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음악

서평 단신

2015-04-02     도미니크 오트랑

 

그리스에 군사쿠데타가 발생한 후인 1968년, 스물다섯 살의 바실리 알렉사키스는 파리에 정착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작가가 된다. 대부분 프랑스어로 작품을 쓰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고, 여전히 그는 조국 그리스에 연결돼 있었다. 돌연 ‘클라리넷’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순간, 클라리넷을 눈으로 보고 클라리넷의 소리를 듣기는 하는데, 그 악기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그는 추억과 그리스에 대해 그리스어로 글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그가 집필을 시작했을 때 40년 지기 친구이자 자신의 책을 출간해 준 출판인이기도 장 마르크 로베르가 중병에 걸린다. 그러자 처음 계획은 로베르와의 상상 속 대화 형태로 바뀌게 되고, 그런 까닭에 프랑스어로 쓸 수밖에 없었다. 우수와 몽상이 흠뻑 묻어나는 <클라리넷>은 2011년 11월부터 2014년 11월까지의 특별한 시기의 삶의 단편들을 무질서하게 버무려 놓은 것이다. 정치적인 문제까지 제기하는 내밀한 이야기를 위해 생각, 성찰, 감정, 추억이 뒤섞이고, 개인적인 감정, 전설처럼 아름다웠던 아테네에서의 만남들, 그리고 그리스라는 나라가 겪는 드라마가 “그 시대의 음악”을 만들어낸다. 친구의 병세가 위중해질 때 그리스의 상황도 점점 악화됐고, 알렉사키스에게는 두 가지 고통이 공명을 일으킨다. 그는 이렇게 썼다. “생 조셉 병원의 네 병실은 부채를 이유로 내 조국이 갇힌 감옥이었다.” 친구에게는 병원의 의사가, 그리스에는 유럽연합이라는 의사가 있었고, 두 의사 모두 충격요법을 강요한다. 충격요법으로도 친구는 생명을 구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리스는…

알렉사키스는 손녀딸이 태어나자 그리스를 여러 차례 방문한다. 그러면서 지인들, 지식인들, 부랑자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관찰하면서 그리스가 겪는 위기의 근원적이고 오래된 이유가 무엇인지 자문해본다. 그리고 그리스교회가 언제나 독재체제의 동맹이었고 오늘날까지도 극우의 동맹으로 해로운 역할을 하고 있음을 고발한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텔레비전에서 “목에 멋진 십자가를 걸고 있는 공산당 대변인”을 보는 것이 놀랍지 않을 정도로 그리스에서 종교는 국가정체성의 일부를 이룬다. 알렉사키스는 역사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그리스의 본질적인 문제가 “유럽 국가 건설 과정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던 것”일 수도 있으며, “그리스는 고전 그리스에 명예를 안겨준 르네상스를 거쳤지만, 근대의 원칙들을 마련했던 계몽의 세기는 경험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리스는 전해줄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먼저 프랑스어에는 그리스어를 어원으로 하는 어휘가 많다. 알렉사키스는 기회가 될 때마다 그것들을 자세히 보여준다. “프랑스 사람들은 모두 그리스어 이름을 가진 병으로 죽는다”고 할 정도로 의학용어에는 그리스어가 많다. 그리고 그는 다른 어휘들도 제시한다. 일례로 ‘떠나는 나라와 그곳에서 느끼는 불행’을 한꺼번에 지칭하는 ‘제니시아(xenithia)’라는 단어도 채택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 불행은 아마 또 다른 그리스어를 어원으로 하는 ‘노스탤지어’로 불릴 수도 있다. 알렉사키스는 유배의 형벌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의 이름은 시리자의 2004년 유럽 선거와 2006년 시 선거 리스트에 올라있다.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가 그랬듯이 때로 알렉사키스가 죽은 자들에게 말을 건네는 것은, 아테네의 벽에 적혀 있는 “나는 몰락한다”는 슬로건을 완전히 사라지게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글·도미니크 오트랑 Dominique Autrand

번역·김계영
파리4대학 불문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