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주도성장론이 가능할 수 있을까?
남만주철도주식회사(南滿洲鐵道株式會社), 약칭 만철.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에게 러시아가 양도한 동청철도(東淸鐵道)의 남쪽 반, 즉 중국 랴오닝성(遼寧省)의 다롄(大連)에서 지린성(吉林성) 창춘(長春) 근처 쿠안청쯔(寬城子)까지의 철도와 그에 부속된 이권을 기초로 1906년 탄생한 철도회사다. 만철의 초대 총재는 대만에서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식민지배의 토대를 만든 고토 심페이(後藤新平)였다. 일본이 유라시아로 가는 관문으로 생각했던 만주에 대한 제국주의적 경영의 시작은 철도였다. 고토는 ‘문장적 무비’(文裝的武備)라는 말로 표현한 것처럼, 식민지배는 무력 뿐만 아니라 교육, 의료, 예술, 학술 같은 넓은 의미의 문사(文事)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절정에 이르렀을 때 약 2,300여명이 근무했던 만철의 ‘조사부’는 이 문사를 뒷받침하는 핵심 조직이었다.
<북방 루트 리포트: 환동해 네트워크와 대륙철도>(돌베개, 2015)를 읽으며 만철과 만철의 조사부를 생각했다. 만철 조사부의 작품을 보는 듯했다. 주 필자가 <한겨레신문> 기자분들이기에 만철 조사부에 다수의 맑스주의 경제학자들이 포진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기도 했다. <북방 루트>의 질문은 “‘북방으로 가는 길’ 그 자체가 희망이 아닐까”이다. 이 질문에 대한 질문은 ‘어떤 희망’인가다. 다음은 <북방 루트>가 제시하는 하나의 답이다.
시베리아와 만주를 포괄하는 동해에서 바이칼까지는 북방 경제협력의 길이다. 중국의 부상, 러시아의 도약을 바탕으로 러시아 연해주(시베리아), 중국 동북3성(만주) 등 이른바 북방 협력은 남한에게는 기존의 한·미·일 협력을 중심으로 한 성장을 넘어서는 새로운 성장의 모멘텀이 될 것이다.
진보의 금기어 가운데 하나였던 성장이 북방협력과 결합된 핵심어다. 소득주도 성장론에 버금가는 ‘평화주도 성장론’으로 부를만한 희망이다. 북한지역이 포함된 북방협력은 평화 없이 불가능하다. 평화주도 성장론은 대륙의 시야에 기초한 한반도 ‘탈분단’의 한 길로 제시되고 있다.
남북협력 또한 대륙을 시야에 넣는 북방 경제권 전략이 돼야 한다. 한반도의 ‘배꼽’인 강원도를 대륙 진출의 전진기지로 삼고 위로는 나진·선봉 지역으로 이어지는 남북협력 벨트의 동해 축을 만들어 두만강 지역의 북·중·러 협력에 적극 참여하여 일본까지 아우르는 환동해권 형성의 가능성을 내다보는 그랜드 디자인이 필요하다.
이 기획은 기능주의 또는 상업적(commercial) 자유주의라 불리는 국제관계이론을 연상시킨다.
철도를 통해 만나는 새로운 세상은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물류 중심 국가와 신인류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다. 철도로 연결되는 동북아 국제공동체는 (……) 동북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경제공동체, 평화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낙관주의에 대한 경계도 있다. “경제적 상호의존성의 확대라는 경제협력의 논리만으로 동북아 협력의 미래를 예견하는 건 지나친 낙관주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협력이 정치군사적 협력으로 침투 확산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군사적 갈등은, 경제협력을 제약한다. 경제협력 그 자체도 상호의존의 네트워크에 들어가는 행위주체에게 상호보다는 의존이 초래할 위험을 염려하게 할 수 있다. 북방 루트도 인정하는 것처럼, “만주철도 이야기는 러시아와 중국, 일본과 한반도를 포함하는 광대한 동아시아의 정치와 경제, 국제관계와 전쟁의 파노라마로 펼쳐질 수밖에 없다.” 현재 몽골, 러시아,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만주지역은 과거 지정학적 각축장이었다는 진술이다.
만철의 제국주의적 기획은 현재 진행 중인 만주지역의 정치경제적 변동과 어느 정도 닮은꼴이다. <북방 루트>도 언급하는 것처럼 “‘철도가 곧 국가’”라고 생각했던 일본은, 만주철도를 서일본지역의 기간산업과 연결하기 위해 나진항을 개발했고, 창춘과 투먼(圖們)을 연결하는 철도노선의 최종 도착지를 나진항으로 정한 바 있다. 식민시대처럼 현재 북한의 나진은 북방 루트의 부제인 “환동해 네트워크와 대륙철도”를 링크하는 노드다. 이 노드는 지구온난화의 긍정적 효과로 북극해 항로의 허브로 성장할 기회까지 얻게 되었다. 만철이 나진을 네트워크와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노드로 주목했던 것처럼, 동해로 나아가는 항구를 갖고 있지 못한 중국이 다른 나라의 항구를 이용하려는 제강추하이(借港出海) 정책을 추진하고자 할 때, 가장 매력적인 곳이 바로 나진이다. 나진항에는 중국, 북한, 러시아의 부두가 있고, 내륙국가 몽골도 출해정책(出海政策)을 위해 북한의 웅상항을 사용하려 하고 있다.
이 만주지역의 정치경제적 변동을, <북방 루트>는 “과거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운 일본의 만주 지배가 해양세력이 대륙에 진출한 것이었다면, 중국의 동해 진출은 러시아의 남진과 함께 대륙세력이 해양에 진출하는 것이다”라고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 중국패권의 확대처럼 보일 수도 있는 변동을 ‘착한’ 만철의 기획으로 읽으려는 의도 때문일 것이다. <북방 루트>는 “철도와 도로의 건설, 가스와 석유 운송을 위한 에너지 인프라 건설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는 유라시아 대륙의 협력과 통합”을 제국주의가 아닌 ‘신대륙주의’로 읽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북방 루트는, 신대륙주의를 나진, 선봉, 창춘, 지린, 훈춘, 투먼, 하산, 블라디보스토크, 나홋카, 자루비노, 얼렌하오터, 에렌차브, 알탄블라크, 솔로비예프스크, 자바이칼스크, 나우시키, 코즈미노 등등을 연결하는 도시노드의 네트워크로 상상하고 있다. 국가들의 갈등과 협력이라는 오래된 국제관계를 보는 것과는 다른 시각의 전환이다.
이 점을 선으로 또는 이 선을 점으로 만들 수 있는 국가가 북한이다. 북방 루트가 우리에게 희망하게끔 하는 북방의 길에는 북한이란 장벽이 있다. 탈냉전시대에 북한을 둘러싼 지정학은 냉전시대 이전 만주의 지정학에 버금간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중국과 북한의 직통 협력을 차단하려는 러시아의 알박기”라는 <북방 루트>의 해석은 북한이 지정학적 이점을 활용하고 있다고 가정할 때 가능한 해석이다. <북방 루트>의 주장처럼 “2010년 5월부터 2011년 8월까지 생애 마지막 대장정이라 할 만한 중국, 러시아와의 네 번에 걸친 정상회담은 김정일이 젊은 후계자에게 남겨주려는 미래가 ‘북방 협력’이었음을 웅변한다”고 해도, 북한이 중국이 주도하는 신대륙주의를 대국주의로 읽는 한, 북방의 길은 점으로 남게 된다. “중국 내 북한 노동자 10만 명 시대”가 열리고 “북·중·러 3국 접경지대의 자유관광”도 이루어지고 있지만, 평화공존을 보장하는 다자안보협력이 제도화되지 않는 한, 북한은 제한된 개방을 선택할 것이다. 다자안보협력은 북방의 길을 가게 할 수 있는 국제정치적 조건이다. 북방 루트의 지적처럼, “해양에서의 영토권 분쟁.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지정학적 대결에 따른 분할구도가 각국의 역사 문제,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분쟁 양상과 중첩될 경우 동해는 복합적인 갈등의 바다로 남을 수밖에 없다.”
<북방 루트>는 박근혜정부에게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철도를 중심으로 한 대륙의 연결고리, 옛 만주 땅을 무대로 한 다국적 협력사업이 되어야”하고 “동북아시아 국가들 간의 호혜공생과 동반성장을 위한 21세기적 구상으로 발전해야 할 것”이라는 조언을 하고 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남북관계를 바꿔놓지 못한다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절름발이 신세가 될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이다. <북방 루트>의 고민처럼, 북방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남측의 전향적인 설득 노력과 북측의 ‘통 큰’ 변화가 관건이다.” 2014년 11월 러시아산 유연탄이 하산에서 나진항 3호부두를 통해 포항으로 들어왔다.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길이 한 번 열린 셈이다. <북방 루트>의 책장을 덮으며, <북방 루트>가 고급 여행가이드북을 넘어 정치적 다수를 호명할 수 있는 이해(理解; 利害)에 기반한 탈식민·탈패권·탈분단의 담론일까를 생각해 본다.
글·구갑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