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화려한 고독

2015-03-04     웬디 크리스티아나센

“문제 제로.” 이는 터키의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이 내세운 이웃국가들과의 최종적인 정책 목표였지만, 아랍의 봄은 터키의 바람과는 다르게 모든 상황을 변화시켰다. 터키는 이제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및 이집트와도 냉랭한 관계에 처해 있다. 사상 최대규모의 대통령궁전을 공사하며, 오스만제국의 영광 재현을 꿈꾸는 터키의 권위주의 체제가 직면한 이같은 ‘존엄 속의 고독’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웬디 크리스티아나센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특파원

 

“터키의 기준은 윤리적이다. 터키의 지역정책은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가치들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는 모든 국가들이 동의해야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 터키인들은) 이슬람주의자인 모함메드 모르시 대통령에 대한 2013년 7월 3일의 쿠데타 발생을 실망스럽게 받아들인다.” 터키 정의개발당의 외교관계 부의장인 야신 아크타이처럼, 당 관계자들은 거의 모두 이집트와 터키정부의 “윤리적 기준”을 시작으로 대화에 나선다. “우리는 서방이 의도적으로 이집트의 새 체재를 고립시켰다고 생각한다. 서방은 민주주의의 학살, 즉 라비아 광장에서의 대량 학살과 미디어의 침묵을 앉아서 지켜만 봤다. 이는 이슬람국가(ISIS)가 탄생하고 세력을 확대하게 되는 길을 열었다는 걸 의미한다”고 아크타이는 주장했다.

아랍의 봄이 변화시킨 정치지형

워싱턴의 모르시 축출에 대한 침묵(그리고 쿠데타 세력에 대한 계속된 지원)은 터키 입장에서는 배신으로 여겨졌다. 모르시와 그의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긴밀한 지지자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그의 석방을 요구하고, 이어서는 정권을 장악한 현 정부를 비난했다. 터키 대사는 쿠데타 발생 바로 하루 다음날인 2013년 11월 23일에 이집트에서 축출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2014년 9월 24일 UN총회에서 행한 연설은 지속되어온 이집트와 터키의 대립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에르도안은 “이라크, 시리아의 살인자들과 이집트 민주주의의 학살자들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테러리즘 지지자라고 비난받았다”며, “속칭 민주국가라 불리는 국가들과 UN은 이런 비정상적 상황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바라보기만 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이집트 외무장관은 “무슬림 단체와 테러 조직에 대한 지지를 통해 중동지역에 분할과 혼란을 초래할 것을 갈망해 온 터키 대통령의 입에서 그런 거짓말과 날조가 나왔다는 건 전혀 낯선 일이 아니다”라며 반박했다.

그런데 2014년 8월 10일 직접선거를 통해 총리에서 대통령에 오른 에르도안은 미디어 조작에 능수능란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최근 그의 정적을 지지하는 언론인 등 27명을 체포하는 등 언론탄압에 나서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막힘없는 말솜씨, 특히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그의 연설은 일찍부터 아랍 세계에서 큰 호응을 얻어왔다. 물론 중동이 혼돈에 휩싸이면서 에르도안의 매력이 시들고 있지만 여전히 터키 국내에서는 그의 핵심 지지층들이 있다. 2015년 총선에서도 터키 유권자의 절반이 변함없이 에르도안에게 표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 의심할 여지없이 에르도안은 차기총선에서 ‘강력한’ 대통령제로 헌법개정을 할 수 있을 만큼 압도적 승리를 갈망하고 있다.

에르도안은 정의개발당 외교정책의 설계자인 아흐메트 다부토글루를 그의 측근으로 두고 있다. 정치인이 아닌 학자 출신의 다부토글루는 정의개발당이 첫 집권한 2002년 11월 3일 수석외교정책자문위원으로 정계에 데뷔했으며, 2009년 3월에는 외교장관으로 부상했고, 에르도안이 대통령이 되면서 정의개발당 당 총재이자 총리가 됐다. 때때로 두 사람은 서로 어긋나기도 하지만, 다부토글루는 에르도안이 신뢰할 수 있는, 그리고 터키의 미래에 대해 야심찬 청사진을 가진 탁월한 이론가로서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건재하고 있다. 그는 다른 정치인들이라면 3~4기 재임기간에 완료할 수 있는 일을 해내고 있는데, 이런 이유 때문에 정의개발당의 프로젝트 수행에 있어 절대적인 파워를 지닌 실력자로 꼽힌다.

현재, 터키에서는 6억 1,500만 달러의 거액을 투입해 세계최대 규모의 대통령관저로 기록될 ‘아크 사라이’(하얀 궁전) 공사가 진행 중이다. 1,100여개의 방을 갖추게 될 이 대통령관저는 최근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 중인 ‘새로운 터키’라는 통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건설되고 있다. 중앙집권주의와 권위주의에 정치적 기반을 두고 있는 ‘새로운 터키’는 표현과 집회결사의 자유 금지, 비판적 언론인 해고, 트위터와 유투브 활동에 대한 통제 시도 등으로 자유권적 기본권을 질식시키고 있으며, 이슬람적인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금주, 교육 간섭 등 국민의 일상적인 삶에 개입하려 하고 있다. 2013년 여름, 이스탄불 중심가인 탁심 지역의 게지공원에서 시위가 발생한 이후 터키 당국의 통제는 더욱 강화되어 시민들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1)

에르도안의 통치 프로젝트인 ‘새로운 터키’는 오스만제국의 위대한 유산을 불러일으키려는 목적에서 나왔고, 또한 이슬람 수니파에 대한 강력한 후원자로서 터키를 자리매김시킨다(심지어, 2014년 12월 5일에 보도된 것처럼 오스만제국의 언어를 고등학교 의무교육과정으로 도입하려는 움직임까지 있었다). 이런 모든 조치들은 이슬람세계의 통합을 꿈꾸면서 글로벌 강국으로 부상하려는 다부토글루의 터키에 대한 장기적 비전과 일치한다. 이스탄불에 소재한 마르마라 대학의 베흐륄 외즈칸 국제관계학 교수는 다부토글루의 초기 저작, 특히 그의 저서 <전략적 깊이>를 발췌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2) “터키는 평범한 국민국가가 아니다. ‘오스만제국 문명의 중심국’이다. 터키는 오스만제국의 청산 이후 나타난 권력의 공백을 메우는 정치의 중심지가 되어야 한다”.(3)

오스만제국의 부활은 언어교육부터

다부토글루는 터키가 현대적 터키공화국의 설립자인 아타튀르크(Atatürk) 체제하에서 “오스만제국 문명의 중심국이 되기보다, 세계를 지배하는 서구문명의 안보우산 아래에서 주변부의 일원이 되려는 그릇된 선택을 했다”고 믿는다. 그는 “서구사회 가치의 위기”를 비판한다. 그는 “서구사회는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자신들의 사상을 다른 문명에 강요하려는 지배적 욕구를 갖고 있으며, 그 욕구를 억제하는 종교적 가치조차 결여되어 있어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부토글루가 디자인한 터키의 대외정책은 아랍 지역 내 ‘선린정책’과 ‘소프트 파워’를 내세우고 있다. 압둘라 귈(2003~2007년) 전 외교장관은 유럽연합(EU) 가입을 정책우선으로 삼고, 시리아, 중앙아시아, 키프로스와의 관계개선에 역량을 집중했던 반면에, 다부토글루는 아랍세계와의 관계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그의 이런 외교적 접근은 전적으로 실용적인 관점을 반영한 것이었다. 예를 들면, (다부토글루의 조언을 따르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과 휴가를 보내면서 그를 두고 “아사드, 나의 형제”라고 칭했으며, 리비아의 전 지도자 무아마르 가다피로부터는 인권상을 받았다. 다부토글루의 주도 아래, 중동 전역과 카프카스 산맥을 둘러싼 국가들, 아프리카 지역 등에 대한 경제협력이 활성화되고 조약이 체결됐으며, 국경은 개방되고, 비자 요건은 폐지됐다.(1) 외견상, 터키에 있어 이들 지역의 국가들과 정치경제적으로 신뢰를 구축하려는 주요 목적은 달성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때 아랍의 봄이 찾아왔다. 다부토글루는 이슬람주의자 그룹들이 권력을 잡고 유지할 것이며, 터키가 그들을 지원함으로써 중동의 주도권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더욱이 터키가 튀니지의 알나흐다당과 이집트․시리아의 무슬림형제단에 대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고, 동시에 터키가 중도 이슬람세력의 모델국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서구의 전망은 의심할 여지없이 중동의 맹주로 자리 잡으려는 터키의 야망을 고양시켰다. 하지만 터키는 예상과는 달리, 리비아에 대해 양국 간의 긴밀한 경제적 결속을 고려하면서도(당시 무역, 투자, 계약 분야가 약 150억 달러 규모였다), 서구의 중재에 가담하는 것을 꺼려해 주도적 역할을 행사할 것을 주저했다.

낭만적인 터키의 판단 착오?

자유주의 학자인 아흐메트 인젤은 말한다. “2011년까지 다부토글루의 외교적 책략은 낭만적인 면이 있었다. 우리는 그의 생각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터키는 이집트, 시리아, 이스라엘과 어떤 외교적 관계도 맺고 있지 않다.” 초기의 이스라엘과의 긴밀한 관계에도 불구하고(터키는 이스라엘과 시리아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에르도안 집권 이후 양국 간에는 일련의 대립적 사건이 이어졌다. 에르도안은 2009년 1월 29일 다보스에서 이뤄진 TV 토론에서 이스라일이 팔레스타인인을 죽이고 있다고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을 비난했다. 또 이 무렵 가자지구 주민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수행하던 터키 국적 소함정인 마비 마르마라호를 이스라엘이 공격해 9명의 터키 국적 활동가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2010년 5월31일) 함대의 침몰로 인한 배상문제를 놓고 매우 공개적인 대립이 이어졌다. 결국 양국의 대립관계는 최근(2014년 12월 2일), 이스라엘의 국방장관이 터키를 “하마스의 실질적 후원국”이라고 비난하는 지경으로까지 악화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아마 아랍세계 이외의 정부 중에서 터키만이 하마스를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파타당(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주류 온건파)이 이끄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에 대해 터키가 불공평하게 대우하고 있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부정했다. 터키정부의 이런 입장은 하마스가 장악하고 있는 가자지구에서 뿐 아니라 역시 터키에서도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터키와 이스라엘 양국 사이의 교역과 관광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터키는 국경을 880km 접하고 있는 시리아의 위기 때문에 160여 만 명의 시리아 난민을 수용해야 했고, 또한 이로 인해 30억 달러의 구조비용을 쏟아 부어야 했다. 미국이 이슬람국가(ISIS)를 주적으로 보고 있다면 터키의 주적은 시리아의 아사드 정부다. 터키는 비록 남부 국경의 안보를 강화함으로써 반ISIS 전선에 동참하라는 국제적 압력에 답했지만, ISIS의 코바니 접수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8월 실시된 미국 주도의 군사동맹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기를 꺼렸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5). 터키는 실질적으로는 투크르 지역을 ISIS가 점령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고, 그로 인해 미국이 시리아 쿠르드족의 주요 정치동맹인 민주동맹당(PYD)과 접촉하는 것을 주시하고 있다. PYD는 미국과 유럽연합에 의해 ‘테러리스트들’이라고 낙인찍힌 터키의 쿠르드족 분리주의그룹인 쿠르드노동당(PKK)이 시리아에서 세력을 확장하면서 결성한 정치단체다. 그들은 지난 36년 동안 터키정부와 무장 투쟁을 벌여왔다. 그러나 터키정부는 이제 이들과 지극히 중요하고 비밀스런 평화 협상절차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이집트 뿐 아니라 시리아에서 벌어진 일련의 실망스런 사태로 다부토글루의 외교정책은 큰 타격을 입었다. 기대와 달리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정권을 잃지 않았으며 보다 강경한 반아사드그룹들의 세력이 터키정부가 후원하는 민주적인 반아사드파들을 압도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과 이란은 어떤 세력을 지지하지 않는 것이 외교적으로 유리하다는 정세판단을 내렸으며, 실제로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이스탄불의 카디르 하스 대학 국제관계학 교수인 솔리 외젤은 정의개발당의 현 외교정책을 비판한다. “정의개발당은 자유시리아군과 여타 민병대단체들에 대한 통제에 실패했으며, 이는 터키를 자국 내에 탈레반이 활개를 치는 파키스탄과 같은 상황으로 내몰았다. 아사드와 싸운다면, 어떤 그룹과도 동맹을 맺었다. 심지어 터키 국내에서 알카에다 계열의 무장단체인 알누스라와 ISIS가 병력을 모집하고 있다는 사실을 목도하고서도 무시했다.”

그러나 터키가 ‘외교적 고립’을 선택할 만큼 대외상황이 녹록할까? 이집트를 살펴보자. “관계는 비대칭적이다.”라고 이스탄불 퀼튀르 대학의 멘수르 아크귄 교수는 말한다. “터키는 이집트의 항구와 시장을 필요로 하지만, 이집트는 자신들이 원하는 어느 곳으로부터도 물건을 들여올 수 있다. 우리는 수출은 물론 외교적 입장을 고양시켜야 한다.” 그의 이런 주장은 침체에 빠진 터키 경제와 함께 다른 분야에서도 사실로 입증되고 있다.(2014년 터키의 경제 성장률은 4%에서 3.3%로 떨어졌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터키의 경제성장률은 9%에 달할 정도로 견실했다.)

터키의 지역정책은 계속해서 오스만제국의 유산과 수니 이슬람에 기반한 ‘새로운 터키’라는 비전을 도모할 것인가? 편리하게 통계조작으로 음울한 터키의 경제 실상을 덮어버릴 수 있지만, 확실히 중동지역의 이슬람주의자 운동은 여전히 세력확장을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 정교분리 세력 간의 게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현재로서 에르도안은 여전히 터키국민의 거의 절반이 그의 비전에 공감하고 있으며 그의 정책으로부터 혜택을 받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믿음직한 야당이 부재하는 가운데 게지공원에서 반(反)에르도안을 외치는 나머지 절반의 터키인에게 있어 현재의 터키는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다. 에르도안이 과거에 포용적인 터키를 약속하면서 2002년에 처음 손을 잡은 정의개발당의 자유주의적 중도우파자들이 그의 점증하는 권위주의적 통치체제에 조만간 인내심의 바닥을 들어낼 가능성은 또 없을까?

 

(1)BBC 뉴스 유럽, 런던, 2014년 11월 5일.
http://www.bbc.co.uk/news/world-europe-29912398.
(2) 아흐메트 다부토글루, ‘전략적 깊이’ , <퀴레 야인라리>, 이스탄불, 2001년.
(3) Behlful Ozkan, ‘터키, 다부토글루와 범이슬람주의 이념’, , IISS, 런던, 2014년 8-9월
(4) Wendy Kristianasen의 ‘터키의 소프트파워 성공’,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영어판, 2010년 2월 기사 참조.
(5) <휴리엣 데일리 뉴스>(Hurriyet Daily News), 이스탄불, 2014년 12월 7일.
http://www.hurriyetdailynews.com/and-here-comes-iran.aspx?PageID=238&NID=752617NewsCatID=466 (6)Allan Kaval의 ‘쿠르드족의 변화하는 동맹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영어판, 2014년 11월자 기사 참조.

글․웬디 크리스티아나센 Wendy Kristianasen

번역․김희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