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계 이스라엘인, 극우의 인질인가
극우, ‘순수 유대 국가’ 건설의 걸림돌로 적대시
‘두 국가’냐 ‘두 민족 한 국가’냐 등 해결 과제 산적
3월 말, 극우파 지도자 아비그도르 리에베르만이 이스라엘 부총리 겸 외무장관에 취임했다. 2000년에 외르크 하이더와 자유당(PFO) 동료들이 오스트리아 내각에 입각했을 때 거의 한목소리로 항의했던 유럽이 이번에는 아무 소리가 없다. 러시아 출신인 리에베르만 장관은 자신이 소속된 이스라엘 베이테누(이스라엘은 나의 집이라는 뜻)당 노선에 걸맞게 선거운동 기간 내내 팔레스타인계 이스라엘인들에 대해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해왔다. 서방세계는 아나폴리스 정상회담을 포함해 이스라엘이 이전에 서명한 모든 협정들이 유효하지 않다는 신임 이스라엘 외무장관의 발언에 주목할 것이다. 실제로 그의 발언들은 근동의 평화를 모색하고 있는 버락 오바마 정부와 첫 충돌을 유발했다. 이스라엘 국내 정치에서, 팔레스타인계 이스라엘인들의 시민권을 문제 삼으면서 “그들을 이주시키겠다”는 그의 제안은, 유대계와 아랍계 시민들 사이의 유혈 충돌이 될지도 모르는 또 다른 충돌을 불러일으킬 위험을 안고 있다.
국가에 대한 충성이야말로 그가 늘 되풀이하는 주제지만 그것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법은 없다. 그와 헤어지기 전, 그에게 물었다. “당신이 나치 독일에 있다면, 누구에게 충성하겠는가?” 그는 눈도 깜짝하지 않고 “국가에 충성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예루살렘의 국회의사당에서 들은 대답이기에, 자신의 아버지가 어떻게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한 독일제국을 빠져나왔는지를 우리에게 들려줬던 만큼 더더욱 놀랍고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해가 가는 분은 이해하시기 바란다.
국회 부의장이자 변호사인 데이비드 로템 의원은 이스라엘 베이테누당의 아비그도르 리에베르만 대표의 측근으로, 차기 법사위 위원장이 될 것이 유력하다. 그는 베이테누의 총선 연설을 되풀이한다. “유대인이건 무슬림이건 기독교도이건, 시민이라면 국가에 충성심을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민이 아니다.” 그리고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을 만난 이스라엘 랍비 메이어 히르쉬를 비난하고,(1) 마찬가지로 가자지구 침공 반대 시위를 감행한 아랍계 국회의원들을 힐난했다.
당의 제안은, 모든 이스라엘인들은 (유대주의를 상징하는 유대의 별이 포함돼 있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고, (유대 정신을 상기시키는) 이스라엘 국가를 부르고, 민간 복무든 군 복무든 어떤 형태로라도 병역을 마치도록 한다는 것이다(아랍인들은 드루즈인, 베두인, 교리에 극도로 충실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의무 복무를 하지 않는다).
그의 총선 캠페인 슬로건은 의미심장하다. “아랍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리에베르만뿐이다.” 역사학자 슐로모 샌드는 “그는 몰디브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나이트클럽 쓰레기 청소부를 했다. 그가 지금 청소하고 싶은 것은 아랍인일 것이다”라고 논평했다. 이런 독설은 러시아 이민자 정당의 특성(2)을 간과한 것이다. 이 정당의 공식 목표는 1948년처럼 팔레스타인 사람을 추방하려는 것이 아니라,(3) 팔레스타인 사람이 집중돼 있는 영토, 특히 움엘팜과 그 주변 마을들을 중심으로 한 삼각지대 북부를 미래의 팔레스타인 국가에 귀속시키는 것이다. 그 대가로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을 둘러싼 유대인 정착촌과 요르단 서안지구의 유대인 정착촌을 합병할 것이다.
리쿠드당과는 반대로 이스라엘 베이테누당은 공식적으로 두 국가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우리는 1947년의 분리 원칙을 수용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은 ‘유덴라인’(judenrein)(4) 국가를 원하고, 이스라엘은 ‘모든 시민들로 이루어진 국가’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100% 유대인으로 이루어진 국가를 원한다. 이런 정신에 따라 두 국가의 국경을 정할 국제 협정이면 족하다”라고 로템은 강조한다.
당연시되는 극우 세력의 인종차별 정당화
150만 명의 팔레스타인계 이스라엘인들에게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 내 3개 아랍 정파는 비슷한 대답을 하지만 그 뉘앙스는 다소 다르다.
하닌 조아비는 크네세트에 진출한 최초의 아랍 정파 출신 30대 여성 의원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그녀는 선거에서 아즈미 비샤라가 창설한 아랍 민족주의 정당 ‘발라드’당을 구해내는 데 기여했다. 비샤라는 반역 혐의로 추적을 받고 망명 중이었다. 그녀는 리에베르만의 견해에 일종의 교환 조건 같은 것이 들어 있다고 본다. “점령 지구에서 물러나겠다, 그리고 당신들의 충성심을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팔레스타인계 이스라엘인들에게 그들이 유대인 국가에서 살고 있고, 그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야” 하는 것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전 총리는 “두 국가에 찬성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그가 이스라엘의 유대적 특성을 강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타우피크 아부 아마드 변호사는 갈릴리의 아랍 중심지인 나사렛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고 이슬람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우파와 극우파가 “유대계 이스라엘인들에게 그들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반아랍적인 발언을 하고 있다고 본다. 그들은 “아랍계를 물리치고 인기를 얻으려고 내부의 적을 만들어낸다.” 그들은 시민 정신을 바탕으로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의 충성심을 독려하지 않는다. 그의 결론은 “정의만이 상처를 아물게 한다는 우리 속담처럼, 당국자와 지도자들은 진정한 시민권, 즉 평등한 권리만이 그들의 충성심을 보장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갈릴리의 엘리아분 시장을 역임한 한나 스웨이드는 하다시당(평화평등민주전선, 공산당 계열)의 두 번째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하다시당은 앞으로 4개 의석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그는 “군 복무 의무화가 실제적으로 반아랍 차별을 심화시킬 것”(5)이라는 점을 더 부각시키고 있다. 그리고 특히 “이런 주장은 국민들의 더 많은 지지를 받겠지만, 유대인과 아랍인의 공존을 문제 삼음으로써 긴장을 야기할 위험이 있다. 2000년 10월의 총격 사건과 2008년 10월 아크레(아코)에서 일어난 유대인 박해를 통해서, 우린 이를 이미 경험했다. ‘리에베르만 시대’는 유대계·아랍계 혼성 마을에서의 충돌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이파에서 이스라엘 내 아랍인 소수집단의 권익을 위한 법률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하산 자바린 소장은 “모든 것이 아리엘 샤론 전 총리의 분리정책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평가한다. 분리장벽도, 가자지구 철수도, 2006년 여름과 2009년 겨울의 군사작전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이것은 이스라엘 지도층이 팔레스타인계 이스라엘인들을 비난하도록 만드는 일방적인 해결책을 강요할 수 없음”을 말해주는 셈이라고 그는 말을 이었다.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에 대한 이스라엘의 관심을 정당화해주었던 ‘인구통계학적 위협’이 이제는 유대 국가 자체의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어느 누구도 두 국가 해결책을 신뢰하지 않는다. 1948년과 마찬가지로 모든 정파들 사이에 또다시 갈등이 전개될 것이다. 하이파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전쟁’을 거는 것이 더 쉬워 보인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하이파든, 나블루스든, 동예루살렘이든, 차이가 없다.”
그렇게 말하고 그는 리에베르만을 거론했다. 리에베르만은 2008년 1월 전 행정부에서 사임하면서 단호히 선언했다. “우리의 문제는 유대냐, 사마리아냐의 문제가 아니라 크네세트에 있는 과격 근본주의 지도부다. …우리의 문제는 아메드 티비와 바라케(아랍계 이스라엘인 지도자들)다. 이들은 칼레드 메칼(다마스의 하마스 지도자)과 나스랄라(헤즈볼라 최고지도자)보다 더 위험하다. 이들은 내부에서, 체계적으로 이스라엘과 유대 국가 파괴 공작을 벌이고 있다.”(6) 사실 ‘제5열’에 대한 경각심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사회제도 속에서, 그리고 현장에서 생겨났다.
아랍인과의 위태로운 공존
지금은 인종차별적 발언들을 쉽게 들을 수 있다. 2004년, 이스라엘 내 아랍인들을 “100여 년 전부터 지하에서 유대 국민들에게 해악을 끼쳐온 벌레”(7)에 비유한 리쿠드당 예히엘 하잔 전 의원의 발언이나, 아랍 혐오증으로 기네스북에 오르려는 리쿠드 당원 모세 페이글린의 발언이 그렇다. “원숭이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칠 수는 있겠지만 아랍인이 민주적이 되게 가르치지는 못할 것이다. 당신들은 도둑과 강도의 문화를 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선지자 마호메트는 강도였고, 살인자이자 거짓말쟁이였다.”(8) 1985년, 메이어 칸 랍비가 이끌던 카흐당의 선거운동이 법으로 금지된 것도 이와 유사한 발언 때문이었다.
2009년 초 이런 현상이 격화되자 시몬 페레스 대통령은 투표일 전날, “일부 여론을 향한 폭력 조장을 우려”하면서 “아랍인들은 이스라엘의 모든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2006년과 2007년의 여론조사를 보면, 유대계 이스라엘인들의 78%가 정부 내에 아랍계 정파가 포함되는 것을 반대한다. 75%는 아랍인들과 한 건물에 살고 싶어 하지 않고, 75%는 아랍인들이 폭력에 물들기 쉽다고 생각한다(아랍계는 같은 질문에 대해 54%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68%는 새로운 인티파다(반이스라엘 저항운동)를 걱정하고, 64%는 아랍인의 인구통계를 우려한다. 56%는 “아랍인들이 문화 발전에서 유대인과 같은 수준에 도달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다. ‘해결책’에 대해서 유대계 이스라엘인들의 55%는 정부가 아랍인들의 이주를 장려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50%는 그들을 “이주”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42%는 아랍인들의 선거권을 박탈해야 한다고 제안했다.(9)
공상과학 소설이라고? 우리는 이런 분위기가 심각한 퇴행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2003년, 요르단강 서안이나 가자지구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사람과 이스라엘에 사는 배우자와의 상봉 결합을 금지한 법이 채택된 것(10)이 그 증거다. 새 정부가 현재 입법 중인 법안을 내일 당장 개정할 리는 없다. 하지만 모레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공존 해치는 공포 분위기
“가장 심각한 일은 리에베르만이 아니라, 아주 경미한 사건이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작은 리에베르만들이 도처에 넘쳐난다는 사실이다.” 빵집을 경영하고 있는 아마드 우데는 그 의미를 잘 알고 있다. 그는 지난해 10월의 충돌로 상처 입은 도시 아크레(전체 주민 5만3천 명 가운데 1만7천 명이 아랍계)의 시의원이다. 당시 수백 명의 유대인 폭동 선동자들이 가옥 30여 채, 상점 80여 곳, 자동차 100대를 파손하거나 피해를 입혔다.(11) 우리는 마을을 둘러보았다. 복원된 옛 시가지 내 5채의 낡은 가옥은 1948년 ‘버려진’ 아랍 재산의 ‘소유주’인 아미다르사를 거쳐 유대인 학생들에게 넘어가 있었다.
현재 건축 중인 새 주거지는 특히 가자지구의 옛 유대인 정착촌 주민들을 위한 것으로 ‘북부의 주먹’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북부 지방에서 가장 큰 예시바(종교학교) 건축 공사장이 있었다. 시장에는 10여 명의 유대인 초등학생들이 소총으로 무장한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 구역 주민의 대부분이 무슬림이지만 알라바리디 이슬람 사원의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로드(옛 리다)로 장소를 옮겨도 큰 변화는 없다. 1948년 7월 추방 명령을 피해갔던 1천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이 지금은 1만1천 명이 됐다. 이곳의 전체 주민 수는 7만 명이다.
우리를 이곳으로 안내한 도시계획가인 부타이나 아비는 “이 도시를 다시 유대화하기 위해 시장은 한편으로는 아랍인들을 쫓아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유대인 정착민들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설명한다. 우리를 태운 자동차가 어렵사리 지나가는 미로처럼 복잡한 길들이 마치 재유대화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오른편에는 말쑥한 가네이 아비브(봄의 정원이라는 뜻) 건물이 들어서 있고, 왼편에는 버려지거나 철거 직전의,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한 아랍인 빈민촌이 보이고 그 사이로 드문드문 멋진 빌라가 서 있다. 이 빈민촌은, 법으로 건축이 중지된 장벽을 사이에 두고 니르 즈비 모샤브(이스라엘 촌락 공동체)와 구분된다. “예전에 그들은 우리를 쫓아내기 위해 동양계 유대인들을 이용했다. 그 다음에는 러시아계 유대인들을 이용했고, 지금은 종교가들을 이용한다. 우리끼리 서로 싸울 게 아니라 다 함께 싸워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유대 정착촌, 극심한 빈곤 시달려
1948년의 나크바(대재앙) 후 텔아비브에 합병된 자파의 옛 별명은 ‘바다의 약혼녀’였다. 현재 자파 주민의 40%는 팔레스타인 사람이다. 이곳에서도 유대인 정착을 담당하는 기업은 빈곤을 이용한다. 하다시·발라드당의 공동 공천자 명단에 늘 올라 있는 여성 지원 프로그램 책임자 주디트 일라니는 상황을 이렇게 요약한다. “세 아이를 키우는 한 부모 여성 가장 F씨 가족의 예를 보자. 큰 희망을 걸지 않지만, 사회 공동주택에 입주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월세 2천 셰켈(357유로)에 민간 아파트를 임대했다. 이는 그녀 수입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아파트 주인은 그녀를 내쫓았고 그녀는 4천 셰켈에 다른 임대 계약을 맺어야 했다. 물론 그녀는 이 돈을 제때 내지 못했다. 월세가 밀리자 그녀는 또다시 쫓겨났다.
히브리어로 된 수많은 서류들을 제출한다면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녀는 히브리어를 할 줄 모른다. 설사 할 줄 안다 하더라도 고집스러운 세입자들을 쫓아내는 일을 시로부터 위임받은 민간 업체의 힘센 손아귀에서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다모클레스의 검처럼 자파에는 건축 허가(12)도 없으면서 500건이 넘는 추방 명령이 시행됐다. 네구에브에서는 주택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를 철거하고 있다.
폭력에 대항하는 여성들의 모임 회장이자 공산당 지도자인 아이다 투마 슬리만은 세계 최초로 매 맞는 아랍 여성을 위한 집을 창설했다. 현장 투사인 그녀는 투표소에서보다 현장에서 ‘파시스트화 경향’이 뚜렷이 감지된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표현이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합법성에 대한 이의 제기, 폭력 위협, 우리 마을을 유대화하려는 시도 등 여러 가지 사실들이 이렇게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간성 말살은 선을 넘어섰다.
그 끝이 어디가 될지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물론 나사렛은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한다. 갈릴리의 주도인 나사렛 주민은 대부분 아랍인들이다. 하지만 주택 부족으로 주민들은 자매 도시인 나사렛 일리트(원래 유대인 거주지로 만들어진 곳)에서 세를 얻거나 주택을 구입한다. 어쨌든 슬리만은 “이곳에서조차 리에베르만의 발언이 마치 우리를 향한 공격 명령처럼 울려퍼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멀기만 한 화합의 길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공동체는 괴롭다. 그렇다고 상황을 내버려둘 수는 없다. 가자의 비극과 선거운동의 인종차별적 성격은 이미 선거 보이콧에 타당성을 부여했다. 아랍계 이스라엘인의 52%가 투표에 참여했고, 그중 12%만이 시온주의 정당을 선택했을 뿐이다(3년 전에는 30%가 지지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견해를 대변하는 3개 정파, 특히 하다시당을 지지했다. 이런 현상은 3월 30일, 팔레스타인 땅의 날 행사에 대규모 인원이 참가한 것으로도 입증됐다.
어떻게 이런 반격을 발전시키고 하산 자바린이 “은밀히 세를 확장하는 아파르트헤이트(인종 격리 정책)”라 부른 것을 멈추게 할 것인가? 여러 세대와 서로 다른 주장을 대변하는 200명의 아랍인과 유대인들이 어느 화창한 토요일 아크레에서 열린 인종차별 반대 콘퍼런스에서 이 문제를 두고 갑론을박했다. 물론 분노에 찬 반대 질문이 이어졌다. 이슬람계 시의원인 아담 자말은 무능함을 이론화하다가, 10월에 살던 집에서 쫓겨난 가족들 중 한 가족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야유 속에 회의장을 떠났다.
의견 교환의 중심에는 화합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희생자들이다. 그러니 그 바탕을 정의해야 하는 것은 우리다”라고 발라드당의 젊은 의원은 말한다.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이 느끼는 국가와 민족 사이의 갈등을 이해하지만 그들도 유대인들의 불만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에게 이득이다. 쇼아(유대인 학살)를 추모하는 사이렌이 울리는 동안 잡담을 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고 이스라엘 교육 관련 최대 비정부기구에서 유대인과 아랍인 교사를 양성하고 있는 미리암 다모니 샤르비트는 반박한다. 그녀는 “사회문제에 관해서, 평등을 위한 투쟁을 중시하는 리쿠드당 유권자들”의 주장을 말한 것이다.
귀머거리들의 대화일까? 2008년 11월 11일 텔아비브에서 치러진 시의원 선거에서 공산당 계열의 도브 케닌 의원은 35%의 득표율로 최고 기록을 세웠다(35살 이하 유권자 지지율은 75%에 달한다). 하지만 그의 무지개 같은 “모두를 위한 도시” 리스트에 자파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포함돼 있지 않다.
물론 화합은 필요하다. 하지만 두 국가, 아니면 두 민족 한 국가 중 어떤 목표를 향한 화합이어야 하는가? “어떤 연대 운동들은 그들이 팔레스타인 민족을 대변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다. 우리의 자결권은 우리 스스로 최선의 해결책을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고 아이다 투마 슬리만 여사는 강조한다. 그녀는 요르단 서안과 가자지구에서 행해진 모든 여론조사를 하나도 빼지 않고 열거하면서 “유대계 이스라엘인들의 10분의 9가 그들의 국가를 원한다. 점령지구 팔레스타인 사람의 3분의 2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국가를 원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두 민족 한 국가 안에서 이주민 집단은 어떻게 될 것인가? 또한 우리의 권리는 누가 보장해줄 것인가?”라고 묻는다. 그녀는 힘의 관계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국제 공동체만이 이스라엘에 해결책을 강요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이곳에서, 그리고 당신들 나라에서 애써야 할 일이다!”
<각주>
(1) www.protection-palestine.org 참조.
(2) 이스라엘 베이테누당은 대부분 러시아 이민들로 이루어진 정당이다.
(3) 치피 리브니 여사는 팔레스타인 국가가 창설되면 “우리는 아랍계 이스라엘인이라고 부르는 팔레스타인계 이스라엘인들에게 ‘당신들의 민족적 열망의 해결책은 다른 곳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가 다음날 발언을 취소했다(<AFP통신>, 2008년 11월 11일).
(4) 유대인 학살 시기 동안 유대인 청소가 이루어진 영토를 지칭하기 위해 나치가 사용한 용어.
(5) 2009년 3월 30일치 일간지를 보면, 철로 교차 업무를 담당한 아랍인 노동자 40명이 군 복무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고됐다고 한다.
(6) ‘팔레스타인계 아랍 소수집단과 2009년 이스라엘 총선’, www.mossawacenter.org.
(7) 이 연설은 비방반대연맹(ADL·미국의 친유대단체)에 의해 고발되기까지 했다. www.adl.org.
(8) <뉴욕타임스>, 2004년 5월 31일.
(9) www.dayan.org 참조.
(10) 메론 라포포르, ‘이스라엘 시민들한테 위협받는 이스라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4년 2월호 참조. 이 입법안이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에 위배된다고 최고법원에 이의를 제기한 유대인과 아랍인들에 대해 법무부 소속 법학자들은 “이스라엘 국가는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함께, 주민 대 주민의 전투, 집단 대 집단의 전투를 벌이고 있다”고 반박했다.
(11) 모사와 센터, <아카, 전선의 도시>, 2008.
(12) 당국의 건축 허가는 받지 못한다. 동예루살렘에서도 마찬가지 일들이 벌어진다. ‘이스라엘은 어떻게 동예루살렘을 몰수하는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7년 2월호.
중요 일지
● 1947~49년. 중동전쟁 중 70만~8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 이주. 이스라엘에 남은 팔레스타인인은 16만 명.
● 1948년 10월 21일. 영국 특례법(지금까지도 시행 중)에 근거해 군정 실시.
● 1948~2008년. 팔레스타인인 소유 토지 대량 강제수용, 아랍계 이스라엘인 대다수 무산자 계층화.
● 1966년 말. 군정 종식, 가택 연금 또는 활동 제한 대상 열성 활동가 블랙리스트 시행.
● 1976년 3월 30일. 토지 몰수에 반대하는 시위 진압 중 6명 사망, 10여 명 부상. 이후 3월 30일이 팔레스타인 땅의 날이 됨.
● 2000년 10월. 제2차 반이스라엘 저항운동과 함께 연대 시위. 시위 진압으로 13명 사망.
중요 통계
● 2007년, 아랍인 노동자 평균임금은 동양계 유대인 임금의 67%, 서구 유대인 임금의 52% 수준.
●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의 1인당 평균소득은 7700달러, 이스라엘인 평균소득은 1만9천 달러.
● 2007년, 아랍계 가정의 51.4%가 빈곤층 수준. 이스라엘 가정은 19.9%가 빈곤층 수준.
● 정부 공무원의 5.86%만이 팔레스타인 사람.
● 팔레스타인계 이스라엘 여성의 취업률 18%, 유대인 여성 취업률 56%(아랍 남성의 취업률은 59%).
●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래 아랍계 마을은 단 한 곳도 건설되지 않은 반면 유대계 마을은 600곳 이상 건설됨.
● 팔레스타인계 이스라엘인 소유 토지는 이스라엘 전체 토지의 3.5%.
● 아랍계 마을은 발전 예산 기금의 5% 이하, 일반회계 예산 기금의 3% 수혜. 팔레스타인계 이스라엘인은 이스라엘 전체 주민의 20%에 해당.
출처: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제사업국 보고서들, <이스라엘 시민으로서의 팔레스타인계 아랍 소수자 집단의 인권 상황>(모사와 센터, 2008년 10월), <이스라엘: 사회 보고서 1998~2007년>(아드바 센터, 2008). 특별한 표시가 없는 것은 2006년 통계 수치임.
글·조셉 알가지 Joseph Algazy*
*언론인, 텔아비브, www.defeatist-diary.com 운영자
도미니크 비달 Dominique Vida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국제 편집장
번역·김계영 canari62@ilemon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