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봄' 이후 중동지역의 신냉전

2015-04-01     히샴 벤 압달라 엘 알라우이

 

경제∙사회적 곤경에 처한 중동 지역의 정권들은 국내 문제를 은폐하기 위해 역내 긴장의 불씨에 부채질하는 유혹에 빠졌다. 늘 해온 것처럼 안보와 정권 유지를 지상 과제로 삼은 이 국가들의 지도자들은 여론경청과 인간존엄 같은 국민의 절실한 요구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지역 긴장과 갈등의 확산에 큰 몫을 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요구들이 2010년 12월 이래 ‘아랍의 봄’을 촉발시킨 계기가 됐다.

중동지역은 현재 전문가들이 명명한 이른바 ‘지역적 신냉전’ 시대를 겪고 있으며, 상이한 세력 간의 대결은 때로는 모순적이기도 하다. 첫 번째 대결의 대상은 (다수의 아랍국가들이 상대해야 하는) 무슬림형제단과 이들의 이슬람 이데올로기의 초국가적 성격이다. 두 번째는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투쟁이다. 이미 유사한 대결이 학살을 불러일으켰지만 대량의 살육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었다.

이 지역의 신냉전에 뛰어든 국가들은 두 진영으로 분류된다. 한쪽은 요르단, 이란, 이집트와 같은 국가들로서 국민 참여의 장을 확대하고, 민주화의 진전을 도모하는 정치개혁을 진행 중이었거나 예정했었지만, 이에 급제동을 걸었다. 다른 한쪽에는 구조적 개혁 계획을 총체적으로 연기한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 에미리트 연합과 같은 국가들이 있다.

20세기 후반부에 볼 수 있었던 것과는 반대로, 이 대결 상태의 국가들은 이데올로기나 장래에 실현 가능한 계획을 거의 갖추고 있지 않다. 이 국가들의 지도자들에게 최대 관심사는 무엇일까? 그것은 현 정권의 권력 분배 구조를 보장하고 영속시키면서 생존하는 것이다. 물론, 이 정권들은 다른 방도도 갖고 있다. 그것은 자국 국민의 열망에 부응해 전통적 정당성 및 인적자원과 재정자원에서 생존방도를 끌어내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아랍의 몇몇 국가들이 바로 그러한 국민적 열망을 저버리면서 ‘아랍의 봄’을 촉발시켰다. 그런데 문제의 지도자들이 취한 전략은 개혁에 필요한 높은 비용을 치루는 대신에, 국내의 현상 유지를 공고히 하고자 역내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었다. 시리아, 이라크, 리비아, 예멘 등에서 일어난 격렬한 혼돈 상태가 그 좋은 사례이다.

이집트와 리비아

이집트의 압델 파타 알 시시 정부는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전제적 체제를 연장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이를 더 강화하고 있다. 신임 대통령은 자신의 지나친 권력 추구로 인해 전임 대통령의 전철을 밟으며, 2011년 1월 무바라크의 실각을 초래했던 사회∙경제적 문제점을 고스란히 닮고 있다. 민주적 이행이 정지된 이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군부만이 이득을 얻고 있다. 아랍세계의 가장 큰 국가가 혼란의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 이집트 권력층은 사회적 분노가 수면아래에서 비등하고 있고 여차하면 터질 수 있는데도 이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수면아래엔 분노 들끓어

실업, 빈곤, 불평등은 높은 청년층 인구비율과 결부되어 4년 전에 거리의 분노를 촉발시키고 무바라크 정권을 전복시키는 요인이 됐다. 이 문제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집트 대통령이 주도하고 있는 개발전략은 호응을 얻고 있지만, 정치와 재정적 이해관계에 놓인 군부가 막강한 경제세력으로 군림하는 한 성공할 수가 없다. 서류상에 존재하는 신수에즈운하 같은 대형개발계획들은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다. 이 계획들은 수십 년 전부터 이집트를 치유할 만병통치약처럼 인식되어 왔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집트사회가 필요로 하는 만병통치약은 수요자 요구에 맞는 교육제도와 인재양성과 사회간접자본시설 확충 등을 통한 경제 활성화, 그리고 보다 더 효율적인 공공부문과 이와 공존하는 역동적 민간부문 등이지만, 정부의 개발계획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폐쇄된 정치체제는 상황을 악화시킨다. 이집트는 점진적으로 발칸화되어가는 양상을 띠고 있다. 국가 분열로 인하여, 사법과 치안 기관들은 통제를 벗어난 수많은 지역의 출현으로 애로를 겪고 있다. 이런 실정은 사법기관과 경찰이 공공영역을 점거하고, 언론을 탄압하며, ‘시민사회’를 도려내는 구실을 제공하여, 결과적으로 전국적 ‘반체제운동’의 출현을 억압할 수 있게 되면서 체제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 사이에 괴리가 발생해, 국가는 시민을 섬기고 보호해야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항시적으로 감시해야하는 위협적 존재로 간주한다. 이런 상황은 미래에 대한 어두운 징조이다.

권력 초기 알 시시는 ‘이슬람형제단’을 두려워하는 세속주의의 이집트인들로부터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장래에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 그를 도울 수 있는 사회 저변의 대중적 지지를 그가 지속적으로 받게 되리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무바라크 전 대통령은 패권적 지위를 누리는 국민민주당(Parti national démocratique)을 기반으로 거의 30년 동안 권좌에 머무를 수 있었다. 그러나 국민민주당조차도 1월의 혁명을 막지 못 했다. 알 시시는 그런 유형의 하부 조직을 창설하지 않고 독재국가의 특성인 폐쇄적 사고방식을 지키는 데 머물렀다.

그런 상황에서 현 정권은 역내 분쟁의 소용돌이에 편승해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모하메드 모르시를 축출한 2013년의 쿠데타 이후로 이집트는 이슬람형제단 제거를 시작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등의 국가들을 이슬람형제단 제거작전에 끌어들였다. 이집트의 이슬람형제단은 가말 압델 나세르(1956∼1970) 대통령 시절 이후 이처럼 가혹한 탄압을 받은 적이 없었다. 조직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도피했거나 투옥됐고, 수천 명의 조직원들은 치안군에 의해 처형됐으며, 수만 명은 조작된 재판을 기다리면서 여전히 감금상태에 있다. 카타르는 이슬람형제단을 지원하려 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은 이 단체를 위협적인 존재로 보고 있다. 이 국가들은 카타르와의 고조되는 긴장에도 불구하고 이집트의 재정위기를 경감해 주기위해 쿠데타 이후 수십억 달러의 경제적 원조를 제공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1960년대 나세르주의와 바아시스트주의의 세력이 자국을 포위하고 있다고 판단했을 때처럼 행동했다. 리야드의 시각으로 보면, 이슬람형제단은 걸프지역을 장악할 수 있는 초국가적 위협으로 비친다.

그렇지만 걸프지역의 산유국에서 꾸준히 흘러들어 오는 막대한 원조가 해결책은 아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이 원조 때문에 아라비아반도의 긴장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집트에서는 천문학적 외국자금의 투입으로 인해 높은 인플레이션이 야기되고 있다. 이런 수혈은 또 정권의 대외 의존도를 심화시킨다.

예멘

이집트가 전제주의로 퇴행하는 상황인데, 예멘, 시리아, 이라크는 폭력과 전쟁의 참상을 겪고 있다. 이 세 나라는 격렬한 반정부운동에 부딪쳤고, 여기에 자국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분쟁 부추기를 택한 역내 국가들이 끼어들었다.

예멘에서는 후티 반정부운동의 군사기구인 안사르 알라(Ansar Allah)가 모든 저항세력을 제압하고 지난 9월 이래 수도 사나를 장악하고 있다. 후티 반군세력은 이슬람 시아파의 일파인 자이디파(zaydisme)의 신봉자들로서, 알카에다와 가까운 안사르 알 샤리아(Ansar Al-Charia) 전사들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1) 전 독재정권의 정부군은 후티 반군의 공격에 고의로 길을 터주었고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았다. 이슬람개혁당(Al-Islah)과 같은 기존의 야당세력들은 후티 지도자들에 의해 제압됐다. 같은 무렵, 하드라마우트주와 남부의 분쟁에서 보듯 예멘의 여러 지방에서는 분리주의 세력들로 말미암아 국가가 조각났다.

후티 세력이 서방국가의 정보망에 걸린 것은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대다수 수니파들은 자이드 종파가 수니파 원리와 유사하다고 판단한 나머지 이를 이슬람 율법 해석에 있어서 5번째 학파로 지명했다. 그러나 후티 세력은 이란으로부터 지원과 변함없는 합법성을 인정받았다. 테헤란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전통적으로 자국 영토의 확장선상으로 보는 예멘을 자국과 패권을 다투는 싸움터로 여기고 있다.

결과적으로 소수 종파들 간의 초국가적 연합이 성립되어, 상황이 레바논과 시리아에서 발생한 것과 아주 유사해졌다. 시리아의 알라위트파는 현재 시아파계로 분류된다. 이것은 헤즈볼라가 시리아 정권을 돕기 위해 개입한 근거가 됐다. 마찬가지로 안사르 알라도 이란의 후원으로 시아파 수준의 신뢰를 얻으면서 지역 분쟁에서 전적으로 친(親)이란 진영으로 분류된다. 또한 자이디파는 자금과 군사원조의 수혜를 통해 헤즈볼라처럼 국가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시리아

시리아는 ‘아랍의 봄’이 진행되는 동안 최초로 평화적인 시위가 일어난 국가들에 속한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가능성이 엿보였던 순간이 내전과 경제 전쟁, 인도주의적 재앙사태로 급변하면서 상황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은 이제 허울뿐인 지배력만 유지한 채, 사법‧행정의 공백으로 인해 다마스쿠스 이외의 영토에 대해선 진정한 공권력을 잃고 군 검문소를 통해서만 통제할 뿐이다. 시리아는 국가 합법성의 근간이 되는 사회적, 경제적 서비스를 제공할 능력이 마비됐고, 전에 보유했던 사회기반시설의 대부분도 잃었다. 그에 대항하는 외부의 반정부조직과 단체들은 성향이 매우 다양한 무장 점령세력으로 변모했다. 서방세계의 언론들은 대체로 그런 실상을 소홀이 한다. 이슬람국가 조직(ISO, Islamic State Organization)은 알 노스라(Al-Nosra)가 아니다.

이들 무장단체들은 연합되지 않았다. 시리아의 ISO는 엄밀한 의미의 ‘국가’를 열망하는 조직이 아니고, 제국을 지향하는 지하디스트 연방 건설을 목표로 하는 조직이다. 오스만 터키 제국처럼, ISO는 지방 인사들에게 관리를 위임해서 영토를 통치한다. 그들의 통치 능력은 중앙집권적 국가로서의 한계성을 드러내고 있다. 언론이 다투어 보도한 끔찍한 참수형은, 새로운 정치제도가 될 수 있는 이슬람율법(샤리아)의 새로운 규범체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그 참수형은 새로운 조직원을 늘리기 위한 홍보전의 성격을 갖는다.

그것이 바로 ISO의 약점이다. ISO는 그 조직이 거의 제국적이기 때문에, 제반 제도 수립에 관한 것이건 세금징수에 관한 것이건 간에 한 국가로서 작동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ISO의 모델은 무장전사들이 서로 다투어서 전리품을 차지하는 모델이다. 이것은 시골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으나, 도시 전체를 관리하기에는 부적합한 체계이다.

그 혼란 속에서 아사드 정권은 단순한 전략을 택했다. 생존 전략이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상실한 영토를 탈환할 필요성이 없다.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전에 반정부세력이 요구했던 정치개혁을 단행해서 출구전략을 택할 수가 없어졌다. 그러나 정권이 와해되지 않는 한 비열한 승리를 장담할 수 있다. 이것이 초토화 작전을 설명해준다. 이제 고색창연한 시리아를 보존하기를 포기한 정부군은 반정부세력이 지배하는 도시와 마을들을 파괴하고 있다. 다마스쿠스 정권은 자기들이 장악할 수 없다면, 전부 파괴하여 아무도 장악 못 하게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 살육전쟁은 대부분이 외부세력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다. 역내 국가들의 시리아 내전 개입은 잘 알려져 있다. 미국 주도하의 서방과 아랍세계의 다국적 연합군은 ISO를 폭격하고 있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미국이 합법성이 없다고 선언한 독재정권이 어부지리를 얻는 격이다. 미국 측 진영에는 터키, 요르단,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가 있다. 아사드 정권은 헤즈볼라와 이란의 경제∙군사적 원조와 러시아의 지지에 기댈 수 있다.

이슬람국가 조직과 알 노스라가 강력하게 부상하기 전에 수니파 아랍국가들은 시리아를 레바논에서 이란으로 이어지는 ‘시아파 초승달’ 지대로 분류했었다. 그 국가들은 자국 내의 국민들 사이에 종파 갈등까지 불러일으키면서까지 알 아사드 대통령의 축출을 모색했으나, 방향을 바꾸어 이슬람성전주의자 문제에 대처해야 했다. 이란만이 시리아 정권에 대한 지지 입장을 고수했다. 이것은 이란 정권이 혁명지상과제에 대한 변화를 드러낸 것이다. 1979년 이란혁명 이후에 아랍 국가들의 거리에 혁명을 전파할 수 없게 되자, 이란 지도부는 지역 신냉전의 긴장을 틈타 지정학적 전략을 통해 역내 무대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이런 종파적 분석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 ISO는 그 무장세력이 시아파에 공격을 가했어도 우리가 생각하듯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갈등의 산물이 아니다. 시리아 내전에 참가하기 위해 전사로 모집된 청년들 대부분은 종교적 교화의 영향보다는 사회 불평등, 무기력한 경제, 정치적 난관이 결합하여 국민의 존엄을 짓밟은 참담한 정치의 영향을 받았다.

튀니지를 비롯하여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이집트 등 거의 모든 아랍국가에서 지원자들이 이슬람국가 조직에 몰려들었다. 공교롭게도 이들 중 몇몇 국가는 그 조직의 제거를 역설한다. 이점을 주시하면, 테러리즘과 극단주의에 대한 전통적 개념이 흔들린다. 오래전부터, 극단적 테러분자의 제거는 그들의 전투력, 자금, 거점 등을 근절하면 실현될 수 있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이슬람국가는 그런 믿음이 불찰이라는 것과 과격 극단주의가 거의 무에서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줬다. 알카에다를 제압했다고 믿은 지 몇 해가 지난 오늘, 서방세계는 영토를 확보한 새로운 극단주의 형태와 직면해 있다. ISO는 자기 ‘영토’가 공격당하자 조직을 동원하여 다른 곳에서 반격을 가했다. 최근 ISO가 구대륙의 이민사회 통합실패를 활용하여 유럽에서 자기들의 능력을 과시한 것이 그 사례이다.(2)

이라크

ISO는 이라크에서도 활동 중이다. 그러나 이 조직의 존재는 사회분열과 정치적 불평등 같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가리고 있다. ISO는 2003년 이후 미국이 구성하고 시아파가 장악한 정부의 부당행위에 맞서 저항과 봉기라는 보다 광범위한 운동에 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이라크 수니파 국민은 ISO의 잠재적 폭력성이 누리 알말리키 전 총리 같은 정치인들을 추종하는 시아파 민병대의 가혹행위보다 더 위협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수니파들은 친정부 수니파, 사화(Sahwa) 민병대의 출현과 훗날 이라크 안정화에 기여한 데이비드 페트로스 이라크 주둔 미군 사령관 휘하의 2007년 미군 추가병력 배치로 배반감을 맛보았다.

그러나 여기서도 종파적 문제를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이라크 전쟁 후, 이라크 정부와 이란의 연계는 종파적 차별을 증폭시키고 부추겼다. 미국은 이를 퇴치하는 데 발 벗고 나서기를 원치 않았고, 이는 이제 이라크 현대 역사상 전대미문의 한계점에 다다랐다. 지역 정세에 의해 이용되고 악화된 종파 갈등은 지정학적 내정간섭에다 사회분열까지 가중시켰다. 그리하여 그 갈등의 끝은 그야말로 오리무중에 빠져버린 상태이다.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사회적 실상의 중대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아랍의 봄’ 이전에는 시민들은 자고로 국가에 충성해야 하는 신하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국가의 권위가 산산조각 난 마당이기 때문에 국민 각자는 안전의 피신처를 찾으러 지방 세력, 구역 인사, 민병대 등에 의지하는 실정이다.

중동지역 전망

역내 분열은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한 결과이다. 그러나 이제 한 가지 공통점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수니파 아랍 연합국에게 불안의 요소가 되는 것은 이란과 같은 역내 반대세력이나 무슬림형제단과 같은 이데올로기성 위협만이 아니다. 제 3의 위협이 부상했는데, 그것은 내부적 요인으로서 바로 자국 내의 사회불안이다. 이 아랍국들은 반대 의견을 수상스런 눈초리로 바라본다. 이 정권들은 ‘아랍의 봄’이 제공한 기회를 잡아 내부로 눈을 돌려서 자유와 인간존엄에 대한 국민의 거대한 열망에 적절하게 부응하기를 외면하고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그들은 중∙단기적으로 정치적 위험을 안고 있는 조악한 길을 택했다. 내적으로 존재하는 구조적 부조리는 해결하려 하지 않고 반사적으로 내부 문제를 외부의 역내문제로 돌려버린 것이다.

최근의 원유가 인하는 이 지역 신냉전이 예상 밖의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빚은 종파 갈등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란은 보다 일관적인 역내외교정책을 통해 중개자 개입 없이 대리인을 내세워 직접적으로 신냉전에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외교 전략은 보다 분산되어 있다. 외교정책이 정보국을 비롯하여 왕자들과 외무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련 당사자들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 각각의 권력기관들은 외국에 자기 나름의 외교 채널을 보유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군다나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반대로 주권재민의 모델을 보유하고 있다. 이 모델은 완벽한 민주주의는 아닐지언정 정기적인 선거와 제한적인 복수정당주의를 허용한다. 게다가 이란은 미국이 핵협상에 나오도록 해서 걸프지역을 불안에 빠뜨렸다. 이는 중대한 외교적 진전을 의미한다. 그러나 원유가 폭락은 핵카드를 약화시켰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보다 막대한 규모의 외화보유자금 덕분에 이를 더 잘 극복하고 있다. 양국 간의 최후의 결전은 이제 시리아에서 벌어질 양상이다.

이처럼 지역 신냉전은 중동의 지정학적 판도를 상당히 변모시켰다. 이 지역 역사상 최초로 카이로, 다마스쿠스, 바그다드는 역내의 패권세력이 아니다. 이 국가들은 ‘아랍의 봄’의 여파를 겪고 있고, 외부세력의 개입을 초래한 반항운동의 진원지가 됐다. 교훈은 명확하다. 그 누가 제아무리 강력할지라도 역사는 피할 수 없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튀니지는 민주주의의 가망성과 관련하여 역내에서 건설적으로 모범이 되는 국가이다. 이런 과도기적 국가가 이끌어낸 이슬람세력과 세속주의자들 간의 혁신적 타협은 정기적인 민주적 선거와 법치주의와 더불어 권위주의 유산을 탈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튀니지의 민주주의가 다시 어둠 속으로 회귀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 세력의 희망의 상징과 독재정권의 발바닥에 박힌 가시가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종합해보면, 미국은 이제 이 지역에서 확고부동한 패권을 거머쥔 강국이 아니다. 지역 문제에서 미국의 점진적인 이탈은 세계전략의 중대한 전환점을 반영하는 것이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실패한 정책에서 교훈을 얻었다. 그리고 또 이제는 아시아가 중동보다 더 큰 전략적 중요성을 갖는다. 세계 지배는 이제 영토와 물리적 장소에 대한 점령을 수반하지 않고, 금융시장과 해상무역로에 대한 주도권 확보가 좌우한다. 미국은 계속하여 중동지역에서 석유의 흐름을 감시하려 할 것이지만, 이는 유정지대보다는 석유생산량을 통제하는 방법을 택해서 할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역사 유산이 견고함을 과시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맺은 사이크스 피코(Sykes-Picot) 협정에 의해 결정된 지리적 국경선들이 놀라운 지속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역내세력들이 서로 다투는 것은 지도를 다시 그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존 국경을 지배하기 위한 것이다. 역내 정권들과 그 국민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암묵적으로 이 국경선들이 중동지역 안정에 최후의 보루라는 것을 신성불가침한 개념으로 공유하고 있다. 이 국경들은 생사고락을 같이 하는 구체적인 사회적 현실이다. 결국 최근 위기 사태의 희생자인 피난민들은 본국으로 귀환할 것으로 본다. 그래서 리비아, 시리아, 이라크 내전에서 그 어느 누가 승자가 되어도, 이 국가들이 국경을 변형하리라고 예상하지 않는다. 기존의 지리적 국경선들이 사라진다면, 현재의 불안정한 상황이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릴 것이라는 생각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기 때문이다.

 

글·히샴 벤 압달라 엘 알라우이 Hicham Ben Abdallah El-Alaoui
스탠퍼드대학교(캘리포니아주) 프리먼 스포글리 국제학연구소(Freeman Spogli Institute for International Studies) 객원연구원. <Journal d'un prince banni(추방된 왕자의 일기)>(Grasset, Paris, 2014년)의 저자.

번역·손종규
프랑스 Rennes 2대학 박사과정 수료. 번역가.

 

(1) 로랑 본푸아, ‘예멘에 재등장한 사아파세력(Retour des chiites sur la scène yéménit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11월호.
(2) 국제정치 전문가 질 케펠(Gilles Kepel)이 강조한 것처럼, 지하디스트 운동에 대한 사상가 아부 무사브 알 수리(Abou Moussab Al-Souri)는 저서 <범세계적 이슬람저항운동 선동>에서 그러한 이동 전략의 필요성을 이론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