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언어주의가 치러야 할 대가
2015-04-01 도미니크 오프
국제기구 내에서 언어정책은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다. 규약상의 규칙이 공식언어와 직무언어를 정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유엔은 6개 언어(1), 유럽연합은 24개 언어(2)], 사실상 단일언어주의가 점차 인정되고 있다. 사람들은 별 콤플렉스 없이 새로운 공통언어로 영어(English lingua franca, ELF)(3)를 들고 있다. 예산의 제약으로 인한 한탄스런 결과로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결과로 오래 전부터 제시된 이런 변화가 현재는 수용되고 있는 것 같다. 국제기구의 전문문화 분야들도 이제 영어의 지배를 받아들이고 있으며, 심지어 영어지배 옹호자들은 영어의 지배가 국제화됐다고 단언한다. 다시 말해, 영어 지배가 이제 더 이상 언어의 다양성이나 형평성에 대해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ELF를 옹호하는 ‘새로운 공공경영’(4) 이론 신봉자들은 대부분 영어의 사용이 견딜 수 없게 늘어나는 폭발적인 비용을 막아줄 최고의 수단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분석을 해보면 사실과 맞지 않는다. 직무언어 분야에서 가장 엄격한 형식적인 체제를 요구하고 있는 유럽연합은 언어 서비스를 위해 대략 연간 11억 유로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금액은 예산의 1%, 국내총생산(PIB)의 0.0087%, 가구당 2.20유로 혹은 15세 이상 시민 1인당 2.70유로의 분담금에 해당한다. 비용이 더 상승할 우려가 있다고 해도, PIB의 0.01%이하의 비용은 경제적으로 견딜 수 없는 비용으로 간주될 수 없는 것이다.
단일언어주의가 다언어주의보다 비용이 덜 드는 것으로 사람들이 ‘주장할’ 수도 있으나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게다가 ELF를 정당화하기 위한 핑계로 애용되는 비용절감은 일반적으로 관련된 기구들의 예산 보고 내용에 근거하고 있다. 예산 삭감은 편협하게도 기관들 자체에 계상된 기본적인 직접비용(번역료, 통역료) 및 간접비용(언어서비스와 연관된 일반경비)과 관련되어 있다. 이런 기준들에만 근거하여 단일언어주의가 다언어주의보다 비용이 덜 드는 것으로 사람들이 ‘주장할’ 수도 있으나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사실 어떤 언어체계의 실질 비용은, 기관 자체 뿐 아니라 관계자 전체에 대한 이차적이고 암묵적인 비용까지 고려해서 평가해야 한다. 예를 들어 번역을 축소하거나 없애버리는 것이 그 번역의 필요성까지 제거하지는 못한다. 이 번역들은 다른 곳에서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다른 누군가의 비용으로 전가될 것이다. ELF 지지자들이 비용절감으로 제시한 것은 사실상 비용을 다른 곳으로 이전시킨 것에 불과하다.
교육, 연수, 청소년, 스포츠를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인 ‘에라스무스 플러스(Erasmus+)’가 2014년 실시됐는데, 그 내용 홍보 과정이 번역 비용을 이전시킨 좋지 못한 효과를 잘 보여주고 있다. 유럽연합의 언어규정과 어긋나게 프로그램 안내서가 처음에는 영어로만 출간됐고, 프로그램 참여 후보자들의 1차 시기 서류 제출 마감일이 지난 이후에야 번역이 이루어졌다. 결과적으로 말해 ELF가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서류는 결국 각자의 수단을 통해서, 그리고 그 내용의 세세한 수준도 각자 다르게, (회원국 전체 언어로는 아니지만) 여러 언어로 다양한 관계자들(내각들, 대학들, 연합회들, 개별 모임들)에 의해 번역됐다. 그 내용에 대한 접근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졌고, 언어마다 그 내용이 달랐다. 때때로 제공된 번역 내용은 모순된 것들도 있었다. 문장들이 심하게 중복되어, 정확한 정보를 확인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처럼 애초에 번역을 하지 않음으로써 혼란이 야기됐고 번역비용이 증가했다. 영어권 사람들은 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들과 프로그램에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이득을 볼 수 있었다.
만약 단일언어사용주의와 다언어사용주의 사이의 비교분석을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두 가지 의미의 의사소통에까지 확장시키면, 그 비용의 차이는 엄청나게 커진다. 바로 이 점에서도 가장 명백한 실례를 보여주는 곳이 바로 유럽연합이다. 텍스트는 현재 공식적으로 24개 언어로 번역되고, 각 시민은 자신과 관계된 기관들에서 자신이 선택한 언어로 신청할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모두에게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 이것은 또한 모든 유럽시민이, 자신이 원한다면, 중요한 재정적 혹은 정치적 이슈를 다루는 토론에 참여할 수 있게 해준다. 결국 다언어정책은 민주주의 과정 자체를 보장해 주고 있는 것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만약 영어가 유럽연합의 유일한 언어가 된다면, 각 국가가 공동 활동에 개입하고 공평한 방법으로 그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요구되는 언어능력 획득 비용이 대략 유럽 시민 당 연간 48유로가 소요된다. 언어습득과정이 엄청난 시간을 요구하고, 이것이 사회적으로 실현가능한 지를 어느 것도 증명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논외로 치더라도, 그처럼 결함이 많다는(5) 현재의 유럽 다언어주의 비용이 2.70유로인 것에 비하면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이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영어사용에 있어서의 오류와 어림셈의 재정비용 뿐 아니라, ‘강제된’ 언어 사용과 연관된 이해·표현·협상의 어려움과 이에 관련된 정치적 비용을 잘 요약해 준다. 2013년 3월 영국일간지 <파이넨셜타임즈>의 질문을 받은 유로그룹(Eurogroupe) 의장인 네덜란드의 예룬 데이셀블룸(Jeroen dijsselbloem)은 키프로스에 대한 유럽의 구제금융계획안이 개연성이 있는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선언했는데, 이로 인해 유로화와 은행의 가치가 하락했다. 이 선언은 유로그룹의 입장과 반대되는 것으로, 잘못된 언어해석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영어 단어 ‘template’(정보통신분야에서 ‘모델’이라는 의미)의 의미를 몰랐던 데이셀블룸은 감히 그 단어를 사용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질문을 잘못 이해했고, 틀리게 대답했다.
단일언어주의의 전체 경제 이익이 수치에 의해 반박 받는다고 해도, 영국 사람들과 아일랜드 사람들이 혜택을 보고 있는 것은 명백하다. 영어 모국어 화자는 번역·통역·출판·교육 혹은 교육도구의 생산과 같은 영역들에서 특권적 지위를 누린다. 영어가 기준이기 때문에 영어 모국어 화자는 관계된 기구가 담당하는 영역들에서 최소의 비용으로 아주 능란하게 활동을 전개할 수 있다. 이런 전략적 이점을 통해 영어 모국어 화자는 사실상 실질적인 절약을 할 수 있게 되고, 이 절약한 돈이나 시간을 다른 곳에 투자할 수 있게 되어 상당한 훈련효과를 낼 수 있게 된다. 결코 상쇄되지 않는 이 현상은 국가들 사이의 균형을 깨뜨리고, 다자정치의 심장부에 살고 있는 유럽시민들 사이의 평등을 깨뜨린다. 2001년 영국 문화원은 영어와 관련된 생산품들의 가치를 130억 유로로 평가했다.(6) 2005년 학교평가 고등위원회가 제출 받은 보고서는(7) 이 수치를 상세하게 검토했다. 명목국내총생산의 성장을 고려하면, 상승효과·들어오는 정기수입·선취 특권이 부여된 시장이 낳는 수익이 84억 유로, 번역과 통역의 절감효과가 22억 유로, 외국어교육에서 얻는 절감효과가 64억 유로에 달한다. 2014년 영어의 지배적 지위에 의해 영국이 얻는 이전 효과는 210억 유로로 재평가되었다.
‘새로운 공공경영’ 이론의 영향을 받아, 예산상의 근심으로 인해 언어체계에 대한 토론이 사라져 버리고 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문제다. 1998년 전직 유엔사무총장이면서 당시 프랑스어권 국제기구(OIF) 의장이었던 브트로스 브트로스 갈리(Boutros Boutros-Ghali)가 이미 이 문제의 본질을 이야기했다. “다언어주의를 우리가 지지하는 첫 번째 이유는, 국가들 사이의 평등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국제기구 공무원들, 외교관들 혹은 장관들에게 자국어가 아닌 언어로 의사표현을 강요함으로써 그들을 열등한 상황에 내몰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다 알고 있다. 그것은 뉘앙스 있게 말하고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그들에게서 빼앗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그 능력을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양도하는 꼴이 돼버린다. 또한 우리는 유사하게 보이는 개념들이 문화에 따라 흔히 다르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단어는 하나의 문화, 사고하는 방식, 세계관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모든 이유 때문에 나는, 한 국가의 민주주의가 다원주의에 입각해 있는 것처럼, 국가들 사이의 민주주의가 다언어주의에 근거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8)
국제기구들의 인터넷 사이트에 대한 분석은, 대다수 국제기구들이 단일언어주의와(9) 그 문화적·개념적 영향 때문에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다. 유럽연합의 분권화된 30개 기구 중에서, 21개 기구가 자신들의 사이트를 영어로만 운영하고 있고, 5개 기구는 다양한 언어로 표현하지만 주로 영어를 사용하고, 4개 기구만이 진정한 언어적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유럽은행감독기구(ABE), 에너지조정협력기구(ACER), 유럽방위기구(AED)가 담당하는 다양한 영역들에서도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영어에 대한 지식이 필수적이다. 유로폴(Europol)도 유럽에서의 이슬람 위협에 대한 정기 보고서를 영어로만 발간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문화적·개념적 헤게모니의 징후가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이 1980년대부터 라틴아메리카, 남동아시아 그리고 현재 남유럽에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개발 방식을 무차별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국제사법재판소가 관습법(common law)(10)의 판례를 우선시하는 모델 쪽으로 점진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가?
어떤 세계관에 대한 상징적 징후인 단일언어주의는 전체 지정학적 균형을 위협하는 중요한 지표다. 단일언어주의를 제한하여, 국가들이 각국의 차이를 존중하면서 함께 조화롭게 활동하는 능력을 펼치게 해야 한다.
글·도미니크 오프 Dominique Hoppe
번역·고광식
(1) 중국어, 러시아어, 영어, 프랑스어, 아랍어, 스페인어.
(2) 회원국의 모든 공식언어는 유럽연합의 공식언어임.
(3) 다양한 모국어 화자들에 의해 사용되는 공통어 혹은 사비르어(혼성어).
(4) 민간 경영 모델들을 공공 경영에 그대로 갖다 붙이는 이론.
(5) 프랑수와 그렝(François Grim), ‘프랑스어의 가치, 다언어주의의 가치: 프랑어권 다언어주의 정책을 위한 수렴점 탐색’, 장-프랑수아 시마르, 압둘 에쉬라프 우에드라오고, <의미를 추구하는 프랑스어권>, 라발 대학 출판부, 몬트리올, 2014년.
(6) 존윌리(John Wiley)보고서, http://www.britishcouncil.org/english/engfaqs.htm#hmlearn1
(7) 프랑수아 그렝, ‘공공정책으로서의 외국어교육’, 학교평가 고등위원회에 제출된 보고서, 파리, 2005년 9월.
(8) 다원주의에 대한 심포지엄, 제네바, 1998년 11월 5-6일.
(9) ‘국제기구들의 인터넷 사이트에 적용된 언어 실천에 대한 총체적 분석리포트’, 2014년, www.affoimonde.org
10) 시릴 로시(Cyril Laucci), ‘언제 앵글로색슨법이 강제로 시행되는가?’, <르몽드디플로마티크>, 2014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