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옹-토리노 철도가 가져올 환경재앙

2015-04-01     세르쥬 카드뤼파니

 프랑스 시벵스 부근에서 전투경찰이 던진 수류탄을 맞아 사망한 환경보호운동가 레미 프레스는 농업 생산성제일주의의 일탈을 상징하는 저수지 댐 건설 반대 시위에 참가했었다. 시대에 뒤진 개발모델에 집착하는 태도는 지역 주민과의 깊은 골을 만들어 낸다. 이처럼, 주민들은 가끔 리옹-토리노 간 고속철도 건설 같이 불필요한 대형사업에 맞서 대항한다.

  짙푸른 하늘 아래, 포도밭으로 뒤덮인 언덕과 고래등 같은 편암 돌지붕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촌락들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산 사면에 흘러내린 돌덩어리들과 기암괴석의 가파른 봉우리. 이런 것들이 어우러진 지점에서 계곡 위쪽으로 펼쳐진 절경은 탄성을 자아낼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가슴이 미어진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빼어난 절경은 산사면의 위쪽으로 3분의 1에 해당하는 부분에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아래의 나머지 경관은 고속도로에 의해 절단됐고, 9층 높이의 건물 같은 그 교각들에 의해 도막났으며, 수천 번이나 땅이 파헤쳐졌다. 건물, 철조망 등 모든 곳에 순찰 군인들만이 있다. 아주 드물게 공사차량이 터널 입구라고 알아챌 수 있는 곳에서 불쑥 나타나곤 한다. 국경선 양쪽에서는 지질층 탐사를 위해 이미 수 킬로미터의 굴이 뚫렸다. 그런데 어떤 것들은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그중의 하나는 차량들에 표시된 국제연합, 곧 UN의 약자이다. 그 약자는 바깥세계의 전쟁터에서 철수한 군대가 여기에 주둔하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칼라브리아(Calabria) 마피아(1)의 손아귀에 있는 회사에 의해 건설됐다고 알려진 방책물이다. 그것은 내전에 휩쓸린 국가를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철책과 콘크리트 구조물로 만들어져 있다. 이탈리아 쪽 수사계곡의 훼손과 20년 넘게 고속철도 건설을 반대해온 주민들의 저항을 이해하려면 키오몬테(Chiomonte) 공사장을 걸어서 접근해야 한다.

  주민을 배제한 리옹-토리노 간 무리한 철도 건설

  프랑스의 리옹에서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와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를 거쳐 우크라이나 국경까지 연결하는 고속철도 건설계획은 1990년 대 초에 유럽집행위원회가 고안했다. 건설을 포기했다가 공사기한을 아득하고 불분명하게 연장하는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토리노 서쪽에 있는 이 계곡과 프랑스 쪽의 모리엔느(Maurienne) 계곡 사이의 57km 터널 공사를 포함하는 리옹-토리노 간 대규모 건설계획만이 남아 있다. 1991년 12월 15일 수사계곡에서는 기술자, 노동자, 지역시장, 지방행정관리 등 60 여명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발족됐다. 의사들은 소음공해에 대한 경종을 울리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동시에, 이후 많은 모임을 갖고서 고속철도(Treno ad alta velocita, TAV)가 내는 소음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주변 산에 NO-TAV라는 대형 문구가 등장해 반대운동의 서명이 되다시피 했다.

 

고속철도의 경제적 무용성, 터널 예정지 지층의 우라늄과 석면의 존재에 따른 환경 유해, 국토 훼손, 수자원 파괴 등, 건설계획을 반대할 수 있는 많은 근거들이 잇따라 제시됐다. 그런데 처음에 부각시킨 소음 문제는 지역의 지리적 특성을 잘 밝혀준다. 프랑스의 모리엔느 계곡의 지형과는 반대로 수사계곡은 협곡인데다 고속도로, 고압선, 철도 등 기존의 사회기반시설로 이미 포화상태가 됐다. 따라서 고속철도 건설이 주변 환경에 미칠 악영향은 더더욱 심각할 것이다. 이곳의 자연지리적 특성은 산악공동체가 동질성을 형성하게 된 경로와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고속철도 반대운동의 엄청난 규모는 프랑스 쪽 반대운동의 침묵과 큰 대조를 이룬다.

이후로 경제학자와 기술자들이 연구결과를 내면서 지역주민들이 이미 직감했던 우려를 증명해줬다. 이 건설계획은 한물간 개발 모델인 것이다. 노선 지지자들은 반대파에 맞서는 데 있어, 막대한 투자를 하는 이유가 여객수송량이 매우 낮은 노선에서 시간 단축만이 목적이란 것을 내세우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프랑스와 이탈리아 간의 두 개 주요 도로망인 프레쥐스(Frejus)와 몽블랑(Mont-Blanc) 터널의 체증을 해소하고 화물도로운송을 감소시키는 게 목적이라는 환경적 근거를 내세웠다. 30년 전에 이 건설계획의 입안자들은 물동량이 3배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이를 근거로 삼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물동량은 1988년 때보다도 적은 실정이다. 프랑스 정부로부터 “사회기반시설 건설계획 간의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모빌리테(Mobilité)21’ 위원회는 국경 터널에 연결될 샤르트뢰즈 산괴와 벨돈 산괴를 관통하는 20km 이상의 두 개 터널을 포함하는 프랑스 쪽 공구를 연구조사한 결과, 2035∼2040년 이전에는 그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회계감사원은 2012년 8월 1일 총리에게 보낸 회계보고서에서 전 공구를 망라한 고속철도 총건설비가 2002년에 120억 유로였던 것이 261억 유로에 달한 것으로 추정했다.(3) 회계감사원들은 “기존 노선을 개선하는 방안을 너무 빨리 포기하지 말라”고 권고하면서, 알프스를 통과하는 도로 교통량을 철도로 이동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회의원, 시장, 지방의회의원 등 모든 정당의 지역출신 인사들은 대안방안을 위한 평가작업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 사례로 지역의원들은 현재 기존철도 수송 능력 가운데 17%만이 활용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고속철도노선 지지자들은 기존철도가 너무 빨리 노후화됐고 철로길이 너무 경사졌다고 평가한 다음, 노선을 현대화하면 현실적으로 예측 가능한 가까운 미래의 교통량을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평가한다.(4)

이탈리아 상원은 청문회를 열어 국영철도(Ferrovie dello Stato, FS) 경영진의 답변을 들었다. 그들의 추정치는 TAV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 일부까지도 동요시켰다. 국경터널 총공사비용만 당초 83억 유로였던 것이 120억 유로로 증가할 것이고, 이탈리아의 부담금은 48억 유로에서 69억 유로로 늘게 된다는 것이다.(5)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탈리아 국영철도 사장은 “비용대비 수익성 분석이 유럽의 국가부채 위기 전에 실시됐으며 그 이후 상황은 변했다.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달해 있다”(6)고 덧붙였다. 그러나 마우리지오 루피 교통장관은 이에 아랑곳 않고 고속철도 건설은 이탈리아와 유럽에 “전략적 계획”임을 재확인했다.

프랑스의 경우는 관련 전문가들의 보고서를 고려하지 않는다. 더구나 장-작 케란 교통부장관은 2014년 9월에 지지자들과 같은 입장을 표명하면서 일자리 창출에 대한 근거 없는 주장을 덧붙였다.(7) 대형건설업체와 지방 및 중앙 정치지도자들 사이의 밀접한 관계도 분명히 공사가 강행되는 일과 무관치 않다. 지반조사 공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고, 지난 10월 1일에는 새로운 재정지원을 받았다. 2015년 초에는 생마르탱 드라포르트에서 굴착기계가 예정된 국경터널의 일부에 해당하는 9km의 터널을 굴착할 것이다.(8)

  건설강행 배경에 있는 EU의 재정지원

  현실적으로 이같은 건설 강행 의지는 유럽연합의 재정지원와 무관치 않다. 그런데 지난 10월 14일 고속철도반대 프랑스-이탈리아 대표단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유럽의회 교통위원회 크래머(Cramer) 위원장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정부가 바라는 것처럼 유럽연합이 리옹-토리노 고속철도 건설비용의 40%를 지원할 능력이 있을 지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

오늘날 불필요한 대규모공사의 대명사가 된 이 건설계획이 결국 포기될 가능성이 엿보이는 것은 소수 산악 주민들의 예외적인 저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초기에는 어려웠다. 1996년 3월에 최초의 대규모 시위가 있었고, 같은해 8월에는 철도건설 기계와 장비에 대한 일련의 파괴공작이 시작됐다. 언론은 당시 “수사계곡의 폭력적 환경운동”을 맹렬히 비난했다. 1998년 3월 5일, 경찰은 마리아 솔레다드와 에도아르도 마사리 부부를 중심으로 하는 ‘유령’ 단체의 조직원들을 체포했다. 두 인물은 자살했다. 그 이후 이들에 대한 모든 비난은 근거 없는 것으로 판명났다. 현재까지 여전히 누가 그 테러의 범인인지 모르고 있다. 극우파가 정보기관과 가까이 지내던 1970년대와 1980년대처럼, 많은 사람들은 그 사건을 이탈리아식 ‘긴장 전략’의 맥락에서 이해했다. NO-TAV 운동은 그 사건에서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음악회를 개최하는 일을 비롯해 최초로 시추조사작업을 저지하고 강연회 및 집회를 거듭하면서 대중운동이 구축됐다. 2003년 4월, 수사계곡에서 2만 명이 시위에 참석했다. 2005년에는 37개의 시의회가 고속철도 반대 입장을 선언했다. 반대운동가들의 상설 집회소인 ‘수비대(presidi)’가 여럿 생겨났다. 같은 해 11월에 경찰이 그들 중 하나를 철거하자 수천 명의 시위대가 그 장소를 재차 장악했다. 투쟁의 파란만장한 서사시가 시작된 것이다.

투쟁의 서사시는 일종의 ‘고수지대(固守地區)’(zone à défendre, ZAD: 프랑스 낭트 부근 노트르담 데 랑드 신공항건설 반대자들이 건설예정지를 ‘고수지구’로 선언했음-역주)의 전신이 됐고, 2011년 5월 22일에서 6월 27일까지 존재했던 ‘마다레나(Maddalena) 자유공화국’ 사건 등 수많은 사건들로 점철되기에 이른다. 강경대응 또한 수위가 높았다. 현재 400명 이상이 기소처분 등의 판결을 받았다. 징역형과 엄청난 벌금형이 반대운동가들에게 떨어졌다. 시위대에 참가했다는 죄목으로 2013년 12월, 네 명의 반대운동가들이 체포되어 테러반대법 적용을 받고 구금되어 있다. 그런데 그 시위에서는 단 한 명의 부상자도 없었고, 물질적 피해라고는 불탄 컴프레서가 고작이었다. 그들에 대한 재판은 현재 진행 중이다. 이 재판의 쟁점은 운동가들이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고 “이탈리아의 이미지를 훼손”한 행위를 테러로 규정지을 수 있는지 아닌지를 밝히는 데 있다.

진압의 강도가 높아지자 거기에 맞서 사회연대도 강화됐다. 2012년 1월 26일, 이탈리아 전역에서 NO-TAV 운동원들에 대한 대량검거 열풍이 일어나자 토리노에서 사르데냐 섬의 칼리아리에 이르기까지 아주 거센 반발이 일었다. 2월 27일, 고속철도 반대운동의 역사적 인물인 루카 아바(Luca Abbà)는 시험터널 입구 보호방책 확장 반대시위에 나섰다가 경찰의 추적을 피해 고압선철탑에 올라갔다 감전되면서 10m 아래로 추락해 중상을 입었다. 이 사고로 고속도로가 봉쇄되고, 볼로냐, 로마 등의 역들이 점거됐으며, 나폴리와 팔레르모에서는 시위가 일어났고, 민주당(PD) 간부들이 비난을 받는 등 일련의 사태가 촉발됐다. 왜냐하면 양진영의 경계가 아주 급속하게 분명해졌기 때문이었다. 한쪽은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민주당 등 신자유주의적 좌파 정당들로서, TV매체와 신문과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고서 유일한 정치 이념으로 ‘합법성’이란 글귀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다른 한 쪽은 메시나(Messina) 해협의 대형다리 건설계획, 베네치아의 석호를 파괴하는 여객선 허용 등 강제 개발정책에 맞서 출발한 단체들이 있다. 여기에선 수많은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반대하는 대학생들과 사회적 약자, 노동권 박탈에 맞서 투쟁하는 금속노동자들, 빈집을 무단점용한 무주택자들을 볼 수 있고, 노트르담 데 랑드 신공항 건설 반대운동이나 반핵주의자들과 국제적으로 연대한 세력 등도 있었다. 로마와 브뤼셀의 행정기관과 이보다 상위에 있는 국제금융에서의 실체가 없는 보이지 않는 손 등, 권력기관의 추상성에 맞서 이탈리아와 유럽의 시위대들이 모여든 것이다. 그 시위대들은 자기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수사계곡에서 보았다. 곧 그곳에 모인 이들은 편협한 민족주의나 지역이기주의의 고수에 빠지지 않으면서 지역실정에 뿌리를 둔 구체적 집단세력이었던 것이다.(9) ‘한정된 세상에서의 무한정한 성장’에 대한 비판이 저항단체의 표현 곳곳에 깔려있었다.

종교적 이단단체에 환대를 베풀고 피난처를 제공한 일, 중세의 자치공동체, 4세기동안 지속된 에카르통(Escartons) 공화국(10), 1945년에 반파쇼 저항운동에서 생겨난 빨치산 공화국 건국시도 등 이 계곡의 모든 과거사들에 대해 애기하는 건 하나의 정체성을 고착시키려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것들이 갖는 해방의 힘을 알리려는 이유 때문이다.

어쩌면 NO-TAV 운동은 곳곳에서 이미 승리를 거뒀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삼림감시원 엄마, 은퇴한 아빠, 두 형제의 ‘평범한’ 가족구성원들이 경찰과 시위대의 격돌 장면을 기쁜 눈빛으로 비디오를 볼 때가 그렇다. 부솔레노의 이발사가 투옥된 동료 이발사를 돕기 위해 ‘연대 샴푸’를 고안했을 때가 그렇다. 검사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아낙네들이 철조망 앞에서 피오 신부(Padre Pio)를 위해 기도하고, 주민자치회관 소속 소년들이 철조망 너머로 돈을 던지며 연대했을 때가 그렇다. 모든 시위대 참가자들이 “모두 함께 떠나서 모두 함께 다시 오자”라는 좌우명을 준수하고자 노력했을 때가 그렇다. 에리 데 루카(Erri De Luca) 또는 우밍(Wu Ming)(11) 같이 이탈리아에 얼마 남지 않은 비판적 소설가들이 방책 앞 낭독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았을 때가 그렇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눈으로 직접 체험했을 때가 그렇다. 이런 현상들은 지금처럼 돌아가는 세계에 반대하는 한 집단이 형성됐다는 의미일 것이다.

국경 양쪽을 불문하고, 민주주적 안목은 물론 어떤 일말의 정치적 도덕도 상실한 채 정신적으로, 인도주의적으로, 선거 상으로 한없이 허물어지는 정치인들 세계가 경험하지 못하는 ‘거대한 실체’가 이 계곡에서 탄생했다. 정치인들이 까맣게 잊어버린 끝없이 변화하는 그 구체적 실체는 바로 민중이라는 것이다.

 

글·세르쥬 카드뤼파니 Serge Quadruppani
최근 저서로 <Madame Courage>(Gallimard, coll. folio policier, Paris, 2014) 등이 있다.

번역·손종규
렌느 2대학 박사과정 수료. 번역가.

 

 

(1) ‘은드란게타 마피아의 침투에 대해서’ 참조, ‘Torino, azienda in odore di ‘ndrangheta nei lavori della stazione di Porta Susa’, <IlFatto Quotidiano>, 로마, 2012년 6월12일 ; Valentina Parlato, 'Question autour de la gestion du grand projet Lyon-Turin’, <Arte reportage>, 2014년 11월10일.
(2) Mobilité 2>, ‘Pour un schéma national de mobilité durable’, 교통부장관에 제출된 보고서, 2013년 6월 27일.
(3) Cour des comptes, ‘Référé sur le projet de liaison ferroviaire Lyon-Turin’, 2014년 8월1일, www.ccomptes.fr.
(4) http://lyonturin.eu 웹사이트는 자금측면과 대안책에 대해서 동영상을 포함한 훌륭한 자료를 제공하며 명쾌하게 밝혀준다.
(5) 유럽연합 대내정책총국은 국경터널 건설에만 140억 유로가 소요될 것으로 내다본다. 고속철도 발주자인 리옹-토리노 철도시설공단(Lyon-Turin ferroviaire)의 추산에 의하면 철로 1 km 당 1억 유로, 터널 1 km 당 1억 4900만 유로의 비용이 든다.
(6) ‘Tav, nuaovi dubbi sui costi’, <IlFatto Quotidiano>, 2014년 11월 11일.
(7) ‘Les approximations de Jean-Jack Queyranne sur le Lyon-Turin’, 2014년 9월18일, http://elus-rhonealpes.eelv.fr.
(8) ‘Le tunnel ferroviaire Lyon-Turin franchit une étape importante’, Le Moniteur, Paris, 3octobre2014.
(9) 이탈리아 내의 반대운동은 http://notavtorino.org, 프랑스 내의 반대운동은 http://notav-savoie.over-blog.com을 각각 참조.
(10) 1343년, 현 국경선의 양쪽에 있던 산악공동체들은 도피네 영주로부터 영주의 권리를 샀다. 프랑스대혁명까지 이 산악공동체들은 지역의회를 통해 자치행정을 폈고 매년 일정한 금액을 지불했다.
(11) 이탈리아 5인 작가협회 www.wumingfoundati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