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헌장이 하버마스의 손을 거친다면

2015-04-01     이현운

박근혜 정권은 오는 8월 15일 광복절에 ‘국민의 통일공감대 확산’을 위해 통일헌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초안은 이미 완성되었다고 한다. 과연 통일헌장이 제정되면 우리 국민의 통일공감대가 확산되고, 우리의 오랜 숙원인 통일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을까? 분단 70주년을 맞는 지금, 탈분단을 넘어 통일의 시대로 가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상식적인 말이지만, 통일은 헌법 제4조에 명시되어 있는 중요한 국가적 과제이다. 정부는 한민족의 가치, 경제적 이익, 인권보호 등을 통일의 필요성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통일에 대한 우리 국민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2013년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실시한 통일의식조사에서는 통일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매우 필요하다’가 23.6%, ‘약간 필요하다’가 31.3%로, 긍정적 답변은 2명중 1명에 그쳤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통일에 대한 필요성이 낮아, 19~29세는 40.4%만이 통일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통일헌장준비는 이런 맥락에서 무척 고무적인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정부가 통일헌장을 만드는 것은, 통일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방법이 될 수 있을까?

국가권력에 의한 담론의 식민화   

하버마스에 따르면, 법 가운데 매체로서의 법은 ‘체계’에, 제도로서의 법은 ‘생활세계’에 적용된다. 체계는 경제나 행정 영역처럼 자본이나 권력에 의해 제도화된 영역인 반면, 생활세계는 의사소통적 합리성에 의해 상징적으로 구조화된 영역이다.

매체로서의 법은 행정 및 경제 영역 등 체계와 관련된 것으로, 도구적 합리성을 갖추어야 하며, 적절한 입법절차를 거쳐 정당화된다. 대부분의 경제적, 행정적 규범들이 여기에 속한다. 반면 제도로서의 법은 생활세계의 사회적 관계들을 다뤄 의사소통행위의 배경을 이루며, ‘담론적 과정’을 거쳐 정당성을 확인받는다. 헌법, 형법 및 형사소송절차의 기본원리들이 그 예다.

후기자본주의사회로 갈수록 경제와 행정 영역의 체계가 비대해지고 생활세계로까지 침투하게 된다. 하버마스는 이러한 후기자본주의사회의 구조적 병리를 ‘합리화의 역설’(1) 이라고 진단한다. 그 결과 체계는 자신의 영역을 확장시켜 생활세계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식민화한다. 생활세계의 식민화와 관련, 하버마스는 이렇게 지적한다. “생활세계가 식민화되면, 그것이 물화되고, 사회가 분열되며, 문화적 빈곤화가 나타난다. 또한 행위의 조정에 있어 탈언어적 매체의 영향력이 증대되면서 상호이해를 위한 의사소통행위는 줄어든다. 구체적으로는 정부의 정책결정과정에 국민의 참여가 배제되거나, 공론의 요구사항이 정부에 의해 무시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2)

다시 통일헌장으로 돌아가자. 현재 남북교류에 관한 국내법령은 43개가 존재한다(‘통일법제 데이터베이스’ 참조). 이 법들의 대부분은 남북한 교류와 관련하여 행정적‧경제적 질서를 위해 만들어진 ‘매체로서의 법’이다. 적절한 입법절차만으로 효력을 갖는 이 법들이 과연 도구적 합리성을 갖는지 문제가 된다.

이에 비해 통일헌장은 통일의 당위성과 통일원칙, 통일 국가의 미래상, 통일의 과제 등을 포괄한다. 즉, 남북 교류를 행정적으로 돕기보다는 한반도 미래의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이다. 따라서 통일헌장은 제도로서의 법에 속하고, 자유로운 의사소통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통일헌장이 담을 ‘통일의 기본방향’과 같은 내용이 국민적 합의 없이 행정 영역에서 만들어진다면 국민은 강제된 합의에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국민의 생각의 폭이 좁아지고, 자유로운 토론이 어려워지며, 우리사회의 통일담론이 권력이나 자본의 제도화한 ‘체계’에 의해 식민화된다. 이미, 시민단체 등 일각에서는 통일헌장 준비과정에서 정부의 정책적 강제나 통일담론의 결여 등을 지적하며, 권력에 의한 통일담론의 식민화를 우려하고 있다.

사실 우리는 지난 70년 동안 통일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해왔다. 하버마스가 강조한대로, 우리사회가 제도로서의 법을 정당시하는 의사소통행위를 중시했다면, 지금쯤 모두가 공감하는 통일관련 규범이 존재하고, 통일헌장에도 반영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버마스에 따르면 의사소통행위는 언어능력과 행위능력을 갖는 행위자들이 상호이해를 추구하는 행위이며, 그들이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갖고서 공론장에서 건강한 언어매체를 이용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3) 여기서 의사소통적 합리성은 사람들이 외적인 강제 없이 타당한 주장을 펼치고, 논증적 대화를 통해 주장들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공론장이 왜곡되지 않고 잘 작동되면, 정당한 법을 산출하는 정치적 권력인 ‘의사소통적 권력’이 생긴다. 의사소통적 권력으로부터 법이 만들어지면, 체계에 의한 생활세계의 식민화가 방지된다.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남북관계와 통일문제에 대해 의사소통행위를 했지만, 이로부터 분단상황을 인식하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진정성을 찾기는 힘들다. 특히 통일/분단문제에 관한 공론장이 존재하는지, 또 그것이 제대로 작동해왔는지 의문스럽다. 분단과 휴전이라는 한국의 특수성은 억압이 없는, 자유로운 공론장 형성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여러 정치적 단어들(가령 빨갱이, 종북, 제국주의자 등)은 매 우 강한 낙인효과를 발휘하여 대화의 전체 맥락을 압도한다. 한국사회에서 진정성, 공론장, 언어매체 등 의사소통에 필요한 기본적인 자원이 많이 결핍되어 있다. 따라서 70년간 제대로 된 의사소통행위를 하지 못했고, 그 결과 통일/분단에 관한 기초적인 규범조차 없다. 규범의 부재는 현실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통일/분단 담론의 행위자들은 크게 두 진영으로 나뉘는데, 이들은 모든 논의의 출발점인 ‘분단’ 이라는 상황에 대한 공동정의를 갖지 못한다. 또한 ‘북한’이라는 대상에 대한 일관된 개념도 없다. 국가보안법의 시각에서 북한은 반국가단체이고, 6‧15 공동선언은 북한을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통일문제를 해결해 갈 상대방으로 보며, 헌법은 한반도를 우리나라 영토로 보는 한편, 1991년 유엔 공동가입으로 남한과 북한은 각각 국가의 지위를 갖는다.

의사소통의 진정성 필요

정부는 통일헌장을 공식 발표하기 전에 미리 국민에게 공개하여 공론화과정을 거치겠다고 밝혔지만, 이 과정이 성실히 이행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의사소통의 진정성, 공론장 등이 부재하 는 현재의 여건에서는, 진정한 의사소통행위가 나타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수개월간의 공론화과 정을 거쳐도, 통일헌장은 결국 생활세계에서 형성된 사회적 규범을 반영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통일헌장이 정부 주도적으로 만들어지고 법적 효력을 발휘할 경우, 통일담론은 또다시 식민화될 것이다. 통일헌장이 겉치레식 통일정책의 일환으로 끝난다면, 국민의 통일공감대가 확산되기는커녕, 분단 70주년이라는 시 기적 호기를 놓치고 국력만 낭비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통일헌장은 공허하다. 우리는 통일/분단 담론에   있어 상대진영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사소통의 진정성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행위자들이 서로   만나고 소통하는 공론장이 필요하다. 사실 분단, 휴전, 이념대립 등의 상황 때문에 자유로운 공론장이 형 성되기 힘들다. 하지만 사람들이 통일/분단에 대해 고민하고 의욕적으로 남과 대화한다면, 바로 그곳은 진정한 공론장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형성된 사회적 규범이 적용되어야, 통일헌장은 사회적 정당성을 지니게 된다.

의사소통의 진정성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그것은 한국의 현 모습을 냉정하게 바라볼 때 나타날 수 있다. 우리는 경제순위 세계 26위인 국가에 살면서, 도화지에 마음껏 그림 그리는 자유를 보장받지 못한다.(4) 우리에게 통일은 늘 먼 일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지금’ 통일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유토피아’의 의미가 그 목표가 내일 성취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목표를 만들고 추구하는 일을 뜻한다면, 그런 유토피아의 역할을 믿고 지지한다.”(5)

 

(1) 합리화된 생활세계는 하부체계들의 발생과 성장을 가능하게 하지만, 하부체계들의 자립화된 명령이 역으로 생활세계 자체에 파괴적으로 작용한다는 의미에서 역설적이다.
(2) Habermas, theorie des kommunikativen Handelns, 3. Aufl.,: Bd. 2. Zur Kritik der funktionalistischen Vernunfut (Frankfurt: Suhrkamp, 1985) 483면; 하버마스(장춘익 옮김), <의사소통행위이론2> p.506. 양화식(2008), p.344 재인용.
(3) 양화식(2008), ‘생활세계, 체계 그리고 법 –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을 중심으로.’ 한국법철학회, <법철학연구>, 제11권(제2호), 329~360, p.333.   
(4) 신학철 <모내기>라는 작품은 1989년 국가  보안법상 이적표현물로 압수되어 유죄확정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은 유엔 인권위원회에 제소되었고,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9조 표현의 자유의 침해가 인정 되었다.
(5) 2007년 10월 26일 Süddeutsche Zeitung, 6면. 하버마스, <아, 유럽>, 윤형식 옮김, p.124 재인용.

 

글‧ 이현운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며, 통일 및 남북문제, 인권에 관심이 많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대학생 기자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