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티, 21세기의 마르크스라고?
토마 피케티가 아무리 국제적 명성이 자자한 이라고 해도 몇 가지 정치적 문제를 제기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조금 더 엄밀히 말하자면 지성과 정치라는 불가분의 두 차원에서 빚어진 어떤 속임수와 관련하여 충분히 문제점을 제기해볼 수 있다. 지성적, 정치적 차원의 속임수가 존재했음을 은연 중에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모든 언론이 과거 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단단히 대동단결하여 그에게 주례사식의 일방적인 찬사를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언론이 열광적인 찬사를 보내기로 마음먹은 다른 모든 사례들이 그러하듯, 이번에도 호평 일색의 언론 보도는 그 찬사 대상의 완전한 무해함을 보증해주는 징표가 되고 있다. 정말이지 “세상의 기반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천지개벽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어떻게 <리베라시옹>이나 <롭스>(<누벨 옵세르바퇴르>의 새 명칭-역주), <르몽드>, <렉스팡시옹>은 물론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까지도 이렇게까지 정신줄을 놓고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되어 피케티를 찬양할 수 있단 말인가. 아마 각자 저 나름대로 꿍꿍이속이 있었겠지만, 그나마 영미 경제매체만은 완전히 정신줄을 놓지 않았던 듯싶다. 일단 <파이낸셜 타임스>가 조심스럽게 피케티 통계 작업의 정확도를 둘러싼 논쟁에 간접적으로 불을 붙이는가 싶더니, 이어 <블룸버그>도 흡사 <안녕, 친구들>(청소년 음악잡지-역주)의 표지를 흉내 낸 듯한 알록달록한 별 무늬와 깨진 하트로 앙증맞게 장식이 된 피케티의 얼굴을 신문 전면에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이처럼 <르몽드>와 <롭스>가 진지하고 노골적인 방식으로 보여주었던 집단주의를 <블룸버그>는 발랄한 버전으로 패러디했다.
그러나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어쨌거나 저 자신도 스스로 고백하였듯이 그는 생전에 카를 마르크스의 다른 저작은 물론이요 심지어 <자본>(마르크스의 <자본>-역주)조차도 단 한 줄 읽어본 적이 없다. 그러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그 어떤 이론도 제공하지 않고도, 자본주의의 기본 토대를 반박하려는 그 어떤 정치적 기획에도 매달리지 않고도, 자신의 저서에 아주 과감하게 <자본>이라는 이름을 가져다 붙인 저자가 ‘21세기의 마르크스’로 추앙받는 일은 그야말로 엄청난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1)
사실 악의적인 비판의 경우라고 해서 정치적 문제를 제기하지 못할 이유가 없듯이, 맹목적인 찬사의 경우라고 우리가 피케티의 저작이 지닌 장점들까지 무조건 무시할 이유는 없다. 사실 피케티의 통계 작업이 보여준 방대함과 우수성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평자는 한 둘이 아니다. 물론 우리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우리는 피케티의 중요한 장점을 또 다른 데서도 한 가지 찾아볼 수 있다. 바로 그가 쓴 것이 다름 아닌 단행본 서적이라는 점이다. 요즘 경제학자들은 좀처럼 책을 내는 법이 없다. 논문 발표의 압박에 시달리는 대다수의 경제학자들은 그저 기술적이고 표준화된 논문들, 본래의 의미를 상실할 정도로 지나치게 전문적으로 쓰인 논문들, 대학의 학술지에 실을 수 있게끔 15쪽 분량을 넘기지 않는 짧은 논문들을 부지런히 써내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1세기 자본>(2)은 가히 15년에 걸친 집념 어린 연구의 결실을 무려 천 쪽에 달하는 두터운 책으로 풀어놓고 있다. 한편 그뿐이 아니라 피케티의 저작은 기존의 확고한 팩트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에 사회과학을 활용함으로써, 그 어느 때보다 사회과학의 유용성을 잘 보여준 전범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피케티의 저작이 이처럼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수많은 장점을 지녔다고 해서, 우리가 근본적으로 이 책이 독자를 기만한 사실까지 어물쩍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실상 이 저작은 마치 ‘도둑맞은 편지’(애드거 앨런 포의 단편으로, 책에서 주인공은 중요한 편지를 누구나 볼 수 있는 허술한 곳에 놓아 오히려 사람들이 편지를 찾지 못하게 만든다-역주)의 경우처럼, 너무도 당당하게 독자를 기만한 나머지 오히려 우리는 그것이 속임수인지조차 미처 알아보지 못하는 눈 뜬 장님 신세가 되어버렸다. 가령 제목부터가 아주 뻔뻔했다. 요컨대 ‘자본’ 말이다. 피케티는 우리에게 앞으로 자본에 대해 이야기하겠노라고 말했다. 물론 그는 그 전에 한 유명한 저자가 이미 자본에 관한 책을 썼던 사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쯤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듯싶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결과적으로 그것은 꽤나 중요한 문제였다. 가령 우리는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제목의 책을 다시 쓸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약용식물학에 관한 책에 그러한 제목을 가져다 붙일 수는 없지 않는가.
자본이란 무엇인가? <자본>을 “단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3)던 피케티는 당연히 자본을 아주 피상적인 개념으로만 이해했다. 요컨대 자본을 재산의 개념으로 이해했다. 다시 말해 피케티에게 자본은 자산가들이 소유한 재산을 뜻한다. 반면 피케티가 단 한 번도 자세히 읽어본 적이 없는 마르크스에게 있어 자본은 그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마르크스에게 자본은 생산양식, 요컨대 사회적 관계를 의미한다. 이를테면 단순히 시장경제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화폐 관계에, 임금노동 관계(모든 문제의 핵심)가 더해진 아주 복잡다단한 사회적 관계를 뜻한다. 여기서 임금노동 관계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자유로운 노동자’라는 법적 환상을 구심점으로 삼아 형성된다. 그러나 실상 자유로운 노동자란 허상에 불과한 개념이다. 그저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물질적 삶을 재생산할 능력이 없는, 한낱 노동시장에 던져진 일개의 인간일 뿐이다. 생존을 위해 그들은 피고용자가 되어야 하고, 상하주종 관계를 통해 경영자들이 지배하는 제국에 복종해야 한다.
그러니까 자본이란 그런 것이다. 단순히 <포춘>지에 나오는 갑부 서열이 자본의 전부는 아니다. 그저 재산의 의미로만 이해되는 자본은 부의 양극화라는 불쾌한 광경을 통해 일반인과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생산양식내지는 사회적 관계, 그 가운데서도 특히 임금노동 관계로 이해되는 자본은 일반인과 그보다 더 깊은 관계를 맺기 마련이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옥죄는 종속관계를 자본과 맺고 있다(8시간의 노동시간은 사실상 노동자가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에 해당한다). 콘티넨탈(타이어 생산업체-역주)이나 프랄리브(허브차 생산업체-역주), 혹은 플로랑주(아르셀로미탈 공장 소재 지역-역주)의 노동자들은 아마도 부자들의 거만한 과시적 태도에 격분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본의 가치 증식이라는 철칙으로 인해 망가진 피폐한 삶으로 인해 더 많은 고통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물론 남모르는 고통으로 시름하기는 다른 피고용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생산성의 폭압을 견디며, 수익성을 위해 지치도록 달려야 하고, 온갖 만성적인 위협(구조조정, 해외이전, 프랑스텔레콤 식의 조직개편 등)에 시달린다. 그리고 그들은 삶의 불안정성에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듯한 고통을 겪으며, 사내 관계에서 오는 온갖 폭력을 감내하며 남모르는 고통으로 눈물을 훔친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해 피케티의 <자본>은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광대로 전락한 지식인들
공교롭게도 21세기의 마르크스는 잊고 지나친, 이 자본과 노동의 종속관계는 자본주의가 새롭게 변천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자본주의의 역사적 지형에 따라 각각 그 강도나 형태가 좌우된다. 자본주의란 단 하나의 개념으로 환원되는 무엇이 아니라, 오히려 역사가 흐르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발현된 수많은 자본주의의 연속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경제적, 정치적 차원의 다양한 연쇄적 역사들이 사슬처럼 연결된 가운데, 자본주의의 역사가 새로운 방향으로 물줄기를 틀 때마다, 각각의 새로운 지형들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피케티가 이러한 자본주의관을 가졌다는 사실은 그 어디서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식의 시각을 지닐 때에야 비로소 자본주의의 역사적 동학에서 진정 정치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포착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가령 피케티가 자본주의를 그런 식으로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가 바로 장기적 역사에 대한 그의 열정적인 관심이다. 물론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역사에 무지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가 장기적 역사에 관심을 쏟았다는 사실은 분명 매우 반가운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방식에는 전혀 문제점이 없지 않다. 물론 그가 대상으로 삼은 것이 수십 년 단위의 장기적 역사였다면 아마도 우리에게 풍부한 교훈을 선사하며 아주 유효한 관점을 제공해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천 년 단위의 ‘아주’ 긴 장기적 역사는 오히려 무의미한 통계적 오류들만을 양산해내며 어마어마한 시대착오를 범하는 우를 불러올 수도 있다. 사실 눈썹 하나 까딱 않고 마치 국내총생산(GDP)이나 자본, 세후 자본수익률이란 개념이 고대나 18세기에도 유의미한 개념이었다는 듯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성장률과 세후 자본수익률’(765쪽)이란 제목의 도표를 독자들에게 당당히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어찌 보면 절대 그 무엇도 의심하지 않는 ‘경제학적 사고’가 낳은 순수한 산물일 수도 있으리라. 어쨌거나 이같은 과오들이 계속되다보면, 결국 역사가를 자처한 경제학자는 조심성 없이 너무나도 길고 긴 장기적 역사 속으로 기우뚱 빠져드는 순간, 정작 스스로 역사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연구하는 대상의 실질적인 역사성에 대해 가장 무지한 자가 되고 만다.
매우 긴 역사를 단위로 하는 경우 단순히 뒤죽박죽 시대착오라는 오류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수천 년이란 시간을 잣대로 삼는 경우, 정작 수십 년 단위의 사건들이 별 볼 일 없는 무의미한 변화로 치부되며 명백한 탈정치화 현상이 심화될 우려가 있다. 사실 십년이란 기간도 다분히 어떤 정치적 투쟁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기간이다. 십년이란 세월을 잣대로도, 충분히 각 민족들은 자신들의 삶의 조건이나 혹은 자신들이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러니까 십년은 아주 유효한 역사적 단위임에도, 수세기를 단위로 하는 계측기에는 쉽사리 감지되지 않는 아주 미세한 변화로만 치부되는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피케티가 20세기를 특히 집중적으로 다루었다는 사실을 들먹이며 반박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거나 그는 20세기를 다룰 때에도 마찬가지로 국지적으로 똑같은 보편적 ‘법칙’들을 적용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마치 그 법칙들이 모든 시대를 초월한 자본주의, 요컨대 “예로부터 본디 인간은”이라는 식의 그 괴상한 자본주의를 출입하는 데 필요한 무슨 통행권이라도 되는 것처럼 매 시대마다 똑같은 법칙들을 잣대로 들이대는 것이다. 그러나 그처럼 자본주의의 흐름을 역사를 초월한 어떤 영원불변의 법칙 속에 가둬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여전히 그에게 어떤 경제지상주의적 사고의 잔재가 남아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징후에 불과하다. 경제학자들은 언제나 스스로 어떤 사회적 현상의 법칙을 밝혀내는 물리학자가 되기를 꿈꾸며, 흡사 만유인력의 법칙이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온갖 경제나 자본주의의의 ‘법칙’을 수립하려는 유혹에 휩싸이곤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마치 과학의 법칙과 경제의 법칙이 동등한 위상을 지니기라도 한 것처럼, 모든 물체는 위에서 아래로 추락한다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만유인력의 법칙이 존재하듯이 경제에도 만물의 질서를 관장하는 어떤 법칙이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을 사람들에게 심어주려고 한다. 물론 피케티는 인식론적인 차원에서 그 정도로까지 쑥맥은 아니다. 아니, 과거에는 비록 그랬을지언정 지금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같은 순진무구한 믿음이 경제학계 내에는 널리 퍼져 있다. 사실 그가 갈릴레이적 유혹의 포로라는 사실은 그 자체로 그가 얼마나 경제학적인 사고에 물들어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척도와도 같다. 심지어 경제지상주의와의 결별을 요구하는 정신 속에서마저도 우리는 그런 사고의 잔재를 여지없이 찾아볼 수 있다(더욱이 경제지상주의와 결별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동안 뾰족한 고깔모자를 쓴 마법사처럼 만능인 양 여겨지던 전문가들이 사상초유의 경제위기로 위상이 완전히 실추되면서 모두가 그들에게서 등을 돌리는 시점이 되어서야 비로소 피케티는 경제지상주의와의 결별을 주장하고 있다).
어쨌거나 역사를 초월한 자본주의의 법칙은 세상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더욱이 그것이 단순히 대수학 부등식의 반복이라면 더 말할 나위 없으리라).(4) 자본주의의 역사적 흐름은 각각의 독특한 제도적 지형들의 ‘연속적 배열’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각각의 제도적 지형들은 대개 정치적 과정에 의해 형성되며, 각 지형마다 (재산이 아닌) 자본이 강압적으로 노동과 맺고 있는 종속관계의 독특한 특성들이 나타난다.
사실 피케티가 자그마치 천 쪽에 걸쳐 아무리 r(수익률)이 g(성장률)보다 커지면 불평등이 확대된다고 줄기차게 외쳐봐야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각 시대의 수익률이나 성장률을 결정짓는 요인들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제시하지 않는 한 결국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은 것이나 진배없기 때문이다. 각 시대는 각기 독특한 구조의 배열로 형성된 특정한 결정요인을 지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런 구조들은 모두 정치투쟁 내지는 계급투쟁에 의해 생성된다. 이를테면 1936년이 적절한 토양이 되어주었기 때문에, 1920~30년대 자유주의 엘리트층의 청산이 실현되었기 때문에, 경영자들이 대독협력의 과거로 인해 깊은 수치심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공산당의 지지율이 25%에 이르렀기 때문에, 소련이 자본가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비로소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에 노동에 이로운 방향으로 자본과 노동의 (역)관계가 새롭게 뒤바뀌는 놀라운 제도적 경향이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이다. 자본에 대한 강력한 통제, 국제 경쟁에 대한 엄격한 규제, 성장과 고용에 방점을 둔 경제정책, 규칙적인 화폐의 평가절하 등이 바로 5%대 성장률을 이뤄내고, 자본이 (억지로나마) 절제된 모습을 보이도록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피케티는 시도 때도 없이 ‘제도와 정치’를 들먹이지만 정작 그 같은 제도나 정치의 역사에 대해서는 일절 다루지 않는다. 그는 제도나 정치의 역사를 말하는 대신, 그저 전쟁이나 혹은 이후 식민지 독립이 낳은 결과들만을 이야기할 뿐이다. 자본(재산)을 파괴하고 모든 계측기를 다시 0의 상태(내지는 0에 가까운 상태)로 되돌린, 그 뭐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외부적 효과들만을 운운할 뿐이다. 그러니 아무리 전쟁의 포화나 식민제국의 항복 속에서, 사회적 투쟁이나 총파업, 자본과 노동의 힘겨루기와 그에 따른 결과들을 찾아내려 애써봐야 소용없다. 사실상 피케티가 말하는 자본주의에는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피케티의 자본주의는 언제나 만고불변의 법칙만을 따르고 있을 뿐이다. 국지적으로 자잘한 사건들로 가끔 요동을 치더라도 이내 피케티의 자본주의는 천 년 단위의 기나긴 역사의 물줄기를 꿋꿋이 형성한다. 이런 견고한 자본주의의 역사적 흐름 속에는 이른바 제도적 변화를 일으키는 진정한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집단 간의 분쟁 따위는 들어설 틈이 없다.
은폐 전략
그러나 언제나 자본주의는 그 같은 사회집단 간의 분쟁의 결과에 따라 방향이 바뀌어 왔다. 사회집단 간의 분쟁이 전후 자본주의의 흐름을 결정지었듯이, 1970년대 말의 자본주의의 흐름도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피케티는 한 동안 많은 것을 소유할 수 없었던 자산가들이 과거의 영화를 되찾기 위해 나섰던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레콘키스타(재정복)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가령 1970년대 미국 보수주의자들이 표방한 ‘롤백 어젠다’(rollback agenda)가 대표적인 예다. 거기에는 사회적 정복물, 다시 말해 제도적 정복물들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역사를 다시 과거로 ‘되돌리고’자 한 의도가 분명 명백하게 담겨 있었다.
이에 대한 답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정적인 질문을 대신 제기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대체 제도와 구조를 장악하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 누가 그 제도와 구조를 만들고, 또 새롭게 바꾸는가? 사실 모든 구체적인 갈등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고 있는 피케티의 저작에는 이런 (정치적) 문제들은 결코 등장하지 않는다. 기업이 주주에 예속되는 결과를 낳았던 1980년대 금융 탈규제에 관한 분석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당시 사회주의 정권들이 수행했던 중요한 역할에 관한 이야기, 좌·우파의 정치·경제 엘리트층이 다양하게 미분화되었던 역사에 관한 이야기는? 1984년 이후 유럽통합이라는 광폭한 자유주의의 폭주에 관한 이야기, ‘자유공정경쟁’에 대한 이야기, 요컨대 선진적인 사회복지모델을 한 바탕 멋지게 파괴하기 위한 제도에 관한 이야기는? 정부 주도의 적극적인 경제정책을 실시할 여지를 모두 앗아간 그 추잡한 협약의 역사는? 이 모든 것이 어느날 난데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닌 바에는 분명 누군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이 당연하다. 그것도 결코 평범한 이의 손은 아니었을 터인데.
사회집단으로서의 자본은 전후 자신들이 양보하였던 것을 훗날 모조리 도로 회복했다. 더욱이 자본에게 기꺼이 모든 것을 넘겨줄 태세를 갖춘 것처럼 보이는 솔페리노 거리(사회당 당사가 있는 곳으로, 본문에서는 사회당을 지칭-역주)의 지원 사격에 힘입어 자본은 오늘날 더욱더 이권을 확대해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피케티가 모호한 거시경제라는 뜬구름 속에 머물러 있다고 해서, 상투적으로 r>g만을 줄기차게 읊어댄다고 해서 별로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우리는 그가 독자의 이해를 위해 무엇인가를 명쾌하게 설명했다고 말하기는 힘들 뿐더러, 더욱이 그가 어떤 ‘이론적 쾌거’를 달성했다고도 말할 수 없다(비록 일부 언론인들은 드디어 ‘진짜 학문’의 등장을 지켜볼 수 있게 되었노라며 감격에 젖어 입을 벌린 채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말이다).
사실 앞선 역사적 맥락을 피케티가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도 그리 무리는 아니다. 과거 그가 걸어온 학문적 여정을 되짚어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사민주의를 표방하던 ‘유기적’ 경제학자(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한 개념. 지배계급의 헤게모니를 정당화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지식인을 의미-역주)가 어디 하루아침에 21세기 마르크스가 되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이겠는가. 로장발롱 군단이 낳은 순수한 산물이자, 2007년 세골렌 루아얄의 자문관으로 널리 활약하기도 한 피케티는 원래 ‘신철학자’라고 불리는 저 명성 자자한 어릿광대들을 대체할 신예 ‘지식인’으로 미디어로부터 널리 추앙을 받던 전문가 그룹의 일원이었다. 당시(1990년대 말)로 말할 것 같으면, 더 이상 앞섶을 풀어헤친 셔츠나 부스스한 머리가 유행하던 시대는 아니었다. 바야흐로 엄숙주의의 시대가 도래했다. 다시금 숫자나 과학이 중시되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이데올로기가 금기시됐다. 사회당의 싱크탱크로서 전문지식을 생산해내는 역할을 톡톡히 하던 도서 출판 ‘사상공화국’은 아주 놀라울 정도로 집요하게 ‘점잖은 관례주의자들의 무리’에서 사회당이 배제될 수 있을 만한 문제들은 모조리 악착같이 회피하고자 애썼다. 물론 아주 오랜 기간이 이어지는 동안 가끔씩은 불평등에 대해 관심을 갖기도 하고, 혹은 이따금 노동자의 고통을 지켜보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나 문제는 기술이고, 미흡한 직업훈련이고, 연구기관으로서의 대학의 덕목이었다. 자유무역협정과 그로 인한 폐해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주주가치의 폭압은? 전혀 들을 수 없었다.(4) 자유주의의 극단적 형태인 유럽통합은? 그 역시도 그저 우리의 숙명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처럼 ‘사상공화국’의 노선은 한 마디로 끈질긴 회피 전략내지는 은폐 전략으로 요약됐다. 이른바 미디어와 권력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자들로 규정할 수 있는 이 ‘엄숙주의자들의 무리’에서는 절대 그런 것들은 입도 뻥끗해서는 안 될 것들이었다.
그리고 짜잔! 난데없이 2007년 금융위기, 2010년 유로존 위기가 발생했다. 그러자 억압된 것이 거세게 회귀하기 시작했다. 공허의 세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든 이제 ‘그것’에 대해 말해야만 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서 무엇인가 교훈을 끌어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쉽사리 반응에 나서지 못했고, 마치 어둠 속에 있다가 갑자기 환한 빛 아래 놓였을 때처럼 눈이 부셔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으며, 어떤 말도 혀끝에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상 세계화는 금융의 세계화를 의미했다. 과거에는 미처 생각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세계화가 항상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정말 놀랄 만한 이변이 일어났다. 수십 년이나 이런 종류의 문제에 대해 철저히 입을 다물었던 경제학자 다니엘 코엔과 피케티가 마침내 유럽단일통화체제는 ‘시작부터 결함을 지닌 체제’(5)였음을 불현듯 깨닫고 우리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기까지 한 것이다. ‘전문가들’이란 아마도 디젤로 움직이는 것이 분명하리라. 발동이 걸리기까지 그렇게나 오랜 예열 시간이 필요한 것을 보면.
하지만 때늦은 노선 변경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것이 대체 무엇이겠는가? 사실상 대단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지적, 정치적 관습의 주름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사실상 피케티의 <자본>은 흡사 얼룩말과도 같이 그런 관습의 주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령 포드주의의 형성과 다시 이의 해체에 이어 신자유주의가 형성되기까지의 정치적, 사회적 역사 앞에서 보이는 그의 무력함이 그러한 사실을 여실히 증명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확실히 과거 관습의 주름을 보여주는 사례는 바로 그의 저서의 마지막 장이다. 그는 마지막 장의 제목을 아주 당당하게도 ‘자본의 규제’라고 붙였다. 누군가에게는 21세기 마르크스에 걸맞은 시도처럼 보일지도 모를 테지만, 그것은 동시에 본의 아니게 당대의 시대적 징후를 드러낼 위험이 다분하기도 하다.
구조를 변혁하라
‘점잖은 관례주의자들의 무리’는 그 이름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듯, 종국에는 ‘자크아탈리주의’를 요구하기 마련이다. 요컨대 세계화된 자본주의는 현재 일부 결함으로 인해 시름하고 있지만, 반드시 자신들이 그에 맞는 해법을 찾아내리라는 식이다. 물론 그들이 찾아내는 것은 세계화된 해법일 터이다. 그러니 각 국의 민족들이여, 조금만 인내심을 가지라! 조금만 기다리면 곧 해법의 세계화가 도래하리니. 사실 현재 사회당이 집권 중인 프랑스는 그렇게 대단할 것도 없는 EU의 금융거래세 도입도 저지하려고 안달이다. 그런 마당에 글로벌 자본세는 마치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양 두 팔 벌려 환영받고 있다. 더욱이 피케티가 장장 천 쪽에 걸쳐 구구절절 설명한 내용의 최종 결론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글로벌세를 선택하든지, 아니면 ‘EU가 아닌 개별국가로 회귀’(752쪽)하던지 두 가지 가운데 한 가지를 택일 하라는 것이다. 아마도 선의를 가지고 이 책을 읽던 선량한 독자들이라면 이 대목에서 살짝 실망감이 들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들의 고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독자들은 선의를 가지고 이 책을 읽었다. 그러나 피케티를 상대함에 있어 그들은 너무도 순진했다. 언론은 교묘하게 상표를 가린 채 그가 바로 이 시대의 저 유명한 수염 달린 분이라 선전하며 그를 독자들에게 팔아먹었다. 독자들은 그 사실을 철석같이 믿었다. 사실 우리는 이 사기극에 가담한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에 정녕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그들 중 일부는 충분히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 만한 자들이었다. 아니 진실을 알고 있어야 할 의무를 지닌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한통속이 되어 모두 이 같은 계략에 일조하다니. 그러나 사실 오래 붙들고 읽어볼 필요도 없이 우리는 금세 진실이 무엇인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가령 피케티는 책 첫머리에서부터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나는 반자본주의의 관례적인 그러나 게으른 수사에 속아 넘어가지 않을 만큼의 예방접종은 받았다.”(62쪽) 그러니까 그는 마르크스는 마르크스인데, 본디 수염이 없는 마르크스였던 것이다. 털 끝 하나도 삐져나오지 않은.
아니 어쩌면 그는 가짜 수염을 단 마르크스였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피케티는 미국 시장에 더 많은 책을 팔아먹을 요량으로 가졌던 한 홍보성 인터뷰에서 자신이 ‘결단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며 하늘에다 대고 맹세했다.(6) 그랬던 그가 정작 고국 프랑스에 돌아와서는 아주 천연덕스럽게도 알랭 바디우 앞에서 자기도 역시 “공산주의 사상의 출현에 일조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큰소리쳤다.(7) 무슨 우체통에 편지를 집어넣는 그런 간단한 일을 해치우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그러더니 2014년 12월 22일에는 돌연 “시장의 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였고 급기야 “유럽의 극좌파 신생 정당들을 훈계”했다.(8) 바로 포데모스당과 시리자당을 말이다. 그러더니 2015년 1월 12일 이번에는 난데없이 파블로 이글레시아스(포데모스 당대표-역주)의 자문관으로 변신했다. 그는 이제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정당들의 부상이 유럽에는 아주 반가운 소식”이라는 소신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9) 2월 7일, 로랑 뤼키에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우리는 아직 잠들지 않았어요>에 피케티가 출연했다. 하지만 아무리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해도 진행자는 결코 그가 좌파 경제학자인지 아니면 우파 경제학자인지에 대해 확실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아마 지적인 계통성이 확고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의 이런 기회주의적이고 유연한 태도에 찬탄을 금치 못하리라. 그는 실시간으로 여론의 동향에 따라, 혹은 모든 대중의 입맛에 맞게 요리조리 의견을 바꾸며 수많은 팬들을 긁어모을 줄 아니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정작 중요한 현상을 피해 부대현상을 만들어내는 기술도 아주 기가 막힐 정도다. 사실상 피케티 작전이 최종적으로 이르는 목표지점이 어디인가. 바로 만인이 공감하는 문제(불평등이 존재한다)이며, 동시에 앞으로 모든 자본주의에 ‘관한’ 토론의 장에서 중요한 주제로 부상할 문제를 객관적인 학문의 차원에서 다시 확인하는 작업이 아니던가. 아니, 이미 불평등이란 주제는 토론의 장에서 어느 정도 중요한 주제로 굳건히 자리를 잡아나가고 있다. 심지어 <이코노미스트>지조차 수년 전부터 향후 불편한 경제문제로 부상할 수도 있을 불평등 문제에 대해 수많은 기사를 쏟아내며, 위험하지 않은 비판들만을 걸러낸 온건한 담론을 생산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가령 그런 의미에서 돈과 관련한 불평등에만 초점을 맞춘 비평은 아주 탁월한 장점이 있다. 바로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또 다른 불평등 문제를 은근슬쩍 덮어둘 수 있다는 것이다. 절대 우발적인 것이 아니며, 심지어 철저히 근본적이기까지 한 불평등, 어느새 실질적으로 자본주의의 구성 요소가 되어 버린 그 불평등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 불평등이란 바로 상하주종의 임금노동관계에서 비롯되는 정치적 불평등을 말한다. 요컨대 기업 안에서 어떤 이가 명령을 내리고 어떤 이가 복종을 할 것인지를 결정짓는 그 근본적인 차원의 불평등이다. 이런 불평등에 대해서라면 제 아무리 글로벌 차원에서 세금을 걷는다고 해도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이런 종류의 불평등 문제는 결국 베르나르 프리오(10)가 말한 이른바 ‘영리재산’(가령 임대용으로 소유한 주택처럼 이용 목적이 아닌 자본 축적을 목적으로 소유한 재산-역주)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력이나 혹은 노동자에게 가해지는 일자리를 볼모로 한 협박에 관한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런 종류의 불평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결국 ‘자본’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과 같다. 재산으로서의 자본이 아니라, 마르크스가 말한 진짜 그 자본의 문제 말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현 자본주의 지형의 문제라고도 말할 수 있다. 현 자본주의 지형에 대해 사실상 글로벌 세금(어쨌거나 결코 실현되기 힘들어 보이지만)은 아무런 해결책이 되어주지 못한다. 오로지 본질적인 차원의 근본적 투쟁을 다시 회복할 때에만, 한 나라 혹은 정치적 상황이 허락하여 여러 나라에서 민중들이 주권을 회복할 때에만, 비로소 무엇인가 변화가 가능할 것이다. 특히 구조의 변혁을 통해서만이 비로소 자본이 모든 다른 사회구성원 전원을 볼모로 붙잡고 있는 현 자본과 노동의 역학관계를 해체할 수 있을 것이다.(11)
하지만 부의 양극화를 비판하는 경우, 이와 같은 문제들은 전혀 제기되지 않는다. 부의 양극화에 대한 비판은 그저 아주 우아하게 사회에 대한 매우 평화로운 관점만을 제시해줄 뿐이기 때문이다. 가령 이 사회에서 진정 비열한 자는 상위 1%, 아니 더 나아가 고작해야 상위 0.1%에 불과하다는 식이다. 그리하여 나머지 99.9%는 모두 월급을 받아 살아가는 균일한 사람들, 하나로 단합된 사람들처럼 치부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사실은 각자 다양한 삶의 조건이나 혹은 기업 내 위계사슬을 타고 줄줄이 퍼져 있는 신자유주의 폭력으로 인해 서로 온갖 갈등의 문제를 겪고 있다. 더욱이 현 자본주의 특유의 구조가 사회를 지배하는 상황에서는 더욱더 이같은 갈등이 심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현 자본주의 구조는 자신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이익에 대해 너무도 잘 아는 한 계급의 끈질긴 노력에 의해 형성되었다. ‘엄숙주의자들의 무리’도 그 계급에는 절대 손을 대지 않는다. 더욱이 ‘자본’을 논할 때는 더더욱.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는 피케티의 저서에는 사회철학이 명확히, 그것도 아주 명확하게 존재한다는 점이다. 물론 찬사 받아야 할 대상은 노동이지만, 경영자의 재산도 좋은 것이다(단 그 재산이 금리 소득을 얻는 데만 이용되지 않는다면 말이다)라는 사회철학관이 그의 저서 속에는 담겨 있다. 사실 그의 저서에 나오는 “모든 재산은 부분적으로는 정당하지만 잠재적으로는 과도하다”(709쪽)라는 구절은 그다지 많은 이들을 두렵게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주주의 통제 하에 놓인 언론, 아무도 속여서는 안 될 의무를 지녔지만 속임수에는 능한 언론은 이번에도 결코 실수를 범한 것이 아니었던 셈이다. 총체적인 평화, 자본과 노동의 평화, 99,9%의 평화,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라는 평화를 그토록 염원하는 피케티. 그런 피케티는 결국 ‘제도’니, ‘정치’니, ‘갈등’이나 하는 것들을 피상적으로만 언급할 뿐, 종국에는 우리 눈앞에 다음과 같은 미래 비전을 펼쳐 보이고 있다. “1917~1989년의 양극화된 대치는 이제 분명히 지나갔다.”(949쪽) 사상초유의 자본주의 위기로 인해 마침내 탈자본주의에 대한 지적 논의가 한참 일어나고 있는 바로 이때에 이런 반가운 예언이라니! 이 얼마나 대단한 혜안인가! 이 얼마나 탁월한 시대감각인가! 어쨌거나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러니까 더 이상 심각하게 걱정할 필요가 하나도 없다. 이제 모두가 마음 놓고 마르틴 오브리 여사의 대권 도전을 향해 출발하면 그만일 터!
<각주>
(1) Russell Jacoby, ‘피케티의 과세 vs 마르크스의 혁명’,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8월.
(2) Thomas Piketty, <21세기 자본>, 쇠이유, 파리, 2013년.
(3) 그는 “어려워서 읽지 않았다”고 답했다. <The New Republic>의 인터뷰, 워싱턴 DC, 2014년 5월.
(4) Jean Peyrelevade의 저서는 예외다. 이 책은 책임의 중요성만을 부르짖는 데서 벗어나려면 주주 자본주의에 항거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5) ‘현 위기는 근본적으로 유로존을 구축할 때 발생한 악습들로부터 기인했다’, Daniel Cohen, <렉스프레스>, 파리, 2013년 6월 5일.
(6) 인터뷰, <The New Republic>, 2014년 5월 5일.
(7) Alain Badiou와의 대담, ‘역류’, <Mediapart>, 2014년 10월 15일.
(8) Owen Jones, 인터뷰, <The Gardian>, 런던, 2014년 12월 22일.
(9) 인터뷰, <The Gardian>, 2015년 1월 12일.
(10) Bernard Friot, <임금의 쟁점>, La Dispute, 파리, 2012년.
(11) Frédéric Lordon, ‘좌파는 죽지 않는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9월.
글·프레데리크 로르동 Frédéric Lordon
최근 저서로는 <결함. 유럽통화와 민주주의 주권>(Les Liens qui libèèrent·파리·2014년)이 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