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아의 조립식 일자리

2015-02-01     올리비에 바이 외

 

이케아의 조립식 일자리

 

지난 12월 18일, 스웨덴 조립형 가구기업 이케아가 경기도 광명시에 국내 1호점을 개장해, 하루 2~3만 명이 다녀가는 등 이른바 이케아 열풍이 이어지 있다. 이케아 홈페이지 카탈로그에 나온 세계지도에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해 한국 네티즌들이 불매운동을 외쳤지만, 어느덧 그런 목소리는 사라졌다. 방문객들은 입장, 쇼핑과 계산의 대기 시간이 길고, 일부 품목에 대해선 가격이 기대한 것보다 비싸고, 운송비를 포함하면 국내 가구업체와 별 차이 없는 점에 불만을 터뜨리지만, 이는 이케아의 실체를 드러내는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다.

올리비에 바이 | 벨기에 기자

장 마르크 코드롱 | 연구원

드니 랑베르 | 옥스팜-마가쟁 뒤 몽드 사무총장, 벨기에

 

전 세계에 4억1천만 명의 고객이 있고 매년 1억6천만 개의 카탈로그를 배포하고 있는 (성경보다 더 많이 배포되었다) 저가조립형 가구기업 이케아는 멈추지 않고 성장하고 있다. 1994년 매출이 33억 유로(약 4조1,300억 원-역주)였던 것이 2005년에는 148억 유로(약 18조5천억 원)로 껑충 뛰어오르며 400%가 넘는 성장을 기록했다. 이보다 더 잘할 수는 없다. 이제 이케아는 지금까지 저항했던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두 영토를 정복할 준비를 하고 있다. 목표는 사보(社報) ‘리드 미(Read Me)’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좋은 생활을 제공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더 많은 수의 고객에게 끊임없이 판매(1)’하는 것이다. 이케아에게 사람들의 행복은 구매를 의미한다.

극도의 획일주의와 상업주의를 추구하는 다국적기업으로서는 예외적이게도 이케아는 소비자단체나 탈세계화단체, 환경단체 등의 공격을 교묘히 잘 피하고 있다. 이케아에서 쇼핑하는 것은 좋은 경험인 게 분명하다. 이케아는 최저가 정책을 쓰고, 쇼핑하는 동안 아이들을 맡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한 곳에 모든 것을 구매할 수 있는 (가능하면 필요하지 않은 것까지) 토탈 콘셉트를 제공하며 고객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케아와 고객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보여주는 예는 많다. 2004년 영국의 소도시 스톡포트의 한 시의원은 “이케아 매장이 우리 시에 개장하는 것은 영광(2)”이라고 흥분했다. 프랑스의 작은 마을 무갱에서는 서명운동이 벌어졌다. “왕복 200km를 2시간 동안 운전해서 이케아 매장을 가는 것에 진력이 났다면 알프마리팀 지방에 이케아 매장을 개장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3)”는 것이 청원서의 내용이었다. 반경 100km 내에 이케아 매장이 없다는 이유로 마을사람들이 청원서를 돌리고(2006년 8월, 2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서명했다), 매장 개장 운동을 벌였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이케아가 거둔 놀라운 성공은 비극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케아는 2004년 9월 1일 사우디아라비아에 매장을 개장할 때 첫 고객 50명에게 150달러 수표를 선물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2명이 사망하고 16명이 부상당하는 비극적인 사고로 이어졌다.

이케아에 대한 이러한 전 지구적 열광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케아의 성공은 저가 정책 외에도 환경을 보호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회사라는 이케아가 만들어낸 이미지 덕분이기도 하다.

이케아는 1961년 처음으로 폴란드에 생산공장을 설립한 후 값이 싸고 착취가 가능한 노동력을 찾아 지속적으로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현재 이케아 제품 중 아시아에서 생산되는 비율이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으로 유명한) 중국이 폴란드를 제치고 이케아의 제품 전체의 18%를 책임지며 제1의 공급처가 되었다. 아시아에서 생산되는 ‘메이드 인 스웨덴 품질 제품’(made in Sweden quality)은 전체 상품의 30%를 차지하고 있다.(4) <옵서버>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비율은 1997년 32%에서 2001년까지 48%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5)

이케아는 창립 때부터 ‘매우 저렴한 가격’의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창립자인 잉바르 캄프라드는 1976년에 작성한 ‘어느 가구상인의 신념’이라는 선언문에 “저가 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저가정책은 직원들의 엄청난 노력을 요구한다. 철저한 비용절감 없이는 절대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6)”고 밝혔다.

하지만 이케아가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저가정책은 언제나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했고 여전히 지불하고 있다. 1994년에서 1997년까지, 독일과 스웨덴 TV 방송은(7) 세 번의 탐사보도를 통해 이케아가 파키스탄, 인도, 베트남, 필리핀에서 아동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이케아가 노동력을 착취하는 곳은 아시아뿐만이 아니다. 세계건설목공노동조합연맹(IFBWW)은 1998년에 루마니아에 있는 이케아 공장의 열악한 근로환경이 밝혀지자 이케아를 보이콧하겠다고 위협했다. 결국, 이케아는 IFBWW와 기본협약을 맺는 것으로 입막음했다.

이케아는 환경보호와 근로조건에 대한 행동강령인 ‘아이웨이(IWAY)’를 통해 협력업체에 강제노동과 아동노동 금지를 요구하고 있다.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을 규정한 7항에는 보호장비 착용과 같은 근로조건이 상세히 규정되어 있고 노조 설립이나 근로자단체를 결성할 수 있는 직원의 권리를 하청업체는 어떤 경우에도 침해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또 다른 항에는 성(性), 출신, 계급에 따른 어떤 차별도 허용하지 않는다고 적혀있다. 마지막으로 임금과 관련해서는 누구도 해당국가가 법으로 정한 최소임금 이하로 받아서는 안 되고 법정시간을 초과해 근무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행동강령을 만드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누군가 영국에 가서 왼쪽에서 운전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이상한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웨이가 이케아의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개선시키는 데 역할을 했는가?

 

노동조합은 상상할 수도 없다!

 

서구사회에 매우 민감한 사안인 아동노동과 관련해서 이케아는 하청업체의 이 같은 행태를 확실하게 근절했다. 아이웨이가 현지법에 근거한 기준이고 ‘현지법이 힘들지 않은 노동에 대해 13세에서 15세 혹은 12세에서 14세의 아동노동을 허용하고 있다’고 해도 이케아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아동노동은 사라졌다.

하지만 노동조합 결성과 초과근무 수당 지불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2006년 5월, 인도 남동부 타밀 나두 주(州)의 유명한 직물산업 도시인 카루르 근처 마을을 방문했을 때, 우리는 이케아의 하청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근로자를 만났다. 30대 여성인 시바(9)는 우리와의 인터뷰를 수락했지만 머리가 하얗게 센 나이 든 시바의 어머니는 이 일로 딸이 일자리를 잃게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시바가 번 돈은 노모와 시바 그리고 시바의 열다섯 살짜리 아들을 부양하는 유일한 수입원이다.

하지만 걱정할 것은 없었다. 시바는 회사에 대해 나쁘게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차를 마실 수 있는 휴식 시간이 있고 눈과 손을 보호하는 장비를 착용하고 일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시바가 한 말은 사실이다. 마드라스 개발연구소의 비자야바스카르 교수가 “이케아의 근로조건이 좋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확인해 주었다. 하지만 옥스팜-마가쟁 뒤 몽드의 의뢰로 이케아의 하청업체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던 그는 “이케아의 하청업체들은 비난과 논란을 피하기 위해 인간적인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은 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언뜻 보면 근로조건은 좋아 보인다. 공장은 깨끗하고 통풍이 잘되어 있다. 차 휴식시간도 있고 생산설비도 훌륭하다. 그리고 아이웨이도 공장 벽에 붙어있다. 하지만 2003년 네덜란드의 노조 FNV가 다국적기업의 노동문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네덜란드 소재 비정부기구인 소모(Somo)에 인도, 불가리아, 베트남 3개국에 있는 이케아의 하청업체에 대한 조사를 의뢰했다. 소모의 연구원들은 나라별로 서너 업체의 근로자들과 회사 밖에서 인터뷰를 진행했고 공장을 방문해 간부들도 만났다.

2천 명의 근로자가 일하는 10개 하청업체에 대한 조사의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3개국의 모든 하청업체에서 여전히 행동강령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다.” 가장 많이 위반된 부분은 결사의 자유, 단체교섭권, 임금, 초과근무와 관련된 것이었다. 가장 심각한 곳에서는 노조가 없고 주당 7일 근무를 하고 최소임금제가 지켜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케아의 행동강령에 대해 아는 근로자도 없었다.

옛날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우리가 2006년 인도에서 확인한 바로는 이케아의 하청업체 중 노조가 있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공식적으로 노조결성이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시바는 노조가 필요 없다고 말한다. “문제가 있으면 회의를 해서 논의를 한다. 예를 들어, 화장실 청결유지와 관련한 지침을 받기도 한다. 요구사항이 있으면 상관에게 말하면 된다.” 하지만 노조이야기가 나오자 시바의 목소리가 변했다. “노조요?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감독관이 공장에 오면 상관들은 우리가 해야 할 거짓말을 반복해서 알려 준다.”

인도에서 이러한 상황은 예외적인 것이 아니다. 노조 결성은 시도단계에서 모두 제지당한다. 인도에 진출한 모든 다국적기업이 그렇듯 이케아도 이러한 상황을 기대하고 인도에 공장을 지었다. 인도의 임금 수준은 특히 낮다. 시바는 매달 2,300루피(약 5천 원)를 받는데 그중 500 루피(약 1천 원)가 교통비로 나간다. 남은 돈으로 한 달을 살 수 있느냐는 질문에 시바는 항상 같은 것만 먹는다고 말하며 부끄럽게 웃었다. “죽이나 소스만 얹은 밥을 먹는다.” 고기는?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에 먹는다. 하지만 이번 주 일요일은 월말이라 못 먹을 것 같다.” 이 인터뷰는 2006년 5월 20일에 진행된 것이다.

이케아의 행동강령은 직원들을 제대로 먹이지 못하고 가구도 사주지 못한다. 시바의 집에는 빌리 책장도 말름 침대도 없다. 두 칸짜리 집 안에는 달력과 흑백사진 몇 장, 매트 두 개, 옷을 넣는 상자 두 개, 시계 하나와 성물(聖物)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1천 루피를 더 받으면 무엇을 하겠냐는 질문에 시바는 가스통이 달린 화로를 사겠다고 했다. “나무를 떼서 요리를 하면 연기 때문에 눈이 아프고 장마철에는 마른 나무도 구하기도 힘들다. 나무를 구하는 일이 가장 큰 일”이라고 덧붙였다. 시바의 가난은 이케아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에게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것이다.

다른 노동자인 만줄라는 신혼으로 한 달에 2,360루피(약 5,200원)를 받고 있다. 하지만 만줄라가 보여준 2005년 급여 내역서를 보면 이 금액은 세금 전 금액으로 연금과 생명보험 등 이것 저것 빼고 나면 더 이상 2,360루피가 아니다. 만줄라는 작년 10월, 24일간 일하고 1,818 루피(약 4천 원)를 받았다. 주당 6일을 일하지만 여전히 극빈의 경계에서 살고 있다. 이케아의 행동강령을 준수했음에도 말이다.

그래서 근로자들은 살기 위해 지속적으로 초과근무를 하고 있다. “근로자들은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고 매일 12시간 일을 한다. 주문이 밀리면 15시간 일을 하기도 한다”고 바자야바스카르 교수는 지적한다.

이케아는 하청업체에서 초과근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업체는 납기일을 맞춰야 하고 근로자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초과근무를 없애기 힘들다. 하루 8시간 근무는 오전 9시 30분에서 오후 1시 30분 그리고 오후 2시 30분에서 6시 30분을 말한다. 하지만 카루르 마을의 서민동네에서 사는 칼라야는 저녁 7시부터 8시나 9시까지 야근을 하면 돈을 받지 못하고 10시 30분까지 일을 해야 추가로 50루피(약 110원)를 더 받을 수 있고 야근은 보통 일주일에 두 번 한다고 했다.

하지만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아쌈은 야근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한 저녁에도 기계는 멈추지 않았고 우리는 저녁 8시까지 근로자들이 공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다. 아쌈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 두려워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말한 것이 분명했다. 야근수당을 받는다고 말한 디노샤는 공장에서 나오자마자 우리에게 사과를 했다. 그녀는 저녁 8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다른 곳에서 일하고 80루피(약 180원)와 식사를 제공 받는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이케아에게 시바, 칼라야, 디노샤는 ‘철저하게 줄여야 할 비용’이다.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하청업체는 다시 다른 공장에 하청을 주기도 한다. 이케아의 1차 하청업체에서도 아이웨이가 지켜지지 않는데 2차, 3차 하청업체에서 아이웨이가 지켜지리라는 것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하청업체에서 지켜야 할 것은 납기일이지 관리감독도, 규정도 아니다.

이케아의 공식 하청업체에서도 행동강령이 지켜지고 있는지 관리감독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관리감독은 누가 하는가? 특히 원료와 제품 구매의 93%를 담당하고 있는 32개국에 분산되어 있는 46개의 이케아 무역사무소를 누가 감사하는가? 무역사무소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는 부서는 이케아의 행동강령이 지켜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규정모니터링 그룹’이다. 5명으로 구성된 규정모니터링 그룹(2004년에는 세 명이었다)은 무역사무소의 감사작업을 지원하고, 직접 감사를 실시하기도 한다. 2005년에는 53회의 감사가 실시되었다.(11) KPMG나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 인터테크 테스팅 서비스 같은 외부 기관에서 실시한 감사는 2004년에 일곱 번밖에 없었다. 이케아도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2005년에는 “독립기관에서 실시하는 감사의 횟수를 늘리겠다”고 밝혔다.(12) 그래서 ‘늘어난’ 수치는 총 1,002회 감사 중 독립기관이 실시한 것은 무려 26회였다.

 

빨간불 켜진 아동노동 착취

 

독립기관에서 실시한 몇 번 안 되는 감사조차도 이케아의 내부감사 시스템에 적용을 받아야 하고 외부 감사기관은 감사 결과를 이케아 그룹의 경영진에게만 직접 보고할 수 있고 공개하지 못하도록 되어있다. 게다가 2년마다 실시되는 감사는 (아시아에서는 6개월 혹은 1년마다 진행된다) 하루나 이틀 만에 끝난다. 그래서 아이웨이의 90개 기준이 지켜지고 있는지 확인하려면, 하루 8시간 근무를 한다고 했을 때 기준 하나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10분 40초이다. 노조를 결성하는 데 압력이 없었는지 어떻게 10분 만에 확인할 수 있겠는가? 야근은 하는지, 임금 체불은 없는지, 휴식시간은 지켜지고 있는지, 강제노동은 없는지, 아동노동 착취는 없는지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겠는가? 간단하다. 책임자에게 물어본다. 그리고 회사 장부를 확인한다. 더 심각한 것은 근로자에게 공장 안에서 물어보는 것이다.

감사를 실시하는 사람들은 성실하고 적극적인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철저하게 감사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감사는 ‘겉핥기’식으로 진행되고 이런 분위기에서 근로자들은 근무조건에 대해 터놓고 말할 수 없다. 게다가 이 ‘감사’는 품질관리 감사와 같이 진행된다. 품질관리 책임자인 토니시는 이케아의 감사관들을 작년에 두 번밖에 만나지 못했다고 말한다. “감사관들은 생산공정을 확인하기 위해 제품의 품질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했다. 감사관들은 델리나 마드라스에서 온 인도인들이다. 하지만 유럽인들도 있는데 이들은 더 높은 사람들과 이야기한다. 언어 문제 때문에 근로자들은 유럽인 감사자들과 직접 이야기할 수 없다.”

칼라야도 같은 말을 했다. “어제 이케아에서 사람이 와서 품질관리에 관한 비디오를 보여주고 질문을 했다. 제품에 관한 것이었다.” 분명, 칼라야가 임금도 받지 못한 채 야근하는 것과는 무관한 질문이었다.

이케아는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을 위해 여러 가지 복지 정책을 도입했다. 근로자들은 정수된 물을 마시고, 장갑을 착용한 채 일하고, 남녀가 분리된 화장실을 사용하고, 심지어 휴식시간도 있다. 하지만 휴식시간에 차를 마신다고 월말까지 버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보았듯이 회사는 임금이나 노조, 야근 같은 노동문제가 언급되면 바로 목소리가 달라진다.

행동강령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고 생각하는 이케아가 결국에는 승리자가 아닐까? 이케아는, 비자야바스카르 교수가 지적하듯, 하청업체에 사회적 비용을 떠넘기고 아동노동 같은 서구사회가 허용할 수 있는 경계선을 절대 넘지 않도록 조심하며 돈이 들지 않는 약속만으로 회사 이미지를 높이고 있다.

아무런 강제력이 없는 이케아의 행동강령은 직원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주지 못한다. 이케아가 ‘윤리경영’을 하고 있다고 진정으로 말하고 싶다면 직원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줘야 하지 않을까? 여기서 말하는 인간다운 삶은 TV나 휴대폰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끔 고기를 먹을 수 있고, 돈이 없어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못하는 일이 없고, 두 가지 일을 할 필요가 없고, 주중에 하지 못했던 집안일을 하기 위해 제대로 쉬지 못하는 휴일이 아니라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휴일을 갖는 삶을 말한다. 시바가 이케아에서 자그마한 물건을 살 수 있는 작은 사치를 누릴 수 있는 삶을 말한다.

 

(1) Read Me. 이케아 사보 1호(프랑스판), 2006년 3월

(2) ‘이케아 아니면 죽음을!’, <Courrier international> 722호. Paris, 2004년 9월 2~8일

(3) ‘무갱에 이케아를!’, 인터넷 청원서

(4) Ikea, ‘Socail & environmental responsibility report 2005’

(5) ‘Trying to assemble a perfect reputation’, <The Observer>, London, 2001년 11월 25일

(6) ‘어느 가구상인의 신념’, 잉바르 캄프라드의 전기 <디자인과 운명, 이케아의 전설>에 전문이 실려있다. Michel Lafon, Paris, 2000년

(7) 독일 다큐멘터리 <Mattan>은 Manuel Balza, Davor Radojicic가 쓴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and nongovernmental organizations’, Avdelning, Linköping, 2004년 1월 30일 기사에 언급되었다. 스웨덴 방송보도는 2003년 11월, University of Oxford에서 출간된 Susan Christopherson, Nathan Lillie가 쓴 <Neither global nor standard: Corporate strategies in the era of new labor standards>와 Lowry Miller, Piore Adam, Theil Stefan가 쓴 ‘The Teflon shield: Trench war’ <Newsweek International>, 2001년 3월 12일 기사에 언급되었다. Cf. ‘Ikea accused of exploiting child workers’, BBC, 런던, 1997년 12월 23일

(8) IWAY Standard, 15항

(9) 인터뷰에 응한 근로자들은 사람이 밝혀질 경우 해고당할 것을 두려워했다. 여기에 사용된 이름은 모두 본명이 아니다.

(10) www.madeindignity.be(11) Ikea, ‘Social & environmental responsibility report 2005’

(12) Ibid.

 

글·올리비에 바이 Olivier Bailly

장 마르크 코드롱 Jean-Marc Caudron

드니 랑베르 Denis Lambert

<Ikea, un modèle à modèle(이케아, 조립식모델)>(올리비에 바이, 장 마르크 코드롱, 드니 랑베르 공저. Luc Pire, 브뤼셀, 2006)

 

번역·임명주 mydogtulip156@daum.ne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2006년 12월호에서 다국적 기업 이케아의 일자리 문제와 환경 및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집중 분석하는 글을 다뤘다. 이 기사는 작성시점이 꽤 지났으나,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베일속의 이케아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