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계몽주의는 어디로 갔나?

2015-02-01     안느세실 로베르

 

도대체 계몽주의는 어디로 갔나?

 

계몽 철학이 진보적인 사상가들과 더불어 가장 본질적인 비판에 직면한 이 시기에 유럽과 프랑스에서 또다시 종교가 실제적인 공론의 장에 올라왔다. 민주주의와 공화국의 기초를 다진 사상을 재조명할 시간이 된 것은 아닌가?

 

안느-세실 로베르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풍자만화가의 표현의 자유와,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베일 착용을 학교에서 금지하는 것을 어떻게 함께 볼 것인가?”라고 사회학자인 위그 라그랑즈가 자문한다.(1) 종교적 상징을 착용하는 것에 대한 논쟁이 아니더라도 이런 식의 비교는 철학적으로 상당히 중대한 혼동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이는 이성의 실행과 신앙 표현의 행위에 관한 사안이지만, 같은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소위 계몽주의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18세기의 철학적 운동의 사상적 근거가 되는 이성과 신앙의 구별은 정치제도에 있어서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민주주의의 개념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는 사상가들이 확고 불변한 무신론자들이어서가 아니었다. 디드로와 달랑베르는 무신론자였으며, 볼테르와 콩도르세는 이신론자(理神論者)였다. 이는 계몽주의가 신앙과 열정이 개인의 삶 속에서 활짝 개화하도록 그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이성이 모든 인류에게 공통되는 유일한 인식 방식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런 이유로 오로지 이성만이 평화적인 공론의 장을 구축한다고 간주함으로써 이성을 신앙이나 열정과는 구분 지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가 제에브 스테른헬이 상기시켰듯이 믿음과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을 때에는 이성이 이를 결합한다.(2)

그런데 이와 같은 계몽주의의 자명한 자산도 실업과 기후 변화 등과 같은 두려움과 회의로 병들어버린 2014년의 유럽에서는 당연한 것이 되지 못한다. 공산주의적 이상이 붕괴해 버린 자본주의 사회에서 종교는 스스로 “영혼이 없는 세계의 영혼을 보충해 줄 보완물”이라 자처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종교는 어떤 개인에게 특별한 하나의 믿음으로서의 장을 떠나 보편적 진보라는 공통의 장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거기에서 다른 어떤 영적 사상보다 우월한 위치를 점유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증거로는 2008년 리스본 조약(2005년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어 무산된 유럽헌법조약을 대체하는 조약으로, 경제공동체를 넘어 EU의 정치적 통합까지 목표로 한 일종의 미니헌법-역주)의 전문에 삽입된 “유럽의 문화적, 종교적 그리고 인간적 유산”이라는 구절을 인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물론 이 문구는 종교가 함축하는 우애적인 가치들을 상기시키지만 종교의 유한성에 비추어 볼 때, 종교가 걸어온 “어두운 길”에 이르러서는 출구 없는 막다른 길에 다다르기도 한다. 종교의 어두운 길은 종교 전쟁, 종교 재판, 미셸 세르베의 처형,(3) 교황 비오 6세의 프랑스 혁명 당시의 인권시민선언 비난 등, 이루 헤아리기도 힘들다. 2000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유럽의 정신적, 도덕적 유산”이라는 보다 광범위한 의미의 경구를 사용했다. 이는 어떤 종교를 특별히 편애한다거나, 특히 이슬람을 자극하는 위험을 피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금세기 초에, 물론 선입견으로 인해서 이슬람이 아직 이념의 승리라는 영광의 길로 완전하게 참여하지 못하고 있지만 종교는 새로운 정당성을 찾은 듯하다. 종교는 공공의 장에서 여전히 ‘채권자’로서의 위상을 과시하며 언제나 더 많은 존중을 요구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기독교는 유럽인권법원(Cour européenne des droits de l’homme. CEDH)의 시행 세칙에 의거해 몇몇 영화들의 상영을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오스카르 파니차의 <사랑의 공의회>를 모방한 작품의 상영이 금지되었으며 영국에서는 나이젤 윈드그로우브의 단편 비디오 필름 모음인 <비전 오브 엑스터시>가 신성 모독이라는 이유로 영국 영화 등급 분류위원회(BBFC)에서 심의조차 거부당했다.(4) 2009년에는 유럽인권법원이 사이언톨로지 교회에 법조계의 인물을 갖춘 종교조직으로서의 성격을 인정해줬다.(5) 프랑스에서는 몇몇 기독교 극우주의자들이 소송을 남발하고 있다. 1998년에서 2006년에 걸친 긴 소송 끝에 프랑스와 ‘기독교 정체성 수호와 인종차별 반대를 위한 연맹(Agrif)’은 역사가 폴 지니에브스키가 유태인 강제 수용에 가톨릭교회의 책임을 거론한 기사를 신문에 실은 것에 대한 유죄 평결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물론 후일 유럽인권법원은 역사가의 손을 들어 주었지만 말이다.

프랑스 공화국 당국은 “6대 거대 종파”(가톨릭, 유태교, 신교, 그리스 정교, 불교, 이슬람교)와 정기적인 만남을 가져 인종문제에 관한 자문을 받는다. 이와 같은 차별적 선택은 당연히 공화국이며 비종교성을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사회에서 이상하게도 경계선에 서있게 된, 일부 영적 분파(자유사상가 그룹이라든가 이성주의자 연합 등)의 항의를 피할 수 없다. 종교에 부여된 역할이라는 것은 2005년 폭동 당시 변두리 지역의 질서를 유지하려 했던 이슬람 사제들의 무기력에서 확인하듯이 비효율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2013년 말, 국가인종자문지침은 어떠한 종교적 권위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프랑스 교육부 장관인 나야트 발로-벨카셍은 철학자 레지 드브레의 제안을 차용해 “종교적 사실”만을 교육하자고 제안한다.(*) 극단주의적인 선동가들에게 활동의 여지를 줄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역사와 예술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일반적인 교양만 교육하자는 말이다. 장관은 “교육이 종교적 색채가 전무한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지만, 그럼에도 국가가 다른 정신적 사항에 비해서 어떤 선호도를 보이는 게 있다.

그런 점에서 소수 종파, 예컨대 아프리카의 소수 종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게다가 “사실”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비록 그 단어가 외관상으로는 교리와 일정한 거리감을 포함하고 있긴 하지만) 그 역시 강요된 사상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란 말인가? 철학적으로 볼 때 여러 개 중에서 선택된 하나의 사실이라는 것은 그 사실에 주어지는 해석에 의해서만 가치가 결장되는 법이다. 그 사실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합리적이고 자유로운 토론인 것이다. 예컨대, 다른 분야에서 자유주의적 경제학자들이 그들의 이념적 선입견의 방패막이에 불과한 “현실성”을 들먹인다고 해서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교리라는 것은 오래된 대륙인 유럽에서는 떠들썩한 파문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지 않는가. 정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혹은 하나의 유럽에 대한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마치 병적으로 그러는 것처럼 “프랑스인들에게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라고 반복해서 외치곤 한다. 그렇다면 그 어딘가에는 절대적이고 이론의 여지가 없고 그러므로 모든 사회 질서가 반드시 복속해야 할 하나의 절대 진리가 존재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그 진리는 어떤 것인가? 루르드의 어느 동굴에서 그 진리를 발견했는가? “공식적 진리”라는 개념은 기억의 법 속에 싹의 형태로 존재한다. 그런데 그 기억의 법이라는 것은 역사가인 마들레느 르베리우에 따르면 비평정신과 자유로운 연구를 침해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 역사가는 게소법 제정 당시 인권 연맹의 회장이었는데 그 법이 내포하는 위험성을 비판한 적이 있다.(6)

그렇다 해도 계몽주의는 형극의 길을 아직 다 마치지 못했다. 19세기의 혁명을 비난한 우파의 전통적인 비판에 이어서 이번에는 새로운, 전혀 예기치 못한 또 다른 비판이 가세했다. 1995년 장-클로드 기으보의 비판이 그것이다.(7) 소위 진보라 간주되는 미셸 마페졸리, 알랭 투렌느와 같은 지식인들도 이 비난 대열에 가세해 계몽주의에 대한 문화-정치적 비판을 가다듬어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적 비판(형식적인 자유에 대한 실질적 자유라는 개념으로)을 보충했다. 문화적, 종교적 혹은 성적인 정체성의 가치를 중시하기 위해서 정치적 주제들을 해체하는 포스트모던적 관점에서는 18세기를 지배했던 계몽 철학은 이민자들을 빈곤층으로 전락시키는 차별을 정당화한다고 비난받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단 하나의 정체성조차 표현할 수 없거나 표현하기를 바라지 않거나 혹은 여러 개의 정체성을 표명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서 결과적으로 표현의 자유조차 박탈해가는, 정체성을 강제로 할당하는 위험한 담론들이 난무하고 있는 세상에서 계몽주의자들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악에 대한 책임을 떠맡게 된 것이다.

이성 자체가 직접적으로 공격을 받는다. 과학 기술 지상주의 이념으로 왜곡 축소되어 “아우슈비츠를 만들어 냈다”는 황당한 비난에 직면하기도 한다.(8) 그런데 계몽주의에게 이성이 하나의 도구라면 그것은 우선 먼저 장 조레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성의 도덕적 사전 형성물”인 것이다. 달리 말하면 선이기를 바라는, 구체적으로 사회를 우애 있는 도약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인간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이성은 사람들을 국민 말고는 다른 군주가 없고 대표자가 투표로 결정한 법 말고는 다른 법이 없는 공화국의 나라로 이끄는 것이다. 게다가 이성은 확실성 위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데카르트가 설명한 바와 같이 방법론적 회의 위에서 구축되는 것이다. 가스실보다 회의해 봐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인종에 등급이 있다는 생각보다 비이성적인 생각도 없다.

계몽주의의 해방의 힘은 강력했다.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은 계몽의 정신이 가장 보편적으로 정치적으로 표출된 것일 뿐이다. 이제는 수많은 프랑스인에게 계몽주의는 옛 시절의 아련한 기억에 불과한 것인가? 자유롭고 싶어 하는 욕망은 이제 충분히 충족되었다는 말인가?

 

글·안느 세실 로베르 Anne–Cécile Robert

번역·이진홍

 

(1) <르몽드>, 2015년 11월 14일

(2) Zeev Sternhell, ‘모든 나라에서의 반 계몽주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12월호

(3) 1553년 신학자이자 의사인 세르베는 장 칼뱅의 선동으로 이단으로 규정되어 산 채로 화형에 처해졌다.

(4) 1994년 오토플레밍거 사 대 오스트리아건 판례, 1996년 윈드그로우브 대 영국건 판례.

(5) 키밀라 외 여러 다수 대 러시아건 판례, 2010년 3월 1일

(6) 1990년 7월 3일 제정된 게소법은 누렌베르크 법정이 규정한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어떠한 항의도 금지한 법을 말한다.

마들렌드 르베리우, “역사”, <집단 학살, 판사와 역사가>, n° 138, Paris, 1990년 11월

(7) 장-클로드 기으보, <계몽주의의 배신>, Seuil, 파리, 1995년

(8) 장-마리 뤼스티제, <신의 선택>, Editions de Fallois, 파리, 1987년

 

(*) “종교적 사실 교육”이라는 표현은 레지 드브레 교수의 <비종교학교에서의 종교적 사실 교육>(2002)이라는 보고서 이후 유행하게 된 용어다. 요지는 종교 교육에 있어서 신앙차원의 교육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과학적 검증이 가능한 사실만을 교육해서 차별을 없애자는 주장이나. 그 개념은 여전히 모호하고 혼란스러워 논쟁이 그치지 않고 있다.(역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