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인증은 관광 효과의 보증서?

2015-03-04     쥬느비에브 크라스트르

1990년대 말부터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행사가 급증했다. 전 세계적으로나 한 국가 차원에서 박물관, 기념관, 추모지 등 무엇인가를 기리기 위한 장소가 늘어났다. 덩달아 유네스코도 바빠졌는데, 관광객 유치를 보장받는 세계유산 등재 신청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역사학자들은 새로운 흐름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면서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진다.

 

쥬느비에브 크라스트르|언론인

 

최근 10년 사이에 등장한 베를린 유대인학살추모공원, 부에노스아이레스 추모공원, 프랑스 드랑시 쇼아기념관, 캄보디아 킬링필드 위령탑, 뉴욕 9‧11추모박물관 등은 모두 그 지역에서 일어난 일을 기억할 수 있는 상징적인 장소를 만들려는 의지에서 생겨났다. 그런데 애초 구상 단계에서부터 관광 산업을 염두에 뒀다는 점이 이곳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비극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방문객들이 점차 늘고 있다.(1)

1916년 7월부터 12월까지 프랑스영국군과 독일군이 대치했던 접전지가 있는 프랑스 솜 주(州)에는 매년 20만 명이 찾아온다. 관광객의 약 60%가 코먼웰스 출신이다. 자기의 조부모와 증조부모가 겪은 일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이해하려고 찾아온 사람이 많다. 그렇지만 전사자와 혈연관계가 없는 성인이나 학생들도 많이 만날 수 있으며, 그 수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그들은 역사를 재발견하고 이해하려는 호기심으로 이곳을 찾는다.(2)

이전과는 다른 동기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 지역에서 사건을 기리고 전시회를 구성하는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 전시회는 이전보다 교육적인 성격을 띠게 됐고, 때로는 청소년층에 특화된 기획전이나 행사를 주최하고 다국어지원도 시작했다. 프랑스 리옹에 있는 레지스탕스와 강제수용소 역사관은 설립 20주년을 맞아 전시장을 새롭게 단장해 2012년 다시 문을 열었다. 이제 이곳에서는 당시 예술가들이 작업한 사진작품을 바탕으로 그 시절을 돌아볼 수 있다. 프랑스 노르망디에 있는 캉 기념관도 2012년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전투에 할애된 전시장에 참조문건, 입체지도, 당시의 물건과 증언기록물들을 보강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지역에 관심을 보이는 현상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낳지 않을 수 없다. 서로 다른 기대를 갖고 기념지를 찾는 관광객과 희생자 또는 희생자의 후손은 이 공간을 어떻게 공유할 건가? 무례한 행동은 어떻게 방지하고 죽음을 대하는 자세, 기억의 문화, 종교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을 어떻게 조율할 건가? 관광객과 견학을 온 학생들을 어떻게 맞을 건가? 마찰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우할 건가? 매년 150만 명이 방문하는 칼바도스 오마하 비치 미군국립묘지. 이곳은 끝없이 늘어선 흰색 십자가 사이에서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대규모 놀이터가 돼버렸다. 이곳에 전사자의 가족들을 위한 공간이 남아있을까?

추모지를 찾는 단체 관광행렬

사건의 직접적인 희생자와 그들의 후손들은 정작 관광객이 넘쳐나는 이곳을 더 이상 찾지 않는다. 그들은 개인적 비극과 밀접하게 관련된 특정 날짜에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에서 모이기를 선호한다고 브리지트 시옹은 설명했다.(3) 기자이자 연구원인 그녀는 베를린 유대인학살추모공원과 부에노스아이레스 기억의 공원 추모비 건립에 참여했다. 다른 사례를 든다면, 2014년 3월에는 24유로에 달하는 뉴욕 9.11추모박물관 입장료가 논란을 일으켰다. 추모를 위한 장소를 방문하는데 돈을 지불해야 하는 걸까?

전 세계적으로 추모시설을 세우는 일이 늘어나면서 유네스코에 비극적 사건과 연관된 장소에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해 달라는 신청이 증가했다. 1978년부터 1999년까지, 세네갈의 고레섬(노예무역 중심지, 1978년),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제2차세계대전, 1979년),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원폭 돔(겐바쿠 돔, 1996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로벤섬(아파르트헤이트 수용소, 1999년) 등이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네스코는 문화 간 대화와 평화를 도모하기 위해 설립됐다. 그런데 과연 전쟁과 학살과 잔혹한 역사와 관련된 장소가 유네스코의 설립취지와 개연성이 있을까? 게다가 객관적인 정황이나 비극적 여파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장소에 어떻게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부여할 건가?

유네스코가 추구하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등 10개의 기준 중에서 최소 한 개는 충족해야 한다.(4) 기념지의 경우 여섯 번째 기준을 만족시키느냐가 관건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기념지는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돼야 한다. 소피 와니쉬 역사학자는 “수백 명이 사망한 전장을 놓고 어떻게 실존하는 전통을 논하겠느냐”(5)면서 이 기준에 근거해 유산등록을 신청하는 건 가당찮은 일이라고 했다. 분명 얼토당토 않는 일이다.

그렇다면 기념지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의도에 무슨 속셈이 있는 건 아닐까? 프랑스가 세계유산인증을 받으려고 신청한 지역은 현재 두 곳으로, 제1차세계대전에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고 그들을 기리는 추모시설이 있는 서부전선과,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펼쳐진 해변이다. 서부전선은 벨기에 플랑드르 지방과 왈로니 지방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14개 주가 모인 단체의 지지도 있어서, 추가로 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다.(6) 각국이 신청할 수 있는 지역의 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유리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상자기사 참조)

서부전선의 경우에 세계유산 등재신청은 제1차세계대전 발발 백주년이 되는 시점과 때마침 맞아떨어진다. 제1차세계대전과 관련된 주요 지역 백여 곳이 등재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전쟁을 기억하는 작업에 관계된 일을 하고 퇴역군인을 상대하며 정무차관의 자문역을 수행하는 세르주 바르셀리니가 서부전선에 대해 발표하는 것을 듣다 보면 ‘마음이 끌린 관광객’, ‘잠재적 시장’이라는 표현에서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7)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방자치단체에게 있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정치적이면서도 경제적인 사안이라는 말이다. 카르카손의 역사적인 요새도시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듬해인 1998년에 이 지역을 방문한 관광객 수는 20%나 급증했다. 국경을 따라 요새화된 건물과 유적지 12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고 5년이 지난 2013년에 보방네트워크연합은 관광객이 평균 10~20% 증가했다고 밝혔다. 중세 유적도시가 2010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알비에서는 생세실성당 방문객이 2009년에서 2012년 사이에 23%나 증가했다.

목적도 분명하고 의도도 분명하다. 그러나 제1차세계대전의 경우에는 문제가 여전히 민감하다. 관련된 장소들에 내포된 비극의 정도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르셀리니는 이런 사실에 얽힌 복잡한 감정을 잘 요약한 바 있다. “마른은 제1차세계대전의 마른 전투와 샴페인 사이에서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샴페인 시장이 더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전쟁의 기억보다는 샴페인 거품을, 학살 대신에 취기를 선택한 것이다. 애초에 경쟁이 되지 않는 게임이었다. 풀리지 않은 의문이 부메랑이 되서 다시 돌아온다. 인류의 비통한 역사를 간직한 지역에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이 과연 올바른, 아니 적어도 적절한 일일까

아니면 기념지에 있어서는 관광이 맡는 역할과 위상이 전혀 없다고 부정해야 할까? 교육적 역할을 내세워 반론할 수도 있다. 곧 기념지를 방문하면서 학살이란 다시는 재발해서는 안 되며 끊임없이 극복하려고 애써야 하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다고 말이다. 특히 새로운 세대들은 기념지를 통해 배우고 깨달아야 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기억과 희생자의 시대는 지나가고 사건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역사의 시대로 접어들기 때문이다.

참호 속의 바캉스족

관광고등연구원(IREST) 소속 세바스티앙 자코는 장소의 보편성을 정하는 일도 쉽지 않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누가 결정하고 누가 선정하나요? 누구의 말을 들어야하지요? 주민들인가요? 아니면 전쟁 중에 활동했던 레지스탕스인가요?” 사실상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와니쉬는 “우리가 화해하려고 노력하는 일 중에서 절대 해소되지 않는 부분, 인간의 잔혹함이 남긴 흔적이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장소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고 한다거나 성지로 만든다거나 하는 일은 인간의 잔혹성을 부정하고 상처만 남길 뿐인 파괴욕구를 인정하지 않는 셈이 됩니다. 인간은 참을 수 없는 일의 흔적을 지우고 보지 않으려고 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죠”라고 설명했다. 둘러본다고 깨닫는 건 아니다. 어떤 장소가 ‘인간의 잔혹함을 돌아보게 하는 곳’이라고 선언한다고 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을 마주하는 것을 꺼리는 인간의 저항 심리를 누를 수는 없다. 후손에게 교훈을 전달하고 그들이 단순한 목격자 아니 구경꾼이라는 일차적 단계를 벗어나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와니쉬는 생각의 리듬에 맞춰 발걸음을 조절할 수 있는 코스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인류의 비극이 담긴 이 장소에 오면 눈에 보이는 것에서 벗어나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곳에 담긴 이야기를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도록 코스를 만들고 그 길을 따라 걸으면서 사색을 하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관계를 발 밑에서 느끼는 것이죠.”

우리가 기념해할 관광지란?

그렇다면 관광은? 관광업 종사자들은 희생자가 누구인지, 아픈 상처를 앞세워 관광객 유치를 극대화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역사의 한 장면을 돌아보는 일정’을 팔기 위해 비극을 전시한다. 그 비극을 만들어 낸 사람이 누구인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프랑스계 캄보다아인 감독 리티 판이 자신의 역작 <크메르 루즈 — 피의 기억>에서 크메르루주 고문관을 등장시켰던 대조적인 사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하면 관광을 몇몇 관계자를 위한 정치경제적 수단이 아니라 책임 있고 유익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을까? 자신을 알리고 소통하며 ‘자기 PR’을 할 줄 알아야 하는 현대사회에서, 상징은 콘텐츠나 콘텐츠를 전하는 매체보다 중요하다. 감정이 의미나 예의를 앞선다. 시대의 공백을 이벤트로, 기념일로, 200주년 기념식으로, 오마주로 채우는 오늘날, 각종 사건과 영광의 추억에 굶주린 대중에게 먹이거리로 던져줄 아이템의 목록을 작성하느라 지쳤다. 현재가 묻는다. 과거는 현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만 존재하느냐고.

 

글․쥬느비에브 크라스트르 Geneviève Clastres
주요 저서로는 <여행의 취향> (Gallimard Jeunesse, Paris, 2013) 등이 있다.

번역․서희정
한국외국어대통번역대학원졸. 역서로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있다.

(1) 이 기사는 ‘기념지를 세계유산으로, 탁월한 보편한 가치를 정하는 데 있어 관광의 위상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주제로 연구를 시행한 날을 계기로 작성됐다. 이 연구의 날은 Maria Grabari-Barbas가 주도해 프랑스 관광고등연구원(IREST), 유네스코 석좌프로그램 ‘문화, 관광, 발전’, 프랑스 파리1대학 관광업연구를 위한 학제간 모임(Eirest), 프랑스 세르지퐁투아즈 대학, 라발 대학(퀘벡), 트루아리비에르 퀘벡 대학과 함께 2014년 6월 24일에 열렸다.
(2) Marc Pellan (솜주 주의회 문화차장) 주도로 발행한 소책자 , www.somme14-18.com.
(3) Brigitte Sion, , Hermann, Paris, 2013 중에서 ‘Le Mémorial de la Shoah à Berlin. Echec et succès.’
(4) 유네스코 웹사이트(http://whc.unesco.org/fr/criteres)에서 조건 10개 모두 열람할 수 있다.
(5) Mireille Gueissaz와 Sophie Wahnich, , Kimé, Paris, 2000 ; Sophie Wahnich, , Editions des archives contemporaines, Paris, 2002.
(6) Aisne, Ardennes, Haut-Rhin, Marne, Meuse, Meurthe-et-Moselle, Moselle, Nord, Oise, Pas-de-Calais, Seine-et-Marne, Somme, Territoire de Belfort, Vosges.
(7) 연구의 날을 맞은 발표 중에서 인용. 다음 문단의 인용구도 마찬가지임.

 

명성에 걸맞은 유네스코 인증

프랑스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39개의 지역을 등재했다. 가장 최근에는 아르데슈 쇼베퐁다크동굴로 불리는 퐁다크 장식 동굴이 2014년 6월 등재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신청하려는 국가는 우선 향후 5년에서 10년 이내에 등록하고자하는 자연유산과 문화유산 목록을 작성해야 한다. 이 목록은 참고용이며 언제라도 업데이트할 수 있다. 신청서류를 꼼꼼하게 준비해 국가의 지원을 받은 단체가 접수한다. 쇼베퐁다크동굴의 경우에 퐁다크 동굴 연합회, 관청, 아르데슈 도의회, 론알프스 주의회가 힘을 모아 유네스코에 신청서를 접수했다.
매년 전 세계에서 약 50여개의 신청서가 접수된다. 각국은 회기별로 자연유산 한 곳, 문화유산 한 곳, 총 두 곳의 신청서만 제출할 수 있다. 세계유산센터가 신청서를 검토하고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독립 자문기구 2개에서 이를 평가한다.
1년에 한 번씩 정부간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려 최종적으로 어떤 곳을 세계유산으로 선정할지 결정한다. 중국 대운하, 네덜란드 반 넬레 공장,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이슬람의 성지 메카로 들어가는 관문인 제다 역사도시를 비롯한 문화유적 21곳과 베트남 북부 짱안 경관지구 등 자연유산 4곳과 멕시코 카라크물 고대 마야 도시와 열대우림이 복합유산으로, 2014년에는 총 26곳이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됐다. G.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