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대로 해석하세요! 그게 미디어입니다”

2015-02-01     피에르 랭베르

 

“마음대로 해석하세요! 그게 미디어입니다”

피에르 랭베르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모두가 두려워한 일이지만, 아무도 드라마가 이런 식으로 전개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1월 9일 금요일 몽펠리에 축구선수 압델하미드 엘카우타리가 올림피크 드 마르세유팀과의 경기에 대비한 연습경기에서 “나는 샤를리다”라고 쓰인 셔츠를 입지 않았다. 그러자 사회 전체가 들썩거렸다. 일요일 <카날 플뤼스(Canal Plus)>에 초대된 롤랑 쿠르비 코치는 이에 대한 설명을 독촉받았다. 그 다음날 논쟁이 더 커졌다. 발렌시아 축구선수 3명이 테이프로 ‘나는 ~이다(Je suis)’를 감춘다는 조건 하에서만 그 소문난 셔츠를 입겠다고 말한 것이다. 방송의 핵심 프로그램인 ‘애프터풋(Afterfoot)’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프로그램 진행자인 질베르 브리스부아는 “우리가 1주일 전부터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 그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고 그들의 설명을 들어보자”라고 말했다. 기자인 다니엘 리올로가 격분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표현의 자유가 모든 바보 같은 짓에서 벗어나기 위한 모든 멍청한 사람들의 근거가 되고 있다.”

미디어 프리즘에 갇힌 학살의 진실

‘샤를리’가 되거나 혹은 되지 말아야 하는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가? 풍자주간지 기자들과 만화가들에 대한 학살과 프랑스 지하드주의자들에 의한 슈퍼마켓 손님들의 학살이 연이어 벌어진 그 시기에 이 같은 질문이 교실이며 편집실로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1월 16일자 <르몽드>의 타이틀은 “‘샤를리다’와 ‘샤를리가 아니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교외(郊外)”이다. 1월 15일자 <오주르디 앙 프랑스>의 1면에서는, ‘나는 샤를리다’라고 쓰인 글자가 찢겨져 있는 광고판이 ‘분열의 위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각자가 자신의 진영을 선택해야 할 뿐만 아니라, 경계선의 어느 편인지를 확실히 말하라고 독촉받는다. “바로 ‘샤를리’가 아닌 사람들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가 찾아내고, 담판 짓고, 국가 공동체 안에 통합시키거나 재통합시켜야 할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다”라고 <프랑스2>에서 나탈리 생크리크 기자가 소리를 높여 말한다(1월 12일). “우리와 함께 하느냐 아니면 테러리스트와 함께 하느냐”는 상투어구가 토론 무대에서 가장 관심을 끌고, 가장 폭발적인 토론을 만들어 낸다. 가장 불길한 그림이 그려진다. 극단주의적 관념론자들은 이슬람의 위험으로부터 위협당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백인’ 주민들과, 인종차별주의 및 서구의 개입에 의해 극단화된 일부의 ‘무슬림’을 분리하려고 한다. 이들은 사회를 유력자들과 이해관계자들의 이익 여부에 따라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와 정체성에 따라 구분 짓는다. 다시 말해 사람들을 샐러리맨, 실업자, 긴축정책의 희생자들이라는 식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항상 더 깊숙이 존재하는 ‘믿음’이라는 지층에 근거해 사람들을 구분 짓는다. 이를 위해 여러 가지 기준들을 오래전부터 설정한 것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치 아픈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정치의 최전선을 문화적 충돌로 대체하는 것은, 흔히 두 개의 의자 사이에 앉아 있는 지적인 소부르주아가 반동 진영으로 완전히 쏠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몸에 모순을 안고 사는 이 사회그룹은 이민자 출신의 프롤레타리아와 애매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여기에는 문화적 혼종의 욕망과 지배 관계, 도시적 혼합과 주거(住居)적 격리, 반인종차별주의와 민족중심주의, 엄격한 세속성과 베일 쓴 이슬람 유모의 요소들이 뒤섞여 있다. 예술계와 문화계의 기둥인 소부르주아는 사회의 표상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들이 문화전쟁에서 편 가르기를 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긴장 전략은 ‘샤를리냐’ 아니면 ‘샤를리가 아니냐’는 양자택일로 대중토론을 몰아가려고 혈안이 된 지식인들과 미디어의 비자발적 지지에 의해 전개되고 있다. 둘 사이에 걸쳐 있는 것도, ‘예, 그러나’ 식의 태도도 불가능하다. “‘그러나’라는 비겁한 상대주의적 담론에 대항하여 우리가 수년 전부터 투쟁을 하고 있다. 오늘부터는 이런 비겁한 상대주의적 담론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라고 <샤를리 엡도>의 변호사인 리샤르 말카가 설명한다(2015년 1월 19일, <프랑스 5>의 프로그램 ‘C dans l’air’). 요약해서 말하면 언론의 자유·민주주의·관용·용기는 ‘샤를리’이고, 야만·테러·맹신·불관용은 ‘샤를리가 아니다.’

그러나 살육으로 인해 감정과 분노에 사로잡힌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이런 미묘한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나는 샤를리다’라는 플래카드를 들었든 아니든 간에, 1월 11일의 대규모 시위에 참석했든지 안했든지 간에, 수많은 사람들은, ‘마르세이에즈’(프랑스 국가)를 부르고 경찰을 환호하며 삼색기를 두른 군중의 이미지에 기만당하지 않으면서도, 박애의 생체적 감동을 경험했다. 하나가 되기 위해 모인 모든 행진 참가자들의 신념이 텔레비전에 나와 울먹거리는 행진 참가자들의 신념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샤를리가 된다’는 것이 누군가에게 의미했던 것(보편적 화합)과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의미했던 것(아랍인들 추방!) 사이의 엄청난 괴리는, 만약 우리가 거기에 대해 조그만 더 성찰해 보았다면 그러지 않았을 테지만, 이 두 가지가 가리키는 범주에 대한 일관성을 제거해 버렸다. 그런데 24시간 뉴스체제에서 우리가 성찰할 여유가 있겠는가? 1월 9일 금요일, 사람들은 더 이상 를 구별할 수 없게 된다. 프랑스 제1채널인 은, 자사의 정규 프로그램을 파기해 버리고, 10시부터 21시 15분까지 생방송을 진행한다. 은 특별방송을 4일간 지속한다. 사건의 의미를 고정하기 위한 전투가, 사건이 난 후가 아니라, 사건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벌어진다. 뉴스미디어들이 자사의 편집철학을 만화경 같은 화면에 본능적으로 반사시키면서 이 놀이에 제일 먼저 뛰어든다. 민주화 상태가 아주 다른 44개국의 국가와 정부 수반이 나란히 행진하는 장면으로 상징되는 질서와 품위에 대한 각 방송사들의 어쩔 수 없는 취향이 이를 잘 보여준다. 는 달콤한 바이올린 소리와 피아노 소리를 곁들여 느린 속도로 이 장면을 재방송했고, 피날레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어깨에 부드럽게 기울이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사진을 화면 삽입하여 방송했다(1월 12일). 사회적 권리를 위해 시위할 때는 시끄럽고 저속하게 묘사된, 종이 위에 누운 군중들이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으로 구체화된 <옵세르바퇴르>(1월 11일) 커버에서는 갑자기 (정열의 화가인) 들라크루아 방식으로 미화되고 빛을 낸다. 때로 이 군중은 뺨에 ‘나는 샤를리다’는 스티커를 붙이고 서글픈 시선으로 공화국의 조각상에서 민중을 응시하는 어린 흑인 소년의 사진처럼 뭔가 교훈적으로 묘사된다(1월 13일자 <리베라시옹>). 이 사진은 파리에 모인 시위대들이 전체 국민의 일부만을 대변한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실린 것이다. 세계의 중심에서 생방송으로, 저명한 리포터 에티엔느 모넹은 <프랑스 엥포(France Info)>(1월 11일)에서 다음과 같이 경탄했다. “은총의 짧은 순간인 이 시위에는 직관적 미를 갖춘 빛나는 모습, 안도하는 혼종미를 띠고 있으며 엷은 슬픔의 기색을 드러내는 푸른 눈을 가진 젊은 커플의 모습도 눈에 띈다.”

 

사육제에서 우스꽝스러운 옷차림을 한 사람처럼, 언론 자체에 대한 헌사는 모든 것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렸다. “우리는 샤르브, 티니우스, 카부, 오노레, 볼렝스키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들은 이런 식의 태도를 비난할 것이다”면서 <샤를리 엡도> 팀 중에서 살아남은 풍자만화가 루즈가 분통을 터뜨렸다(www.lesinrocks.com, 1월 10일). 이런 견해에 무관심한 최고의 뉴스해설자들은 좋은 감정으로 나쁜 취향을 영예롭게 만들었고, 내무부가 조직하고 교황·북대서양 동맹·프랑스 축구 연맹·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축복한 시위행진이 진행되는 동안, 무정부주의 풍자만화가들을 애도했다. 표현의 자유에 바쳐진 이 의식이 끝난 지 48시간 후에 언론은 대담하게 최근 강화된 법률에 저촉되는 언어적 일탈의 죄를 진 청소년·술주정뱅이·우둔한 사람들이 실형을 받았다고 발표한다. 마뉘엘 발스 총리가 “구유에 똥을 싸세요. 장애인들의 목숨을 완전히 끊어버리세요. 군인들을 총살하세요. 신부(神父)들을 교수형에 처하세요. 경찰들을 박살내세요. 은행에 불을 지르세요”라는 시민정신이라고는 거의 보이지 않는 부추김의 글로 성탄절을 축하했던 1975년 10월 18일자 <샤를리 엡도>의 커버를 발견할 거라는 생각에 사람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이에 비해, 지역 언론은 어찌할 바를 몰랐던 것 같다. 9일 금요일 10개 지역 일간지들은 1면에 ‘추격하기’라는 똑같은 타이틀을 내보낸다. 곧바로 다음 월요일에 8개 지역 일간지들이 동시에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타이틀을 내보낸다. 1월 7일 10명의 언론사 사장들로 구성된 ‘발행인 공동체’가 “자신들은 언론자유의 신성한 원칙들에 대한 협박과 위협에 결코 굴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엄숙히 선언하지만, 이슈 선정에 연속적으로 실패하면서 다원주의에 대한 찬사라는 음식 속에 만장일치라는 상반된 양념을 집어넣게 된다. 같은 날 <리베라시옹>의 공동 소유주인 억만장자 파트릭 드라이가 <렉스프레스>와 <렉스팡시옹>을 사들일 거라는 의지를 확인해 준다. 능력도 안 되는 <리베라시옹>이 ‘시민정신’, ‘세속성’, ‘교육’, ‘정의’ 등과 같은 중요 개념들을 사용하여 ‘공화국을 치료하려고’ 애쓰는 바로 그 순간에(1월 17~18일), 자유주의 논설위원인 니콜라 바브레즈는 잘 알려진 다음과 같은 노랫가락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슬람주의에 대해 투쟁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경제적·사회적 개혁들을 실행하기 위해서도 국가적 결집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 개혁에는 이미 세상 곳곳에서 입증된 노동시장의 자유화도 포함되어야 한다.”(<르푸엥>, 1월 16일). 언론의 자유는 테러에서 정말 멋지게 살아남았다.

 

글·피에르 렝베르 Pierre Rimbert
번역·고광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