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평창올림픽, 박근혜 대통령의 분산개최 결단이 해법
위기의 평창올림픽, 박근혜대통령의 분산 개최 결단이 필요할때
고광헌 | 한림대 교수, 전 한겨레신문 대표이사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왜 ‘어젠더 2020’(1)을 내놨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는 아예 대놓고 차별과 불평등의 극점을 향해 달리고 있다. 성장은 지지부진이고 복지는 뒤로 가고 있다. 차별과 배제의 양극화 현실은 도처에 화약고를 만들고 있으나 변화는 더디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인간의 사유와 행동을 지배해온 시스템으로서 자본주의가 자기혁신에 실패한데 따른 대가이다. 올림픽 경기에도 진작부터 같은 원리가 지배해 왔으며, 흥행 차원에서도 레드 오션이 된 지 한참이 지났다. 마침내 초대형 국제 메가스포츠 이벤트를 치를 수 있는 부자 나라들도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2022년 겨울올림픽 유치에 나섰다가 철회한 노르웨이와 독일 스웨덴 등의 사례는 매우 상징적이다.(2) 제레미 리프킨은 이처럼 쇠락해가고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공백을 상호의존을 중시하는 ‘협력적 공유사회(Collaborative Commons)’(3)가 대신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비전은 올림픽 운동의 미래에서도 상상과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지난해 12월 제127차 모나코 총회에서 ‘어젠더 2020’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배경에는 자본주의와 국제정치에 대한 위기의식에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IOC는 기존의 ‘1국가 1도시’ 중심에 대규모 스펙타클을 가미한 올림픽운동이 당대의 현실에 맞지 않다고 본 것 같다. ‘어젠더 2020’ 40개 항 가운데 맨 앞에 1국가 1도시 개최원칙 포기를 담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또 IOC가 국가 간 도시, 또는 국가 내 복수도시가 분산개최를 할 수 있도록 빗장을 푼 것은 올림픽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합리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올림픽운동 패러다임의 큰 변화를 예고하는 첫출발이다. 지금까지는 ‘선택과 집중’의 수직적 성격이었다면, 앞으로는 ‘확산과 참여’의 수평적 형식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 확산과 참여는 공감과 협력에서 시작해 ‘평화와 화합’이라는 올림픽 이상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제레미 리프킨의 비전과도 공유되는 가치이다.
올림픽 분산개최는 많은 변화를 몰고 올 수밖에 없다. 우선 많은 나라들에서 ‘1국가 다도시’ 개최를 선호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기획단계에서부터 도시별 맞춤형 분산개최를 할 수 있다. 지금까지와 달리 경기장이 도시별로 분산됨에 따라 사후 활용과 관리 등의 부담으로부터 벗어 날 수 있다. 1국가 1도시 올림픽의 단점을 일거에 해소시킨 발상이다. 투자 역시 최적화가 가능해 위험을 회피할 수 있다. 분산개최의 장점은 사실상 지역별로 국가 간 분산개최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가령, 동남아시아의 경우 인도네시아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와 협력해 올림픽을 유치한 뒤 자카르타 등 자국 도시와 쿠알라룸프르, 싱가포르에서 분산개최를 할 수 있다.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의 도시들이 겨울철올림픽을 함께 치를 수 있다. 이상적으로는 심지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남한과 북한, 중국과 대만, 이란과 이라크,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올림픽 호스트가 될 수도 있다. 이러다보니 벌써부터 사우디 아라비아 같은 곳에서는 시대착오적인 분산개최(4) 요구마저 나온다.
이처럼 도시별 분산개최는 올림픽경기를 좀 더 창의적이고 개성적인 축제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여러 도시에 괜찮은 스포츠 시설과 호텔 등이 많은 국가들은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올림픽을 열 수 있다. 이들 나라는 자국 내 도시들이 이미 수많은 경기장과 체육관을 갖고 있다. 이 경기장들을 활용하면 수천억, 수조 원대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이미 30여 년 전 LA올림픽 때 기존의 대학 경기장과 공공체육시설을 활용해 비용을 크게 줄여 흑자올림픽을 한 바 있다. 올림픽을 유치한 개발도상 국가들은 분산개최를 통해 지역의 균형 발전을 꾀할 수도 있다.
한국과 일본의 시간차 분산개최 가능
한일 간 분산개최는 지난해 12월의 모나코 IOC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돼 두 나라에 통보됐다. 내외신에 따르면, IOC는 한일 간의 분산개최 논의 시한을 3월 말로 정했다. 일본정부와 국가올림픽위원회는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한국은 대통령까지 나서 대못(5)을 박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평창 단독개최를 못 박은 것은, 분산개최와 관련해 시민사회와 관련 학계 등 다양한 층위의 대화와 토론, 교섭과 연대의 움직임에 ‘일단정지’를 선언한 격이다.
지난해 12월 발표한 <jtbc>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국민의 57.8%가 평창 겨울철올림픽의 분산개최에 찬성하고 있다. 여론이 이처럼 뜨거운데도 정부는 귀 기울일 생각이 없다. 정부의 태도는 전혀 이성적이지 않다. 일본과의 갈등국면에서 치솟는 국민의 반일감정은 통치자가 유리하게 이용하고 싶은 호재일지 모른다. 그러나 국제관계에서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더욱이 평창과 도쿄 올림픽까지는 꽤 많은 시간인 4년, 6년씩 남아 있다. 이런 때일수록 한일 분산개최 같은 스포츠 이벤트를 통해 두 나라 국민들의 날 선 감정을 누그러뜨려 화해의 시대를 여는 게 정치지도자들의 일이지 않은가.
IOC의 한일 분산개최 권고안은 평창이 봅슬레이 같은 썰매종목을 일본 나가노에 양보하는 대신 2020년 도쿄여름철올림픽 경기 가운데 한두 종목을 평창에서 개최하는 스몰딜 형식이다. 평창은 썰매 종목들을 양보하는 대신 우리선수들이 메달을 딸 가능성이 높고 흥행도 성공할 수 있는 핸드볼이나 배드민턴, 레슬링 중에서 한두 종목을 유치하면 된다. 평창에 기존의 실내체육관(증개축 포함)이 있다면 하나 정도 더 지으면 된다. 체육관은 썰매장과 달리 사후활용이 가능한 다목적 시설로 지을 수 있어 걱정을 덜어도 된다. 현재 10% 남짓 진척을 보이고 있는 평창 썰매장 공사 중단으로 남는 재정을 이용하면 사후 관리가 걱정 없는 실내체육관을 건립할 수 있을 것이다. 한일 간 분산개최가 성사되면 평창은 겨울올림픽과 여름올림픽을 치른 유일한 도시가 된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수백억 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국내 분산개최
국내 분산개최의 강점은 최소 수백억 원대의 비용 절감에 있다. 국민적 여론과 달리 강원도와 평창으로서는 분산개최를 심정적으로 받아드리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한때 강원도의회가 ‘대회반납’이라는 강수를 둘 정도로 현실적으로는 어려움과 논란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평창과 강원도의 양보를 전제로 예상되는 국내 분산개최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평창에 짓고 있는 개폐회식장(공사비 859억 원)과 슬라이딩 센터(공사비 1228억 원) 외에 나머지 경기장을 서울 등 기존시설을 활용하는 안이 있다. 스키 활강경기 역시 IOC나 국제스키연맹(FIS) 등과 협의해 용평의 기존시설을 보완(투런 방식)하거나 아니면 무주스키장을 사용하면 된다. 아이스하키와 빙상 등은 태릉 등의 시설을 이용할 있다. 만약 대타협이 이뤄지면 가리왕산의 알파인 스키장(1095억 원)을 비롯해 강릉 아이스하키장(1079억 원), 강릉 쇼트트랙경기장(1311억 원), 강릉 빙상경기장(1361억 원) 등의 건축 중단에 따라, 매몰비용을 감안하더라도 4천억 원 가량을 절감할 수 있다. 경기장 신축 중단으로 시공사가 입게 될 피해는 보상이 따라야 한다. 국가나 강원도가 발주하는 국책, 지방 사업에 이들 시공업체를 먼저 참여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다.
솔직히 국내 분산개최는 아예 사후 관리대책을 세우기도 민망한 평창과 강릉시에 두고두고 쌓이는 짐을 덜어줄 것이다. 평창 단독개최를 고수한다면 올림픽 폐막이후 매 년 1백억 원대의 관리비용이 투입돼야 한다. 단임 대통령은 떠나면 되지만, 고향을 떠날 수 없는 시민들은 복지혜택의 축소나 세금부담의 증가 같은 어려움을 피할 수 없다. 분산개최는 평창과 강원도민들에게 위험은 피하면서 실익과 명예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무엇보다 분산개최에 적극적인 IOC의 권고를 이제라도 받아 드려야 한다. 저들이야 말로 올림픽의 재앙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눈의 도시로 천혜의 환경을 타고난 일본 나가노가 98년 겨울올림픽 뒤 그 후유증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서 반면교사를 삼아야 한다.(6) 물론 소치는 더 큰 재앙(7)을 잉태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난달 강릉 라카이 샌드파인리조트에서 열린 제4차 프로젝트 리뷰 본회의에서 I0C가 파견한 구닐라 린드버그 평창올림픽조정위원장은 조직위 관계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분산개최는 비용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썰매 종목을 치르는 슬라이딩 센터는 유지비용도 많이 든다.” 주객전도, 마치 IOC와 평창올림픽조직위가 서로 입장과 역할을 바꾼 것 같다.
역시 IOC 위원이자 국제아이스하키연맹 르네파셀 회장은 한 술 더 뜨고 나왔다. 그는 모나코 총회 당시 “4만석 규모의 개·폐회식장은 너무 크다”며 “3만석 가량으로 줄여도 된다”고 권고했다. 그는 또 “1만석인 아이스하키 경기장의 규모도 너무 크다”며 “줄여도 된다”고 말했다.(8) 한 푼이라도 혈세를 아껴야 할 조직위는 계획대로 투자하겠다고 하고 IOC는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고 권고하고 있다. 평창조직위는 이런 불일치에 대해 IOC가 파견한 엔지니어와 협의하고 그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 왜 IOC는 이런 발언을 하고 평창은 IOC의 적극적인 구애에도 불구하고 원안고수만을 외치고 있는가? 혹시 감시의 무풍지대에서 이참에 배를 채우려는 토건족들의 장난에 놀아난 것은 아닌지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비용절감 차원을 뛰어넘는 남북 분산개최의 시너지
남북 분산개최는 단박에 평창과 강원도와 대한민국을 세계적 뉴스의 중심에 갖다 놓을 폭발적 이벤트다. ‘통일대박’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시대를 몰고 올 수도 있다. 결코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유무형의 부가가치가 일어나는 민족사적 사업으로, 올림픽 이상이 분단조국의 화해와 평화를 통해 제 모습을 드러낸다. 무엇보다 7천만 동포들을 꿈꾸게 할 것이다. 북한은 지난 2013년에 원산시 인근에 국제규모의 스키대회를 치를 수 있는 마식령 스키장을 준공했다. 이 스키장은 약 1천만평 크기에 총 길이 49.6㎞의 10개 슬로프와 야외스케이트장 등을 갖추고 있다. 120여개의 방이 있는 8층짜리 호텔이 있으며, 별관에는 부엌이 딸린 150여개의 방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9) 이 스키장은 가장 높은 표고지점이 1,360m이다. 용평 스키장은 물론 무주 스키장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이다.
남북이 합의만 한다면 가리왕산 스키장을 완공한 뒤 2016년과 2017년에 각각 열기로 한 남녀 활강 이벤트 경기를 이미 사용 중인 마식령 스키장에서 치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벌채가 끝난 가리왕산의 경우 슬로프 건설을 위한 2차 공사를 중단할 수 있게 돼 시간은 걸리지만 생태복원의 결정적 걸림돌이 사라진다. 평창조직위는 올림픽 이벤트 경기를 열기 위해선 5년 전까지 FIS의 계획에 잡혀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분산개최의 의미를 살려 IOC와 협의하고 평창이 양보하면 해결할 수 있다. 마식령 스키장은 평창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1백km 안팎의 가까운 곳에 있다. 북한전문가들에 따르면, 금강산 관광개발로 속초에서부터 도로가 뚫려 있는데다, 원산까지의 도로 역시 잘 정비돼 있다. 남북을 오가는 출입 관련 업무는 금강산 관광을 위해 이미 마련돼 있는 출입사무소를 활용하면 된다. 또 외국의 선수단과 관광객 들을 위해서는 마식령 스키장과 지척인 원산 갈마비행장을 활용할 수 있으며, 비용이 많이 들어갈 수 있지만 철길과 동해북부선도 활용할 수 있다.(10) 경기 중계에 따른 기술적 문제와 선수 등 올림픽 패밀리, 관광객들을 위한 숙소문제는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무엇보다 북한의 태도가 시종 호의적이다. 북한은 세 번의 IOC총회에서 모두 평창을 지지했다. 북한에서 처음으로 평창올림픽 분산개최를 언급한 사람은 장웅 IOC위원이다. 그는 2011년 7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도쿄총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기자들이 “남북 공동개최”에 대해 묻자 “좋은 일” “그렇게 되길 원한다”고 말했다. 이후 마식령 스키장을 개발 중이던 2013년 9월 북한의 당시 체육성 원길우 부상이 “평창동계올림픽에 마식령스키장을 제공할 수 있다”고 제안한 바 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해 12월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같은 민족끼리 공동주최하면 비용도 덜 들게 되고 민족의 화해와 공동번영, 지역의 평화에도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며 “설비가 세계적인 수준인 마식령스키장을 이용하면 어떤가”(11)라고 제안했다.
반면 남한에서는 강원 중심의 일부 시민환경 단체(12)와 언론(13)이 목소리를 내왔다. 평창조직위나 정부 차원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가 지난해 말 이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류길재 통일부장관은 지난달 8일 국회외통위에서 심재권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남북 분산개최와 관련한 질문에 “남북 간에는 앞으로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모든 것들이 열려 있지 않을까”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곧바로 거둬들였다. 또 최문순 강원지사 역시 같은 달 4일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원한다면 스노보드 프리스타일 등에 대해 IOC와 협의해 분산개최를 추진할 수 있다”(14)고 말해 논의에 불을 붙였다.
무엇보다 남북 분산개최는 ‘대결과 불화’가 상존하는 한반도에서 ‘화해와 평화’라는 올림픽 이상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갖고 있다. 남과 북에 거짓과 기만이 사라진 통일대박이 시작되고, 분산개최를 계기로 끊어진 남북교류와 각종 현안을 해결하는 단추를 끼울 수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은 분산개최를 계기로 자신의 공약이기도 한 DMZ평화공원 조성사업 등을 북한과 협의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 협의를 거치면 북한의 마식령 스키장-금강산-DMZ평화공원을 묶는 ‘동해안평화관광벨트’를 조성할 수도 있다. 이밖에도 한반도발 동북아 긴장완화라는 새로운 국제질서를 미·중·러·일 등 주변국들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공은 박근혜 정부에게 있다. 북한이 요구하는 5·24조치 해제나 풍선띄우기 중단 카드를 써야 될 때다.
평창과 서울 그리고 마식령을 꿈꾸자
근대올림픽 118년의 역사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와 만난 최근 30여 년 간의 올림픽은 활짝 핀 꽃과 같았다. 그 자양분은 돈과 기술과 욕망을 상품화한 시장이었다. 이제 그 시장은 한산해져가고 꽃의 운명은 시드는 것이다. 뮌헨과 오슬로 릴레함메르의 올림픽 유치권 반납은 혁신하지 않으면 올림픽이라는 꽃도 시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신호로 읽힌다. 사실 납세자에게 올림픽은 진작부터 황금알을 낳기는커녕, 비용은 많이 들지만 실속은 없는 ‘흰 꼬끼리’에 불과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에게 평창올림픽은 위기이자 기회이다. 가장 좋기로는 국내 분산개최에다 스키 활강종목을 마식령 스키장에서 치를 수 있도록 북한에 양보하는 것이다. 이 경우 평창과 서울 원산을 잇는 ‘남북 삼각올림픽’으로 성격이 바뀐다. 남북은 화해와 평화의 물꼬를 트고 평창과 강원도는 실질적으로 비용을 줄이며, 모처럼 국민통합도 바라 볼 수 있다. 때마침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올 신년사에서 원산 중심의 관광개발을 강조한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신년사에서 남북문제에 대해 많은 언급을 했다. 마치 평창올림픽의 북한 분산개최를 염두에 둔 듯한 것처럼 보인다. 분산개최에 관한 한, 사실상 전권을 갖고 있다시피한 박근혜 정부의 전향적 결단을 바란다.
더욱이 경기장 신설공사 진척이 평균 10%도 안 되는 실정이다. 국민 10명 가운데 6명은 분산개최를 지지하고 있다. 청와대를 비롯한 정치권과 평창조직위 등은 제대로 된 콘트롤 타워마저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되겠지?’하는 식이다. 이런 때일수록 상식과 합리적인 길을 찾기 위한 강력한 조정자가 필요하지만 그 일을 할 수 있는 스포츠리더십은 찾아 볼 수 없다. 이건희 IOC 위원은 장기와병 상태이고, 문대성 위원은 도덕적으로 파탄상태여서 아예 말발이 서지 않고 있다. 조양호 평창조직위원장은 ‘땅콩회항’ 사건으로 회사와 본인 모두 치명상을 입은 상태이다. 한국올림픽위원회(KOC) 또한 존재감을 찾아 볼 수 없다. 이런 상황이니 모처럼 이성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IOC의 목소리마저 듣지 못한 채 길을 잃어버렸다. 국회와 정치권의 잘못은 또 얼마나 큰가.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은 눈치만 보고 있다. 선거에서 지지를 받지 못할 까봐 수천억 원의 비용절감과 남북화해의 결정적 디딤돌이 될 수 있는 분산개최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국회 안에 평창올림픽지원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있으나 제 몫을 못하고 있다. 노동당과 녹색당 등 소수정당이 목소리를 내는 정도이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 대통령에 대한 국정지지도가 20%대로 떨어졌다.(15) 여론분석 전문가들은 20%대로 떨어진 뒤부터는 반등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박 대통령에게는 반전카드가 있다. 남북관계 개선과 남북 분산개최 카드이다. 박 대통령이 남북문제에 진정성 있게 접근하기만 하면 국민적 지지도 올라 국정수행의 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연대운동이 분산개최의 열쇠
강원도와 평창군민들에게는 품위를 지키면서 실익도 챙길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광범위한 시민참여형 연대운동에 의한 여론 조성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웹과 모바일을 이용한 운동으로 참여를 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카톡과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SNS 플렛폼을 이용해 분산개최의 정당성과 대규모 재정절감 등에 대해 공유해야 한다. 온라인 캠페인에 이어 날씨가 따뜻해지는 봄부터는 지역별로 분산개최를 촉구하는 옥외활동도와 가능하리라 본다.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문화체육부 국회의원 강원지사 평창조직위원회 등을 대상으로 전화걸기와 이메일과 댓글달기 운동을 할 수 있다. 국제 연대활동도 필요하다. 각국의 스포츠 비정부기구들과 연대해 최근 분산개최 쪽으로 기운 정부와 평창조직위, IOC가 방침을 바꾸도록 압력을 넣어야 한다.
분산개최 촉구운동과 별도로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에 다양한 생각을 가진 전문가들의 수혈이 필요하다. 공무원 중심의 조직은 일은 잘 할지 모르지만 관료적 속성 때문에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공백을 채워야 한다. 2012년의 런던올림픽에 대한 호평은 환경전문가와 예술가 도시기획자 스포츠인문학자 마술가 등에게서 나온 독창적 사유와 개성적인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평창조직위 안에 인간과 스포츠의 관계를 이해하면서도 역사와 예술에 대한 인문주의적 상상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을 투입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와 평창조직위는 더 이상 서울이나 무주도 안 되고, 일본과는 더 안 되며, 북한과는 더더욱 할 수 없다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제발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로 끝나는 수십조 원 단위의 경제적 파급효과 타령만은 믿지 말기 바란다.
국내 분산개최가 되든 남북 분산개최든 한일 분산개최든 이는 하나하나 올림픽운동의 진보이자 새로움이고, 올림픽 혁신운동을 관통하는 시대정신의 결정체인 셈이다. 분산개최는 투명성이 강화되는 분산투자로 이어지고 폐막 뒤 사후관리까지 위험을 분산시켜 개최국가와 도시들의 두려움을 없애줄 게 분명하다. 그리고 그 첫 수혜 국가와 도시는 대한민국과 평창이 될 것이다. 평창은 올림픽을 꿈꾸는 많은 나라와 도시 관계자들에게 영감과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롤 모델’이 될 수 있다. 그 첫 ‘성화봉송자’로서의 행운이 평창에 주어진 것이다.
(1) ‘어젠다 2020’은 2014년 12월 모나코 제127차 IOC총회에서 채택된 올림픽 혁신안으로 선수 환경 젠더 인권 의제 등 40개 항으로 구성됐다. 첫 조항에 “올림픽경기를 개최도시 외부 또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 개최국 밖에서 여는 것을 허용한다.”고 밝혀 분산개최의 길을 텄다.
(2) 2022년 겨울철올림픽 유치에 나선 나라는 스웨덴(스톡홀름) 폴란드(크라우프) 스위스(다보스) 노르웨이(오슬로) 독일(뮌헨) 중국(베이징) 카자흐스탄(알마티) 등 7개국이었다. 이 가운데 스웨덴 폴란드 스위스가 먼저 떨어져 나갔다. 이후 독일과 노르웨이마저 주민투표 부결과 의회의 재정보증 거부로 유치권을 반납하자 IOC는 큰 충격을 받았다.
(3) 제레미 리프킨, 안진환 옮김, <한계허용 제로사회>, 민음사(2014)
(4) 사우디아라비아 국가올림픽위원장인 알 사우디 왕자는 최근 “올림픽 남자경기는 사우디에서, 여자경기는 바레인에서 열겠다”며 IOC에 분산개최를 제안했다가 빈축을 샀다.
(5)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월 15일 “세 번 만에 어렵게 유치한 대회이고 각 경기장 공사가 이미 진행 중인 상황에서 분산개최 논의는 의미가 없는 만큼 관계부처는 IOC에 분명한 설득 논리로 대응하기를 바란다."고 말해 분산개최 논의에 제동을 걸었다.
(6) 1998년 겨울올림픽을 치른 일본 나가노는 당시 약 1억 달러의 적자를 봤으나 그 후 경기장 시설을 활용하지 못한 채 매년 1백억 원대의 관리비용이 들어가고 있다.
(7) 소치겨울올림픽 때 러시아는 500억 달러(약 53조3천억 원)를 들여 사회간접시설과 11개 경기장을 신축했다. CNN 머니 등은 소치의 인구가 34만 명인 데다 주변에 큰 도시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많은 사후 관리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8) 진민수, ‘IOC, 평창올림픽 개입 노골화’, <강원도민일보>, 2014년 12월 15일.
(9) 김영석, ‘개장한 북한 마식령스키장의 어마어마한 규모는? <국민일보>,2015년 1월 4일.
(10) 정옥재, ‘이젠 뷰라시아 이니셔티브다’, <국제신문>, 2014년 10월 15일.
(11) <조선신보>, 20114년 12월 12일.
(12) 강원시민단체연대회의를 비롯한 녹색연합, 우리령사람들 등 시민환경 단체들은 2011년 평창 유치 뒤부터 가리왕산 벌목 반대와 비용절감을 위한 분산개최를 꾸준히 주장해왔다.
(13) 정희준, ‘평창올림픽 경제효과는 국가비밀?’ <한겨레21>2011년 3월 2일/ 조홍섭, ‘가리왕산 여든 살’, 들메나무의 ‘시한부 인생’, <한겨레> 2012년 8월 25일/정용철, ‘가리왕산의 피울음 소리’, <한겨레> 2014년 9월 1일/최동호 ‘도 넘은 올림픽 병, 일단 짓고보자’<프레시안> 2014년 11월 23일/고광헌, ‘올림픽스키경기, 북한서 열면 안 될까’, <강원희망신문> 2014년 9월 22일.
(14) 최문순, ‘평창올림픽 북 분산개최 검토’, <조선일보>, 2015년 1월 5일 치
(15) 김진우,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30% 붕괴’, <경향신문>, 2015년 1월 30일 치
글·고광헌
시인이자 대학교수. 한겨레신문사 대표이사를 지냈고, 현재 한국인권재단 이사장을 겸하며 한림대에서 언론정보학을 가르치고 있다.
이 글은 지난 2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녹색연합, 문화연대, 스포츠연구소, 체육시민연대 등 시민단체가 개최한 '평창동계올림픽 분산개최 촉구 토론회'에서 발표된 글로서, 필자가 본지 편집방향에 맞게 일부 수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