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살얼음판 위에 선 장난감산업 노동자들
경제위기로 신음하는 노동현장을 가다-중국 르포
아직은 일자리 많으나 노동조건 꾸준히 나빠져
외국 영향보다 내부 요인 커… 위기 과장 의혹도
난관에 처한 제조업체, 수천 개의 공장 폐쇄, 실업자로 전락한 수천만 명의 농민공들, 매일같이 중국발 경제위기를 알리는 뉴스들이 쏟아지고 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은 중국의 장난감 주요 생산지 중 한 곳인 광둥 지방에 있는 청하이(澄海)에서 중국의 참담한 현실을 세밀하게 관찰했다.
낮잠을 즐기는 시간이나 다름없는 11시 30분과 오후 1시 30분 사이에 꼭 점심 휴식 시간을 챙기는 것을 제외하면, 이 지역의 강도 높은 노동 활동은 일몰 전인 오후 6시께까지 멈추지 않는다. 점심 휴식 시간 동안, 수천 명의 노동자들은 도시로 쏟아져나온다. 이들은 대개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다니며 쇼핑몰 진열대 사이를 구경하거나 상자를 깔고 앉거나 혹은 벤치에 앉아서 점심을 먹는다. 또는 나무 그늘 아래서 잠을 자거나 혹은 카드놀이나 주사위놀이를 한다. 그러다가 공장이 가동되기 시작하면, 이들 중 그 누구도 만나기가 쉽지 않다. 흔히 중국에서 일자리를 찾을 때 그렇듯, 이곳에서는 자신의 전문성을 적은 마분지 피켓을 목에 걸고 혹은 세워놓은 자전거 손잡이에다 피켓을 걸어놓고 일자리를 찾는 노동자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청하이는 장난감 생산과 판촉에 주력하고 있다. 정부 소식통 말을 들어보면, 중국 산업 중에서 국제 경제위기로 가장 심한 타격을 입은 부문이 장난감 산업이라고 한다. 공식 집계상으로 이곳에 있는 장난감 생산 공장이 3천 곳이지만, 비공식상으로는 이 수보다 서너 배는 더 많다.
길모퉁이에 아이를 팔에 안은 한 젊은 여성이 나타났다. 색 바랜 청바지, 싸구려 잠바, 면 티셔츠 그리고 이름 없는 중국산 스포츠 신발 등, 그녀의 옷차림만으로도 출신과 직업을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광시성의 한 마을 출신 노동자 메이란은 “지금은 6개월 난 아이 때문에 쉬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노동자들을 찾는 지역 기업체들이 넘쳐나고 이제 젊은 애 엄마들이 아이를 데리고 공장에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남편이 공장에서 일하고 여성도 일자리를 다시 찾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며 “지금 당장은 아이를 혼자 키우다가, 얘를 탁아소에 맡겨도 될 나이가 되면 그때 일자리를 다시 고려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실제로 청하이의 대부분의 공장 정문에는 사람을 구한다는 마분지 피켓이나 혹은 커다란 천으로 된 현수막이 걸려 있다. 최근에 생긴 흰색 대형 공장에는 “전 부문에서 남녀 노동자 구합니다”라는 구인 광고가, 그보다 작은 공장 건물에는 “당장 오늘부터 일할 남녀를 찾습니다”란 광고가 내걸려 있다.
칙칙하지만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청하이 시청사 사무실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은 그런 광고들에 거의 놀라지도 않는다. 익명의 관계자는 “이런 광고들이 새로운 것이 아니며, 이들 중 일부는 수년째 걸려 있다. 둥관시를 빼면, 사실 광둥 지방 장난감 공장의 생산 활동은 이따금 중국과 해외 언론들이 떠들어대는 것만큼 국제 경제위기에 의해 타격을 받지 않았다. 이곳의 일부 공장은 여러 달 전부터 완전 가동 상태라, 설날에도 노동자들이 가족을 방문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했다. 청하이 세관은 우리에게 “2009년 1월과 2월의 수출량이 2008년 같은 기간 대비 18% 증가했다”고 했다. 또 “경제위기가 닥친 이후, 청하이에서 문 닫은 공장은 하나도 없다”고 했다. 이곳에서 만난 공장주들과 농민공들도 똑같은 말을 했다.
해외 주문 줄어 가동률 급감
그러나 사주들의 시각은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는 지역 관계자들의 시각에 비해 조금 완곡한 편이다. 회반죽으로 칠한 벽이 딸린 오래된 창고를 개조해, 작은 공장 건물로 사용하고 있는 왕 사장이라고 성만 밝힌 제보자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올해까지만 해도 이 도시에서 생산된 장난감의 80%를 수출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공장들이 해외 주문이 끊어지자, 공장 가동을 크게 줄였다. 많은 기업들이 손실을 만회하려고, 내수시장 공략에 뛰어들었다. 장난감 산업은 아직 상대적으로 양호하다. 내가 한 달 전에 공장을 연 것이 그 증거다. 만약 내가 새로 주문을 받지 못했다면, 문을 열지 못했을 것이다.”
장난감 수출입 회사 ‘유 이 토이스’의 사장도 최근의 어려운 현실을 털어놓는다. “2008년, 우리가 생산한 장난감 중 일부 품목은 2천만 개까지 팔려나갔다. 밀려드는 주문 때문에 엄청난 수의 노동자들을 고용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상황이 무척 힘들어졌다. 지금은 노동자가 300명에 불과하다.” 사장 뒤쪽에서 손에 롤러를 쥔 페인트공들이 공장 건물 벽에 색칠을 하고 있다. 사장은 작업이 뜸한 시기를 이용해 공장 구조를 변경하고, 호황기에 번 돈으로 그곳에서 2km 떨어진 곳에 장만한 새 사옥으로 전 사원들을 입주시킬 생각이다. 경제 침체에도 장난감 공장의 시간당 급료는 줄지 않았다.
직업소개소를 운영하는 메이와는 “4시간마다 교대 근무로 짜여 있고, 급료는 시급 14~15위안(1.55~1.66유로)이며, 우수 사원에게는 상여금이 지급된다”고 했다. 대개 사주들은 사원들에게 무료 주택을 제공하고, 구내식당이 있어 사원들이 한 달에 100에서 120위안(11.1에서 13.3유로)을 내고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서비스 혜택은 1년 전에 비해 거의 변한 것이 없으며, 가격도 1~2위안 정도 올랐을 뿐이다. 그렇다고 이것만 가지고 경제위기가 노동자들의 수입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주문이 준 공장들은 사원들을 3교대 대신 2교대 근무만 시키고 있다. 이들의 월급도 그만큼 줄었다. 공장은 연중 내내 가동되지만, 근무시간 조정으로 수입이 줄어 노동자들의 평균 월수입은 몇 달 전까지 1350위안(150유로)이던 것이 900위안(100유로)으로 줄었다. 우수 사원에게 주는 상여금도 보잘것없다.
쉬홍이 처한 상황이 딱 그러했다. 5개월 전, 허난성의 한 마을에서 청하이로 이주한 그가 매달 버는 수입은 1300에서 1400위안 사이다. 그는 “최근 우리 사장이 주문이 크게 줄었다며 우리보고 4~5일 휴가를 가라고 했다. 물론 무급이다. 그래서 난 며칠 휴식을 취하며 시내나 구경할 생각이다. 상황이 금방 나아질 것이기 때문에, 다른 직장을 구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공장 근무 환경도 괜찮다. 매달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 700에서 800위안을 부치고 있다”고 했다. 실제, 그의 사장은 그에게 식사와 8명이 같이 쓰는 9㎡ 크기의 거처를 제공했다. 제공되는 거처의 크기가 항상 이렇게 작은 것은 아니다.
근무시간 단축에 수입 줄어
여타 제보자들처럼 익명을 요구한 ‘하이펜다 플라스틱 토이스’의 책임자 중 한명인 존아무개는 “노동자들을 유치하고 그들이 남아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그들에게 다른 곳보다 훨씬 나은 생활 여건을 제공한다. 그래서 우리는 한 방에 두세 명의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새로운 무료 사원 주택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며 유창한 영어로 설명했다. 그의 뒤쪽에는 50여 명의 직원들이 15줄로 정열된 기계 주변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첫 과정을 담당한 노동자들은 커다란 마대에 담긴 플라스틱 재료들을 기계 위에 설치된 깔때기 속에 부었다. 그러자 플라스틱이 녹고, 몇 초 후 다양한 소리들과 함께 초록·노랑·빨강 플라스틱 권총들이 관 끝에서 쏟아져나왔다.
이들은 헬멧이나 화학물질에 대한 보호복을 착용하고 있지 않았다. 작은 의자에 앉아서 품질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그들의 동료도 마찬가지였다. 존은 “우리는 새로운 인력을 구하기 위해,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이곳으로 이주해온 친구들에게 귀띔해달라고 부탁을 하거나 회사 대문에 광고를 부착한다. 그래도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시내에 있는 고용센터에 부탁한다”고 했다.
실제, 시당국은 수년 전부터 구직센터를 확장해왔다. 그가 채용한 직원 중 한 명이 그랬듯, 실업자는 구직센터에 들러 기업에 전달되는 양식에 자신의 이름을 적는다. 이들은 양식에 이름, 전화번호, 경력, 일자리 유형, 희망 봉급을 기재한다. 그는 “정리해고는 매우 제한적이다. 느닷없는 주문에 대비해서 잉여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몇 달 동안 사무실 근로자들의 임금은 동결됐거나 심지어 삭감됐지만, 장난감 공장 근로자들의 봉급은 그렇지 않았다.
아무도 장난감 공장에서 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특별한 기술이나 신체적인 능력이 필요 없어, 임금이 낮고 고되기 때문이다. 올 1분기 동안 253명의 채용 공고를 냈지만, 지원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했다. 공장을 방문해 이 사람의 말을 확인해봤다. 어린 남성과 여성 그리고 40대의 여성들이 조립이나 검사할 때 사용하는 테이블을 장악하고 있다. 40대 남성들은 공사장이나 섬유 공장을 선택한다. 장난감 공장보다 두세 배가 많은 월 3천 위안(333유로)을 벌수 있기 때문이다.
고달픈 장난감 공장 일 기피
토요일에 구직센터는 고용시장으로 변한다. 기업들은 100위안을 내고 22개의 부스 중 하나를 빌려 실업자들을 맞는다. 실업자들에겐 모든 절차가 무료다. 지난 4월 4일, 부스를 차지했던 기업들 모두가 장난감 업체였다. 12번 부스를 빌린 ‘유이크 전자’가 내건 광고는 “성 구별 없이 건강하고 책임감 있는 18~40살의 많은 인력을 구함. 월급 700~2500위안(78~278유로). 숙식 제공. 커플 방 제공. 인터넷 카페와 서점, 스포츠 시설이 갖춰져 있음. 우리는 직원들이 여가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신경씀. 전화번호: 855 18 888”이었다. 센터 책임자 중 한 명인 익명의 제보자는 고용시장이 열리는 날을 제외하면 자신들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드물다며, “우리가 여기서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청하이나 혹은 산터우의 다른 지역 주민들이다. 이주민들은 곧장 공장을 찾아가 붙어 있는 방을 보거나 농민공 친구들의 네트워크를 활용한다”고 했다.
펭쉬도 그런 경로로 청하이에 왔다. 그는 설날 휴가 동안 광시성에 있는 고향 마을을 찾은 동네 주민 두 명이 자신들이 일하는 공장의 근무 여건이 괜찮다며 그에게 장난감 공장 취직을 권했다고 했다. 그는 “어제 청하이에 도착했다. 여태 나는 농부였다. 한데 내 가족은 돈이 필요하다. 난 매달 1300위안(145유로)을 벌고 싶다. 3~5일 동안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돈을 갖고 있다. 그동안 쉬면서 시내 구경이나 할 생각이다”라고 했다. 그동안 그는 친구들과 비좁은 방에서 거주하고 있다. 22살의 이 청년은 자기 집안과 마을을 예로 들며, 대부분의 젊은 남성과 여성들이 가족과 고향을 떠나 공장이나 건설업체로 일하러 갔다고 했다. 동료 중에 고향으로 귀환한 사람이 한 명도 없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공장에 일자리가 없어 설날에 고향에 갔다가 그냥 눌러앉은 농민공이 있다는 말은 들었다. 그러나 확실히 우리 동네를 비롯한 인근 지역 사람들 중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 집에 눌러앉은 채 일자리가 생기길 기다릴 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못박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도 대답은 한결같았다. 허난성 출신이라는 24살의 노동자 쿠이지앙은 “2~3년간 근무하는 공장의 작업량이 폭주해 고향을 찾지 못했던 노동자들이 설날 휴가 기간에 조금 일찍 고향으로 떠났다”고 했다. 올 들어 주문량이 주춤해지자, 일부 노동자들이 설날 공식 휴가가 지나고 고향을 찾은 것이다. 농민공 그 누구도 집 안에 앉아서 일자리를 기다리지는 않는다. 일자리가 전무한 고향만 떠나면 거의 사방에 일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쿠이지앙은 “청하이뿐만 아니라 광둥 지방은 일자리 천지다. 내 친구들은 중국 사방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난 그들과 정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상황을 파악하고 전반적인 분위기를 점검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대부분의 장난감 생산업체 노동자들은 전화상으로 자신들의 실제 월수입 감소 및 고용계약법을 적용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의견을 광범위하게 개진하고 있다고 했다.
기업과 지방정부의 유착
2008년 8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고용계약법은 노동자들이 기업을 통해 복지, 보건, 실업 및 퇴직 보험을 누릴 수 있도록 했다. 25살의 허난성 출신 카오유앙팡은 “청하이에서 노동법을 지키는 기업은 한 군데도 없다. 베이징의 중앙정부가 여기서 정부 정책을 시행할 수는 없다. 그러니 공장주들은 그걸 시행하려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 이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아무도 감찰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내가 아프기라도 하면, 내 돈으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작은 투자법인 회사를 운영하는 시에는 “실제로 이곳 회사들은 겁내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모든 회사가 지방정부와 성 정부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법을 준수하지 않는 것이다. 법을 지키는 회사는 청하이에서 가장 큰 장난감 회사 오들리(Audley)뿐이다.
왜? 이 회사는 디즈니나 반다이 같은 유명 외국 브랜드를 위해 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회사의 사회복지 정책은 고객들에게 깐깐한 점검을 받는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또 작은 공장을 운영한다는 사장도 기다렸다는 듯이 법을 지키기 않고 직원들의 고용보험 분담금도 내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장난감 조립실로 들어가면서 직원들을 가리키며 “난 오들리가 자기 직원 3천 명에게 주는 봉급과 혜택을 내 직원들에게는 제공할 수 없다. 난 저들과 비교하면 12명의 직원을 거느린 난쟁이에 불과하다. 난 10%의 마진을 챙기지만, 서양의 내 고객들은 25%의 마진을 챙긴다. 게다가 그들은 지금 모두 고객이 줄어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가격 협상을 전보다 더 깐깐하게 한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잠시 숨을 돌린 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만약 내 공장 같은 업체들의 비용이 상승하면 서양 수입업자들의 판매가격도 그만큼 상승하게 되리라는 점이다. 그러면 당신들은 절대로 이처럼 싼 장난감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럴 경우, 당신네 나라의 모든 부모들이 유명 브랜드 장난감을 구입할 수 있을까?”라며 입가에 미소를 짓더니, 사무실로 들어가 녹차 물을 끓인다.
트리스탕 드 부르봉 Tristan de Bourbon
번역·조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