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의 돈맛에 포획된 애팔래치아 산맥

2015-03-04     막심 로뱅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열기가 점점 커져가고 있지만, 석탄은 여전히 미국의 주된 에너지원이다. 최근 탄광회사들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산을 깎아내고 석탄을 채굴하는 노천채굴법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애팔래치아 산맥에서도 성행하고 있는 이러한 채굴 방식이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초래하고 있다.

 

막심 로뱅|언론인

 

2010년 4월 5일 오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콜리버 밸리에 위치한 ‘어퍼 빅 브랜치’ 광산에서 대형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수십 명의 사람들이 갱도 안에 갇히고 말았다. CNN 위성중계차량들이 서둘러 현장을 찾았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방송을 통해 유감을 표했다. 수돗물에서 디젤 냄새가 나는 유령 마을들로 둘러싸인 이 계곡에 전미 언론의 이목이 집중됐다. 사고 며칠 후, 결국 29명의 사망자를 낳으며 이 음산한 긴장 상태는 막을 내렸다.

사람들은 희생자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두 개의 묘비를 세웠다. 하나는 탄광회사의 비용으로 세운 것으로, 서로 어깨동무를 한 29명의 실루엣이 새겨진 커다란 바위이다. 이 추모비는 ‘일터에서 다치고 병들고 숨진 모든 광부들’을 위해 헌정됐다. 또 하나는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났던 바로 그 자리에 세워진 것인데, 보다 친밀한 느낌으로 29개의 헬멧과 29개의 화관이 놓여 있는 추모비이다. 땅에는 한 주민이 절규하듯 분필로 적어 넣은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신이시여, 석탄을 축복하소서!”

그로부터 4년 반이 지난 2014년 11월 20일, 애팔래치아 지역에서 가장 큰 탄광회사로 자리잡은 ‘매시에너지’를 1989년부터 2010년까지 이끌어온 돈 블랭켄십 전 회장이 베클리 형사재판소에서 열린 예심재판에 참석했다. 그는 이 예심에서 부주의와 지나친 이익추구 등으로 이 사건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받았다.(1) 비용을 아끼기 위해 탄광 내 환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갑작스레 조사단이 방문하면 위반행위를 감추기 위해 광부들 사이에 일종의 암호가 오갔다. 조사단의 도착을 확인한 현장 입구의 수위가 현장감독에게 이 사실을 빠르게 알리는 것이다. 이어서 전화로 연락을 받은 광부들은 작업을 멈추고는 재빨리 유사 환풍시스템을 만들곤 했다. 지난 2010년 5월 27일, 해당 광산에서 일한 적 있는 한 광부는 미국 공영라디오(NPR)와의 인터뷰에서 “규격에 맞춰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75분이었다.”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비용절약위해 가짜 환풍기 위장

블랭켄십 전 회장의 재판 시작일은 2015년 1월 26일로 정해졌다. 피해자 측 변호를 맡은 브루스 스탠리 변호사는 이날이 미국의 역사적인 날이 아닐 수 없다고 설명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대규모 탄광기업의 회장이 형사재판소에서 판결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2) 법원이 보석금으로 500만 달러를 책정했을 때, 블랭켄십 전 회장은 전액을 현금으로 지불했다. 예심재판에 참관한 록크리크 지역주민 마이크 로젤은 이 돈이 “그에게는 푼돈이나 다름없는 금액”이라고 말했다.

법정에 앉은 유가족들은 언론들이 ‘검은 산 속의 왕’이라고 부르는 이 인물을 조용히 쳐다보았다. 대부분이 자신들의 삶을 지배하다시피해온 이 갈색 수염의 남자를 처음으로 보았다. 기자들은 블랭켄십 전 회장을 두고, 미국사회를 ‘가장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정글’로 여기는 수직출세형 경영자라고 묘사했다. 그는 실제로 ‘가장 강한 자’가 되기 위해서라면 어떤 규제든 서슴없이 위반했다. 매시에너지가 운영하는 탄광에서는 이번 폭발사고가 나기 24개월 전부터 안전 관련 규제, 노동법 등 총 835건의 법률 위반 문제가 있었다. 가장 자주 일어난 위반행위는 갱도 내 환기 문제와, 기계를 냉각하는 과정을 생략하는 일 등이 있었다. 특히 기계 냉각 과정은 굴착기의 과열을 막고 불티가 생기는 걸 피하기 위해 매일 해야 하는 중요한 작업이다. 블랭켄십 전 회장의 책상에는 위반경고장이 쌓였지만, 정부가 구속력을 가지고 매시에너지를 제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벌금을 징수하기도 했지만 대기업의 횡포를 막을 만한 액수는 아니었다. 연방조사관들은 회사에 돈을 내게 하기도 하지 않고, 그러고 싶지도 않는 듯 했다.(3)

서슴없는 835건의 법률위반 자행

한편 토양오염 문제는 매시에너지의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2000년 10월 켄터키 주 동부의 마틴 카운티 탄광에서 있었던 유출 사건일 것이다. 1989년 알래스카 해역에서 발생했던 엑손 발데스 유조선의 유출 사고보다 30배 더 많은 오염물질들이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강줄기로 흘러나왔다. 이 사고는 결국 2만 7천여 명에게서 식수를 앗아가는 결과를 낳았고, 매시에너지는 4천 6백만 달러의 비용을 들여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4) 그런데 블랭켄십 전 회장은 대부분의 경우 별 문제없이 난관을 벗어났다. 특히 그가 법조계 인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덕분이다. 2009년 당시에는 매시에너지에 대한 상소가 제기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블랭켄십 전 회장이 웨스트버지니아주 최고법원의 다섯 판사 중 한 명과 모나코에서 함께 휴가를 보내는 모습이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해당 상소는 찬성 세 표, 반대 두 표로 결국 기각되고 말았다.

그런데 오랫동안 처벌을 피해갔던 블랭켄십 전 회장이 결국 어퍼 빅 브랜치 탄광 사고가 발생하면서 긴 기록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이제 그는 과거 정계 지인들에게 불편한 존재가 됐다. 레이건정부 당시부터 줄곧 워싱턴 상원의원을 맡아온 제이 록펠러는 수년간 블랭켄십 전 회장을 지지해오던 손을 마침내 놓아버렸다. 유력한 민주당 인사인 록펠러는 블랭켄십의 예심 일주일 전에 공식 석상에서 “(블랭켄십은) 재판장에서 아주 품위있게 대우받을 것이다. 자신의 직원들은 한 번도 받아보지도 못했을 대접이다. 실제로 그는 그런 대우를 받을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정계 지인들에게 불편한 존재가 된 악덕업주

법정에 앉은 블랭켄십 전 회장은 판사가 불리한 증거를 꺼내자 친구를 찾는 듯이 눈을 치켜뜨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방청석에 앉아 있던 한 남성이 이 눈짓에 답하는 듯했다. 어퍼 빅 브랜치 광산 현장감독이던 델베르(가명)는 폭발 사고가 있던 날 휴가로 현장을 비웠었다.(5) ‘숙련된 광부들’이던 희생자들을 잘 알던 그는 사고 이후로 다시는 현장에 내려가는 일이 없었다. 그는 화이츠빌에 있는 부품가게에서 다시금 일자리를 얻었다. 사고 이후에도 그는 여전히 전 직장인 매시에너지의 전 회장에게 충성을 다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는 “사람을 사자 굴로 던져 넣는 셈이군. 목매다는 꼴을 보고 싶은 게지.”라고 중얼거렸다. 이 충성심 가득한 광부에게 있어 이번 사고는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천벌일 뿐이었다. 그는 “어퍼 빅 브랜치에 있었던 일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신이 내린 일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델베르는 과거에 근처 계곡에서 이와 비슷하게 다른 참극이 일어나 계곡 전체를 삼켜버린 일을 잘 알고 있었다. 1972년 겨울 어느 아침, 버팔로 크릭의 제방이 무너졌고 저수지는 슬러지, 즉 ‘석탄 진흙’으로 뒤덮였다. 산 정상에 쌓여있던 광산 폐기물이 쏟아져 내려온 것이다. 이 검은 물질들로 강이 범람하여 16개 마을이 파괴되고 125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말았다. 당시 탄광개발을 맡았던 기업 핏츠톤 콜은 생존자들에게 이 재난은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신이 내린 일”이라는 것이다. 그 진흙더미는 지금까지도 켄터키부터 웨스트버지니아를 거쳐 펜실베니아에 이르는 산맥 정상에 쌓여 있다. 계곡들을 향해 ‘다모클레스의 칼(언제 떨어질지 모를 공중의 칼을 일컫는 표현-역주)’이 겨누어져 있는 셈이다.

하지만 미국 탄광의 광부들은 늘 무거운 대가를 치러왔다. 1907년, 총 3천 247명의 광부들이 목숨을 잃었고, 1980년대 초에는 석탄 개발로 인해 연간 250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숫자는 1991년까지도 100명대를 유지했다. 이는 광부들의 인구수에도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1983년 4만 천명에 달했던 웨스트버지니아 내 광부 수는 2012년 2만 4천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종사자의 수가 감소함에도 최근 20여 년 동안 웨스트버지니아주의 생산량은 전년도와 동일하거나 늘어나 마침내 와이오밍주의 생산량을 추월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터지는 원폭”

오늘날 지하채굴은 완전히 사양길로 들어섰다. 이제는 ‘산정상제거채굴법(이하 ‘MTR 채굴법’)’이 점차 널리 쓰이는 추세이다. 이 방법은 노천에서 산을 폭파해 깎아내고 아래 있던 석탄을 채굴해내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시간을 거듭하며 빠르게 발달했다. MTR 채굴법은 높은 생산성과 함께 노동력도 많이 필요하지 않아, 탄광업 기계화가 궁극적인 단계로 발전한 계기가 됐다. 이렇게 기술이 발달하면서 MTR 채굴법은 점차 규모가 커져갔고, 유례없는 자연파괴 문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MTR 채굴법 반대 단체인 ‘콜 리버 마운틴 워치’의 버넌 핼텀 회장은 법정의 의자에 앉은 채 웨스트버지니아와 켄터키에서 행해진 폭파 위력을 합치면 “히로시마 원폭을 일주일에 한 번씩 터뜨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작게 말했다. 핼텀 회장은 이 문제를 히로시마 원폭을 잘 모르는 아이들에게 설명할 때는 “토마호크 미사일을 매일 4천 개씩 날리는 셈”이라고 설명한다. MTR 채굴법은 현재 미국에서는 합법적인 채굴 방식이지만, 웨스트버지니아와 켄터키 내 5백여 개의 산을 없애고 3,000km에 달하는 계곡을 막아버린 주범이기도 하다. 탄광 기업들은 자연을 다시 푸르게 하기 위해 전나무를 심고 비료와 녹색 염료를 섞어 뿌리고 있다. 산업계는 밍고 지역의 사례처럼 이 광대한 평지를 골프장으로 바꾸어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하고 있으며, 켄터키 주에서는 연방교도소를 세우려는 계획까지 세워졌다. 하지만 토지를 전환하여 사용하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문 일이며,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지도 못한다.

MTR 채굴을 위해 산을 폭파시키고 나면 늘 계곡 전체로 먼지 구름이 퍼져가고, 나노입자처럼 된 규토 조각들이 사람과 동물의 숨에 섞여 몸속으로 들어간다. 여름에는 모래폭풍이 지나고 난 자리에 자동차나 아이들의 장난감 위로 얇은 막이 생길 정도다. 우물은 오염되고, 주민들은 두통과 피부통을 호소하고, 아이들의 치아는 너무 일찍부터 상하기 시작한다. 웨스트버지니아대학 연구팀이 장기간에 걸쳐 조사한 바에 따르면, 폭파 장소로부터 근거리에 위치한 마을 내 암 발생률과 기형아 확률이 평균 대비 반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6) 미세물질과 함께 광석 채굴과 취급에 사용되는 망간, 카드뮴 등의 중금속들이 토양을 오염시키고 있는 탓이다.

정부의 미비한 단속에 대처하기 위해 여섯 개의 단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탄광기업들의 위반 사례를 추적해 법적 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이 ‘배은망덕’한 일이 탄광 지역 주민들의 공분을 산다. 주민들의 월급이 전부 탄광산업에 의존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런 문제들로 논쟁이 불거지자 가정과 마을, 포크 가수들까지 목소리를 높이며 갈라서고 있는 상황이다. 석탄에 대한 찬반 논란이 일자리에 대한 찬반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해당 지역에 가면 “석탄이 싫다면 불도 켜지 말라”는 문구를 붙인 트럭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탄광기업 비난에 주민 반응, “석탄이 싫으면 불도 켜지 말라”

미국 국민들은 ‘촌스러움’과 ‘가난’이 모두 묻어나는 애팔래치아 주민들을 ‘힐빌리(hillbilly)’, 즉 ‘산속 촌뜨기’라고 부르며 그들의 낮은 교육 수준과 말투를 조롱하곤 한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탄광 마을 광부들은 독특한 사고방식을 길러왔다. 사고나 질병(‘검은 폐병’, 암 등) 같은 문제들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릴 만큼 험한 일을 견뎌내는 그들이 자신들만의 정신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런데 탄광 지역 내에서도 실업률이 크게 오르고 있다. 여러 요인이 있지만 특히 기계화와, 최근 천연가스에 대한 열기가 높아짐에 따라 나타난 현상이다. 애팔래치아를 포함한 미국 내 많은 주들이 수압파쇄법으로 끌어올리는 천연가스를 생산의 핵심 요소로 삼기 시작했다. 덕분에 석탄산업은 내리막길에 들어섰지만, 아직까지는 석탄이 미국 전력생산의 주원료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2007년 석탄이 전국 에너지 생산원의 48.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였다. 물론 이 수치는 2012년 37.4퍼센트로 떨어졌고, 반면 천연가스 점유율은 21.5퍼센트에서 30.4퍼센트로 증가했다.

탄광 마을의 TV에서는 미국 관료들이 종교계와 ‘석탄왕’에 의해 좌지우지되며 주민들의 생활 방식을 위협하는 영상이 나오곤 했다. 이런 지역에서 탄광개발을 문제 삼는 건 정치적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7) 웨스트버지니아의회 대표소속인 셸리 카피토는 워싱턴 탄광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정당집회인 ‘콜 코커스’를 이끌고 있다. 지구온난화가 한낱 ‘우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녀는 석탄 채굴 보호법을 주창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탄광업계에 대해 정부가 개입할 권리를 완전히 빼앗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법안은 결국 2014년 7월 상원에서 기각됐다. 그녀는 “우리 탄광들이 문을 닫고 있고, 우리 광부들이 점차 실직자가 되어가고 있다. 과도한 규제가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법은 아주 중요하다. 애팔래치아 주민들의 수입이 여기에 달려있기 때문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콜 밸리의 광산과 공장, 진흙더미가 쌓인 저수지 근처에서 자란 24살의 주니어 워크는 일찍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곳에서 떠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매시에너지 석탄처리공장에서 일하면서 ‘이 계곡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 역시 이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나쁘지 않은 봉급에도 불구하고 6개월 만에 공장을 그만두었다. 아버지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기 때문이다. 붉은 턱수염을 기른 젊은 청년 워크는 “아버지는 그곳에서 단 10년을 일하셨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49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겉모습은 70세 노인 같다. 많은 약을 드셨지만 아직도 침대에 계신 상태다.”라고 털어놓았다.

그의 집은 서구에서 가장 큰 진흙 저수지인 ‘브러시 포크’의 아래쪽에 위치해 있다. 이 저수지까지는 헬리콥터를 타거나, 매시에너지 개발지부인 말포크사(社)의 소유지인 작은 길을 몰래 들어서야만 갈 수 있다. 이 길로 쿼드 바이크를 타고 15분 정도 올라가면 정상 반대편 우거진 나무 너머로 고요하고 장엄한, 깊이 270m에 이르는 검은 호수를 발견할 수 있다. 이 호수를 막고 있는 제방은 산 정상을 무너뜨린 잔해로 만들어지고 있다. 브러시 포크가 완성되면 전체 저장량은 3,100만m³에 달할 것이다. 이는 거대 유조선인 ‘에리카’ 1,500대가 산 꼭대기에 모여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진흙더미는 폐탄광으로 마구 스며들고, 저지대의 우물물을 오염시킨다. 해당 지역 초등학교 아이들은 수년간 구토 증세와 두통을 호소했다. 심지어 학교 운동장에서 고작 30m 떨어진 곳에 석탄 창고가 위치한 경우도 있었다. 시위는 10년에 걸쳐 지속됐지만 결국 학교가 몇 km 옆으로 이전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워크는 가족 중에서 정기적으로 일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2009년부터 그는 한 친구가 소개해준 야간현장 수위 일을 다시 시작했다. 그는 “자동차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12시간을 버텨야 하는 일이었다. 나는 내가 이 일에 적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산에서 사람들이 하는 일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사기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언급했다. 그러고는 “내 건강은 계속 좋지 않았는데, 아마 내가 조금 마셨던 물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직도 수도꼭지를 틀면 늘 붉은 물이 나온다. 중금속 중독은 아주 오랫동안 쌓이는데 말이다.”라고 말했다. 필터를 쓸 수도 있지만 정수시설 비용이 수천 달러에 달한다. 그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돈을 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워크는 수돗물을 마시지 않기 시작했다. “하지만 목욕, 빨래, 설거지를 하는 데도 이 물을 쓰지 않는가. 그리고 가끔은 어머니가 이 물로 요리를 하기도 한다. 그러니 내가 지키는 이 현장 근처 주민들이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를 내가 모를 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회사에서 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노트북이 없던 그는 감시카메라를 차 안에 설치하고 발전장치에 연결해 밤을 지새웠다. 그가 콜 리버 마운틴 워치의 조수로 일하기 시작하기로 결단하고 루비콘 강을 건너자, 그의 아버지는 워크를 내쫓았다. 그는 “아버지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는 눈 깜짝할 새에 해고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아버지가 나를 내쫓은 것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 사람에 대한 지배가 자연에 대한 지배만큼 파괴적인 영향력을 갖게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역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작년에는 자동차 브레이크 선이 잘려 있었고, 주유소 주차장에서 한 광부가 그에게 총으로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그 광부는 내가 자기 아이들 입에 넣어줄 빵조각을 훔쳐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로 언제나 차 뒷좌석에 방탄조끼를 준비해두고 있다.

환경단체에 대한 현지 주민들의 적대적 대응

망치와 모루를 움켜쥔 콜 리버의 광부들은 이 계곡에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마지막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광부들의 초봉 연봉은 보통 6만 달러 수준이다.) 그리고 현재의 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모든 행위는 자신들을 향한 선전포고나 마찬가지라고 여긴다. 블랭켄십 전 회장의 예심이 열렸던 그날 저녁, 모리스빌의 작은 마을에는 대규모 탄광 ‘호베’의 확장 문제를 놓고 공개회의가 열렸다. 호베 탄광은 이미 40km² 면적의 산을 폭파해 만든 곳이었다. 여섯 개 환경단체 대표들이 백여 명의 주민과 광부들에게 탄광 확장 시 생겨날 영향들을 설명하며 경고를 던졌다. 작은 강당에서 열린 이 회의는 급속도로 비뚤어지기 시작했다. 참여한 주민들이 환경단체를 상대로 단결하여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환경단체 측에서 회색 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쓴 키 작은 여성이 입을 뗐다. 오하이오 밸리 환경연맹 소속인 다이앤 베이디였다. 그녀가 MTR 채굴법과 암 발병률 상승이 연관되어 있다는 연구결과를 언급하자, 그녀는 곧바로 ‘괴물’ 취급을 받아야 했다. 단체 측에서 연구결과들을 언급하면, 그것이 ‘나쁜 과학’이라며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행여 연구 결과는 받아들이더라도 계곡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감수해야 할 필요악이라고 여기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알콜 지역에 사는 광부 제리 해거는 마이크를 잡고 나섰다. “우리에게 암이나 기형아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나는 우리 저수지에서 팔 세 개 달린 애가 헤엄치는 모습은 한 번도 본적이 없다. 또 암에 걸리면 좀 어떤가? 상관없다. 난 보험도 들었다.” 군중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가자 회의는 결국 협박조로 끝나게 됐다. 광부 부인인 도니 바커는 환경단체들이 조사결과를 속이기 위해 하수구 물을 끌어간 것이라고 비난하며 “당신들 어디 사는지 다 알아, 잊지 않을 테다!”라고 소리쳤다. 한 시간 남짓의 회의가 끝났을 때 환경단체 대표들은 무장경찰의 호송을 받으며 자동차까지 이동해야 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MTR 채굴법을 금지하는 법안이 작성됐다. 콜 리버 마운틴 워치의 버넌 핼텀 회장은 “이 법안은 이미 의회에서 47표의 찬성표를 얻었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강조했다. 하지만 워크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47표는 너무 적다. 민주당, 공화당, 그런 건 다 조끼에 다는 배지 이름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너무 많은 정치인들이 업계로부터 돈을 받고 있다. 그러고서는 모두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라고 비난했다.

 

(1) 판결문 사본은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영문)
www.vgazette.com/assets/PDF/CH62291113.pdf.
(2) Ken Ward Jr., ‘Longtime Massey Energy CEO Don Blankenship indicted’,
, 2014년 11월 13일.
(3) Howard Berkes, ‘Coal mines keep operating despite injuries, violations and millions in fines’, 미공영라디오(NPR), 2014년 11월 12일, www.npr.org.
(4) Dylan Lovan, ‘After decade, still signs of coal slurry spill’,
, 2010년 10월 17일.
(5) 델베르 씨는 2011년 1월 71억 달러에 매시에너지로 매각된 알파 내츄럴 리소시스와의 관계를 이유로 가명 사용을 요청했다.
(6) 다음 사이트에서 다양한 학계 연구 결과들을 확인해볼 수 있다:
http://crmw.net/resources/health-impacts.php.
(7) 세르주 알리미, ‘Le petit peuple de George W. Bush’,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불어판), 2004년 10월호.

글‧막심 로뱅 Maxime Robin
언론인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

 

감초 냄새가 나던 날

찰스턴에 위치한 웨스트버지니아주 의사당은 그 ‘석탄 밸리’를 언제나 뒤흔드는 폭발사고들로부터 안전한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주 의사당은 탄광 및 화학 산업계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2014년 1월 9일 아침, 이상한 냄새가 주 의회의 안정감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산업관련 법 전문가인 마야 니예는 곧바로 컴퓨터를 켰다. 그녀의 지인들이 ‘감초 냄새’ 같은 이상한 냄새가 그녀가 태어난 이곳 찰스턴 시를 에워싸고 있다고 알려왔다.

이런 경우는 보통 어딘가에서 유출 사고가 났음을 의미한다. 유출사고는 공장과 저장창고들이 즐비한 이른바 ‘케미컬 밸리’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1930년대 이후 석탄이 보다 생활화되면서 사람들은 이곳에서 비료, 살충제, 동결방지제, ‘에이전트 오렌지(고엽제)’ 등을 생산하고 저장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이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고 즐거워했다. 케미컬 밸리 여자롤러스케이트팀은 롤러를 신은 두 여자가 방독면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미지로 팀 로고를 만들 정도였다.

이렇듯 재난경보와 대피소로 가득 찬 세계에서 자라온 마야 니예의 집에서 약 1km 떨어진 곳에 그녀의 부모와 많은 이웃들이 다녔던 화학기업 유니언 카바이드 공장이 위치해 있었다. 유니언 카바이드 공장에는 인도 보팔 가스 참사의 주원인이었던 아이소사이안화 메틸(MIC)이라는 독성 화학물질이 보관되어 있었는데(1), 이곳의 MIC 저장량은 보팔 공장보다 다섯 배 많았다. 그런데 2008년 살충제 등을 생산하는 바이엘 크롭사이언스사가 해당 공장을 인수한 이후 폭발 사고가 일어나 광부 두 명이 사망했다. 이 사고는 MIC가 가득한 탱크가 최소 15m가량 늘어서 있는 장소에서 발생했다. 국정 조사결과에 따르면 만약 여기 불이 붙었다면 찰스턴은 황폐화됐을 것이며, ‘보팔 가스 폭발사고를 훨씬 넘어설 만큼’ 심각한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하지만 의회는 이러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법을 단 한 번도 표결에 부치지 않았다.(2)

마야 니예는 이 수상한 냄새를 알고 있었다. 작은 키의 그녀는 ‘썩은 양배추 냄새’, ‘튀김 냄새’ 등으로 냄새를 기록하고 아버지에게 이를 물었다. 그는 “돈 냄새란다, 딸아.” 라고 답했다. 그런데 처음 맡아보는 냄새에 걱정을 멈출 수 없었던 그녀는, 곧이어 우려했던 것보다 더욱 심각한 뉴스를 들을 수 있었다. 화학기업 프리덤인더스트리 측이 당국에 자사탱크에서 4-메틸사이클로헥세인 메타놀(MCHM)이 누출돼 엘크 강을 오염시켰다고 알린 것이다. MCHM는 석탄 취급에 쓰이는 화학 혼합물질인데, 얼마나 많은 양이 누출 됐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해당 공장은 찰스턴 지역의 식수원이자 웨스트버지니아의 가장 큰 정화시설이 있는 곳에서 상류 쪽으로 약 1km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30만 명이 사용하는 수돗물이 심각하게 오염됐는데, 정부는 정확히 어떤 이유로 수돗물이 오염됐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MCHM는 미 정부가 생산과 저장을 허가한 8만 여개의 물질 중 하나였던 탓이다. 인류에 끼칠 영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이 모든 물질에 허가를 내린 건, 산업 활성화를 촉진하기 위해 일종의 무죄추정의 원칙을 사용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웨스트버지니아주의 웅장한 의사당에선 엘크 강과 이어지는 카나와 강이 내려다보인다. 유출사고가 일어난 날, 134명의 의원들은 의사당에 모여 있었다. 이내 정기회기는 연기됐고, 상원의원들이 병들기 시작했다. 정말 상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산업 활성화를 위한 법적 장치의 부재로 촉발된 사고가, 입법자들에게 직접 피해를 끼친 것이다. 의사당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사택이 있던 얼 레이 톰블린 웨스트버지니아 주지사는 곧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 연방비상관리국(FEMA)의 지원팀을 파견했다.

웨스트버지니아주 보건부 장관은 국민들에게 ‘목과 눈이 타는 듯한 증상, 갑작스러운 구토, 호흡 곤란, 수포 등 피부의 상처’ 등 MCHM 같은 물질에 노출됐을 경우 나타날 수 있는 잠재적 증상들에 대한 정보를 전파했다. 이제 화장실 변기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경우든 수돗물 사용이 금지됐다. 1월 10일, 웨스트버지니아 지역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당국은 유출된 MCHM 물질의 특성을 알지 못한다고 인정했다. 프리덤인더스트리가 특허권법에 따라 해당 물질의 정확한 내용물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모순적인 조치들로 여러 번 말을 번복했다. 처음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식수를 마실 수 없다고 했다. 마치 전쟁 중인 국가처럼 주 방위군이 주민들에게 물을 배급했으며, 가게마다 대형 생수통을 두고 싸움이 벌어졌다. 부유층은 별장에서 빨래와 목욕을 하기 위해 찰스턴을 떠나기도 했고, 다른 이들은 비라도 오길 바라며 정원에 큰 통을 내놓고 있었다. 이후 정부는 물을 쓰지 말라는 결정을 철회했는데, 임산부들만은 수돗물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유출 사고로부터 11일이 지난 1월 20일, 톰블린 주지사는 결국 주민들에게 각자의 자발적인 선택에 맡기노라고 발표했다. 그는 “아직 100퍼센트 안전하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해줄 수 있는 말은, 이상한 냄새가 난다면 마시지 말라는 것뿐이다.”라고 덧붙였다. 마야 니예는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전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단했다. 국민을 분노케 했던 사고로부터 두 달이 지난 2014년 3월 8일, 마침내 모든 업체는 지상 탱크 내 화학물질 저장 시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법 제373호가 표결에 부쳐졌다. 이 법은 웨스트버지니아주의 역사에서 한 번도 채택된 적이 없는 가장 구속력 있는 조치일 것이다. 단, 이 법을 교묘히 피하기 위해 로비활동을 벌이는 업체들을 막는 건 앞으로도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1) 인도에 위치한 보팔시는 역사상 가장 큰 산업재난이 일어난 곳이다. 이곳에서 1984년 12월 2일 밤부터 3일까지 탱크에서 MIC 물질이 누출되어 수천 명이 죽고 수십만 명이 다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2) 마야 니예가 이끄는 단체 ‘국민들은 화학 안전을 염려한다(People Concerned About Chemical Safety)’가 주도한 시민 운동으로 인해 바이엘 크롭사이언스는 결국 2011년 해당 공장의 문을 닫았다.

글‧막심 로뱅 Maxime Robin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한국외국어대통역번역대학원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