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극단화 정책의 핵심은 ‘그들’과 동화하는 것

2015-02-02     피에르 코네사

 

반 극단화 정책의 핵심은 ‘그들’과 동화하는 것

 테러로 인한 충격이 사그라들고 있는 지금, 이제는 반(反)극단화 정책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을 할 시간이다.

 피에르 코네사 | 국제군사전략전문가

  프랑스에는 유럽 3대 디아스포라, 즉 유태인, 아르메니아인, 무슬림 디아스포라가 형성되어 있다. 이중 무슬림 디아스포라는 5백만 명으로 프랑스 인구의 7%를 차지한다. 유럽연합 다른 국가들이나 미국(1%)에 비해 인구 대비 비중이 높다. 프랑스의 무슬림 인구는 출신이 매우 다양한데 그중 마그레브 이민자들은 프랑스 식민통치기에서 비롯된 피해의식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다. 다른 나라들이 선택한 공동체주의라는 편리한 수단도 통하지 않는 나라, 프랑스에서는 종합적인 반(反)극단화 정책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실패로 끝나는 폭력과 테러의 극단화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이에 의존하는 극단화는 비단 이슬람교만이 아니라 모든 주요 유일신 종교를 변질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부문[무정부주의 집단인 ‘블랙 블록(Black Blocks)’의 활동], 그리고 물론 정치부문(동질성 추구, 분리독립 운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슬람 극단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계파는 지하드(성전, 聖戰)를 추구하는 살라피즘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와하비즘의 부추김 속에 무슬림형제단을 상대로 투쟁하고 있다. 지하드 살라피즘은 세상의 종말이 머지않았으며 시리아 분쟁은 그 전조로서 선지자들이 예언하고 코란에 기록된 아마겟돈 전쟁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신봉자는 인생에 관한 모든 질문에 대답하는 총체적 사상을 얻게 되고 새로운 형제공동체에 속하게 된다. 또한 엄격한 종교적 실천을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보는데, 이는 종말론을 믿는 종파에서 나타나는 전형적 교리이다. 지하드 살라피즘은 뚜렷한 우두머리나 지도자를 두지 않은 채 조직원들을 포섭한다는 점에서 다른 계파와 차별화된다. 이들은 그물망 조직을 이용해 가입 희망자를 압박하며 급진적 개종을 유도한다.

지하드 살라피즘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지하드 살라피즘이 단순한 종교적 실천이 아닌 전체주의적 정치·종교적 정체성의 구축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이는 특히 지구상 모든 무슬림을 대표하겠다(움마, oumma, 이슬람공동체)는 이들의 포부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이들이 프랑스 무슬림들을 대상으로 추진하는 게토화 전략은 분열을 조장하는 각종 요구(음식, 의복, 행동, 학교 등)를 거듭하는 데에서 드러난다. 이들은 자신들과 다른 형태로 종교 활동을 하는 이슬람교도들을 완전히 배척하며 그들을 파문할 권리(타크피르, takfir)를 주장한다. 자녀들은 부모의 전통적 이슬람교를 거부하며 심지어 부모와 절연하기도 한다. 이들에게 가장 큰 적은 바로 다른 무슬림(시아파, 수피파, 자신들과 다른 계열 수니파)이다. 오늘날 살라피스트들이 저지르는 테러에 희생되는 이들 가운데 이슬람교도의 수는 비(非)이슬람교도의 열 배에 달한다.

이들의 두 번째 특징은 지정학적 문제에 극도로 민감하다는 점이다. 서방이 아랍·무슬림세계에 수차례 개입하며 야기한 끔찍한 결과를 보면서 그렇지 않아도 음모론적 이데올로기를 추종하던 이들의 태도는 더욱 예민해졌다. 이들은 움마의 수호를 새로운 제3세계 이데올로기로 삼아서 대의를 추구하는 청년들을 모집하는 데에 이용한다. 이들은 텍스트 대신 동영상을 중심으로 한 최신 수단으로 인터넷 세대를 포섭하는데, 마치 게임과 같은 전쟁의 모습, 살인 장면, 영웅 숭배 의식 등을 젊은이들에게 주로 보여준다. 지하드 살라피즘은 서방 세계뿐만 아니라 자신들과 다른 방식으로 이슬람교를 섬기는 신자들에 대해서도 전 지구적인 전쟁에 돌입했다. 이처럼 이들은 이슬람에 대한 전체주의적 비전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규율을 강요하고, 공화주의적 형식은 거부하며, 복수를 위한 폭력의 사용을 적어도 정신적으로나마 정당화하고 있다.

 

극단주의 방관한 프랑스 무슬림 지도자들

 

프랑스의 무슬림 단체 지도자들은 개인 또는 조직 간의 권력 다툼에 빠진 나머지 이러한 극단적 행태 앞에서 오랫동안 소극적이다 못해 방조하는 태도를 취해왔다. 프랑스무슬림평의회(CFCM)는 메라 사건과 네무슈 사건(1)에서 드러난 극단주의에 대해서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프랑스 정부의 조용한 대응정책도 이러한 상황을 조장했다. 공공정책은 경찰의 활동에 초점을 맞추었고 언론의 보도도 여기에 집중됐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프랑스 무슬림 인구 가운데 엘리트 계층은 사회에 보다 깊숙이 편입됐다. 지방선거와 총선에 출마하거나 당권에 도전하는 무슬림이 늘었으며(2) 시리아로 떠나는 젊은이들이 급증한 2014년 봄 이후로는 극단화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적극적으로 일었다. 지식인, 종교인, 각종 단체의 엘리트 계층이 공식적 기구를 통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결집했다. 2014년 1월 25일 토요일, 리옹에서는 프랑스무슬림연합이 ‘원리주의, 종교 극단화, 근원 그리고 해결책’을 주제로 집회를 가졌고, 지난 6월 이후로는 지역단체들이 주축이 되어 이와 유사한 시위를 5~6차례 개최했다. 이 모든 활동은 반(反)지하드의 신학적 근거를 정립하고 각종 단체, 이슬람사원 관리자, 성직자, 신학자 등을 중심으로 고급 경보망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공적 차원의 단결을 이끌어내는 것이 목적이다. 살라피스트들은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한 이슬람교도들을 ‘경찰의 부역자’, ‘이슬람의 배신자’라며 비난했고 신체적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1월 7일 테러 사건의 사후조치가 경찰과 군에 배정된 예산에 대한 논의에만 집중돼서는 안 된다. 사실 과거 외부의 개입이 야기한 참담한 결과를 보면 그럴 필요가 없어 보인다. 반극단화 정책은 조직원 포섭의 근원을 메마르게 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살라피스트들은 당파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다. 광신자를 현실로 되돌아오게 하는 건 쉽지 않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다른 무슬림이 공공 정책의 기틀 안에서 결집하는 것이다. 우리가 만난 어느 이슬람 성직자는 극단주의자들이 프랑스를 상대로 벌이는 전쟁을 이슬람 계율에 비추어 불법이라는 종교적 판결(파타, fatwa)을 내릴 생각도 하고 있었다.

반극단화 정책의 초석이 되는 공적 발언은 그 대상을 규정해야 한다. 즉 ‘국제적 테러리즘’이 아닌 ‘지하드 살라피즘’을 겨냥하고 있음을 명확히 해야 한다. ‘국제적 테러리즘’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통치기의 나쁜 기억을 되살리는, 알맹이 없는 표현일 뿐이다. 모든 살라피스트들이 과격한 극단주의자들은 아니지만, 모든 과격 테러리스트들이 먼저 극단적으로 정치화된 것은 사실이다. 대상을 명확히 규정해야만 예민해진 이슬람교도들이 ‘이슬람주의’, ‘이슬람 테러리즘’ 등의 표현 속에서 느끼는 집단적 낙인의 감정을 깨뜨릴 수 있다. 정치적 발언은 오늘날 살라피즘을 상대로 투쟁을 벌이는 무슬림 엘리트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다. 그들과 함께 일하는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모든 위험한 어림짐작을 배제하면서 과격화를 정의하고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 1월 7일 테러 이후 주어진 진정한 과제이다. 신학적 담론이 반극단화 척결을 위한 공공 정책을 수반할 때 비로소 성급히 폭력을 휘두르는 살라피즘 신봉자들을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지하드의 조직원 포섭 방식을 제대로 아는 것이 선결과제이다. 살라피스트들의 불어권 인터넷 사이트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적인 공개 관측기구는 아직까지 없다. 지하드 지원자 또는 신도들이 정보를 접하는 곳은 아랍권이나 영어권 사이트가 아닌 불어권 사이트인데도 말이다. 담론을 알아야만 그 반대 담론도 구상할 수 있다.

교도소는 가장 잘 알려진 극단화의 공간이다. 하지만 테러 사건 담당판사들은 시리아로 넘어간 젊은이들의 80%가 이슬람 사원이나 교도소를 드나든 이력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포섭과 개종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장소와 방법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프랑스에서 반극단화 정책의 성패는 두 가지 조건에 달려있다. 우선 현재 내무부 소속인 종교국을 총리 산하 또는 법무부 산하로 신속히 이관함으로써 모든 반극단화 정책에 내재된 경찰적 성격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2014년 6월 내무부는 범죄예방 부처간위원회를 새로운 반극단화 공공활동체계의 주축으로 삼겠다고 밝혔고, 결과적으로 경찰이 수행하는 ‘범죄’ 퇴치가 공공정책의 핵심이 됐다.

이슬람 테러리즘은 물론 위험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모든 공적 공간과 언론의 공간을 점령해서도 안 된다. 테러리즘은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럽에서 일어난 주요 테러행위들은 분리독립주의자들이 자행한 것이었다.(3)

반극단화 담론은 민간·단체·공공부문의 주체(이슬람 전문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심리학자, 협회 등)를 아우르는 조정기구를 통해 형성되어야 한다. 지하드를 고발하는 신학적 메시지를 구상하고 전파하며 반대 담론을 조성하되 가장 적합한 미디어를 선택해 이용해야 한다. 또한 예방 활동도 전개해나가야 한다. 이 모든 활동을 전개할 조직은 내무부에도 다른 어떤 부처에도 소속되지 않는 게 좋다. 반극단화 정책의 구상과 관리에는 정부 부처가 동참할지라도 말이다. 구체적 형태는 여러 가지가 가능하다. 그렇지만 정부가 직접 참여는 하되 지도는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혁명에 해당할 것이다. 프랑스는 워낙 뭐든 ‘그건 국가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만연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슬람 성직자 양성의 문제는 최근 내무부의 의뢰로 작성되었으나 공개되지는 않은 ‘메스네르 보고서’에서도 다루었다. 30년 전에도 스트라스부르대학교의 후원 하에 프랑스의 무슬림 학자 모하메드 아르쿤은 프랑스가 이슬람신학연구원을 설립하고 코란사상의 현대화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 문제는 초창기 연구 이후 진척이 없다.

교도소 전담 사제들도 절실히 필요하다. 수감자들 가운데 무슬림의 비율이 높지만 이슬람 사제들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게다가 그중 일부는 시간과 사비를 들여 봉사하는 은퇴 사제들이다). 극단주의자들을 이러한 상황을 근거로 “이슬람은 교정행정에서도 가장 무시당하는 종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프랑스 내 이슬람 인구 500만 명

 

아울러 어느 무슬림 지식인이 주장하듯 “민족 문제를 떠나 토론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젊은이들의 시리아행은 분명 금지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차라리 팔레스타인 점령지구를 비롯하여 유엔 결의의 대상이 된 지역에 프랑스 시민이 투쟁을 목적으로 가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법안을 채택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

5백만 명이 넘는 무슬림 인구를 둔 프랑스는 이슬람협력기구(OIC)에 가입할 자격이 있다.(4) 종교적 관용이 뭔지 모르는 다른 국가들의 훈계를 듣느니 차라리 프랑스 스스로 무슬림 국가임을 인정할 때 명분도 한층 떳떳해진다. 그렇게 되면 ‘프랑스 사회의 이슬람 공포증(islamophobia)’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자들의 주장도 수그러들 것이다. 사실 이러한 주장 주변에는 무슬림 인구의 대변자를 자처하는 ‘정치사업가’들이 들끓고 있다.

프랑스 사회가 맞닥뜨린 도전들은 훌륭한 기회이다. 두려움을 조작하기보다 지성의 발휘에 힘쓴다면 말이다. 과연 프랑스 지도자들이 이 기회를 포착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글·피에르 코네사 Pierre Conesa

전직 프랑스 국방부 관료. 국제군사전략전문가. 2014년 12월 보고서 <프랑스가 취해야 할 반극단화 정책은?> 발표. www.favt.org에서 다운로드 가능

 

번역·최서연 qqndebien@naver.com

 

 

(1) 모하메드 메라는 알제리 출신 프랑스인으로 2012년 3월 유태인 초등학교를 습격하는 등 몽토방과 툴루즈에서 많은 사람을 살해했다. 메디 네무슈는 2014년 5월 24일 브뤼셀 유태인 박물관에서 총기를 난사해 다수의 사상자를 냈다.

(2) Gilles Kepel, <프랑스식 열정>, Gallimard, Paris, 2014년

(3) Europol, <European Union Terrorism Situation. Trend Report 2014>, 2014년 5월 28일, www.europol.europa.eu

(4) 예루살렘 점령지구의 알아크사 이슬람사원에서 발생한 화재사건을 계기로 1969년 창설된 이슬람회의기구는 2011년에 이슬람협력기구로 명칭을 변경했다. 오늘날 50여 개국이 가입해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 지다에 본부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