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삶에 희망이 필요하다

2015-02-01     정승일

지옥의 삶에 희망이 필요하다

 

지금 이 나라 국민의 대다수는 불행과 절망의 삶을 살고 있다. 청소년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학교로 학원으로 돌고 있고 대학생들은 학비와 생계비를 벌기 위해 알바 자리를 찾아 나선다. 그런데도 정작 대졸자를 기다리는 것은 비정규직 일자리와 저임금의 중소·영세기업 일자리, 그렇지 않으면 무일푼의 실직자 신세뿐이다. 수많은 젊은이들은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하고 삶의 의욕을 잃은 채 절망한다.

 

정승일 | 사민저널 편집기획위원장

 

30~40대는 박봉에 긴 근무시간, 애들 교육비와 집값에 허덕이고 맞벌이 생계에 쩔쩔 매면서도 그나마 정리해고와 명예퇴직 당하지 않고 직장 다니는 게 행운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50대 중년의 절반이 변변한 직장과 돈벌이가 없거나 월 100만 원도 못 버는 영세자영업자 신세이다. 이들은 노후 준비는커녕 자녀들 대학 학비와 결혼비용 마련도 버거워한다. 60대 이상 노인의 절반이 절대 빈곤과 질병 속에 삶의 마지막을 살고 있고, 노인의 1/3이 폐지를 줍고 있다.

모든 통계는 이 나라가 자타가 공인하는 지옥임을 보여준다. 노인 자살률 1위, 학생 자살률 1위 등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세대에서 자살률 세계 1위이다. 노인과 학생의 불행지수 1위, 40대 사망률 1위, 교통사고율 1위, 경제난으로 인한 이혼율 1위 등 모든 지옥의 지표가 세계 1위이다.

모든 세대의 다수가 힘들어 한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자살 등 죽음 이외에는 달리 탈출구가 안 보이는 까닭에 어쩔 수 없이 이 지옥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무능한 야당, 희망이 안 보인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현세의 지옥에서 탈출할 아무런 희망과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가장 부유한 1%의 행복과 안녕에만 관심을 기울이면서 재벌과 대자산가들, 보수언론과 보수 종교인들, 그리고 고위급 관료와 법조인, 군인·경찰의 이해관계에 충실할 뿐이다.

그런데 참으로 암담한 것이 야권의 현실이다. 새정련(새정치민주연합)에서 미래와 희망이 보인다고 말하는 국민들은 별로 없다. 그들이 말하는 야권 정치는 지옥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3천만 국민의 삶의 고난을 해결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기껏해야 좋은 대학 나와 잘 먹고 잘사는 386 인사들, 대도시 중상위 계층의 관심사를 정치 의제로 제시할 따름이다.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1945년 8월 이후 해방 정국에서 지주계급과 대자산가들이 주축인 보수주의 야당으로 출범한 한민당이 부활한 모습을 본다. 더구나 국회의원 직위를 새누리당과 적당히 나누는 데 더 관심이 많은 새정련 의원들의 주된 관심사는 차기 총선 및 대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통한 정권 교체도 아니다.

 

지리멸렬한 진보 정당

 

그런데 야권의 다른 한 축인 진보 정당들의 모습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볼 수 없다. 과거 민주노동당은 IMF 위기 이후 광풍처럼 몰아친 신자유주의를 넘어설 진보적인 사회경제적 대안 마련에 실패했다. 그들은 자유주의적 시민단체들을 능가하는 유능하고 설득력 있는 진보적 정책 노선과 대중행동을 기획하고 조직하는 데 실패했다.

수천만 국민을 이끌어갈 뚜렷한 미래비전과 목표, 가난한 모든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복된 메시지를 구상하고 기획하며 전도할 능력과 사명을 잊어버린 민주노동당은 ‘정파’라는 이름으로 쪼개진 여러 그룹들이 직위와 이익을 놓고 패권 경쟁하는 장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그들의 이전투구 속에서 민주노동당이 분열하고 그 이후 다시 선거공학적 이해관계를 위해 여러 진보정치인들이 이합집산하는 과정을 우리는 최근 몇 년간 목격하였다.

가난과 절망의 삶을 살고 있는 3천만 서민들을 과연 진보 정당들이 구원할 수 있을까? 설령 이들 중 몇 개가 재통합한다고 한들, 과연 그것이 가난한 이들에게 꿈과 희망, 행복을 약속하는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2014년의 2차례 선거 결과로 나와 있다. 진보 정치 지지자들조차 더 이상 진보 정당에 투표하지 않는다. 2000년 이후 민주노동당을 일관되게 지지해온 13%의 유권자들조차 뚜렷한 미래비전과 목표를 제시하지 않는 무능하고 무력한, 그리고 다시 정파적 이전투구에 골몰할 것이 뻔한 ‘재통합된 진보정당’을 원치 않는다.

 

천국은 아니지만 지옥이 아닌 그런 세상을 만들어보자

 

이승에서의 삶에 지치고 힘들어하는 수천만 국민의 바람은 소박하다. 이 지옥 같은 삶에서 탈출할 희망과 비전이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천국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지옥은 아닌 그런 세상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노골적인 탐욕 추구의 악질적 자본주의는 이 나라 어느 곳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부와 소득의 양극화와 불평등 하에서 국민 다수의 삶은 피폐해지고 절망에 허덕이고 있다. 그런데도 대다수 국민들이 힘들어 하는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진보의 담론이 실종되어 버렸다. ‘밥 먹여주는 민주주의’에 관한 별다른 움직임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새로운 대안 정당은 밥 먹여주는 민주주의에 대한 담론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꿈꾸는 나라는 극우파쇼 세력과 뉴라이트 세력이 준동하지 못하는 참으로 민주적인 공화국이다. 또한 그것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간의 삶의 모든 기본적인 요소들을 책임지는 보편적 복지의 공화국이다. 그것은 또한 완전고용과 안정적인 양질의 일자리의 보장,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 구현, 산별 단체교섭의 법적 의무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저녁과 여가, 휴가가 있는 삶을 보장하는 공화국이며, 그리하여 기초적 노동해방을 이룩한 그런 민주공화국이다. 나는 그러한 노동 해방이 바로 경제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가 꿈꾸는 민주공화국은 탈핵과 기후변화 대응, 환경보전을 위해 적극 나서는 공화국이어야 한다. 또한 그것은 농업의 가치를 존중하고 식량자주권을 확보하며 농촌을 친환경 및 민족문화의 토대로서 보호·육성하는 그런 공화국이다. 또한 그것은 남북한 간의 평화공존과 공동번영, 상호호혜 체제 구축을 통해 실질적인 남북 평화통일의 길로 나아가는 그런 공화국이다.

요약하자면, 우리는 반파쇼/반뉴라이트 민주주의 수호와 보편적 복지국가, 노동 주체 경제민주주의와 생태-에너지 전환, 그리고 남북한 평화공존-평화통일이라는 5대 비전이 이 시대의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하며, 이 나라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대안정당은 바로 그 5대 비전의 실현을 위해 나서는 정당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의 5대 비전에 동의한다면, 자신의 이념과 사상을 떠나 누구나 함께 총결집하여, 그 비전의 실현을 위해 다함께 어깨 걸고 나설 수 있어야 한다.

 

5대 비전을 중심으로 위력적인 대체 정당을 만들자

 

위의 5대 비전에 동의하는 모든 인물과 세력이 하나로 결합하여, 새정치연합을 대체하는 위력적인 야당, ‘대체 정당’을 만들어 나가자. 그 대체 정당은 무엇보다 먼저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하나로 결집한 반새누리, 반새정련 성향의 재야세력과 시민사회 세력, 그리고 노동운동과 복지운동, 생태운동, 평화운동 등 다양한 사회운동 세력이 뭉쳐서, ‘야권 교체를 통한 정권 교체’를 목표로 하는 ‘총결집’ 정당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 대체 정당은 내년 4월 총선부터 이어지는 2017년 대통령선거와 2018년 지방선거에서 30% 이상의 지지율을 획득하여 새정치연합을 실질적으로 ‘야권 대체 정당’으로 발돋움하여야 한다.

또한 그것은 오른쪽으로는 민주당(새정련) 탈당파와 시민운동 진보파에서, 왼쪽으로는 노동운동 현장파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함께 하면서, 위의 5대 비전에 합의하는 한 모든 개인과 세력이 하나로 결집하는 ‘최대공약수’ 정당이어야 한다.

 

힘겨운 국민들과 함께 눈물 흘리는 정당을 만들자

 

기존 야당과 진보 정당들은 선거 때에만 움직였고 평상시에는 ‘대중 활동’이라고 부를 만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진보 정치가 지속 가능하려면 정당이 대중적 사회운동과 대중적 정치행동을 직접 기획하고 조직해 나갈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정당에서는 복지국가 운동과 노동운동, 생태운동과 평화-통일운동,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언론운동과 종교운동, 여성운동과 인권운동, 소수자 운동과 기타 시민운동을 이끌어왔던 이들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그 분들의 미래비전과 문제 해결능력을 대중적 사회운동의 기획과 정치기획을 통해 새롭게 탄생하는 야권 대체 정당의 활동으로 접목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대체 정당의 창당 과정이 첫걸음부터 국민의 일상적 삶의 애환과 함께하면서 함께 눈물 흘리는 모습이 되어야 한다.

수많은 가난한 학생과 청년, 노동자와 자영업자, 실직자와 빈민, 가난한 농민과 영세기업주, 주부와 노인들이 자신의 고단한 인생과 생활을 타개할 꿈과 열정을 새로운 대안 정당의 창당 과정에서 직접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국민 각자의 꿈과 희망, 행복을 어떻게 증진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는 획기적인 대체 정당이 탄생한다. 그래야 비로소 국민들과 일상적으로 소통하는 참된 정치, 참된 민주공화국의 토대가 마련된다.

 

5대 비전에 관한 사회적 협약

 

프란체스코 교황의 말처럼 자본주의는 분명 반인간적이고 반민주적이며 반생태적이고 폭력적인 체제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의 정신이 없이 앞에서 말한 5대 비전을 말하기 힘들다. 그러나 우리는 ‘자본주의냐 반자본주의냐’라는 흑백논리의 이분법을 거부한다. 민주주의 공화국과 보편적 복지, 노동해방-경제민주화, 생태-에너지 전환과 남북한 평화공존-평화통일이라는 5대 비전이 실현되는 세상은 반자본주의가 아니며 그렇다고 순수한 자본주의도 아니다. 그것은 천국이 아니지만 지옥도 아니다. 적어도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지옥 같은 악질적 자본주의(신자유주의)보다는 훨씬 인간적이고 민주적이며 생태적이고 평화적인 나라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궁극적 유토피아가 아니라 잠정적 유토피아를 꿈꾼다. 그리고 5대 비전을 잠정적 유토피아라고 부르고자 한다. 지금까지 이 나라의 진보 세력은 궁극적 유토피아가 무엇인지를 놓고 논쟁하고 토론해왔다. 하지만 그것은 수천만 국민들이 당장 힘들어하는 일상생활과는 동떨어진 공허한 토론이 되기 일쑤였다. “우리는 몇 십 년, 몇 백 년 뒤에나 찾아올 유토피아를 준비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는 말을 되새겨야 한다.

새로운 정당에 참여할 인물과 세력이 가진 각자의 사상과 이념은 서로 다를 것이며 서로 다른 궁극적 유토피아를 꿈꿀 것이다. 그런데 각자의 궁극적 유토피아를 놓고 경쟁하고 논쟁하기에는 우리가 직면한 당장의 현실이 너무나 엄중하다. 그래서 우리는 잠정적 유토피아를 제안한다. 5대 비전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아젠다를 중심으로 이 나라의 3천만 서민들이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문제들의 해결책을 제시하자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의 잠정적 유토피아로 삼아, 루소가 말한 사회계약을 맺자. ‘잠정적 유토피아에 관한 사회계약’을 맺는 그런 대안 정당을 출범시키자.

그것이 ‘지금, 여기’에서 한 발짝 전진하는 ‘역사적 진보’이다. 그것이 ‘지금, 여기’에서 모두가 함께 하는 ‘역사적 블록’의 구축이다.

 

글·정승일

서울대 물리학과를 다녔으며, 1980년대 내내 철학과 정치경제학, 민주화운동에 몰두했다. 1991년 독일로 유학을 떠나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정치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금융경제연구소,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등에 근무했으며,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 및 운영위원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굿바이 근혜노믹스>를 비롯, <Crisis and Restructuring in East Asia>, <쾌도난마 한국경제>(공저), <역동적 복지국가의 길>(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