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녹색당의 빛바랜 '녹색'
인류의 환경 지배가 차후 인류 자신의 미래를 위협할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이 문제를 정강의 핵심으로 내세우는 정당들이 정치를 개혁할 만한 능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념적 중추도 없거니와 신자유주의적인 사회당과 연합하는 것에 대해서 의견의 일치조차 보이지 못하는 프랑스 녹색당은 그저 들러리로 만족하는 것인가?
유럽환경-녹색당의 지휘부와 활동가들은 당의 현 상황이 보잘것없다는 진단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이 당의 전략적 지평도 이상하리만큼 흐려졌다. “당의 위기는 심화되었으며 혼란은 더 심해질 것입니다”고 론느-알프스 지역의 고문이자 환경-녹색당의 중앙위원이며 좌파 성향인 알렝 쿠롬벨이 확인해준다. “당이 전례가 없는 분열 상태에 있습니다.” 상원에서 녹색당 원내 총무인 장-벵상 플라세가 말해준다. (그는 한국의 서울 태생으로서) 정부에 참여하자는 노선을 가장 열렬하기 견지하며 같은 의견을 가진 의원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프랑스의 가장 유력한 녹색당이 그 역사의 흐름의 끝자락에 와있다. 녹색당은 (68년 봄에 파리 학생운동의 주역중의 한 사람이었던) 다니엘 콘-벤디트(Daniel Cohn-Bendit)의 지휘아래 2009년 유럽의원선거에서 유효 표의 16.3%,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12.2%를 얻는 쾌거를 이룬 후 정치적으로 강자가 되려는 전략을 채택했다. 그리고 그 결과도 좋았다. 물론 사회당과의 연합을 통해 얻은 결과였지만, 유럽환경-녹색당은 3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에 제도권에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우리는 단번에 270명의 지방의회 의원과 17명의 하원 11명의 상원의원을 배출했습니다”고 플라세가 의기양양해한다. 그는 자기만의 별다른 특별한 전략도 보여주지 못하면서도 2014년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8.9%의 득표로 상당한 폭의 하락을 경험 한 후 2015년 3월 실시되는 도의회 의원 선거와 12월로 예정된 광역 지방의회 의원 선거에서 연타석 홈런을 날리겠다고 미리 장담한다. 녹색당은 몇 명 되지는 않았지만 어렵게 구성한 의회의 교두보마저, 구축했던 속도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다시 잃어버릴 공산이 크다. 반드시 사회당과의 연합 전략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프랑스의 녹색당은 이념적으로는 언제나 다양했다. 경제적 차원에서는 자유주의적인 환경론자부터 급진파 내지는 반자본주의 세력까지 아우르고 있다. 모든 ‘녹색당원들’이 하나의 정당에 소속되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1차 투표에서 총 16명의 후보가 난립한 200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 녹색당 후보로 출마한 전력이 있는) 노엘 마메르는 2013년 유럽환경-녹색당 프랑스 대표인, 전 환경부장관 세실 뒤플로의 휘하 자리로 들어갔으며 (전 환경부장관이며 ‘환경세대’당의 일원이었던) 코린느 르파즈는 유럽환경-녹색당에 참여하지 않고 새천년시민참여운동당을 창설했다. 장-뤽 베나미아스는 20년 이상이나 몸담았던 녹색당을 떠나 도중에 (프랑수와 바이루가 이끈 민주운동당에 참여했다가) 2014년 (중도 좌파격인) 민주전선을 창당했다.
“우리는 차이를 극복하고 연대해야만 합니다. 우리 적들도 그렇게 하고 있지요. 원자력 관련 로비스트들인 프랑스원자력공사와 프랑스전력공사는 한 목소리를 내는 법을 알고 있지요.” 유럽환경-녹색당의 전 프랑스 대표인 파스칼 뒤랑의 넋두리다. 그렇지만 현 프랑스 대표인 엠마뉴엘 코스(전 파리판 에이즈퇴치운동 운동가 출신으로서 그녀는 2009년 세실 뒤플로의 후원으로 유럽환경-녹색당에 참여하여 2013년 프랑스 대표로 선출되었다)를 위협하는 새로운 요소는 또다시 내부 분열이 발생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점이다. 이 어려운 자리를 이어받은 대표는 “내부 알력이 극심한” 한 정당의 미래에 관해서 ‘으레 그럴 것이다’라는 일종의 어떤 운명론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고 고백한다. “공중분해요? 그것도 가능합니다. 그것이 좋은 방향인지 나쁜 방향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이라고 그녀는 회의에 가득한 답변을 한다. 이 조그만 소우주(정당)에 갈등이 매우 뿌리 깊고 불협화음이 너무나 커서, 어떤 식으로든 명확한 정리는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마뉘엘 발스가 총리로 임명되던 당시 각료였던 뒤플로와 파스칼 캉펭이 유럽환경-녹색당 내부의 협의도 거치지 않고 정부에서 사임해버린 사건은 유럽환경-녹색당 내 강력한 우파 세력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루아르 아틀란티크의 국회의원이며 하원 녹색당 공동 원내총무인 프랑수와 드 뤼기이다. 그의 지역구는 전통적으로 녹색당이 사회당과 우호적인 연대를 이룬 긴 역사가 있는 곳이며 전 ‘환경세대’당의 당원이었던 그는 자신은 언제나 “실용주의”를 추종하는 영혼을 간직해왔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나는 울먹이는 녹색당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녹색당을 사랑합니다”고 전 프랑스 녹색당 대표 브리스 라롱드의 연설을 인용한다. 그에 따르면, 정치적 행위란 “정권을 장악하고자 하는 전략이 부재하거나,” 그 행위가 전제로 하는 선거인단과의 소통이 없이는 무의미한 것이다. 거의 주기적으로 차기장관 감으로 거론되는 뤼기는 “목표는 권력을 행사 하는 것이 아니라 이념을 확산시키고 사람들을 이 운동에 끌어들이는 것이다”라는 동료들의 “퇴행적인 경향”을 경계한다.
유럽환경-녹색당의 또 다른 원내총무인 플라세는 이 정당에서 우파의 만화 같은 이미지를 보여준다. 1971년부터 1999년까지 라 로셀의 급진좌파 시장이던 미셀 크레포의 보좌관으로 정치 여정을 시작한 그는 “문화적으로 완전히 투사적이며” 온갖 종류의 술수에 능숙한 기계 같은 인물로 변화무쌍한 언사를 사용할 줄 안다. 그는 유럽환경-녹색당이 반대당의 구미에 맞는 방향으로 흘러가서 “멜랑송(Mélenchon)이 이야기한 바 있는 (다 빠져나가 버리고 떨거지만 남아있는) 잔류당원들만의 당”이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장관으로서의 경력을 포기하지 않는 이 상원의원은 당에서 떠나버리겠다는 은근한 위협조차 마다하지 않는다. “광역 지방의회 선거까지 나는 사람들을 결집시키고 자력으로 정부에 들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작정이다. 그러나 이것이 차기 대통령 선거에 고작 2%의 득표에 머물 후보라도 내기 위한 것이라면 나는 하지 않을 것이다.”
중구난방의 노선들
오늘날, 유럽환경-녹색당은 설득력 있는 어떤 전략도 갖고 있지 않는 것 같다. 당 내 우파는 발스 정부와 여러 가지 옵션을 공유하고 있지만 쇠락의 길로 접어든 사회당과 새로운 연합을 할 능력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당내 좌파가 보다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현재의 경향에 몸을 맡기는 인상이다. “정부참여 동의안”은 2013년 총회에서 36.5%의 찬성밖에 얻지 못했다. 그렇다고 정부에서 나오라고 솔직하게 요구하지도 못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녹색당 내 좌파의 알렝 리피에츠(Alain Lipietz, 조절학파 경제학자이자 2000년 대선에서 녹색당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본인이 고사하고 대신 노엘 마메르가 출마했다)나, 혹은 이브 코세(Yves Cochet, 조스팽 정부에서 장관을 역임했다) 같은 녹색당의 역사적인 인물들이 취한 태도와 유사한 것으로서 사회당과의 연합관계를 교체할 믿을만한 해결책을 찾으려고 고민하는 것뿐이다. 지난 기초단체 의원 선거에서 녹색당은 다양한 형태로 선거에 나섰는데 좌파 연합과 연합한 경우에는 42%, 단독 출마 시 37%, 사회당과 연합 출마 시 21%의 득표를 올렸다.
당 대변인인 줄리앙 바이우(Julien Bayou)의 주도로 발의한 ‘러브(Là où vit l’écologie)안’은 당 총회에서 8.1%의 동의를 얻는데 그쳤으나, 역시 정부에서 탈퇴할 것을 주장하고 있으며 녹색당 독자 행보와 “다른 좌파”와의 연합 사이에 있을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 대변인은 장-뤽 멜랑송이 제창한 제6공화국 발의에 서명했으며 좌파당과 클레망틴 오텡의 ‘동참운동당’과의 공조를 기대하고 있다.
그르노블 시장 선거에서 에릭 피올(Eric Piolle)이 승리함으로써 녹색당이 많은 희망을 안게 되었으나 이 승리의 의미가 갖는 특별한 점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그르노블 시에서 승리한 요인은 환경-녹색당과 좌파당의 연합에 있다기보다는 기업의 간부, 시민단체의 투사라는 경력을 지닌 피올이라는 인물이 역량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바로 그 역량에 의해서 시민단체와 녹색당 사이에 유지되고 있던 친밀한 관계가 더 위력을 발휘했다는 점 때문이다. 새로 선출된 시장은 바로 이 “강한 시민의 스토리”와 “정치적 꼬리표를 초월하게 할 수 있는” 하나의 기획안을 중심으로 팀을 결집할 수 있는 능력을 강조한다. 소위 “실용적 급진주의”의 추종자인 피올은 예컨대 도시 공간에서 광고공간을 축소하는 것 같은 상징적이면서도 파급력이 강한 변화를 시도했었다. 그는 자신의 재임기간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것을 제1차 목표로 삼는 대신 유럽환경-녹색당의 미래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으며 이 당의 기수 역할을 할 생각도 별로 없다.
반대로 세실 뒤플로는 차기 임기 중에 녹색당의 투쟁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그녀가 각료를 그만둔 배경에는 자신의 당으로부터 소원해 지는 것을 두려워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 “나는 내가 소속된 정당과 생각을 같이할 책임이 있다”고 설명한다. 자신들의 지도자들을 주기적으로 ‘잡아먹는’ 정당에서 가장 장기간 대표로 임무를 수행한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만의 비밀을 고백한다. “제게 있어선 당신이 대표입니다. 그러니 당신을 따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전략적 선회는 당 내부에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말을 바꿔 탄 것(정부에서 탈퇴한 것)이 너무 급작스러웠지요, 그래서 논쟁이 아직도 완전히 정리되지 못했지요”라고 마담 코스가 인정한다. 정부 참여를 지지하건 반대하건 간에 모두가 당내 협의 없이 독단적으로 이루어진 중요한 선택에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결국 뒤플로는 오늘날 어떤 노선을 택해야 할지 망설이는 것 같다. 그녀는 그리스의 시리자당을 지지하는 파리모임에 멜라송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으며, “희망의 작업실”이라는 사회운동에 좌파 전선의 여러 지도자들과 함께 서명하기도 했다. 그런 만큼 그녀는 사회당과의 연합을 대체할 해결책을 제공할 수 있는 좌파와의 연합을 구축할 가능성을 믿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녹색당 자체의 힘만으로는 독자적인 전략을 실질적으로 추진하기에 역부족이다. 유럽환경-녹색당은 고작 9,300명의 당원만이 있는 조그만 정당이다. 2010년 창당 당시 확대를 이루지 못했다. 보다 유연한 방법으로 가입을 권유하는 방식을 쓰고, “우호적인 단체”들이 당원으로 가입하도록 했지만 조직에 대한 불신감으로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당의 규모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코스도 인정한다. 중앙당사에 겨우 17명의 유급직원이 있다. 요컨대 유럽환경-녹색당은 중량감 있는 정치인들이 다수 참여하고는 있지만 비전문적이고 허약한 정당이다.
편협한 사회적 지지 기반
지지기반이 사회적으로 편협하다는 점도 상황을 어렵게 한다. 교사의 대표 비율이 과도하게 높은 점은 놀라울 정도이다. 당원들의 노령화가 눈에 드러날 정도이며 대중계층으로의 확산은 극히 미약하다. 2013년 실시한 크레비포프의 조사에 의하면 유럽환경-녹색당 당원의 56%가 51세 이상이다. 교사와 사회복지 분야 노동자가 실제 인적 자원의 21%를 차지한다. 관리자와 자유직종 계층이 당원의 45%를 차지한다. 반면 노동자와 봉급생활자는 7% 수준에 머문다. 은퇴자와 비경제활동인구가 31%를 차지한다.
“환경주의자들은 자신들만이 유일하게 옳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같은 부류끼리만 어울리는 것은 분명 문제입니다”라고 코스가 유감을 표명한다. 유럽환경-녹색당은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환경운동가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이들로부터는 그다지 자원을 끌어오지 못한다. “양쪽 모두가 서로에 대해서 불신을 품고 있는 것이다”고 바이우가 지적한다. 새로운 삶의 방식을 경험한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정치적 참여에는 적대적이며, 녹색당은 제도가 갖는 성격으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서 연결고리를 갖지 못한다. “우리 편에 섰던 많은 운동가들로부터 외면당했습니다. 댐공사로 환경적 문제가 있었던 시방의 환경운동가들, 노트르-담-에-랑드, 농부를 위한 농업보호단체(AMAP)들이 그 예가 될 것입니다”. 좌파 성향이자 유럽환경-녹색당 집행위원인 엘리스 로비의 말이다. “켕페르 지역에서는 매우 활동적인 자생 그룹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유럽환경-녹색당소속 의원들에 대해서 적대감을 보입니다”고 2009년부터 녹색당의 당원이 된 르네 방테니가 지적한다.
이 정당은 거대한 연합단체 네트워크나 현장에서 환경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운동가들로부터 당원을 모집할 때만 그 세력이 확장될 것이다. 그런데 당의 일부 지도자들은 현장 참여 경향이 너무 강한 운동원을 당원으로 끌어들일 경우, 이것이 일반 유권자들의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또 어떤 이들은 새로 수혈된 피가 당에 실제로 기여하는 바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민단체가 정치에 참여할 경우, 그들은 더욱더 정치적으로 변해서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의원이 되려고 한다”고 로비가 덧붙인다.
시민단체의 제도권 유입과 지식인들과의 소통 강화
이처럼 관련 시민단체의 제도권 안으로의 유입은 가시적인 것이 된다. 벵상 에노는 농촌지역에서 살충제 과다 사용으로 암이 다발하는 것에 충격을 받아 보건 문제를 명분으로 당에 가입했다. 해변으로 통하는 둘레길을 만들기 위해 투쟁한 바 있는 피니스테르 지방의 푸에낭보존협회(ASPF) 창설자도 2008년 당에 가입했는데, 그는 자신이 당에 가입한 일이 운동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한다. “관련 단체 자격으로는 저는 모임에 참가하기는 했지만 아무런 권한이 없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나는 당의 운영위원으로서 회의에 참가해 자료에 접근할 수도 있으며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녹초 문제에 집중하고 있는 이 현장운동가는 주민들로부터 “멀어지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푸에낭 지방에서는 단 두 명의 가입자만이 있다.
유력한 환경운동으로 변모하기 위해서는 현장에서의 운동을 끌어 들일 수 있는 심층적인 조직 개편이 필요할 것이다. “전통적인 정당 형태는 더 이상 적합하지 않습니다”고 론-알프스 지역 부의장인 필립 메이리외가 딱 잘라 말한다. 그는 자신이 2009년 당에 가입했을 때, 즐겁게 참여하는 녹색당원들도 많이 만났지만 “법률가와 소송가”들도 만만치 않게 많았다고 말한다. 이 교육 분야 전문가는 그들이 투표할 만한 꺼리가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투표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대안적인 기획안에 진정한 후원이 될 수 있도록” 차라리 행동하라고 제안했다. 그것만이 정치로부터 멀어진 사람들을 다시 정치에 연결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다음에는 당이 진로에 대해 정확히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녹색당 내부적으로는 바람직한 사회에 대한 논의가 아직은 초보단계에 머물러 있다. “내일의 사회가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 지식인들을 다시 초대해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쿠롬벨이 제안한다. 그는 녹생당은 예전에도 앙드레 고르, 이반 일리히, 작크 에륄 같은 대(大)후견인들이 많았다는 점을 상기한다. 바스-노르망디 지역위원인 미카엘 마리는 “당 안에 있는 그 많은 대학 교수들이 기본적인 이념에 대한 토론조차 이끌지 못하고 완전히 무력한”것에 어이가 없다고 한다. 그 역시 유럽환경-녹색 당이 “파트릭 비브레, 미셀 세르, 세르즈 라투스나 알렝 카이에 같은 지식인들과 소통을 발전시키기”를 바란다.
뒤플로의 표현을 빌리면, “무기력한 이념”을 가진 유럽환경-녹색당은 자신이 바라는 바를 “어떻게 이행할지”를 정의하려 노력해야 한다. 국민이 환경문제를 의식하게 해서 그 결과로 천천히 변하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현재 지배적인 경제논리와 완전한 결별을 해야 할까? 개혁과 혁명 사이의 오래된 논쟁은 아직 제기되지도 않았다. 녹색당의 지휘부가 그들이 증명해야 할 대담함을 보이는 데 주저하고 있고, “녹색 성장”과 “성장 포기”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는 만큼 이는 더 필요한 주제다. 환경문제에 대한 의식이 국민들 사이에 전반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경제적 위기와 고용불안의 시대에 녹색당이 필연적으로 부과하게 될 제약으로 인해 당이 뒷전으로 밀릴 위험성도 마찬가지로 크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론-알프스 지역에서 리용과 토리노를 잊는 철도 건설 계획 건에 대해서 녹색당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라진다. 처음에는 새로운 건설안이 지지를 받았으나 나중에는 기존 철도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이는 분명 표를 얻는 데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8,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려고 유럽의 예산을 이용하는데 방해자역할로 인식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고 이 지역의회의 “지속가능한 발전” 부처를 담당하는 환경운동가 장 뒤베르제가 분석한다.
파리에서 발생한 테러 이후의 변화도 녹색당의 목표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방어적 입장에서 녹색당은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고 있다. 뒤플로는 “창의적이고 가변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세심한 관망주의를 고백한다. 좌파 정치지형의 재구성에 대해서 각자가 나름대로 고민하고 모색하고 있다. 시리자와 포데모스의 승리가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이상을 포기하지 않은 녹색당원들을 다시 고민에 빠지게 한다. “맞습니다. 시민사회와 녹색당의 재구조가 필요할 것입니다”고 피올이 희망을 피력한다. “그러나 당과 당의 결집은 실패로 판명 날 것입니다”고 서둘러서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시민들의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것이 정치력 부재의 공백을 메우는 무거운 임무로 보인다.
글·에릭 뒤펭(Eric Dupin)
저서로 <선구자들, 진정으로 혁신하는 프랑스로의 여행〉(라데쿠베르트, 파리, 2014)이 있다.
번역·이진홍
별도의 언급이 없는 한 본문의 인용문들은 저자와의 직접 대화에 의한 것들이다.
<보충기사>
피카르디지방에 깊숙이 파고드는 녹색당
녹색당에게 피카르디는 전통적으로 개척해야 할 전략지구였다. 언제나 전국 평균보다 낮은 득표율을 기록한 지역이었다(2010년 전국적으로는 12.2%, 피카르디에서는 10%). 1989년 당시 녹색당에 가입한 크리스토프 포르키에는 그의 가입에 사람들이 보낸 야릇한 미소를 기억하고 있다. 20여년이 지난 오늘날, 지역 교육 담당위원인 그는 자기 정당이 그다지 발전한 것이 없다고 확인해준다. “솜므에서 열린 녹색당 총회에서도 50여명 정도의 당원들만 모였습니다. 언제나 이런 수준을 오락가락 합니다.” 유감이다. “서 우와즈 지역에 확실하게 뿌리를 내린 적이 없습니다. 중산층 출신의 도시지역 거주자 말고는 다른 지지층을 찾지 못했습니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녹색당은 내부 갈등으로 약화되었다. “역경에 빠져서” “다른 단체들을” 찾아가 보기도 했다. 사냥꾼 모임이나 자동차 공장 직원들, 심지어는 공장형 농가들을 찾아가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결국 선거에서 후보 리스트의 선두로 등록되어 포르키에는 피카르디 지역 부의장이 되어 에너지와 기후 및 환경 개발 분과를 책임지고 있다.
프랑수와 비예렛트 역시 유럽환경-녹색당의 지역 부의장으로서 보건, 환경, 식품 분과를 맡고 있다. “저는 절대 정치가가 아닙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특수교육 전문가인 그는 연합단체 활동에 투신해서 “미래세대 운동”의 대변인 역할을 한다. 이 단체는 대안적인 해결책을 알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환경과 건강, 둘 다를 조화시킨 식품 정책을 추진하는 것과 같은 계획들을 실현하는 것이지, 정당 활동에 투신한 것은 아닙니다”고 2010년 유럽환경-녹색당에 가입한 한 당원이 이야기 한다. 그로서는 “연립 총회에 참석해서 구체적인 파급효과와는 무관한, ‘머리를 쥐어뜯는 싸움질’로만 온 주말을 통째로 낭비하는”것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그는 빌리에르-셍-세퓔크르에 소각로를 설치하는 것에 반대하는 투쟁 같은, 지역별 투쟁에 참여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이 소각로 설치 계획은 2013년 2월 결국 철회되었다.
우와즈 지방의 거의 1/3을 관할하는 틀레르몽의 한 지역단체는 1월 어느 날 밤 17명의 당원 중 8명을 불러 모았다. 이 모임에서 회계원이 2014년 사용된 예산이 총 115유로라고 낱알을 세듯이 보고한다. “지출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라고 크레일에서 온 당의 지역의장 티에리 브로쇼가 투덜거린다. 당원들은 상업지구 확대로 들어서게 될 새로운 멀티플렉스로부터 위협받는 극장을 보호할 방법에 대해서 토의를 시작하지만 곧 차기 도의회의원선거에 관한 주제로 토의는 옮겨가고 만다. 특별한 열정도 없이 우와즈의 녹색당원들은 ‘좌파전선’과의 연합 리스트를 선택했다. “사회당은 저 아래 있고 우리를 더 아래로 끌어 내릴 것입니다”고 ‘민주운동’당에서 온 한 가입 당원이 추가로 설명해준다.
엔느의 샤토-티에리 지역 유럽환경-녹색당은 좀 특별한 경우에 속한다. 20여 년 동안 이 지방의 사회당 소속 시장이었던 도미니크 주르뎅은 사회당이 이 도(道)에서 “고객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에만 몰두하는 것에 질려서 2010년 녹색당에 들어왔는데, 40여 명의 전 사회당 당원들을 신규 가입자로 함께 몰고 왔다. 그날 밤 임시 거처로 사용된 옛날 수도원의 벽난로 옆에서 가진 모임에는 10여명의 당원들이 참석했는데 참석자 대부분이 은퇴자였다. “우리 군단은 노령화되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교사이자 지역 공동 대표인 마크-에르베 레이의 고백이다. 이들이 반드시 현장에 덜 활동적인 것은 아니다. 다이넬 제르트노는 공산당을 거쳐서 왔는데 편암 석유 반대 운동에 참여한 ‘산책자단체’를 이끌고 있다. 전 사회당원이자 노조원이었던 다니엘 부비에르는 세 개의 학교에서 불과 60미터 거리에 설치된 송신중계탑 철거를 위해 싸웠다. 샤토-티에리의 녹색당원들은 “포도원에서의 살충제 과다 사용”과 물 민영화에 반대하는 투쟁을 아직도 계속하고 있다. 또 농부를 위한 농업보호단체(AMAP)를 창설했다. 지금은 200여명이 이 단체에 출입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대개의 경우 환경운동가들이 환경투쟁의 주력부대 역할을 한다. 그런데 동참하는 항의자들이 정치 참여를 거부하는 경우도 많다. 노비상(Novissen, ‘우리 마을은 환경을 걱정 한다’의 머리글자만 딴 것) 단체를 적극지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이 단체는 솜므 지역의 조그만 마을에 소위 “암소 천 마리”라 불리는 공장형 축사를 짓는 것에 반대한다. 미셀 크푸리(Michel Kfoury)는 자기 집에서 멀지 않는 곳에서 실시될 이 계획이 내포한 보건상의 문제를 걱정한다. “가축의 집중사육은 전염병을 가져올 위험이 있다”고 지적하며, 그렇기 때문에 세계보건기구도 인구밀집 지역으로부터 먼 곳에 축사를 지으라고 추천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런데 이 축사는 가축들이 땅위에서 사육되는 것이 아니라 건물 안에서 사육되는데 첫 번째 주변의 집으로부터는 450미터, 마을 중심부로부터는 800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주민들의 항의는 점차 정치적으로 변했다. “처음에는 냄새와 파리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다가 공장형 농업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지요”라고 크푸리에 이어서 이 단체를 이끌고 있는 교사인 프란시스 샤스타네가 자축한다.
이 항의자들은 유럽환경-녹색당과 좌파전선당, 두 곳으로부터만 지지를 받았다. 이들은 녹색당 소속 도의회 위원인 바바라 폼필리가 “이 사건을 전국차원으로 확산시킨” 것에 대해 감사한다. 반대로 세실 뒤플로의 태도에는 조금 못마땅해 한 기색이 있다. 이들이 2014년 초, 정부부처로 그녀를 면담하러 갔을 때 그녀는 “암소 천 마리 농장은 끝났습니다”라고 이들을 안심시켰다. 그럼에도 이 건에 관한 도청의 태도는 요지부동이었다. ‘노비상’은 그녀가 정부를 떠난 뒤에 결과를 알아보기 위해 다시 그녀와 면담을 했다. 그녀는 “그 안건에서 손을 뗐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운동가 중 두 사람은 유럽환경-녹색당에 가입할 의사가 없다. 샤스타네는 현장에서 활동하고 싶어 하며 당을 망치는 녹색당 내부의 분열을 감내하지 못하는 것이다. 크푸리는 녹색당이 모든 관련 주체들을 잘 정리해주기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