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블루스의 호소

2015-03-04     자크 드니

흑인 노예 문제로 말미암아 흑인 노예에게서 탄생한 문화가 있다. 바로 블루스 음악을 말한다. 전설에 따르면 블루스는 악마의 음악이라고 한다. 위대한 블루스 음악의 대가 로버트 존슨은 방황하다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예술가로의 영광을 누렸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 전설은 1960년대 인종차별 반대에서 나온 낭만주의에 매혹된 철없는 젊은이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 1936년에 음반으로 발표된 지방 블루스를 대표하는 유명한 노래 ‘크로스로드 블루스’는 흑인에 대한 모욕과 차별이 일상이던 딥 사우스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겪는 고단한 삶을 주제로 다룬다. 더구나 일상은 루시퍼와의 관계보다는 전지전능한 신과의 관계에서 영향을 받는다.

윌리엄 페리스의 음반(1)은 블루스 매니아에게는 바이블 같은 작품이다. 1942년 미시시피에서 태어난 저자는 사진작가이자 대학교수, 영화감독으로 1960년대 초부터 근 20년 동안 녹음기와 사진기를 들고 자신이 자란 미시시피의 여기저기를 다니며 침묵을 강요당한 말을 수집했다. 당시 흑인들은 마침내 시민권을 얻은 때였다. 그러나 거대한 미시피피 강의 구불거리는 물줄기 속에 파묻힌 말은 완전무결한 신념을 나타내고 있었다.

“내가 들었던 호소는 민족을 탈출시키기 위해 이집트로 돌아가야 하는 모세의 호소처럼 들렸다.” 로즈 힐 교구의 목사 이삭 토마스가 한 초기 연설이 분위기를 더 한다. 신자 중 한 명인 메리 고든은 밭에 있을 때 창조주를 찬양한 이후 좀더 이교도적인 노래 <당신은 자유로울 거야>를 부른다고 고백한 바 있다. <당신은 자유로울 거야>는 노예 부모를 둔 메리가 포식자인 백인 주인들을 풍자하는 노래다. 수집된 증언들에서는 지옥에 대한 묘사가 다각적으로 나타난다. 페리스의 마이크 앞에서 유명 예술가 몇 명과 많은 무명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인생, 공동체와의 관계,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이들 모두 블루스의 뿌리, 그러니까 아프리카계 미국인 음유시인들의 미신이 백인 압제자들에 대한 분노를 넌지시 표현하고 음악 덕분에 구원 해방의 길을 발견한다는 사운드트랙을 구체화한다.

미국은 북부에서든 남부에서든 흑인들의 삶은 수난이었다. <미국 노예>(2)라는 제목의 CD 세 장 시리즈가 알려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여기서 블루스는 그 뒤를 잇는 소울 뮤직, 재즈, 펑크처럼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시민권을 위한 투쟁을 음악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백인 대농장주 시스템을 비판하는 것은 블루스, 소울 뮤직, 재즈, 펑크만이 아니다. 칼립소는 블랙 유머를 내세우고, 마이티 스패로우의 <노예>처럼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침묵하지 않겠다는 이러한 의지는 신비한 힘을 지닌 음악과 연결이 되어 브라질 종교의식이 혼합된 것 같은 음악과 쿠바의 산테리아 음악처럼 새로운 형태로 나타난다. 이같은 음악 형태는 추방된 많은 사람들이 겉은 기독교의 성인 가면을 쓰면서 속으로는 자신만의 신전을 가질 수 있게 해 준다. 기억이 지속되면 저항이 따른다. ‘그들은 고집스러운 목소리와 독특한 악기로 음악을 완전한 예술 반열에 올려놓고 있다’ 크리스티안 토비라 프랑스 법무장관이 <미국 노예>의 소개문에서 강조한 내용이다. 에릭 빕(3)이 <참여 음유시인>이라는 앨범을 통해 상기시켜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앨범에 수록된 15곡은 선배 음악가들의 철학을 인용해 현재 혼란스러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상황에 대해 질문하고 정부에게 새로운 길을 모색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블루스의 혁명은 계속 된다.

 

(1)William Ferris, (미시시피강의 목소리), PapaGuédé, 파리, 2013년.
(2), Frémeaux&Associés, Boissy-sous-Saint-Yon, 2014년.
(3)Eric Bibb, , Dixiefrog, 르퇴이, 2013년.

글·자크 드니 Jacques Denis
언론인이자 문화비평가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등 진보 매체에 주로 문화 관련 비평 기사를 게재하고 있다.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졸. 번역서로는 <프랑스 엄마처럼>(2014) 등이 있다.

 

서평단신

<일본의 증발자들> / 레나 모제, 스테판 르묄

빚, 해고 혹은 실패로 인한 수치심을 피하기 위해, 삶의 기준이 표준화된 사회에서 탈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본인들을 그리고 있다. 일본에서는 괴롭지만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익명을 추구하며 사라지는 걸 선택하는 사람이 매년 8만-10만 명에 이른다. 도쿄, 오사카, 나고야 외곽의 게토 지역에 숨어서 지내는 이러한 사람들을 몇 명 찾아낸 저자 레나 모제는 이들이 야쿠자에게 고용되어 단순직을 하며 안전 사각 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처럼 비밀스럽게 숨어 살면서 이들은 자연스럽게 말이 없어지고 자기 틀에서도 잘 나오지 않으려 한다. 스테판 르묄의 사진들은 이들을 대도시의 군중 속에서 사라져 외딴 곳에서 방황하는 유령처럼 묘사하고 있다. 이들은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과 2008년 경제위기와 가혹해진 사회질서로 말미암아 희생양이 된 사람들이다.

<싱가포르 속 태국 이주노동자들의 벌거벗은 삶> / 파타나 키티아르사

1819년 건국 시기 때부터 싱가포르는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으로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현재 싱가폴의 노동자 중 59%가 외국인 노동자다. 태국의 인류학자 파타나 카티아르사는 싱가포르에서 살아가는 태국 남성 노동자의 삶을 7년 동안 가까이 지켜봤다. 저자인 카티아르사는 싱가포르에서 일하는 태국 남성 노동자들은 경제적인 문제 이외에도 불안한 위치로 마음고생이 심하다는 현실을 고발한다. 노동 비자를 가지고 있지만 기간이 끝나면 언제 추방될지 모른다. 이들의 삶을 가리켜 저자는 ‘벌거벗은 삶’이라고 표현한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이들은 가족이 그립지만 싱가포르에서도 적응해 나가야 한다. 특히 이들은 대만의 서민 문화(음주, 흡연, 돈놀이 등)에서도 헤어나오지 못하는데, 이러한 삶을 통해 자신의 남성성을 회복하고 동시에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가정부들과도 밀회를 하게 된다. 이런 일탈적인 삶은 자국으로 돌아가면 끝나겠으나 이미 발을 너무 깊게 담가 빠져나가지 못 하는 경우도 있다.

<구입된 시간에 관해> / 볼프강 스트레크

1960년대 말부터 오늘까지 전후 재분배 사회주의 정부에 맞선 초기 자본주의에서 시작된 자본주의의 변화상을 그리고 있다. 독일 사회학자인 저자는 자본주의를 정당화하는 위기에 대해 비판적인 이론을 제시한 위르겐 하버마스의 사상을 이어 받았고, 이 책에서 자본주의의 변화상을 세 시기로 나누어 설명하며 시간에서 자본을 사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 세 시기는 화폐 탄생과 인플레이션1970-1980년), 공공 부채(1980-1990년), 그리고 개인 대출(1990-2000년)이다. 현재의 위기는 정부와 가계가 계속 지게 된 부채의 피라미드가 깨져 자본에게 유리한 상황이 되어서라고 보고 있다.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게 되었다. 유럽의 통화 연합이 이를 잘 보여준다. 저자는 국가 민주주의가 자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사회적인 진보를 이루려면 유로화에서 탈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달러와 국제 통화 시스템> / 미셸 아글리에타, 비르지니 쿠데르
‘달러는 우리의 화폐이지만 여러분의 문제이기도 하다.’ 1970년대 미국의 존 코널리 재무부 장관이 했던 말로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상태다. 2014년 2월, 미연방준비은행은 집중적으로 채권을 구매했다. 그 결과 신흥국들은 자본의 유출을 막기 위해 금리인상을 단행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성장 둔화에 빠지게 되었다. 이 책은 1967년부터 시작된 국제 통화 시스템 개혁의 실패와 세계경제가 받게 된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브릭스(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가 설립한 신개발은행은 이들 경제권의 성장을 지원했다. 두 저자는 브레튼우즈 체제(1944년) 때의 케인즈 부양책의 철학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한다. 통화 협력 지역권을 제도화하고 금융규제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인간은 이렇게 살아가는가?> / 클로드 알모
경제 위기와 실업 문제를 다루는 책은 많다. 그러나 이번 책은 심리분석가인 저자의 독특한 분석이 담겨 있다. 저자는 아버지의 실직을 경험한 아이는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해도 상당히 위축된다고 본다. ‘프랑스는 현재 물리적, 심리적으로 어려운 상태로 이는 여러 세대를 위협하고 있다.’ 저자는 어떠한 과정을 거쳐 경제위기의 피해자인 사람들이 실업과 가난에 스스로 책임이 있는 존재처럼 인식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또한 두려워서 지금의 상황에 침묵하는 사회 분위기와 문제를 근본적으로 파헤치지 않고 개인의 일로 떠맡기는 여러 무책임한 해결책도 비판하고 있다. 경제위기의 피해자들이 제대로 살지 못 하는 건 이들이 약해서가 아니라 상황이 받쳐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저자는 적극적인 참여와 공동체 가치 회복을 주장한다. ‘비인간적으로 대우받은 사람은 비인간적인 인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