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란스니스트리아, 동서경쟁의 새 불씨

2015-03-04     장 말링

우크라이나와 몰도바가 서방과의 교류를 꿈꾸는 가운데, 이들 양국 사이에 낀 분리독립을 선언한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심지어 국제사회로부터 독립국가로 인정도 받지 못한 이 작은 국가가 문제가 생길 때마다 러시아에게 지원을 요청하며 22년 째 서방국가의 프로젝트를 가로막고 있다. 이름도 생소한 트란스니스트리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장 말링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미래는 러시아와 함께!”란 유라시아 경제연합의 울긋불긋한 포스터가 트란스니스트리아, 또는 ‘드네스트르의 몰도바공화국’이라 불리는 국가의 수도 티라스폴을 운행하는 무궤도전차 옆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슬로건은 이 국가의 공식언어인 러시아로 쓰여 있다. 슬로건 위쪽엔 아빠, 엄마, 아이, 즉 이 지역의 한 식구가 방어 요새의 면모를 띤 크렘린의 실루엣을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는 그림이 실려 있다. 마치 여행객들이 포스터 속을 드나드는 것처럼 보인다. 이어 전차는 1917년 러시아혁명 당시 만든 ‘10월 25일 대로’, 즉 도시의 주요 간선도로 끝 쪽으로 모습을 서서히 감춘다.

국제사회에서 인정 못 받는 작은 국가들

지난 3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계기로, 소련연방이 붕괴될 때 분리독립은 했지만 국제사회부터 인정받지 못한 많은 국가들은 ‘냉전’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일부 정치 평론가들은 지난 6월 조지아, 몰도바, 우크라이나 등이 유럽연합과 협력관계를 체결한 사실에 발끈한 러시아가 압하스, 남오세티, 트란스니스트리아를 한꺼번에 합병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러시아는 비록 합병 대상 국가의 국민이 자국과의 합병에 적대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영토 확장에는 몸을 사린다. 2006년, 트란스니스트리아 유권자의 98%는 이미 국민투표를 통해 “러시와의 통합 가능성”에 찬성표를 던졌다. 비록 이 국민투표가 국민이 50만 명에 불과한 국가의 대통령인 이고르 스미르노프의 주도로 토론도 없이 일방적으로 실시되긴 했지만, 국민 대부분은 이 의견에 공감하는 것처럼 보인다.

드네스트르 강 건너편 동쪽 강변에는, 러시아 군복을 입은 채 검문소를 지키고 있는 군인들이 자주 눈에 띈다. 이들은 1992년에 몰도바 정부군과, 우크라이나의 드네스트르 강 사이에 있는 손바닥만 한 영토의 슬라브어권(1) 반군세력(트란스니스트리아) 간에 벌어진 전쟁 이후, 트란스니스트르리아와 몰도바 군인들과 함께 이 지역 평화유지군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트란스니스트리아의 반군은 분리독립을 선언한 이후, 헌법, 국기, 국가, 국가문장 등을 채택했다. 이 ‘공화국’은 자신만의 정부, 의회, 군대, 경찰, 우편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유엔(UN) 회원국 중 어느 국가도 이 나라를 독립국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1945년부터 1991년까지, 드네스트르 강 동쪽은 구 소련에 속한 15개 공화국 중 하나인 몰도바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에 편입되어 있었다. 1990년 6월 소련연방이 해체의 길을 걷고 있을 당시, 슬라브어권 국민은 몰도바 의회가 루마니아어를 자국의 유일한 공식 언어로 지정하는 법안을 채택한 데 반발해 반란을 일으켰다. 한편 우크라이나에선 2014년 2월 23일 키예프의 메이단 광장의 시위로 내각이 새로 구성되었지만, 바로 이튿날 최고회의가 러시아어를 지역 공식언어에서 배제시키는 똑같은 실수를 번복하자,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은 이를 도발로 간주하고 내전을 일으켰다. 오늘날의 우크라이나에서처럼, 과거 몰도바에서도 이러한 법안들(지역 공식언어 채택)이 정치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이로 인해 인종이 다른 지역들 간에 내전이 발발했다.

1992년 3월, 몰도바의 민족주의 세력은 주민의 60%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국민인 트란스니스트리아 점령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들은 같은 해 6월 패퇴했다. 이들이 패퇴한 데에는 드네스트르 강 동쪽 티라스폴에 사령부를 둔 소련의 전 14연대 군인들의 공이 적지 않다. 1992년 7월 21일, 휴전협정이 체결되며 전투는 종식 되었지만 분쟁이 끝난 건 아니어서 이후에도 ‘냉전’은 지속되고 있다. 현재, 현지에 주둔하고 있는 러시아 군의 규모는 대략 2,000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이 중 400~500명 정도는 1992년 체결한 협정에 의해 파견된 평화유지군이다. 그밖의 군인들은 과거 구소련군의 뒤를 이어 몰도바에 주둔하고 있는 러시아 작전부대(GOFR)에 배속되어 있다. 키시너우(몰도바의 수도)와 대부분의 서방국가들은 이들의 몰도바 주둔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다. 반대로 모스코바는 냉전의 흔적인 수많은 군장비들을 지키는 데 GOFR가 절실하다며 이들의 몰도바 주둔을 정당화하고 있다. 이들 장비들은 주로 몰도바 북부 콜바사에 남아 있다. 몰도바에 공식 주둔하고 있는 러시아군은 “조지아와 몰도바를 조속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시키고 싶어 하는”(2) 미국 상원의원 존 매케인을 비롯한 일부 서방 정치지도자들한테는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

냉전 중이거나 ‘전쟁 중인’ 국가의 NATO 가입을 가로 막는 규칙은 전혀 없다. 하지만 조지아, 우크라이나, 몰도바 등이 NATO가입을 신청한다 해도, NATO 회원국들은 이 국가들이 떠안고 있는 분쟁요인들에 대한 전반적인 해결책을 찾아내기 이전에는 이들의 NATO 가입을 만장일치로 절대 승인하지 않을 것이다. 다수의 회원국들은 NATO조약 제 5조, 즉 NATO 회원국 중 한 국가가 공격을 받으면 상호 공조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섣불리 분쟁에 뛰어들면 NATO가 위험하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모스크바의 선심에 러시아와 합병여론 커져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할 때 티라스폴은 러시아와 합병하고 싶다는 의견을 또 다시 전달했다. 2014년 3월 18일, 트란스니스트리아의 국회의장 미하일 부를라는 러시아의회 두마(Douma)의장인 세르게이 나르슈킨에게 서신을 보내 자국을 러시아에 공식 합병시켜달라고 요청했다. 러시아는 이미 이 작은 공화국에 가스공급을 아낌없이 해주고 있고, 이곳에 거주하는 러시아 국적 퇴직자들에겐 연금까지 지급하고 있다. 사람들은 트란스니스트리아 국민의 대략 35%에 해당하는 18~20만 명이 러시아 여권을 소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부를라의 이 같은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데자 지니(60) 부인은 모스코바로부터 연급을 지급 받는 수혜자 중 한명이다. 두꺼운 스웨터를 차려입는 그녀가 티라스폴의 한 구역인 발카에 있는 뜰을 빗자루로 분주히 쓸고 있다. 그녀가 힘찬 비질로 가을의 마지막 낙엽을 긁어모은다. 노란 낙엽이 갈라진 콘크리트 틈새의 흑색과 대조를 이룬다. 노부인은 하던 일손을 멈추고 “이곳 사람들은 러시아 편이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삶에 대해 얘기를 부탁하자, 지니 부인은 “정상적이다. 우리는 아주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고 답변한다. 그녀는 우크라이나 오데사 출신임에도 스스로를 러시아인이라 여긴다. 트란스니스트리아에서 남동쪽으로 100km 떨어진 지니 부인의 고향 오데사에는 아직도 그녀의 일부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다. 그녀는 과거 티라스폴에 위치한 방직공장에서 일을 했었고, 그녀의 딸은 러시아 스몰렌스크에 정착해 살고 있다.

구소련 지역을 돌아다니며 우유를 판매하고 있는 발렌티나 보이코(53) 부인은 “트란스니스트리아가 몰도바보다 살기 좋다”고 말한다. 티라스폴 쪽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부인의 말에 공감한다. 왜냐하면 몰도바가 독립한 이후, 천정부지로 치솟은 도시 서비스의 비용이 고스란히 극빈층의 몫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현재, 몰도바인의 62%는 유럽과의 협력관계체결도 이와 유사한 결과를 낳아 생활비 인상을 유발시킬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3) 이런 여파로 인해, 지난해 11월 30일에 치른 국회의원 선거에서 친러시아 정당들은 비록 39%의 득표율로 44%의 득표율을 보인 친서방 정당들에게 근소한 차이로 석패했지만 기대 이상의 좋은 성적을 거뒀다. 트란스니스트리아 국민들은 러시아가 아낌없이 제공하는 재정지원 혜택을 누리고 있다. 소련연방의 산물인 사회주의 모델과 민간업체가 주도하는 경제정책의 혼합물이 트란스니스트리아의 경제모델이다. 예컨대 러시아가 비용을 부담하는 복지시스템과 이전의 '형제국가들(소련연방국들)'에서 발전된 경제구조와 흡사한 과두제의 특성을 지닌 경제시스템이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일례로, 유통기업 셰리프(Sheriff)가 도·소매업을 독점하고 있다. 특히 부유한 사업가인 이 회사의 사장 빅토르 가우찬은 트란스니스트리아에서 주유소와 슈퍼마켓 등을 소유하고 있어, 이 기업의 로고가 사방 어디에서나 눈에 띈다.

트란스니스트리아의 경제는 철강, 시멘트, 방직, 발전소 산업을 기반으로 한다. 정치측면에서 볼 때 고립된 영토이지만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왜냐하면 4개 부분의 주요 공장이 생산하는 양의 95%가 해외로 수출되고 있기 때문이다.(4)

‘짝사랑’ 러시아에 합병 요청하나, 묵묵부답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주요 파트너는 몰도바, 러시아,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이탈리아 등이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또한 독일, 오스트리아, 그리스에도 수출한다. 하지만 트란스니스트리아의 경제는 자급자족과는 거리가 멀다. 러시아가 공급한 가스를 소비자들에게 재판매해 얻는 수익, 해외 이주 노동자들이 송금하는 돈, 그리고 모스코바가 직접 지원하는 재정이 없다면, 국가는 파산할 것이다. 트란스니스트리아의 분리독립과 동시에 재정지원을 시작한 러시아는 이후 지원의 강도를 한층 더 높였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러시아로부터 대략 연간 270만 달러를 지원받아 퇴직연금 지불과 극빈층을 위한 음식비로 썼다.(5)

유럽연합과 NATO에 구 소련연방 국가들이 가입하는 걸 차단해 이들의 팽창을 결사적으로 막고 싶어 하는 러시아에게 있어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지형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지역이다. 우크라이나 국가전략연구소 오데사지부 소장인 아르템 플리아펜코는 “트란스니스트리아인들은 분명 친러시아 성향을 지닌 자들이다. 이들의 지도자들은 몰도바와 유럽연합 간 협력관계체결이 자국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긴다”고 했다. 바르샤바 동방연구센터의 연구원 카밀 클라우스는 러시아가 트란스니스트리아 뿐 아니라, 2014년 4월 7일과 27일 각각 분리 독립해 스스로 도네츠크(DNR)와 루간스크(DNR) ‘인민 공화국’이라 선언한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국가들에서도 같은 전략을 쓰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모스코바는 트란스니스트리아의 독립이나 러시아로의 병합을 원치 않는다. 반대로 러시아는 트란스니스트리아가 몰도바연방국으로 남길 원한다. 예컨대 러시아는 몰도바가 서방 쪽으로 돌아서려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트란스니스트리아를 이용해 몰도바 전체를 장악하려는 속셈이다. 돈바스의 새로운 공화국들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러시아는 이 공화국들이 우크라이나연방국으로 남아있길 바란다. 러시아는 이들을 이용해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과 NATO 가입을 저지시키려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2003년의 ‘코작 양해각서’(6)는 러시아의 전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분쟁 해결책을 제시한 이 양해각서에 따라, 트란스니스트리아는 키시너우의 모든 중요한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했을 것이다. (양해각서는) 이같은 거부권을 보장하기 위해 향후 몰도바연방공화국의 창립을 지지하는 트란스니스트리아와 가가우지아 그리고 분리독립을 추진하는 기타 지역 등이 몰도바의 상원 26석 중 13석을 지명할 수 있도록 했다. 양해각서는 또한 몰도바연방국가가 창립되면 초기부터 2020년까지 이 국가의 영토에 러시아군이 배치되는 일을 합법화했다. 클라우스는 몰도바가 이러한 상황 속에선 유럽연합이나 NATO에 결코 가입하지 못할 것이라 했다.

지난해 3월 30일, 러시아는 이미 이 같은 전략을 우크라이나에도 적용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당시 러시아 외무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는 “미국과 유럽의 미국 협력국가들은 우크라이나가 동남부 러시아권 지역에 광범위한 자율권을 부여해야한다”(7)고 말했다. 그러나 2014년 12월 핀란드 국제문제연구소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정부는 당시 분권화를 준비하고 있어, 지자체의 힘은 확대시키되 국가의 헌법구조는 변경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8)

하지만 현재의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전쟁으로 황폐화된 돈바스 지역(우크라이나공화국 동부 도네츠강의 남서 지역-역주)과는 거리가 멀다. 돈바스 지역의 인구는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인구보다 10배나 많고, 또 러시아와 국경을 이루고 있지만 러시아군이 공식적으로 국경을 지키고 있지도 않다. 뿐만 아니라 트란스니스트리아와 달리, 우크라이나를 관통하는 주요 가스송유관은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영토를 통과하지 않아, 친러시아 성향의 우크라이나인들은 쥐고 있는 뾰쪽한 협상 카드도 없다.(9) 예컨대 돈바스가 트란스니스트리아보다 훨씬 더 절실히 러시아로부터 군과 재정지원을 바랄 것 같다. 이러한 모든 요인들은 돈바스 지역을 냉전 속에서 관리하기 힘든 지역으로 만들고 있다. 하지만 트란스니스트리아의 경우, 러시아가 서방의 견제 때문에 전략적 이득을 취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비교적 흡족해하면서 그 불확실성을 지켜보고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글·장 말링 Jens Malling

번역·조은섭 chosub@hanmail.net

(1) 최신인구조사(2004)에 따르면, 트란스니스트리아 국민은 러시아계 30,4%, 우크라이나계 28,8%, 불가리아계 2%, 폴란드계 2%로 구성되어 총 63,2%가 슬라브계이다. 몰도바계는 31,8%, 가가우지아와 소수 터키 기독교인들은 2%로 소수민족을 형성하고 있다.
(2) ‘Obama, We will stand with Ukraine’, , 2014년 3월 12일, www.voanews.com.
(3) Mila Corlateanu, ‘The Republic of Moldova, Lost in geopolitical games’, , 2014년 2월 19일, www.neweasterneurope.eu.
(4) Kamil Calus, ‘An aided economy. The characteristics of the Transnistrian economic mod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