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세등등한 '톨레랑스 제로'의 전문가들

2009-06-03     피에르 랭베르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경범죄에도 강력 대응하는 미국 모델 맹목 추종
대학 등을 배경 삼아 ‘과학적 분석’ 제시하는 행세

선거철에 맞춰 지방분권의 기반 위에 조각된 도시정책들이 새로운 얼굴인 치안 전문가들을 탄생시켰다. 이들은 다각적으로 언론에 등장하면서,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많은 포럼과 저서를 통해 보급시키고 있다. 이전에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이들은 마치 ‘도시 치안 불안’ 분석가들처럼 굴며 ‘교외 문제 전문가들’을 몰아내고 있다. 과거의 교외 문제 전문가들은 정치 및 경제, 사회 문제에 대한 분석을 시도했기 때문에, 문제 개선에 앞서 그 원인부터 찾았다.

반면에 새로운 ‘전문가들’은 원인을 무시하고 결과를 관리하는 접근 방식을 제안한다. 즉, 서민 구역의 사회·경제 상황 문제를 ‘도시 폭력 반대 투쟁’ 문제로 대치하려는 것이다. 이들은 치안 불안과 관련된 담론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 첫 번째가 서민 밀집 주거 지역과 그곳 주민들의 상황을 청산해야 할 ‘아비규환’으로 내모는 일이다. 이 담론의 요지는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들을 들먹이고, 높은 실업률을 지적하고, 공공서비스의 취약성을 알리고, 범죄 형태의 변화를 강조하고, 주민들이 겪는 불편을 나열하고, 낡은 건물을 철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진단들은 금세 담론가들이 ‘무법천지’라고 규정짓는 아비규환적인 현실로 바뀐다. 예컨대 국가 고위 경찰 협의회 의장인 리샤르 부스케는 “‘모든 위험이 도사리는 서민 구역들’에 거주하는 일부 이슬람 출신 이민자들의 신원 확인 시스템을 재구축하자”고 주장한다. 이 이민자들 중 “소수의 행동대원들이 몇몇 외국인 파트너의 지령에 따라 극단적인 테러 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1) 국제 음모 이론에 사로잡힌 부스케는 “프랑스 감옥에 200명이 넘는 이슬람교도들이 복역 중이지만, 여전히 우리 동네들은 이슬람주의로 재무장한 ‘뵈르’(beurs·프랑스 마그레브 2세들)와 국제 지하드 두목의 지시에 따라 테러를 자행할 준비를 한 범법자들로 우글대고 있다”고 경고한다.(2)

미국 모델 무분별 적용

또한 미국 모델이 자주 거론된다.(3) 미국 모델의 미덕을 강조해온 ‘전문가들’은 이 모델의 효과를 도입하려 했다. 동시에 미국의 특정 맥락에 맞게 작성되어 아니다 싶은 부문은 배제햇다. 알랭 보에르는 최근 자신의 저서에서 미국을 “연구와 해결의 공간”, 즉 “범죄를 관리하고, 공포는 줄이고, 희생자는 보호하는” 정책이 마련된 곳으로 봤다.(4) 또 알랭 보에르와 크자비에 로페르는 자신들의 베스트셀러 <폭력과 치안 불안>의 한 장을 ‘외국의 모델과 사례’에 할애해, 이상하게도 ‘톨레랑스 제로’의 모델로 전락한 뉴욕의 사례를 다룬다. 하지만 뉴욕의 관리 방식에서 영감을 받은 프랑스 전문가들은 그 방식에 매료되고 만다. 뉴욕 모델은 집중적인 범죄 통계 차트 사용과 경찰의 처벌 성과에 대한 지속적인 평가, 그리고 미시경제 논리를 직접 도입해 ‘경찰의 실적’을 증대시키는 것이다.

특히 좌파 정부가 우선순위로 꼽은 과제 중에서 ‘치안 불안 반대 투쟁’과 관련해, 사회문제로 매도되는 쟁점들에서 경제·사회적 원인 분석으로부터 투쟁을 분리시키겠다는 의지가 이 치안 전문가들을 키웠고, 이들을 미디어 스타로 만들어줬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 리포터, 작가, 기자들은 상대적으로 외면당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경찰이나 혹은 개인의 주장을 단순히 옹호하는 데 관여하면서 위협받고 있는 공동 재산을 대변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과학의 기치 아래, 이들의 과학적 합법화 작업은 준학술 집단을 통해 이뤄졌다. 가장 상징적인 단체는 말할 것도 없이 1989년에 설립된 프랑스 국내치안고등연구소(IHESI·2004년 국립치안고등연구소(INHES)로 이름이 바뀜)다. 내무장관의 직속 기관인 이 단체는 정치, 행정, 학계 및 치안 분야 연구원들과 전문인(경찰·헌병대·사법관·세관원)들을 결집시키고 있다. 게다가 이 기관의 ‘자문위원단’은 질서와 정의를 책임지는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교육부, 복지부, 환경부 그리고 경제부가 추천한 인물들이다. 이 기관의 첫 수장이었던 장마크 에르베스는 “기관의 목적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정책에 참여하도록 도모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치안은 모든 사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라고 회고한다.(5) 연구소는 인턴제 혹은 대학과의 제휴를 통해 교육을 담당하며, 치안 부문에 대한 정부 지침을 이론적으로 구현해서 기술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 기관은 치안 개념을 정립하고 작동시키는 데 참여했고, 치안 강화가 필요한 장소에 시설물을 설치하기 위한 계획을 자문했다.

전방위적으로 지식인 포섭

경찰 및 치안과 관련된 문제들을 정치적 차원에서 무력화하는 것이 이 연구소 설립자의 야망이었다.(6) 연구소가 가장 우려한 것들 중 하나는 자신들의 행위를 과학적인 것으로 포장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알랭 페레피트가 수장으로 있던 ‘폭력, 범죄, 비행에 관한 연구위원회’가 15년 전에 쓴 수법이다. 1989년 이 연구소의 개관 심포지엄에는 장 들루모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를 비롯해 조르주 브델 파리법대 학장, 필리프 로베르, 프랑수아 뒤베, 미셸 비에비오르카 등 연구원들이 다수 참여했다. 10년이 지난 지금(원문은 2001년에 작성됐음)도 연구소는 여전히 자신들의 ‘과학위원회’를 앞세운다. 위원장직은 사회학자이자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 소장, 그리고 1998~99년에 공공 치안을 책임진 핵심 감독관의 기술고문 노릇을 한 도미니크 몽자르데가 맡았다.

설립 초기에는 과학자들을 동원해 내무부 직속 기관의 문제와 관련된 연구를 수행케 하는 것이 벅찼지만, 이후 꽤 성공을 거두게 된다. 경찰 및 치안과 관련된 연구 실적을 촉진하기 위해, 연구소는 자금 지원(계약 연구, 논문상 수여를 통해)과 함께 세미나 조직 및 많은 논단을 활용해서 연구물 보급에도 신경쓰고 있다. 이들 논단 중에는 시리즈물 저서 3개와 잡지 <국내 치안 노트>(Les Cahiers de la s?curit? int?rieure)가 포함돼 있다. 연구소는 차츰 폭력 및 치안 불안과 관련된 문제에서 프랑스의 핵심 연구센터처럼 군림하게 된다. 설령 과학자들이 이 연구소에서 자율적으로 연구를 수행한다 하더라도, 이들의 업적은 경찰, 행정 혹은 정치 쪽에 구체적으로 그것들을 적용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비교주의를 신봉하는 이 연구소는 해외 사례 연구, 특히 북미 지역과 영국에 관한 연구로 방향을 틀었다. 영미식 ‘지역사회의 경찰’ 개념을 이론적으로 따르며 실천하자는 것이 연구 목표이다. 이는 1997년 사회주의 프로그램에 통합돼 작동되고 있는 ‘근거리 경찰’ 정책이 빚어낸 결과다. 전문가들은 “이제 일반적인 언론 매체 혹은 기술적인 언어 개념에 속하던 ‘무례함’ ‘도시 폭력’ 혹은 ‘근거리 경찰’ 등과 같은 언어가 결국 지식을 응집해놓은 논문과, 이 연구소에서 일했거나 연구소가 위임한 연구원들과 경찰들의 공식 혹은 비공식 평가 자료를 통해 널리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한다.(7)

이 연구소는 ‘국내 치안의 정신을 구축하려는’ 의도로 11년 전부터 고위 공무원, 고위 경찰, 사법관, 선거직 공무원, 기업 대표, 민간 기업 중역, 언론인 등을 상대로 연수 일정을 조직하고 있다. 이들은 1년 동안 이론 수업을 받으며 서로 낯을 익히고, 구체적인 사례를 가지고 집단 연구를 진행하고, 해외로 연수를 떠나기도 한다. ‘국내 치안’ 연수를 받은 수강생 1350명이 이 연구소를 위해 “요즘 프랑스의 전반적인 공권력의 대변자들을 위한 평가와 정보 네트워크가 돼주고 있는 셈이다”. 이들의 영향이 사회 조직망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미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내 치안 문제, 특히 ‘근거리 경찰’ 정책을 옹호하던 <르몽드>의 기자 파스칼 소는 연구소의 옛 수강생이다. 또 리샤르 부스케와 알랭 보에르도 이 기관에서 연수를 받았다. 일부 치안 전문가들 또한 자신의 논문 일부를 동료들로부터 인정받는 유명한 연구원과 함께 잡지 <국내 치안 노트>에 게재하고 있다.

대학 활용하는 치안 전문가들

이러한 병렬 배치가 학술적인 정당성을 갖추지 못했거나 갖췄어도 거의 미비한 수준인 회원들의 업적에 마치 ‘과학적’인 것 같은 가치를 부여해주고 있다. 치안 전문가 양산가들이 과학적 정당화를 위해 활용하는 또 다른 방식은 이따금 자신들이 강의를 하고 있는 대학을 이용하는 것이다. 크자비에 로페르는 자신의 경력을 표시할 때 ‘파리2대학, 현대의 범죄 위협에 관한 대학 연구센터 연구소장’이라는 직함을 쓴다. 그런데 이 센터는 일시적으로 대학에 입주해 있을 뿐인 기관이다. 사실은 실명이 크리스티앙 드 봉갱인 크자비에 로페는 파리 범죄연구소 강사다. 또 서구 기독교인 극우파 소그룹의 옛 창설자이자 프랑스 대학출판사(Puf)의 시리즈물 <국제 범죄> 담당 책임자다. 그가 알랭 보에르와 공동 집필한 <크세주>(Que sais-je?·나는 무엇을 아는가?)는 학계로부터 ‘크세주판’ 시리즈물의 정당성을 확보하게 됐다.

2000년 9월 ‘프랑스 프리메이슨 중앙본부’의 대교주로 선출된 보에르는 치안공학 전문과정(DESS)과 관련해 행정적으로 제휴관계를 맺은 치안고등연구소와 파리 소르본 5대학을 오가며 강의하고 있다. 또 그는 시앙스포(파리정치대학)에서 ‘도시의 직업’을 주제로 한 평생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마치 ‘파리 시앙스포 및 소르본대학 교수’로 소개한다. 또 최근에는 공동 집필자인 크자비에 로페르가 운영하는 ‘현대의 범죄 위협에 관한 대학 연구센터’에서 도시 폭력에 관한 모듈 작업에 개입하고 있다. 더 나아가 그는 신망을 주는 파리2대학 부총장 직함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 물론 그는 그 직함을 지녔었다. 하지만 그것은 학생회 부회장 직함이었다. 도처에 개입하기에 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혼란스럽게 한다. 알랭 보에르는 그의 저서 <도시 폭력 및 치안 불안>의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까?’라는 장에서, ‘치안의 현지 분석’이 지닌 장점들을 장황하게 다룬다. 그런데 그는 ‘도시 안전 자문 회사’의 회장 자격으로 ‘치안의 현지 분석’ 절차를 책임진 전문가였다. 상기해보자. 만약 의사들이 제약 연구소도 같이 운영한다면 어떻게 될까?

치안 전문가들은 집중적인 언론플레이를 통해 자신들의 담론을 효율적으로 관리한다. 이들은 미디어를 장악하고, ‘치안’과 관련된 토론의 장을 미세한 공간 속으로 밀어넣어 토론을 막고 있다. 이들의 성공의 상당 부분은 이들이 ‘비밀’ ‘기밀’ 그리고 ‘희귀한 지식들’이라고 말하는 담론의 성격 덕분이다. 따라서 이 담론들은 매우 이데올로기적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순전히 경찰의 문제제기 형태를 토대로 구축됐지만, 유사 학술 방식으로 소개되기 때문이다. 언론인들에게 제공하는 것들은, 언론인들이 혹하는 검증된 일반 데이터뿐만 아니라 언론인을 유혹하기 위해 분석 전문가들이 언론의 문제제기 형태에 딱 맞게 제작한 온갖 형태의 도표들이기 때문에, 마치 오랜 현장 취재와 학계의 연구를 거쳐 형성됐다는 인상을 풍긴다.

치안 불안 반대 투쟁 홍보를 마치 주요 정치 세력 간의 경쟁과 집결 지점처럼 이용하며 이 문제와 관련된 전문가의 수요를 창출했다. 정치교육, 일반 뉴스 미디어 그리고 새로운 치안 전문가들 사이에 서로 뒤엉킨 정당화 게임이 시작됐다. 다양한 담론가들이 옹호하는 특정 이익이 무엇이든 간에, 이들은 신체의 안전을 담보로 돈벌이를 하고, 사람들을 평등 적용에 적합한 대상으로 보는 정부의 자세를 정당화해줬다.

 



<각주>-
(1) 리샤르 부스케, <치안 불안: 새로운 위험, 모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서민 구역들>, 1998, 26쪽.
(2) 같은 책, 151쪽.
(3) 로익 와캉, ‘미국에서 불어오는 처벌 바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99년 4월 참조.
(4) 알랭 보에르와 에밀 페레즈, <미국, 폭력, 범죄>, 2000년. 크자비에 로페르는 이 출판사의 시리즈물을 책임지고 있다.
(5) 장마크 에르베스, ‘연구소의 기원’, <프랑스 국내 치안 노트>, 37호, 9쪽.
(6) 같은 출판물.
(7) 에리크 샬뤼모와 파트리크 글로리외가 <프랑스 공공 행정 잡지>에 기고한 ‘치안 문제에 관한 평가’, 91호, 1999년 7∼9월호, 399∼412쪽.

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번역 조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