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대신 군인을 파견하는 미국

2015-02-01     피에르 랭베르

의사 대신 군인을 파견하는 미국

 

피에르 랭베르┃<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부편집장

 

미국과 유럽이 에볼라가 몬로비아의 빈민촌에 처박혀 있지 않고 대양을 넘어 자국의 수도와 대도시에까지 창궐하게 되지 않을까 공포에 떨고 있는 사이, 에볼라는 국제관계의 불균형성을 있는 그대로 만천하에 드러냈다. 스탠리 의학연구소(1) 소장 에드윈 풀러 토레이의 보고서에 따르면, 에볼라 최대 피해국가인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기니는 세계에서 의료 인력이 가장 부족한 국가에 속한다. 에볼라 창궐 이전, 인구 430만 명의 라이베리아에서 집계된 의사 수는 총 120명에 불과했다. 반면, 라이베리아에서 의학 학위를 따고 미국에서 개업을 한 의사가 (2010년 기준) 적어도 56명(미국에서 동등한 학위를 수여하지 않은 의사는 제외)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토레이는 보고서에 ‘미국 내 라이베리아 의사 수는 라이베리아 내 전체 의사 수의 3분의 2를 차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1960년대 미국은 뉴욕 의대생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지역의 의사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빈곤국가 출신 의사들에 국경을 개방했다. 의료인력 유출 50년이 지난 현재, 부족한 라이베리아 의사를 누가 대체할까? 지난 10월 미국은 에볼라 퇴치 지원을 위해 4만 명의 예비역을 서아프리카에 파견했다. 일종의 ‘의사 대신 군인’ 작전이라 할 수 있겠다.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는 현지 전초에서 미군 병사들을 만난 의사들은 다름 아닌 쿠바 의사들이었다. 쿠바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감독 하에 수백 명의 ‘에볼라 퇴치’ 의사와 간호사를 양성하였다. 이들 중의 일부는 이미 시에라리온에 파견되어 퇴치 활동 중에 있다.

쿠바에서는 흔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2) 이러한 연대 움직임에 뉴욕 타임스까지 ‘세계에서 고립된 가난한 섬나라’가 ‘에볼라 바이러스를 퇴치하려는 국가들을 위해 결정적 역할을 하기위해 나섰다’며 높이 칭찬하고 나섰다. 뉴욕 타임스는 ‘쿠바의 노력은 마땅히 칭찬받고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3)고 강조하며 미국이 쿠바와의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고, 쿠바 의사들의 첨단 의료기기 사용을 가로막고 있는 경제봉쇄를 푸는 동시에, 카스트로가 전염병 퇴치를 위해 제안한 협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이에 지난 10월 17일 존 케리 미국 국무부 장관이 마지못해 ‘1,100만 명의 인구에도 불구하고 가장 먼저 재난국가에 165명의 의료진을 급파하고, 300명을 추가로 파견할 예정인 쿠바’에 경의를 표했다. 그러나 이때마저도 미국 재정부가 2006년부터 쿠바 내 의료인력 부족을 가중시킬 목적으로 의료인력 유출을 겨냥하여 시행 중인 ‘쿠바 보건인력을 위한 통행증’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슬람국가조직(IS)에 의한 정신적 패닉 상태와 마찬가지로 에볼라에 의한 바이러스성 패닉 상태로 인해 기이한 역전 상황이 벌진 것이다. 미국이 테러조직 명단에 오른 마르크스-레닌주의 쿠르드족 전투원에 무기를 지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쿠바를 칭찬하면서 더욱 목을 조르는 것이 과연 놀랄 만한 일일까?

 

글·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부편집장, 미디어비평행동단체인 Acrimed에서 활동 중이며, 대안 언론 <르플랑 베>를 발행하고 있다.

 

번역·김수영 ksy_french@naver.com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졸

 

(1) Fuller Torrey, ‘How the US made the Ebola worse’, <Wall Street Journal>, 2014년 10월 14일

(2) Hernando Calvo Ospina, ‘보건 인터내셔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6년 8월호

(3) ‘Cuba’s impressive role on Ebola’, <The New York Times>, 2014년 10월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