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정부의 국가 안보전략은 어디로?

2015-03-04     이혜정

미 상원 국방위 청문회 (동영상) 관람기

오바마정부는 2010년 미국의 재건을 국가안보전략의 최우선적 과제로 설정한데 이어, 2014년 국정연설에서는 위기의 시대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2008년 대선의 공화당 후보였던 멕케인 상원의원은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주도의 세계질서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고 주장하며, 상원 국방위원장으로서 키신저와 브레진스키 등 미국외교의 원로들이 대거 증인으로 출석하는 ‘지구적 도전과 미국 국가안보전략’에 관한 청문회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2015년 1월에 열린 세 번의 청문회에서는 어떤 논의가 있었을까?


이혜정 |중앙대 정치국제학 교수


2015년 1월 20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이 있었다. 실업률과 예산적자의 감축 등의 경제회복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 종식 성과를 강조하며, 오바마는 위기의 시대가 끝났다고 선언하고 새로운 시대를 함께 열어가자고 제안했다. 연설내용은 국내정책, 특히 중산층의 지위 회복에 집중됐다. 그래서 오바마는 교육과 인프라 투자 등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과 부자증세를 주창했다. 대외정책에 대한 언급은 대단히 제한적이었는데, 초점은 이란 핵협상 등 중동문제였다. 2014년 중간선거에서 상, 하 양원을 장악한 공화당의 시각에서 오바마의 국정연설은 분점정부의 현실을 완전히 무시하며, 민주당의 정파적인 국내정책과 무기력한 대외정책을 고집하는 오기에 다름 아니었다.

공화당의 반격은 대외정책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란에 대한 추가제제 법안은 거부하겠다는 오바마의 의지를 비웃기라도 하듯, 하원의장 베이너는 이란 핵협상에 줄기차게 반대해온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를 상, 하 양원 합동총회에 연사로 초대했다. 그리고 국정연설 다음날 아침 미 상원 국방위원회는 ‘지구적 도전과 미국 국가안보전략’에 관한 첫 번째 청문회를 열었다. 국방위원장 멕케인 상원의원은 모두 발언에서 오바마의 국정연설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테러조직 이슬람국가의 부상 등 국가안보의 위기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희망적 사고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위기가 끝나기는커녕, 미국은 지금 전후질서 해체의 위기(Present at the Unraveling)에 직면해있다는 것이다.

멕케인은 공화당의 전통적인 국가안보 보수파를 대표한다. 그는 조부와 부친의 뒤를 이어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베트남 전쟁에 해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오랜 포로 생활을 했고, 이 경력을 배경으로 정가에 진출했다. 이민 등 국내정책에서는 민주당과 초당파적인 타협을 시도하기도 하지만, 대외정책에서는 굳건한 안보태세를 강조한다. 그에게 상원 국방위원장은 대통령 다음의 필생의 꿈이었다고 한다. 2008년 대선 때 오바마에 패하면서 대통령의 꿈은 사라졌지만, 2014년 중간선거의 승리로 그는 상원 국방위원장이 됐다. 78세(1936년 생)인 그로서는 6선에 도전하는 2016년 선거가 마지막 정치적 여정이 될 전망이다.

‘지구적 도전과 미국의 국가안보전략’ 청문회 시리즈는 오바마의 잘못된 대외정책에 의해서, 그리고 예산의 강제일률삭감(sequestration)에 의해서 엉망이 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을 바로 잡기 위한 작업, 곧 멕케인의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이다. 1월 21일, 27일, 29일에 열린 세 차례의 청문회에는 브레진스키, 키신저, 올브라이트 등 미국외교의 거물들이 대거 증인으로 출석했다. 2월 10일의 네 번째 청문회에서는 공화당과 민주당정부의 전직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 2명이 증언할 예정인데, 이 중 플러노이는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승리할 경우 국방부장관 후보 1순위로 꼽히고 있다.

국가안보전략은 현실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이 원칙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현실에 대한 객관적 인식과 수용은 결코 쉽지 않다. 미국의 힘과 가치에 대한 믿음이 클수록 복잡하고 ‘답답한’ 현실을 수용하기 힘들다. 이는 1월 21일의 첫 번째 ‘지구적 도전과 미국의 국가안보전략’ 청문회에서 카터정부의 국가안보보좌관이던 브레진스키와 멕케인의 정치적 최측근인 그램 상원의원의 날선 공방에서 잘 드러났다.

이 날 브레진스키와 함께 증인으로 나선 이는 종언된 냉전시대를 관리한 부시정부 시절의 국가안보보좌관 스코우크로프트였다. 멕케인과 민주당 선임 리드 상원의원의 모두 발언이 끝나자, 멕케인은 둘 중 아무나 먼저 증언을 시작해도 좋다고 했다. 둘 모두 망설이자, 멕케인은 누가 연장자인가 물었다. 89세인 스코우크로프트가 증언을 시작했다. 브레진스키도 86세이다. 청문회는 이들의 경륜에 대한 존경의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스코우크로프트와 브레진스키는 현실주의자다. 현실주의는 군사주의가 아니다. 오바마 대외정책에 대한 공화당의 당파적 비판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청문회의 의도였다면, 이들을 증인으로 채택한 것은 아주 잘못된 선택이었다. 국방예산의 강제적 삭감에는 분명하게 반대하지만, 이들이 진단하는 현실은 복잡하고 정책처방은 신중하다. 우크라이나에서 중동과 중국에 이르기까지 세계화, 정보화, 기후변화 등에 의해서 기존 주권국가체제가 도전받고 있고, 그 어떤 문제도 미국의 일방주의적인 해법을 허용하지 않는다. 브레진스키는 푸틴의 공세적 대외정책에 대응하여 우크라이나에 대한 방어무기 지원과 발트 해 연안 국가들에 소수의 나토군을 인계철선으로 배치할 것을 제안하지만, 동시에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키지 않겠다는 공약을 통해서 러시아와 타협을 시도하라고 조언한다. 스코우크로프트 역시 러시아와의 핵군비 경쟁과 냉전의 부활을 경계한다. 소니 해킹에 대한 대책을 물으면 진위를 더 알아야 대답할 수 있다고 답변을 거부한다. 오바마 정부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현장의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일정에 따른 철군을 추진한 것 아니냐고 물으면, 조건과 일정에 따른 구분의 근거가 확실치 않고 최소한의 일정이나 시한 설정은 필요하다고 답한다. 이들 현실주의자들의 시각에서 현실은 훨씬 더 나쁠 수도 있고, 미국에게 반드시 해법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소니 해킹 대책 질의에는 ‘진위확인’ 이유로 답변 거부

이러한 비관론은 공화당 보수주의로서는 수용하기 힘들다. 현실은 훨씬 더 좋아야 하는데, 오바마가 망쳐놓은 것이다. 멕케인과 그램은 이슬람국가(IS)의 부상이 이라크전쟁의 조기 종식에만 집중한, 그리고 시리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거부한, 오바마 정부의 실책에 따른 것이라고 본다. 군사력이 만능이 아니라는 오바마 정부의 구호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최소한의 군사력 사용까지도 거부하는 패배주의일 뿐이다. 지상군 투입 없이 이슬람국가의 격퇴는 불가능하고, 그 결과는 미국본토에 대한 (임박한) 공격이다. 멕케인과 그램에게는 중동문제가 미국의 직접적인 군사적 개입 없이는 해결될 수 없는 국가안보의 위협이지만, 스코우크로프트와 브레진스키에게는 미국이 절대 직접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되는 수렁이다. 문제의 근원은 수니와 시아파의 역사적인 종파 분쟁, 오스만제국의 붕괴와 식민지분할 때의 인위적인 국경선 설정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질의응답 시간에 그램 상원의원은 이란의 핵 보유 야망을 인정하느냐고 물었다. 두 원로는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 의회가 오바마의 핵 협상 타결안에 대해서 독자적인 검토를 진행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둘은 주저했다. 미국만이 아니라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들과 유럽연합이 추진하고 있는 다자협상이라는 대답 아닌 대답이 돌아왔다. 미국 의회가 미국이 포함된 다자협상의 최종안에 거부권을 갖겠다는 건 현실주의 외교적 덕목과는 한참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램은 계속해서 다그쳐 물었다. 오바마 정부의 이슬람국가 격퇴 전략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스코우크로프트는 아니라고 ‘정답’을 말했지만, 브레진스키는 아직 알 수 없다고 답했다. 아사드 정권의 독재에 대한 민주적 저항이 시리아 사태의 원인이라고 진단하며, 시리아 반군에 대한 군사적 지원, 더 나아가서는 최소한의 지상군 투입 없이는 이슬람국가의 위협을 제거할 수 없다는 현실이 복잡해서, 미국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열변이 이어졌다.

오바마의 이슬람 전략에 대한 브레진스키와 스코우크로프트의 인식 차이

자신의 정치적 동지의 발언이지만 원로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여겼는지(그램은 이제 59세이다), 멕케인이 그램의 장광설(tirade)에 대한 두 원로의 의견을 물었다. 그램의 발언을 장광설이 아니라 열정적인 토론이라고 생각한다는 브레진스키의 신사적인 답변이 이어졌다. 하지만 장광설이란 단어가 가져온 어색한 긴장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중동의 역사적, 종파적, 지정학적 경쟁의 문제는 미국이 아니라 오직 중동국가들만이 해결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절대 중동문제를 직접 떠안아서는 안 된다는 스코우크로프트의 강조가 반복되었다. 왜 아사드의 제거에 목을 매냐는, 그 대안이 과연 없냐는 브레진스키의 현실론도 반복되었다. 브레진스키가 중동에서 아사드만 독재자인가 하는 언급을 반복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그램과의 설전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램이 다시 시리아에서 비행금지 구역을 설정하는 게 필요하다는 주장을 (질문의 형태로) 제기했을 때, 브레진스키의 답변은 ‘그래서, 그 후에는’이었는데, 이는 군사력의 한계에 대한 현실주의자의 신중론이자 그램 식의 순진한 미국주의에 대한 냉소였다.

1월 27일의 두 번째 청문회에는 전직 장성들인 세 명의 4성 장군들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장군들은 국방비의 강제 삭감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오바마 정부의 일정에 따른 성급한 철군정책을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그렇다고 이들 사이에 이견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이라크 전쟁 초기에 예편해서 보수적인 폭스뉴스의 해설가로 활동했으며 멕케인의 측근인 킨 장군은 철저하게 현장 사령관의 군사적 시각에서, 또 선과 악의 분명한 이념적 구도에서, 오바마의 실정을 직설적으로 공격했다. 중동지역을 관할하는 중부사령관으로 가장 최근에 예편한 매티스 장군은 전직 국가안보보좌관들이 강조하는 현실의 복잡성을 인정하지만 미국이 이를 극복할 충분한 군사력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하며, 문제는 군사력 동원의 정치적 목적 자체가 제대로 설정되지 않았고, 군사력 동원에 따르는 대가를 감당할 정치적 의지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킨이 열정적이지만 단순한 무장의 전형이라면, 매티스는 오바마 백악관의 미세한 통제에 질려버린 영리하지만 냉소적인 전략가이다. 태평양사령관을 거쳐 중부사령관으로 예편한 팰론 제독의 경우에는 군사력과 경제, 도덕적 리더십, 중동과 아시아, 현재의 긴급한 도전과 미래의 위협 등의 균형을 강조하는, 셋 중에서 가장 오바마정부의 정책에 우호적인 인물이다. 이러한 차이는 군종과 경력, 그리고 개인적 성장배경과 성격의 차이가 종합적으로 빚어낸 것일 터이다.

이날 청문회를 지배한 건 단연 킨 장군이었다. 그의 오바마 정부에 대한 공격은 멕케인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아쉽게도 멕케인은 사우디국왕 장례식 참석차 불참했다.) 킨의 ‘영웅’은 이라크에서 반군진압작전(counter-insurgency)을 지휘한 패트리어스다. 킨은 훈련 중 실탄을 맞아 부상한 패트리어스를 구하고, 그의 부관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오바마는 중부사령관 패트리어스가 요구한 아프가니스탄 증파 병력을 제공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후 CIA 국장으로서 패트리어스가 제안한 시리아 반군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거부했다. 킨에 따르면, 이슬람국가의 부상은 이라크에서 일정에 따른 조기 철군을 밀어붙인, 오바마 정부의 불개입 정책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의 문제 역시 군부가 요구한 증파의 수준을 충분히 수용하지 않은 오바마 정부의 책임이고, 시리아의 문제도 아사드 반군을 제때 지원하지 않은 결과이다. 이란 핵 협상에 대한 킨의 비판도 단순하고 명쾌하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헤즈볼라를 통해 이슬람혁명을 수출하고 미군에 대한 테러를 감행했으며, 지속적으로 핵과 미사일 능력을 개발해왔다. 이란은 미국의 적이고, 핵 능력을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다. 협상은 이란에 대한 기존의 제재를 완화해주었다는 측면에서 이미 실패한 정책이다.

오바마의 중동정책 비판 “비효과적이고 비현실적”

킨은 중동의 안보위협을 급진주의 이슬람(Radical Islam)의 위협으로 단순화시킨다. 나치즘과 소련의 공산주의처럼 급진적인 이슬람 역시 미국체제에 적대적인 이념의 적인 동시에, 전 지구적으로 이슬람신정체제의 지정학적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안보위협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념화와 악마화의 시도 이유를 그는, 소련의 이념적, 지정학적 위협이 미국에게 봉쇄의 전략적 초점을 제공하고 이에 대한 국내정치적 지지를 이끌어내었던 냉전의 전략적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순순히 털어놓는다. 급진주의 이슬람 패러다임의 문제는 우선 이슬람 세력이 단일하지 않다는 것이다. 킨 자신이 지적하듯, 시아파 이란과 수니 급진파 이슬람국가는 서로 반목한다. 단일하지 않은 세력에 대해서 취할 수 있는 단일한 군사적 해법은 없다. 스코우크로프트나 브레진스키의 시각에서 보면, 킨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패트리어스의 반군진압작전은 결국 미국 주도의 국가건설기획이고, 중동에서 그 성공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하다. 1979년 이후 이란과 미국의 대결도 사실이지만, 현재의 이란 정권은 핵 협상을 추진하기에 충분한 행동의 변화는 보여주고 있지만 협상 이외의 대안은 마땅치 않다. 또한 이슬람국가의 부상을 제어하는 등 중동의 안정을 위해서는 이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민주주의나 이념의 문제로 따지자면,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이나 이란의 현 정권보다 사우디 왕가나 이집트의 최근 군부정권이 더 낫다고 보기 힘들다. 급진적인 이슬람을 적으로 설정하는 것은 중동의 종교전쟁에 말려들어 지하드를 선전해주는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팰론이 직접적으로 킨의 군사적, 이념적 비판에 제동을 걸었다. 이라크 정부의 통합적 리더십이 없이는 그 어떤 군사적 지원도 효과가 없고, 설령 오바마 정부의 실책으로 지금의 중동문제가 발생했다고 해도 지나간 기회의 책임만 따지고 있을 게 아니라, 냉전 시기 소련과도 협상을 진행했던 것처럼 현실의 문제에 대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키신저, “미국의 압도적인 힘의 우위에 복잡한 문제 내재”

1월 29일의 세 번째 청문회는 전직 국무장관들을 증인으로 출석시켰다. 증언은 클린턴 2기의 국무장관이었던 77세의 올브라이트, 레이건 1기의 국무장관이었던 94세의 슐츠, 그리고 닉슨정부의 국무장관이었던 91세의 키신저 순으로 이루어졌다. 세 번의 청문회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된 점은 냉전의 종언 이후 미국이 국가안보전략의 수립에 애를 먹고 있다는 것이다. 냉전에 대한, 소련이라는 유용한 위협에 대한 일종의 ‘헌사’는 스코우크로프트에서 키신저까지 일관되게 반복되었다. 소련과의 핵전쟁 위협은 미국에게 이념적 열정을 제어하고 힘에 대한 존중과 타협을 강요했다. 또한 현재처럼 중동이나 아시아냐 하는 식의 지역단위의 정책이 아니라 전 지구적 수준에서의 전략에 대한 합의를 가능하게 했다. 키신저는 미국이 여전히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지닌 상태지만, 복합적이고 복잡한 문제에 직면한 역설을 지적했다. 올브라이트는 미국이 국제체제에서 여전히 필수불가결한 존재이며 막강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지만, 군사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많지 않고, 대외정책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의 부족과 다자주의에 대한 저항 때문에 새로운 전략수립이 쉽지 않다고 경고했다. 올브라이트에 따르면, 지금의 중동문제는 미국 안보의 절대적, 실체적 위협이 아니며, 장기적인 차원에서 최대의 위협은 기후변화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킨 식의 안보위협 설정은 미국 국가안보 전략 수립의 장애물일 뿐이다. 냉전의 경험,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기존의 패권이나 제국적 지배에 대한 선택적 기억과 이념적 포장이 탈냉전기 미국 국가안보전략 수립의 가장 큰 장애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슐츠의 증언은 멕케인-그램-킨의 공화당 국가안보 보수주의 노선을 충실히 뒷받침했다. 베트남전쟁의 충격에서 벗어나서 힘과 원칙의 외교를 추구한 레이건을 회고하면서, 슐츠는 아들 부시정부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결정을 다음과 같이 인정했다. 곧 군사적 준비가 부족하기는 했지만 당시의 판단으로는 미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이다. 또한 그는 킨처럼 1979년 이후 이란의 테러지원, 미사일 개발, 인권 등 국내정치 문제를 포괄적으로 강조하면서, 핵 협상의 가능성에 회의적이고 의제가 핵으로만 국한된 점도 비판한다.

슐츠나 킨의 기억은 대단히 선택적이다. 1979년 혁명 이전 이란의 팔레비정권은 미국의 충실한 동맹국이었고, 팔레비의 집권은 CIA의 공작에 의한 것이었다. 이 점을 (간접적으로) 환기시킨 이는 다름 아닌 키신저였다. 이란은 국가의 성격, 제국의 역사적 유제, 그리고 시아파 종주국으로서의 종교적 영향력 세 가지 모습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데, 국가로서 이란은 사실 협상이 가능하며 미국의 충실한 동맹국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키신저는 이란 핵 협상이 이란 핵 능력 자체를 제한하는 목적이 아닌 점을 우려하기는 하지만, 협상으로 이미 제제를 피하는 등 이란이 승리했다는 슐츠나 킨의 비판과는 달리, 협상 자체를 전면적으로 반대하지는 않는다. 키신저에 따르면, 단기적으로 미국의 최대 위협은 이슬람국가의 부상이 미국이 통제할 수 없는 전쟁으로 확산되는 것이고,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해법은 군사적 지원이 포함되기는 하지만 군사적 수단의 차원에서만 찾을 수는 없고, 장기적인 차원에서 미국의 과제는 중국과의 협력을 포함하는 새로운 국제질서를 수립하는 것이다.

중동과 동구의 긴급한 군사적 이슈가 중국이나 기후변화 등 미국 국가안보전략의 장기적 과제를 가리고 있는 형편이다. 미국은 복합적이고 복잡한 현실을 인정하고, 이념적 열정에서 벗어나서, 현실적인 국가안보전략을 수립할 수 있을까? 멕케인의 ‘지구적 도전과 미국 국가안보전략’ 청문회가 지금까지 보여주는 전망은 국방비에 대한 재정압박의 해소를 제외하면 그다지 밝지 않다. 강제적인 국방비 일률삭감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재정절벽의 위기를 가져왔던 ‘주범’인 티파티 세력에 대해 공화당 자체가 견제하는 일이 관건이기는 하지만, 광범위한 초당파적 지지가 형성된 듯하다. 오바마의 국가재건 우선 정책은 당장의 군사적 문제들에 대한 현실적 해법의 차원에서, 그리고 중국 등 장기적이고 중요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는 점에서 분명히 약점이 있지만, 그렇다고 공화당에서 현실적인 대안이 마련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키신저의 ‘전쟁범죄’ 비판한 청중 소동에 청문회 지연

이슬람국가나 우크라이나 사태가 급격하게 확산되지 않는 한, 2016년 대선을 앞두고 미국 국가안보전략에 대한 미국 내부의 ‘진지전’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 주요 변수는 결국 국제체제의 역사적 진화 자체와 미국인들의 집단적인 기억과 결정이다. 이 점에서 키신저를 둘러싼 1월 29일 청문회의 역사적 기억과 소동은 시사적이다. 멕케인은 청문회를 시작하면서 키신저가 당시 포로였던 자신의 조기 석방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가문과 군대의 명예를 지킬 수 있게 해 준 점에 대해서 감사를 표했다. 그런데 키신저와 닉슨은 베트남 종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 전쟁 자체를 캄보디아 등으로 확전, 심화시켰었다. 키신저의 ‘전쟁 범죄’를 비판하는 청중의 소동으로 청문회의 시작이 지연되었고, 키신저의 증언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이때 슐츠가 일어나서 키신저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외치자 (I salute Kissinger) 모두들 박수를 보냈다. 슐츠는 키신저가 기억하는 이란의 역사를 망각했고, 베트남전쟁은 키신저를 잊지 않았다. 역사가 기억하는 미국과 미국이 기억하는 역사, 그리고 역사의 진화 자체가 조화될 수 있을까? 여기에 미국 국가안보전략의 미래가 달려 있다.

 

글‧이혜정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