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내몰리는 잠비아의 광부들

2009-06-03     장크리스토프 세르방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경제위기로 신음하는 노동현장을 가다-르포

구리 가격 오르건 내리건 형편 나아지지 않아
다국적기업 횡포와 경제위기, 이중고 시달려

수십 년 전부터 잠비아의 구리 광산은 세계의 기업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심지어 1990년대에는, 이전에 잠비아∼탄자니아를 잇는 철도공사를 맡았던 중국 기업들이 원자재 가격 상승에 고무돼 잠비아로 돌아왔다. 형편없는 근로 조건과 환경오염 사이에서 잠비아인들은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다리면서 자신들의 아픔을 참아내고 있다. 급작스럽게 닥친 경제위기를 딛고 잠비아인들이 원상복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피터와 이렌 부부(1)는 모두 서른 살이다. 루사카대학 공대를 졸업한 이들은 남부 아프리카에 위치한 잠비아의 ‘구리벨트’ 지역 중 하나인 소도시 칭골라에서 2006년부터 일하고 있다. 이 부부는 광산 개발을 통해 국내 총생산의 절반 이상을 올리는 이 나라의 주요 광산회사인 ‘콘콜라 구리 광산’(KCM)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잠비아 구리의 70%를 생산하는 이 회사는 직원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올바른’ 삶의 여건을 제공하고 있다. 이 젊은 부부는 매월 봉급으로 500만 크와차(700유로)를 받고 있고, 2010년에 거래가 가능한 스톡옵션까지 챙겼다. 구리 광산 부문에서 일하는 40만 노동자들의 평균 월소득이 대략 200만 크와차(281유로)인 점에서 볼 때, 이 부부의 급여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현재 인구 68%에 해당하는 1100만 명의 잠비아인들은 하루에 1.4유로도 채 안 되는 돈으로 생활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피터와 이렌은 몇 가지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구리 광석에 혼합하는 화학물질의 관리 책임자인 이 젊은 부인은 2007년 남편과 어린아이를 두고 멀리 인도까지 연수를 떠나야 했다. 그녀가 ‘유배’를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2004년부터 인도의 다국적기업 베단타(Vedanta)가 ‘콘콜라 구리 광산’의 대주주가 됐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에 불어닥친 민영화 물결이 이 회사에까지 파고든 것이다. 이 기간에 280개 잠비아 기업체 중 257개가 민영화됐고, 거의 10만 명의 직원이 해고당했다. 그중 4만 명이 공기업인 ‘잠비아 연합 구리 광산’(ZCCM)의 직원들이었다. 연합 구리 광산 산하의 광산들은 인수에 나선 민간 업체의 수만큼이나 갈가리 해체됐다. 베단타는 칭골라의 광산을 인수하며 가장 큰 파이를 챙겼다.

이렌이 인도 체류에서 좋은 추억만 간직한 것은 아니다. 귀국한 본국에 대한 추억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회사에 복귀했을 때 상당수 잠비아 동료들이 이미 해고됐고, 그 자리를 파견 나온 젊은 인도 노동자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인도 노동자들은 잠비아인들과 능력은 같지만 월급이 더 많고, 그들을 위해 특별히 지은 숙소에서 머물고 차량도 지원받았다.그녀가 떠나 있는 동안, 남편 피터는 천정부지로 급등한 생활필수품과 휘발유 가격뿐만 아니라 집세까지 감당해야 했다. 바퀴벌레가 우글대고 정기적으로 전기 공급이 끊기는 방 3칸짜리 주택 임대료가 200만 크와차(281유로)로 치솟았다.

그 후 이곳 경제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2008년 크리스마스 전날, 아파트 임대료가 170만 크와차(239 유로)로 급락했고, 이와 동시에 세계 시장에서 거래되는 대부분의 원자재 가격처럼, 구리의 t당 가격도 8675달러(6700유로)에서 7월에는 2817달러(2206유로)로 폭락했다. 새로운 기록 경신이었다.

도시 휩쓰는 광산 폐쇄의 두려움

광산 폐쇄의 공포가 도시를 휩쓸었다. 광산 정규 노동자 2만여 명에게는 우울한 크리스마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수는 1970년 후반 호황기 시절 광산업체 노동자 수의 3분의 1 수준이다. 고용주와 노동자 모두 불어닥칠 태풍에 대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1월 12일에 시작하는 자녀들의 학기를 앞둔 노동자들은 등록금 인상에 대비하려고, 기업은 넉넉한 마진을 유지하려고 허리띠를 졸라맸다.
베단타의 잠비아 계열 회사는 2008년 4/4분기 매출액을 1억2200만 달러라고 밝혔다. 이 수치는 전년과 비교해 거의 반토막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저임금에 노조도 없이 위험한 일을 해온 노동자 수천 명이 해고됐다.

베단타는 잠비아 자회사 입구에 굵은 글씨로 써놓은 ‘희생’이라는 글귀처럼 이윤을 극대화하려고 협력업체와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희생’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물품 공급업자들은 대금을 받으려면 예전보다 더 기다려야 했고, 그러다 일부는 파산했다. 작업 시간도 늘어났다. 광산부문 노조인 ‘잠비아광부노조’(MUZ)의 한 노조원은 “경영진은 우리에게 나흘 동안 하루 12시간씩 작업한 후, 고작 이틀간 쉬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들은 우리를 궁지로 내몰고 있다. 우리는 언제 전화 연락이 올지 몰라 24시간 대기 상태다. 만약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위험한 사고가 잇따를 것이다.” 직원들 사이에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피터가 귀띔해준다. 키트웨에 있는 코퍼벨트대학의 경제학 교수인 제임스 렁구는 자문한다. “최근 수년간 원자재 가격의 인상 혜택을 누가 누렸을까? 광산업체와 주주들이다. 이제 가격이 추락하면 누가 해를 입을까? 광부들과 그 가족, 그리고 환경이다. 우리는 곧 사회적 재난을 겪게 될 것이다.”

1t의 구리를 생산하려면 100t의 구리 광석이 필요하다. 2006년 11월 6일, 남쪽에 있는 잠베지강으로 유입되는 카푸에 강가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강물이 청록색을 띠었다. 베단타가 실수로 독성 폐기물을 강에 방류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틀 동안 강물을 직접 식수로 사용하는 10만여 명을 포함한 칭골라 지역 200만 주민들의 식수가 끊겼다. 일부는 카부에강에서 잡은 물고기를 먹고 병원을 찾았다.

분석 결과 물 1ℓ에 망간 38.5mg, 구리 10mg, 코발트 1mg이 나왔다. 이 수치는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농도의 임계치보다 무려 1.7배, 10배, 10.7배가 높은 것이었다. PH농도는 1.5로, 카프에강은 산성 강이 됐다.(2)
베단타의 한 직원은 회사의 책임을 시인하자 바로 해고됐다. 이 다국적기업은 만약 사건 내막을 폭로하면 더는 광고를 주지 않겠다며 국영 일간지 <잠비아 타임스>를 협박했다. 하지만 신문 편집국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스캔들이 터졌다. 잠비아 환경협의회의 결정에 따라 베단타는 일시적으로 칭골라에서 광업을 중단했다. 회사는 200만 유로의 손실을 봤다고 격분했다.

환경오염으로 얼룩진 삶터

그리고 회사는 재가동됐다. 구리 가격이 다시 치솟고 있다. 오염도 가중되고 있다. 방문이 금지돼 있는 거대한 베단타 광산을 장마철에 찾아갔을 때, 그 을씨년스러운 광경이 펼쳐졌다. 3km에 이르는 광산, 강한 산성 냄새를 풍기는 구리 섞인 물이 제방을 넘쳐흘러 작은 개울을 따라 카푸에강으로 유입되고 있었다.
“그렇다. 우리가 강을 오염시키고 있다. 하지만 모든 광산이 오염을 시킨다.” ‘콘콜라 구리 광산’의 ‘기업복지 책임’ 프로그램 담당자인 상파 치타는 화를 버럭 내며 내뱉는다. “공기업이던 옛 ZCCM 시절에는 이보다 더했다.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도 지긋지긋하다. 하지만 오염시키지 않고 광산을 운영할 수는 없다.”

회사 사무실은 비었고 컴퓨터도 없다. 베단타는 잠비아에 뿌리를 내린 자회사를 둔 유일한 광산업체다. 베단타는 ‘지역 공동체’를 위해 말라리아 퇴치운동, 에이즈 예방운동, 고아원 자금 지원, 대학 장학금 기부, 우물 파주기 등을 후원하는 회사로 알려져 있다. 머뭇거리던 치타는 회사의 복지예산이 “1200만∼1300만 달러”라고 추정한다.치타는 회사가 창출한 이득이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모른다고 말한다. 그는 회사의 긴축재정 탓에 자신의 사무실에서 필요한 최소의 예산만 관리하고 있다. “공기업이던 옛 ZCCM은 분명 지나치게 사회적인 정책을 폈다. 반면에 우린 결과를 중요시한다. 돈을 벌겠다는 것이 뭐가 잘못됐나. 사람들이 투자를 할 때는, 그리고 광산에서 투자를 많이 유치했을 때는, 다 이윤을 창출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주의자가 될 필요가 있다.” 그는 항변한다. 2004년 ‘콘콜라 구리광산’ 지분의 51%를 매입하고 3개월이 지나자, 베단타 회사의 자산 가치는 그때 이미 1950만 유로가 상승했다.

<구리 광산 민영화의 혼란 상황에 대한 보고서>(3)의 저자인 제임스 렁구 교수는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 같은 국제 금융기구들이 민영화를 조율하고, 프레더릭 칠루바 대통령(4)이 이끄는 정부가 이를 실행했다고 지적했다. “공기업이던 옛 ZCCM의 민영화는 의회의 토론도 거치지 않은 채 불투명하게 진행됐다. 불공정한 민영화 계약을 통해 우리 중 이득을 본 사람은 거의 전무하다. 민영화가 구리벨트 지역 주민들에게나, 혹은 이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환경에 도움이 된 적이 전혀 없다.”
당시 민영화를 총괄했던 에디스 나워크비 전 잠비아 재무장관도 렁구 교수의 이런 지적을 뒷받침해줬다. 그는 국제 금융기구들의 이상한 행동을 상세히 증언했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은 우리에게 결코 구리 가격은 상승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 기관들의 모든 보고서는 향후 20년간 구리산업에서 이 나라가 아무런 소득도 내지 못할 거란 전망을 내놨다. 이와 반대로, 만약 구리산업을 민영화하면, 우리 빚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이것은 마치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흔들어대는 약처럼 우리한테는 멋진 당근이었다. 우리는 이 제안을 따르는 수밖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5)

장밋빛 민영화 논리의 허구성

최근 수년간 국제 언론들은 구리벨트 지역에 뿌리내린 중국 회사의 사회적 무책임을 집중 지적해왔다. 중국이 잠비아 다르에스살람 항구에서 탄자니아를 잇는 탄자니아∼잠비아 철도(탄잠철도)를 건설한 지 40년이 훌쩍 지나 잠비아에 보란 듯이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예전의 제3세계주의(6)를 지지하던 이념적인 신조는 버리고 실용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후 중국은 아프리카 사하라 인근 무역에서 중요한 파트너가 됐다. 하지만 윈윈 정책을 통해 중국이 조성한 현지 호감도는 중국계 회사인 ‘아프리카 NFC’가 참비시에 세운 하청업체 브르짐(Brrgim)의 다이너마이트 공장에서 2005년 4월 폭발사고가 일어나면서 비호감으로 바뀌었다. 52명이 사망한 이 사건 때문에 강한 반중 감정이 일었다. 그래서 2007년 2월, 잠비아를 공식 방문했던 중국 후진타오 주석은 북부 광산지대 방문 계획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 기업에 고용된 잠비아인들은 노조 설립 권한이 없는데다 캐나다, 스위스 혹은 남아프리카 등 여타 국가의 다국적기업들에 비해 열악한 급여 조건과 근무 환경에 처해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가톨릭 구호단체의 잠비아 지부장인 삼 무라푸라푸는 “구리 광산을 민영화한 것은 중국 기업이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구리 광산이 민영화된 이후, 세계 각지의 다국적기업들이 돈벌이를 위해 몰려들었다. 남아프리카의 시민단체인 ‘벤치마크 재단’은 “일부 외국 광산회사들이 자국에서 하는 것과 비교해, 이곳에서는 보건 및 안전 그리고 환경 존중 수칙을 제대로 적용치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7)

2008년 1월, 광산 오염이 칭골라에서 40여km 떨어진 무풀리라 지역의 지하수층을 더럽혔다. 산성 폐기물 방출 사건이 또다시 터진 것이다. 스위스의 글렌코르(Glencore)와 캐나다의 퍼스트 퀀텀(First Quantum) 합작회사인 모파니 구리회사(MCM) 인접 지역의 8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설사와 복통 그리고 구토를 호소했다. 이 합작회사는 설립 당시, ‘유럽투자은행’으로부터 금융지원까지 받았다. 이처럼 반복되는 사건들이 이 지역의 환경을 재앙으로 몰고 가고 있다고 젊은 여성 경제학자 나치라라 느콤보와 법률가 브렌다 모피아는 지적한다. “공적인 채무와 달리, 환경 문제는 잠비아 국민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게다가 환경 문제가 잠비아가 민영화 과정에서 국제 금융기구들한테 변제해야 할 채무로 떠안은 54억 유로보다 더 중요하다.”(8)

무풀리라 광산 도시의 인근 지역을 방문해보면, 이 생태환경적인 문제의 의미를 좀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특히 3만 명이 거주하는 칸코요가 그렇다. 이 마을은 한때 녹황색의 비옥한 대지를 자랑했지만, 이제는 아보카도 나무와 선인장, 두 식물만이 자란다. 뚜껑이 열린 하수구, 산성비로 지붕이 녹슨 허름한 집들, 방치된 보건소들, 창문이 깨진 식료품 가게들…. 이곳에 위치한 공기업이던 옛 ZCCM 건물과 복지시설들의 잔해들은 주민들이 그 상태를 그럭저럭 관리하고 있다.
인근 칸코요도 빠르게 오염되고 있다. 스위스와 캐나다의 합작 구리광산회사인 모파니의 용광로가 연기를 뿜어낸다. 어떤 날은 인근 마을이 숨쉬기 어려운 스모그에 잠겼다. 이곳에서는 추상적인 수치가 현실이 된다. 매년 공기 중에 방출되는 아황산가스가 거의 70만t에 달한다. 콜레라가 정기적으로 발생했다. 그리고 불안이 불완전 고용의 속도만큼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모파니의 무장 경비원들이 광석 더미 위에 플라스틱 의자를 놓고 앉아서 행여 불법적으로 일하는 광부들이 침입해 폐기물을 뒤질까봐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주민을 들러리 삼는 외국 기업들

오염된 공기가 무겁게 감도는 옛 병원 자리에다 사무실을 개설한 야당 ‘애국전선’ 소속의 무풀리라 지역의 존경받는 국회의원 퍼시 챈다가 우리에게 속내를 내비친다. “나는 외국 기업에 반대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기업들이 쓰는 방식, 특히 구리벨트 지역에서의 방식이 못마땅하다. 그들은 우리 말을 경청하지 않는다. 당신이 내 집에 왔다고 생각해봐라. 내가 요리하면, 분명 당신은 설거지를 하겠다며 나설 것이다. 그런데 지금 봐라. 당신이 내 집에 와서 식탁에 앉은 채, 손끝 하나 까닥하지 않고 다음 요리를 기다리고 있는 식이다.” 광부 출신인 챈다는 ‘좋은 시절’을 경험했다. 그때는 국가가 동이 터서 해가 질 때까지, 태어나서 사망할 때까지, 광부와 그 가족들을 돌봤다. 광산 인근 지역 관리, 교육, 의료, 야간학습, 축구 및 크리켓 클럽, 수영 등 모든 것을 ZCCM이 관리했다. 하물며 국가가 집 안의 수명이 다된 전구까지 관리해 준다며 비웃을 정도였다.

ZCCM의 채무를 줄일 것인지 아니면 하루에 55만 유로의 손실을 볼 것인지, 망치와 모루 사이에 낀 잠비아가 국제 금융기구들의 충고를 수락했을 당시, 챈다는 광부였다. t당 구리값은 대략 2500달러였다. 광부노조 노동운동가였던 챈다는 민영화 때문에 단행된 인원 감축을 경험한 뒤, 2006년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토로했다. “민영화 당시의 합의 사항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후 얻은 소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행정자문위원들이 이곳에 왔을 때, 한 번도 그들을 만나본 적이 없다. 마치 어둠 속에서 내가 외치고 있는 것 같다.”
챈다는 구리 가격이 폭등할 때, 광부들의 월급 인상 협상을 시도했다. “광산회사들은 우리에게 가격 상승 전의 값으로 구리를 팔아서, 구리값 상승 혜택을 볼 수 없었다고 했다. 이제 가격이 하락하니 이들은 해고를 단행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한데 이들은 구리를 아직도 9월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다. 최고 가격으로! 적들이 있는 적지 한복판에서 산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언젠가는 우리에게 저지른 짓을 이들이 후회하는 날이 올 것이다.”

남부 아프리카 잠비아 중부 도시 루안샤에 해고 태풍이 몰아쳤다. 네덜란드에 적을 둔 이스라엘-스위스 합작회사 루안샤 구리 광산(LCM)이 최근에 정규 직원 1300명을 해고한 것이다. 이 회사의 데릭 웹스톡 회장은 “구리 가격이 다시 상승해야 작업을 재가동하겠다”고 했다. 광산 마을에 우울한 기운이 깔렸다. 광산에 해고 노동자들의 접근을 막으려 경찰 60명이 경비를 서고 있다. 회사는 이미 작업대와 파이프들을 토막내어 광산 화물 트럭을 이용해 남아프리카로 빼돌렸을 것이다.

  중국인들이 광산을 인수할 거라고 수군댄다. 슈퍼마켓에서 고객들이 지폐를 세면서 “초라한 크리스마스를 걱정하며” 한숨짓는다. 급작스런 광산 폐쇄로 인해 심각한 상태에 빠진, 네 명의 자녀를 둔 지역 광산노조 지부장 보니파스 카브웨는 말한다. “지난해 10월 광부들이 마을에 있는 은행에 대출받으러 갔을 때, 은행은 그들에게 담보가 충분치 않다고 답변했다. 은행은 이미 광산이 폐쇄될 것이라는 것을 정부보다 먼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요컨대 정부는 그 사실을 가장 마지막에 안 것이다!”

여태까지는 LCM과 주민 사이의 관계가 좋았다. 다른 광산 지역과는 달랐다. 루안샤로 가는 길은 잘 관리됐다. 2008년에 루안샤는 ZCCM 시대부터 해오던 청정도시 선발대회에서 구리벨트 지역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로 선정됐다. LCM이 최근 6개월간 낸 지방세가 지자체 조세 수입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12억 크와차(16만8천 유로)를 상회했다. 루안샤의 도시계획 담당자인 무타케라 케욘데는 “위기임에도 최근에 이들이 우리에게 다시 한번 자금이 충분해 광산을 폐쇄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은 것”을 회상하며 “이 폐쇄로 광부들만 타격을 입은 것이 아니라, 가구당 8명씩이나 되는 가족이 있기 때문에 도시 전체가 타격을 입었다”고 했다. 국영 언론이 루안샤에  파견한 기자들을 비롯해 구리벨트의 많은 주민들이 의심하는 것처럼 케욘데도, 구리값 추락으로 기업들이 잠비아 정부를 협박할 새로운 구실을 찾지 않았을까라고 묻는다.
 때늦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2008년 봄 정부는 결국 채굴 계약을 개정하기로 했다. 기업 소득세를 25%에서 30%로 높였다.(9) 보잘것없던 0.6%의 수익세도 3%로 늘렸다.

다국적 광산업체만 배불려

잠비아 재무부가 여태까지 챙긴 액수가 형편없다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세계은행이 가장 먼저 이 조처를 지지했다. 구리 광산 개발이 잠비아에 가져다준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반면에, 광산을 개발한 다국적기업에는 넉넉한 배당금을 안겼다. 실제 ‘세금 먹는 하마’ 다국적 광산업체들은 모리셔스 같은 해외에 있는 자회사들에다 자신들의 세금 감면 이익을 지킬 수 있도록 설계한 정교한 장치를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2006년 잠비아는 23억 유로 정도의 구리를 수출하고도 1억3천만 유로의 소득을 올리는 데 그쳤다.

2008년, 구리 개발은 광산업체들에 23억4천만 유로 이상을 챙기게 해줬을 것이다. 반면 잠비아 재무부가 챙겨야 할 몫은 3억2500만 유로인데, 최종 수령액은 2억 유로에 불과했다. 잠비아가 남부 아프리카에서 여전히 세금 부담이 가장 낮은 나라들에 속하는데도, 최대 광산회사들은 지속적으로 세금 부담을 문제 삼았고, 심지어 세액 차이에 대해 그들 본국에 있는 상사(商社) 법원에 소송을 걸겠다고 협박했다. 구리 가격 하락을 배경으로 해고 위협을 하기 이전에, 잠비아 정부를 압박할 새로운 구실을 찾는 셈이다. 이들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듯 보인다.
2008년 10월 말, 전임자(10)가 사망한 이후에 당선된 루피아 반다 대통령은 전임자와 같은 추세로 투자를 지속했다. 그는 자신의 정부는 광산회사들과 함께 조세법 완화를 논의했다고 발표했다. “우리는 황금 알을 낳는 닭을 죽여서는 안 된다. 만약 우리가 수천 개의 일자리를 잃게 된다면, 세금으로 몇백만 달러 더 챙기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11)

카브웨 광산은 아연과 납의 매장량이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았다. 그러나 이 광산들은 1세기에 걸쳐, 영국과 미국이 운영하는 남아프리카 최대 광산회사의 채굴로 인해, 1990년대 중반 매장량이 고갈돼 결국 폐쇄된 채 방치됐다. 그 이후로 세계은행이 자금을 지원해 ‘청소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미국의 ‘블랙스미스 연구소’를(12) 따르자면, 30만 주민이 거주하는 이 도시는 세계에서 가장 오염된 10대 기업도시 가운데 하나가 됐다. 아이들의 혈중 납 함유량이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정한 수치보다 5~10배 더 많다.
쓰레기 구덩이에는 인근 광산마을에 찾아온 불법 광부들이 매몰 위험을 무릅쓰고 삽으로 망간, 구리 혹은 코발트 파편들을 긁어모아 자루에다 100kg씩 담아 중개상인에게 팔아넘기고 있다. 이들의 아버지도 광산 직원이었다. 위험한 직업이었다. 2007년에는 세 명의 젊은이가 매몰돼 숨졌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한 다른 해결책이 있을까?

도시 주변 반경 20km 이내의 흙과 물 속에는 우려할 만한 수준의 납과 금속이 함유돼 있어 농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광산 수익에 매달렸던 잠비아는 농업을 방치했고, 이제 국민의 35%가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식구가 여섯인 한 가구가 생활하는 데 120만 크와차(168유로)는 있어야 한다. 옛 식민지 농장에서는 3대가 한 지붕 아래서 거주했다. ZCCM의 전직 광부 카붐바는 말한다.
“삶이 고단하다. 하지만 도시보다 이곳이 낫다. 내 생각엔 이 나라의 미래는 농업이다. 그러려면 정부가 경제 다변화를 결정해야 한다. 꼭 그래야 한다. 언젠가 구리가 동나면 환경오염만 남게 될 것이다.”
2008∼2009년 겨울에 5천여 명의 잠비아 광부들이 해고됐다.

장크리스토프 세르방(Jean-Christophe Servant)

번역/조은섭 chosub@ilemonde.com, 파리 7대학 불문학박사로 알리랑스 프랑세즈에서 강의중. 주요 역서로 <착각>(2004) 등이 있다.


 

<각주>
(1) 가명.
(2) PH로 용액의 산성도와 염기성을 측정한다. PH값이 7 미만이면 산성이다.
(3) Alastair Fraser & John Lungu <For Whom the Windfalls? Winners and Losers in the Privatisation of Zambia‘s Copper Mines>, 2007년 1월, www.minewatchzambia.com.
(4) 공금 50만 달러 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잠비아의 두 번째 대통령 칠루바(재임 1991∼2001)에 대한 재판이 2009년에 재개될 전망이다.
(5) <Underming Developpement? Copper Mining in Zambia>, 2007년 10월, www.sciaf.org.uk 참고.
(6) 1960년대 말, 케네스 카운다 대통령은 남부 로데시 지역의 백인 권력에 저항하는, 중국과 소련의 자금 지원을 받는 민족주의 게릴라를 지지하면서도 서방국가들과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7) <Zambia’s new Mining Companies neglecting social responsabilities>, 2008년 9월 22일, www.bench-marks.org.za.
(8) <Ecological Debt owed to african countries, a case of the Zambian mineral extraction industry>, 2008년 9월, 이 연구는 곧 www.afrodad.org에 소개될 예정이다.
(9) 라프 퀴스터, ‘광산 계약을 재검토하는 아프리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8년 7월.
(10) 2006년 재당선된 레비 무아나와사 대통령은 2008년 8월 19일 파리의 한 병원에서 숨졌다. 구리벨트 지역에서 특히 유명했던 야당 후보 미카엘 사타는 2008년 10월에 치른 대통령 선거에서 또다시 낙선했다. 2006년에 비해 중국 기업들에 대한 비난 수위를 많이 낮춘 그는 2011년에도 네 번째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11) ‘Zambia may cuting mining Taxes, Pr?sident says’, <로이터>, 2009년 1월 16일.
(12) www.blacksmithinstitut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