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 재정에 반대하는 그리스를 지지하며
EU 긴축재정에 대한 그리스의 투쟁을 지지하며
그리스를 새로 집권한 좌파정권이 반(反)긴축 행보를 보이자, 독일은 다른 유럽 국가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이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독일은 경제와 금융시장에서의 막강한 영향력을 내세워 그리스에게 긴축재정을 강요하고 있다.
세르주 알리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발행인
그리스국민은 민주주의의 의미를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6년 동안 그리스경제를 휘청거리게 했던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좌파가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그리스국민은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담론의 한가운데에 서게 됐다. 이러한 담론은 그리스 전체로 확산되어 이제는 초등학교 교사들까지 민주주의를 둘러싼 논란에 의견을 보태고 있다. 사실상 시리자당은 집권하자마자 자신들이 내세웠던 선거공약의 상당 부분을 포기했다. 이 때문에 시리자당 내부에서도 선거공약의 강력한 이행을 주장하는 강경파와 그러지 않은 온건파 사이의 갈등이 감지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이제까지는 좀처럼 앞으로 나서지 않았던 일반인까지 갈등에 동참시켜 사회 전체의 질서가 무너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 그리스의 모습은 그리스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럽 전체의 민주주의와 관련된 문제이다.(1)
급진 좌파인 시리자당이 총선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유럽 각국은 이에 대한 입장을 앞다투어 내놓았다. 독일, 스페인, 네덜란드, 포르투갈, 핀란드는 단호한 어조로, 그리스의 정권이 교체되었다 해도 긴축재정은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에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못 박았다. 이탈리아, 벨기에, 프랑스에서는 조금 더 부드러운 어조로 공식 입장을 표명했는데, 프랑스의 외무부장관인 로랑 파비우스는 “유권자들의 의견이 반영된 총선 결과에 대한 존중과 그리스 경제 혁의 필요성에 대한 존중을 조화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모든 EU 국가들은 이 중에서 후자, 즉 그리스 개혁의 필요성에만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이다. 시리자당의 당수인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전자를 강조하자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시리자당에 대한 유럽 각국의 견제
시리자당은 집권 직후부터 맹활약 중이다.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주권’, ‘존엄성’, ‘자긍심’, ‘희망’과 같은 단어들을 즐겨 사용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는 긴축정책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공연하게 표명하고 나선다. 사실 그리스는 불과 몇 주 후에 엄청난 금액의 지불만기일을 앞두고 있다. 빠른 시일 내에 유럽 채권국들과 IMF와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그리스는 또다시 자금난을 겪게 된다. 이 경우 그리스가 택할 수 있는 길은 유로존을 탈퇴하거나, 금융시장으로부터 고(高)이율로 돈을 빌리는 방안 등이 있는데, 이는 그리스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치프라스는 이러한 상황을 모두 이해하고 있고, 우리는 그가 어서 타협에 나서기만을 바라고 있다. 왜냐하면 그가 거세게 저항하고 그리스국민의 감정에 호소하면 할수록 경제질서는 더욱더 엉망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통령인 프랑수아 올랑드도 좌파당 소속이었지만, 집권하자마자 독일로 가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머리를 맞대고 안정·성장 협약의 재협상과 ‘진정한 적’인 재정 문제를 의논하였다. 좌파당의 선거 공약을 과감히 포기하고 전임자인 사르코지 대통령이 추진했던 정책들을 이어나간 것이다. 프랑스의 이러한 민주적인 행보를 보고도 그리스는 전혀 느끼는 바가 없을까?
시리자당이 집권하고 열흘이 채 되지 않아 유로존의 중앙은행들은 그리스 은행의 주요 자금 조달 통로를 갑작스럽게 막아버렸다. 이는 그리스가 유럽 국가들과 IMF 같은 채권자들과 하루 빨리 협상을 마무리하고, 이전 정권이 추진해오던 긴축재정을 재개하도록 압력을 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올랑드 프랑스대통령은 유럽 중앙은행의 이러한 강경 조치가 “정당하다”고 평하였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도 마찬가지였다. 이로써 우리는 프랑스대통령이 정확히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그가 어떠한 위치에 있지 않은지, 즉 현 그리스 정권의 행보에 동조하는 입장은 아님을 정확히 알게 됐다.
그리스를 제외한 나머지 유럽 국가들이 한목소리로 그리스를 비난하고 금융시장이 그리스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는 동안, 이 힘겨루기 게임의 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그리스는 사면초가의 상태에 놓여 있다. 우리는 협상테이블에 앉은 그리스가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고 유럽 연합의 요청 사항들을 받아들여 필요한 자금을 얻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즉, 연금과 월급을 다시 한 번 내리고, 부가가치세를 올리고, 14개 공항을 민영화하고, 노조의 교섭력을 약화시킨 다음, 이로 인해 늘어난 예산을 채무상환에 사용하는 것이다. 비록 여기에 그리스국민의 고통 분담이 동반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EU집행위의 경제부문 담당관인 피에르 모스코비치에 따르면, “(유럽연합의) 장관들은 현재 추진 중인 계획을 확장 적용 하는 것 이외에 그리스에게 다른 대안은 없다는 사실에 만장일치로 동의하였다.” 마거릿 대처의 유명한 슬로건인 ‘대안은 없다!’를 반복하기 전에, 모스코비치는 과거 사회당의 일원이었던 시절을 떠올리기라도 하듯 “우리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국민을 돕는 것”이라고 강조했다.(2)
그리스의 재무장관인 야니스 바루파키스에 따르면, 그리스는 “고통 받는 것이 숙명인 부채 식민지처럼 취급당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3) 그러나 현재의 상황에서는 그리스국민이 자신의 운명을 선택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독일의 재무장관인 볼프강 쇼이블레는 그리스국민이 “책임감 없이 행동하는 정부를 선출한 것”이라고 꼬집었다.(4)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어떠한 조치를 취해도 계속해서 실패로 돌아가자 그리스는 조치를 더욱더 강화하는 대신 아예 포기하는 길을 택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스 경제난, 2차대전 이후 프랑스와 비슷
EU 내에서 가장 뒤떨어진 그리스의 경제에 가장 엄격한 긴축정책을 강요하면서, EU 국가들은 과연 어떠한 결과를 기대했던 걸까? 결과는 우리가 예측했던 그대로였다. 부채는 계속해서 불어나고, 구매력은 저하되고, 경제성장률은 제자리걸음이고, 실업률은 치솟고, 위생 상태는 악화됐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유럽 국가들은 “그리스는 긴축재정에 대한 약속을 준수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리고 자신들의 확신에 찬 구호에 매몰된 신성동맹은 미국대통령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미국대통령은 여러 경제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의 분석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한 바 있다. “이미 침체에 빠져있는 국가에게 계속해서 압박만 가할 수는 없다. 그리스가 빚을 갚을 수 있도록 경제성장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5)
지난 6년 동안 그리스가 경험한 경제난은 프랑스가 세계 제1차대전의 4년 동안 경험했던 일, 그러니까 군대가 붕괴되고 외국군이 점령한 일에 비견할 만하다.(6) 따라서 우리는 치프라스정부가 긴축재정을 지속하기를 거부하고 또한 “마약을 다시 투약할 날만을 기다리는 마약 중독자처럼”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기를 거부하면서 얼마나 많은 대중의 인기를 끌어 모았을 지를 짐작할 수 있다.(7) 그러나 안타깝게도 시리자당은 그리스 밖에서는 전혀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 <오리엔탈 특급 살인>에서처럼, 그리스 국민의 희망을 앗아가는 잠재적인 살인자를 찾아내기 위해 모든 유럽 국가들을 면밀히 조사해보면 그 이유가 드러난다. 독일의 경우 그리스의 긴축정책을 주도한 국가이고, 과거에도 이에 순응하지 않는 국가들, 특히 지중해 국가들에게 엄격한 제재를 가한 바 있다.(8)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의 경우에는 그리스에게 등을 돌리는 이유가 더욱더 불순하다. 이 국가들의 국민들은 최근 긴축재정의 초점이 그리스 쪽으로 맞추어지면서 자신들이 덜 주목받게 된 데에 기뻐하고 있다. 이 국가들의 정부는 프랑스 재무장관인 미쉘 사팽이 이야기한 “정해진 길, 잘 알려진 길, 시장, 기구, 그리고 유럽의 모든 권력 기관들이 요구하는 길”을 자신들이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드러날까 두려워한다. 이러한 경향은 자국 내 좌파 세력이 막강할수록 더 심하다. 그리고 미쉘 사팽은 그 정해진 길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야한다”고 강조하였다.(9)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국민의 고통은 정부의 잘못된 선택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투쟁은 우리 모두에게 영감주어
‘하늘에서 갑자기 돈벼락이 내리지 않는 한’ 그리스의 부채는 영원히 상환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또한 탈세와 부패 척결로 사회지출을 줄여 부채 상환 자금을 마련하겠다는 시리자당의 경제전략이 대중들에게 인기가 많고, 확신을 가져다주고, 과거의 부패 관행을 멀리하는 젊은 정치인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리스가 선택한 노선은 ‘정해진’ 길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말도 안 되는 길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미래는 1936년 6월 프랑스 노동자들의 총 파업과 관련하여 철학자 시몬느 베이유가 썼던 글을 떠올리게 한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 지는 아무도 모른다. (…) 그러나 어떠한 걱정도 머리를 숙이는 자들을 보는 기쁨을 잠재우지는 못한다. (…) 노동자들은 이제야 비로소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고용주에게 자신들도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그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처음으로, 무거운 기계들 주변에 침묵, 구속, 복종이 아닌 다른 기억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10) 그리스의 투쟁은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되는 일이다. 마음 속의 바람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리스에 대한 연대감이 유럽과 그외의 지역으로까지 퍼져 나가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1)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77호, ‘투쟁을 선택하라!’ 참조.
(2) 2015년 2월 17일자 <레 제코>와 2015년 2월 12일 유럽 1과의 인터뷰에서 인용함.
(3) 2015년 17일자 <더 뉴욕 타임스>.
(4) 독일 국영 라디오 방송인 도이칠란드푼크(Deutschlandfunk)와의 대담, 2015년 2월 16일.
(5) 버락 오바마, 2015년 2월 1일 CNN과의 인터뷰
(6) 1913년의 수치를 100으로 잡았을 때, 프랑스의 국민총생산은 1919년 75.3으로 떨어졌다(올리비에 비비오르카 & 장-폴 바리에르, <20세기의 프랑스>, Hachette, Paris, 2000). 미국의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만이 2015년 2월 17일자 <뉴욕타임즈>에서 지적한 바에 따르면, 2007년과 2009년 사이 그리스의 국내총생산은 26% 감소하였다. 독일의 경우 1913년과 1919년 사이에 국내총생산이 29% 감소했었다.
(7) 바루파키스와의 대담, 2015년 2월 3일자 <르몽드>.
(8) 1997년부터 독일은 유로존 회원국의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 기준을 8배 초과했다는 이유로, 그리고 프랑스는 11배 초과했다는 이유로 소송 중에 있다.
(9) 미쉘 사팽, 브뤼셀, 2015년 2월 16일, France Diplomatie, http://basedoc.diplomatie.gouv.fr.
(10) 시몬느 베이유, <금속가공업 노동자들의 삶과 파업>, 추후 작성 예정.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미국 버클리대 정치학 박사출신으로, 파리8대학 정치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주요 저서로 <새로운 감시견(Les nouveaux Chiens de garde)>(1997) 등이 있다.
번역․김소연 dec2323@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