞이한다. 이글레시아스는 곧바로 방송 초청을 특혜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는 당황해 하는 기자 겸 방송 프로듀서인 세르지오 마르틴 앞에서 이런 태도를 견지하며 말한다. “내는 여기에 오기 위해 투쟁을 해야 했다. 이 방송사 노동자들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당신도 알다시피, 그들의 압력이 없었다면 당신은 결코 당신의 프로그램에 나를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스페인의 지도 계층은 주도권을 가진 두 개의 조직과 민족주의자들처럼 제한된 영토에서 충원하는 정당들에게 유리한 선거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 “산술(算術)은 간단하다. 의석 한 석을 얻는 데에 있어서, 제로아 바이(Geroa Bai, 스페인 북부 바스크주 나바르 지역의 정치 단체)의 나바르 민족주의자들은 4만2,411표가 필요하고, PP는 6만 표, PSOE는 6만4천 표, IU는 15만 5천 표가 필요하다.”(10) 좌-우라는 전통적인 분할에 빠져들게 할 우려가 있는 ‘약어들의 잡탕’인 모든 공동전선을 거부하는 포데모스의 전략은 좌파 민족주의자들의 표나 IU 투사들의 표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이들은 포데모스의 ‘역사적 무책임성’(11)을 비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베리아 엘리트들은 걱정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스페인 경영자 대표인 후안 로셀은 PP와 PSOE 사이의 ‘독일식’ 거대 연합을 촉구했다.

“포데모스의 프로그램은 전혀 마르크스와 관련이 없다”(12)고 이글레시아스는 상기시킨다. 집권 후 입헌 의회 구성, 세금 개혁, 부채 재조정, 65세로 은퇴연령 낮추기, 35시간 노동으로 이행, 군주제에 대한 국민투표, 산업 활성화, 브뤼셀에 양도한 국가 주권의 회수, 스페인 지역들에 대한 자율결정 등에 대한 프로그램은 마르크스와 전혀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데모스의 프로그램은, 포데모스가 ‘독일의 유럽’과 ‘특권계급’이라 부르는 금융 권력들에게 위협을 주고 있다.

특권계급은 벌써 이를 드러내고 있다. 12월 2일 일간지 <엘문도>에 실린 살바도르 소스트레스 기자의 논단은 이글레시아스를 루마니아의 전직 지도자인 니콜라이 차우체스쿠와 비교하면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하려는”(13) 생각만 머릿속에 갖고 있는 사람으로 그를 묘사한다. 이보다 몇 주 전에 PP의 한 의원은 훨씬 더 직접적으로 “그의 목덜미에 총알을 한 발 쏘기 바란다!”(14)고 말했다.

 

글·르노 랑베르 Renaud Lambert

번역·고광식

 

(1) 누리아 알라바오, “포데모스와 운동”, 2014년 11월 7일

https://www.diagonalperiodico.net

(2) 보이지 않는 위원회, <우리의 친구들에게>, 라파브리크, 파리, 2014년

(3) “그란 카나리아 라스팔마스 대학의 연구진들이 스페인의 부패의 사회적 비용을 추정하고 분석했다”, 그란 카나리아 라스팔마스 대학의 공보(公報), 2013년 7월 29일

(4) <유로파프레스>, 마드리드, 2014년 11월 28일

(5)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 위기 시기의 정책>, 아칼, 마드리드, 2014년

(6) “IBEX35(스페인 마드리드 증권시장 지수)의 연례 보고서에 기술된 기업의 사회적 책임”, 10판,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전망대, 마드리드, 2011년

(7) 비센테 클라베로, “IBEX 증권 소유자들은 마리아노 라호이 정부 하에서 부가 67% 더 증가한다.”, 2014년 5월 7일, www.publico.es

(8) 다른 언급이 없는 경우에, 이글레시아스의 인용부는 인터넷상에 올라 있는 공개 강연에서 발췌한 것이다. 날짜는 동영상 출시일을 기준으로 삼는다.

(9) 도미니크 펭솔, “복종과 반역 사이에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5월호

(10) 로랑 보넬리, “스페인 보수주의의 돌풍”, 외교행랑, 2011년 11월

(11) <유로파프레스>, 2014년 12월 12일

(12)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 위기 시기의 정책>, 아칼, 마드리드, 2014년

(13) 살바도르 소스트레스, “차우체스쿠 부부”, <엘문도>, 마드리드, 2014년 12월 2일

(15) 일간지 <20 미누토스>의 사이트, 마드리드, 2014년 11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