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의 위협으로 기로에 선 파키스탄

2009-06-03     나잠 세티 | 파키스탄 <데일리 타임스> 편집국장

 미국의 영향으로 ‘타협’서 ‘군사 대응’으로 돌아
 탈레반 학대 벗어난 난민 보듬기부터 실천을


파키스탄군이 5월 들어 마침내 탈레반이 들끓고 있는 북서변경주(NWFP) 스와트 계곡에서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벌이고 있다. 특전사를 포함한 파키스탄 정예 부대가 탱크와 야포, 공격용 헬리콥터와 전폭기까지 동원해 탈레반 진지와 야전부대에 맹공을 퍼붓고 있다. 파키스탄군 대변인은 매일이다시피 탈레반 수십 명을 사살했다는 발표를 내놓고 있다. 반면 정부군 사상자나 민간인 피해는 그리 크지 않다고 강조하고 있다.


국제 구호단체들은 파키스탄의 군사작전 개시 이전에 전투 지역을 빠져나온 난민만도 50만 명에 이른다고 전한다. 전투가 격렬해지면서 추가로 발생한 난민도 50만 명을 넘어섰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파키스탄 역사상 최대 규모의 피난 행렬이다. 난민 구호를 위한 재정·행정적 노력이 뒤따라야 함에도 아직 이렇다 할 조처가 나오지 않고 있다.

국제 구호단체들은 파키스탄의 군사작전 개시 이전에 전투 지역을 빠져나온 난민만도 50만 명에 이른다고 전한다. 전투가 격렬해지면서 추가로 발생한 난민도 50만 명을 넘어섰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파키스탄 역사상 최대 규모의 피난 행렬이다. 난민 구호를 위한 재정·행정적 노력이 뒤따라야 함에도 아직 이렇다 할 조처가 나오지 않고 있다.

오랫동안 미뤄져온 탈레반 소탕작전이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파키스탄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 기간에 본격화한 점에 주목하는 이들도 있다. 권력 기반이 취약한 자르다리 대통령은 방미 기간에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경제·정치적 지원을 받아내기 위해 협상을 벌였다. 오바마 행정부는 대테러 전쟁 수행과 경제·인도적 지원 명목으로 19억 달러 상당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또 향후 2년 동안 6억 달러가량의 군사 지원도 보장했다.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일대에서 새로운 전략을 마련하려 애쓰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는 그동안 파키스탄 정부와 군부에 탈레반 소탕작전에 나서라고 줄기차게 압박해왔다.

지난 1999년부터 2008년까지 집권했던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도 워싱턴을 방문해 경제·군사 원조 협상을 벌일 때마다 엇비슷한 행보를 보여왔다. 새로 사로잡은 알카에다 조직원 몇몇을 내놓거나, 아프간 국경지대에서 소규모 탈레반 소탕작전을 벌이기도 했다. 자르다리 정부는 지난 2월28일 스와트 지역에서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맺은 데 이어, 지난 3월엔 이를 의회에서 비준까지 받았다. 이에 대해 미국은 격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파키스탄 안팎에서도 ‘평화협정은 탈레반을 더욱 대담하게 만들어줄 뿐’이란 비판 의견이 들끓었다. 이들의 경고는 이내 현실이 됐다. 탈레반은 스와트 계곡에 인접한 부네르와 로워 디르 지역까지 진출했다. 새로운 조직원을 모집하고, 영향력을 넒혀나가기 시작했다. 급기야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단 100km 떨어진 곳까지 발빠르게 다가서기에 이르렀다. 옛 실크로드와 맞닿아 중국까지 이어지는 카라코룸 고속도로를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탈레반이 자르다리 정부를 무너뜨리면서 파키스탄이 내전에 휘말리는 것 아니냐는 국내외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파키스탄이 보유하고 있는 전략 핵무기가 테러리스트들의 손에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극단적인 전망까지 횡행했다.

이에 따라 오바마 대통령은 물론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마이클 뮬런 합참의장, 데이비드 페트레이어스 중부군사령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등 행정부는 물론 미 의회 지도부까지 미국을 동시 방문한 자르다리 대통령과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에게 두 가지 점을 강조했다. 첫째, 미국의 정책적 입장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알카에다·탈레반과의 전쟁에서 진전이 이뤄지고 있는지를 철저히 따지고, 그에 따라 파키스탄과 아프간에 대한 경제·정치적 지원을 해주겠다는 게다. 즉, 이전까지와 달리 책임을 묻는 쪽으로 정책 방향이 바뀌었다는 얘기다. 둘째, 미국 쪽은 부패하고 무능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두 지도자에게 ‘상식’을 강조했다. 국내적으로 정책의 일관성을 가질 것, 사리에 맞게 정국을 이끌어나갈 것 등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아프간-파키스탄 국경 일대를 무정부적 혼란에 빠뜨려 전쟁으로 몰아가고 있는 탈레반과 알카에다란 ‘공통의 적’에 맞서 야당 세력은 물론 인근 국가, 국제사회와 적극 협력하라고 강조했다. 9·11 동시테러 이후 미국이 시작한 알카에다와 탈레반을 겨냥한 전쟁은 아프간과 파키스탄에서 이미 내전으로 변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책 변화 ‘입김’ 작용

그럼에도 파키스탄인들이 이런 현실을 깨닫는 데 시간이 너무나 많이 걸렸다. 여론을 호도해 탈레반에 대한 동정심을 유발하고, 그들과 맞서 싸우려는 자르다리 정권에 적대감을 갖도록 만든 책임은 상당 부분 파키스탄의 이른바 ‘자유 언론’에 있다. 현재 파키스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터넷 매체들은 상대적으로 젊다. 대부분은 지난 10년 새 만들어졌다. 이 매체들은 대체로 논조가 독선적이고, 지나치게 감정에 호소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마치 언론 본연의 기능으로 생각하는 모양새다. 정부가 하는 일은 모조리 부정한 것이거나, 위선적인 것,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이런 식의 논조가 상업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이다. 인터넷 매체의 종교적·민족주의적 성향은 기실 1980~90년대를 거치며 이뤄진 ‘이슬람화 캠페인’에 기인한 바 크다. 당시 파키스탄의 교과서는 “인도 점령하의 카슈미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슬람 성전”, “(인도-파키스탄) 2국가 체제의 문제점”, “힌두-무슬림 증오이론” 등이 난무했다. 이런 식의 논리는 일상의 대화에도 파고들었다. 한편 여느 이슬람 국가와 마찬가지로 파키스탄에서도 미국의 ‘잘못된 외교정책’에 따른 반미 감정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특히 1989년 옛 소련이 아프간에서 철수하면서, 전략적 목적을 달성한 미국이 “파키스탄을 버렸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이에 따라 독자적으로 핵무기 개발에 나선 파키스탄을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혹독한 제재를 당하는 나라”로 만들어버렸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반미 감정에 더욱 불을 지폈다. 여기에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팔레스타인의 ‘인티파다’(저항) 상황 등이 위성방송을 타고 시시각각 전해지면서 반미의 일상화로 이어졌다.

지난 2007년 7월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붉은 사원’(랄 마스지드)을 장악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대한 소탕작전 와중에 테러범들에 대한 동정·지지 여론이 들끓었던 것도 이들 ‘자유 언론’의 공이 크다. 이들 매체는 테러범들을 마치 미국과 파키스탄 정부군에 맞선 중세의 영웅쯤으로 그려내면서 당국을 곤혹스럽게 했다. 또 ‘테러와의 전쟁’은 오로지 ‘미국의 전쟁’이며, 미군이 물러가기만 하면 탈레반과 알카에다가 영향력을 잃으면서 다시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처럼 선동하기도 했다. 결국 ‘자유 언론’은 탈레반과 정부 사이의 위험천만한 평화협정을 앞장서 지지했다. 지난 2월 28일 합의한 스와트 계곡 평화협정이 그 최신작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열린 정치 공간과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고 탈레반은 북서변경주의 드넓은 지역을 차례차례 장악해 들어갔다.

그나마 최근 벌어진 세 가지 사건이 다행스럽게도 이런 흐름을 뒤집는 데 기여 했다. 첫째, 지난 3월 초 스와트 지역에서 탈레반이 한 소녀를 군중이 지켜보는 앞에서 태형에 처하는 장면이 파키스탄의 모든 텔레비전 채널을 통해 방영됐다. 비난 여론이 비등했지만, 탈레반 쪽은 이를 “이슬람적 행동”이라고 옹호하고 나섰다. 하지만 파키스탄 전역의 이슬람 성직자(울레마)들조차도 비난 대열에 합류했다. 이 사건으로 탈레반에 대한 여론의 반감이 커졌고, 그들이 내건 이른바 ‘율법(샤리아) 통치’라는 것도 이슬람의 허울을 쓴 협소한 부족적 신념에 불과하다는 점이 만천하에 폭로됐다. 둘째, 탈레반 대변인이 언론과 시민사회가 중시하는 모든 가치를 비하하는 발언을 잇따라 내놨다. 탈레반 쪽은 파키스탄 헌법은 물론 시민사회와 민주주의, 선거와 개인 및 집단의 자유 모두 “이슬람에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탈레반이 자기들 식의 샤리아에 따라 언론에 재갈을 물리거나, 벌을 내리겠다고 위협하면서 언론인들은 분노와 공포에 치를 떨었다. 지난 한 해에만 아프간 국경지대 일대에서 10명의 언론인이 탈레반의 손에 죽임을 당하거나, 탈레반과 정부군의 교전 와중에 숨졌다. 셋째, 연방부족자치지역(FATA)과 북서변경주에서 탈레반을 피해 난민촌으로 물밀듯이 몰려든 피난민들은 ‘자유 언론’조차 부인할 수 없을 만큼의 분노와 공포에 몸을 떨었다. 난민들은 파키스탄 정부가 탈레반의 위협 앞에서 자신들을 저버린 것에 우선 분노했고, 이후 군사작전을 시작하면서 적절한 주민 보호 조처를 강구하지 않은 것에 다시 분노했다.

바야흐로 파키스탄이 마침내 나라 안팎에서 ‘실존적 각성’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면, 실행에 옮겨나가야 할 가장 중요한 일들은 뭘까? 첫째, 야당과 정부, 군과 언론이 시선을 하나로 모아내야 한다. 최대 야당인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가 이끄는 ‘파키스탄 무슬림 리그’(PML-N)가 거국 연립정부에 참여하고, 또 알카에다·탈레반에 맞선 전쟁에 동의한다면 가장 바람직하겠다.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 현재 샤리프 전 총리는 자르다리 대통령의 권력을 약화시키고, 중간선거를 실시하기 위해 일부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 미국도 샤리프 전 통리가 거국 정부에 참여하기를 원하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망설이고 있다. 샤리프 전 총리는 모든 쟁점 현안을 타결하자며 제 정당 연석회의를 제안해놓은 상태다. 하지만 이런 틀은 합의를 이끌어내기보다 논쟁만 가열시킬 공산이 크다. 반미 성향의 군소 종교정당들이 탈레반을 겨냥한 어떤 군사작전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미국은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에게 파키스탄에 대한 비난을 중단하도록 압박을 가해야 한다. 또 아프간의 친파키스탄계 온건 파슈툰족들을 끌어안아 파키스탄이 아프간 쪽 서부 국경지대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셋째, 인도는 대승적 차원에서 파키스탄과의 해묵은 원한을 풀어야 한다. 이를 통해 파키스탄이 인도에 대해 느끼는 공포와 불신을 걷어내고, 탈레반이란 내부의 적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해야 한다. 하지만 인도는 ‘평화’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파키스탄에서 인도로 테러리즘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보장하라는 등의 주장을 내걸고 있다. 이는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파키스탄 역시 똑같은 테러의 제물인 상황에서 이런 보장을 해줄 수 없는 상태다. 파키스탄 군부가 인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동부 지역에서 병력을 빼내, 새롭게 전장으로 떠오른 서부 아프간 국경지대로 이동시켜 탈레반과 맞서는 것을 내켜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파키스탄 정부가 인도를 장기적 위협으로 여기는 한, 외부가 아닌 내부의 안보 위협이 파키스탄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인식도 자리를 잡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국민회의당 주도의 새 인도 정부가 기존 태도를 바꿔 파키스탄과 조건 없이 평화를 만들어나가는 데 다시 나서주기를 기대한다.

넷째, 홍수처럼 불어나는 난민 문제에 전쟁을 치르는 것과 마찬가지 심정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유사프 라자 길라니 파키스탄 총리는 스와트 계곡 군사작전이 “파키스탄의 명운을 건 싸움”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북서변경주 난민수용소에서 인도적 위기가 커진다면 그 싸움에서 패배할 수도 있다. 변경주 주정부가 전투 과정에서 발생할지 모를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주민들에게 소개령을 내렸을 때, 현지 주민들은 흔쾌히 응했다. 하지만 피난길에 오른 주민들이 난민수용소에서 받은 처우는 예상을 뛰어넘는 충격적인 수준이었다. 여러 곳에 급조해 세워진 난민수용소의 상황이 열악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전투 개시 직후부터 약 50만 명의 주민이 피난길에 올랐다. 전투 개시에 앞서 미리 빠져나와 과거 아프간 난민들을 수용했던 버려진 난민수용소 등지에 수용돼 있는 피난민들도 50만 명을 헤아린다. 줄잡아 1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는 얘기다. 북서변경주 주정부는 스와트 일대에서 전투가 길어진다면, 피난민이 150만 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파키스탄 연방정부가 북서변경주 주정부에 지원한 난민 관련 예산은 지금까지 고작 10억 루피(약 1천만 유로) 수준이다. 그야말로 푼돈이다. 무엇보다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적절한 조직과 전문가의 손길이다. 지난 2005년 북서변경주 일부 지역과 아자드카슈미르 등지에서 발생한 지진 피해 주민을 보살핀 경험도, 지난 30여 년 세월 아프간 난민을 지원하면서 쌓은 경험도 이번 난민 사태에선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스와비·마르단 등지의 난민수용소에 초기에 도착한 피난민들이 겪은 고통은 그야말로 끔찍한 수준이었다. 북서 산악지대의 차가운 기후에 익숙한 난민들은 특히 더위에 취약하다. 하지만 난민들이 따가운 여름 햇살을 피할 수 있는 것이라곤 벌판에 친 천막이 고작이다. 당국의 주장과 달리 더위에 익숙지 않은 난민들이 타는 열기를 견뎌내는 데 가장 절실한, 깨끗한 마실 물조차 없었다.

새로운 환경에 내몰린 아이들이 특히 어려움을 겪었지만, 난민수용소에는 적절한 의료시설도 갖춰져 있지 않았다. 난민 등록 절차도 문젯거리다. 그나마 거처를 제공받으려면 각 가정이 특별한 허가증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난민 등록을 거쳐 허가증을 내주는 요원이 1명뿐이기 때문에, 몇백 명이 기다랗게 줄을 늘어서기 일쑤다. 지금까지 등록된 난민이 약 20만 명에 불과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난민 등록이 늦어지는 것 자체가 고통인 상황이다. 이 모든 혼란은 기실 쉽게 피해갈 수 있었던 일이다. 군사작전에 피난민 보호를 위한 상세한 계획이 포함돼야 했다.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탈레반에 맞서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는 이제 충분히 넓어져,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을 수 있는 단계까지 왔다. 하지만 난민들이 고통을 당하는 현실이 유지된다면, 탈레반이 되레 강해지는 반면 어렵사리 만들어진 ‘국민적 공감대’도 손상될 게 뻔하다. 각 정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이제야 난민 문제에 대처할 준비를 하고 있는 듯싶다. 파키스탄 정부가 자초한 정치적 혼란과 인도적 비극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국제사회는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아슈파크 카야니 파키스탄 육군 참모총장이 최근 정치권 핵심 인사들에게 “다가오는 석 달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나잠 세티 Najam Sethi
번역·정인환 국제 부편집장 inwhan@ilemon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