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반도의 새 불씨, 알바니아 민족주의
알바니아-코소보 고속도 건설로 유대 강화 모색
미군의 세력 확장과도 얽혀… 주변국 자극할 우려
2008년, 파트미르 리마이 코소보 교통부 장관이 지도를 짚어가면서 고속도로 건설 계획을 설명 중이다.-로랑 제스랭
살리 베리샤 알바니아 총리는 “고속도로의 완성을 위해 필요하다면 우리는 여성들의 보석을 팔 것”이라고 선언했다. 프리슈티나와 티라나 사이의 고속도로 예상 공사비는 10억 유로를 넘는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알바니아와 코소보의 경제관계 증진을 목표로 하지만 또한 ‘대(大)알바니아’를 향해 내딛는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현재로서 엄청난 공사대금에서 권력과 밀착한 벡텔사가 44%의 이윤을 얻을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알바니아의 북부 산악 지역에 휘몰아치는 야밤의 눈발과 살인적인 추위에도, 푸케 지역 경찰총수는 “이 고속도로가 알바니아의 과거와 미래 10세대에게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열정을 감추지 않는다. 이미 몇 시간 전부터 그의 대원들은 카프슐라크 협로의 눈과 빙판 때문에 옴짝달싹 못하게 된 자동차 운전자들과 트럭 운전자들을 구하고 있다. 자동차 10여 대가 마비되어 불능 상태에 빠졌고, 트럭 2대가 위험스럽게 낭떠러지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여기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2008년 2월 17일 독립을 선언한 코소보와 알바니아 북부 및 해안평야 사이의 유일한 통행로인 비좁은 산악도로는 첫서리가 끼는 순간부터 소요 시간 예측이 완전히 불가능해졌다. 여기서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거리가 아니라 걸리는 시간이다. 여름에는 알바니아의 슈코드라와 코소보 사이의 약 130km를 달리는 데 7시간이 소요된다. 겨울에는, 통행이 가능할 경우에도, 강설과 붕괴 사고 때문에 소요 시간이 길어진다. 1월에는 폭설로 인해 쿠커스 마을이 며칠간 세상과 단절되었다.
1999년 봄 북대서양조약기구의 폭격이 촉발한 세르비아의 군사적 압박을 피해 1만여 명의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이 알바니아로 가는 유일한 자동차 도로인 이 길로 피신했다. “피난민들은 비참한 상태로 도착했다. 그들은 도로와 광장에서 야영했다”라고 쿠커스의 신문기자인 바슈킴 샬라는 기억한다. 이 마을은 1999년 4월 말에 15만 명의 피난민을 맞았다. 쿠커스는 또한 코소보해방군의 주둔지로서, 세르비아인, 롬인(흔히 집시로 불리는 민족), 베오그라드 체제에 협력한 알바니아인들을 체포하고 고문했던 곳이다.
‘독립’ 코소보, 옛 세르비아 닮아
전쟁 발발 후 10년이 지나 독립한 코소보라는 신생국가는 예전의 세르비아와 거의 동일한 형상이 돼버렸다. 여전히 코소보에 사는 10만 명의 세르비아인들은 코소보 북부 지역에 격리돼 살고 있으며 다른 소수민족들은 사회에서 완전히 소외되었다. 발칸반도에 ‘두 번째 알바니아인 국가’가 출현한 사실은 필연적으로 1912년 오스만제국의 해체로 인해 분할된 알바니아 영토의 통합 꿈을 되살리고 있다. 발칸전쟁을 청산한 1913년의 강화조약은 알바니아 국가의 창설을 예견했지만, 코소보,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그리스, 세르비아 남부 프레세보 계곡의 알바니아인들을 국경선 밖에 그대로 방치했다.
현재 알바니아와 코소보 사이의 경제·문화적 관계는 빈약하다. 50년간 흩어져 살면서 두 국가의 민중들이 영속적으로 분리돼버렸기 때문이다.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살리 베리샤 알바니아 총리는 오랫동안 상자 속에 잠들어 있던 사업을 되살리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티라나와 코소보 국경 사이에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이 고속도로가 완성되면 (코소보 수도) 프리슈티나와 다시 연결돼 단 3시간 만에 두 수도를 왕래할 수 있을 것이다.
10억 유로 이상의 공사비가 소요되는 알바니아의 고속도로 프로젝트는 세 구간으로 나뉘어 있다. 코소보 국경에서 쿠커스까지는 이슬람개발은행이 차관을 제공하기로 했다. 세계은행 역시 러셴에서 밀로트까지의 구간에 참여했다. 여기서 티라나까지는 멋진 국도로 연결된다. 칼리마슈에서 러셴까지의 61km 구간이 가장 어렵고 험난한 산악 지형이다. 10여 개의 고가도로로 계곡 사이를 연결해야 하고 5.6km의 터널을 뚫어야 한다. 이 구간에서는 알바니아 정부가 모든 재정을 지원하고 있는데 그리스 알파은행의 차관을 받았다.
공사 시한이 촉박하다. 2006년 여름에 시작된 공사는 2009년 6월 28일의 국회의원 선거 전에 완료돼야 한다. 그러나 러셴~칼리마슈 구간의 터널이 3월 20일 붕괴되었고, 시공 회사가 이 사실을 며칠간 은폐했다. 이로 인해 공사 일정에 차질이 빚어졌다. 공사가 실패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베리샤 총리는 “고속도로를 완성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우리는 여성들의 보석을 팔 것이다”라고 국회에서 선언했다. 자신의 정치 생명이 이 장대한 사업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수십 년간 알바니아인들이 빚더미에 얹혀사는 것을 무릅쓰면서….
두 나라, 아직도 큰 거리감
코소보의 프리슈티나에서 볼 때 알바니아는 여전히 머나먼 곳이다. 이 사업이 정치인들만 흥분시키는 것은 아니다. 정부 청사의 커다란 사무실에서 파트미르 리마이 코소보 교통장관은 자신이 능력 있는 기술관료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려고 노력한다. 그는 이 프로젝트가 무엇보다도 경제적 필요성에 부응한다고 말한다. “이 고속도로는 지역의 모든 관계를 재정립할 것이다. 고속도로는 세르비아의 니슈까지 연장됨으로써 베오그라드와 불가리아의 소피아까지 연결될 것이다. 10년 후 알바니아 해안에서 바캉스를 보내기 위해 이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세르비아인들만은 아닐 것이다.” 세르비아와 코소보의 관계는 코소보가 세르비아에서 독립을 한 뒤에 거의 단절돼 있다. 그러나 리마이는 “20~30년 후의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도로와 연관된 국가적 목표를 애써 감추려 한다. 리마이는 ‘대알바니아 건설 도로’라는 명칭을 거부한다. “이렇게 말하는 이들은 코소보와 알바니아의 발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이 프로젝트는 지역적으로 중요성을 갖고 있는데, 발칸의 유럽 통합과 관계된 것이다.” 그는 코소보 지도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반인륜 범죄와 전범으로 기소되었다가 2005년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에 의해 무죄 선고된 코소보해방군의 ‘강철’ 별명을 가진 전직 사령관은 연필로 미래의 고속도로를 그리는 전략적 재능을 보여준다.(1)
고속도로가 코소보에서는 아직 구상 단계에 불과하지만, 모리네 국경 너머 알바니아에서는 공사를 신속히 마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온갖 종류의 건설 장비들이 산을 파헤치고 있으며,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목동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으며 다리와 고가도로를 건설하려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 마르코는 고가도로를 담당한 마케도니아 회사인 그라니트를 위해 2년 전부터 공사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비록 주말 휴가를 한 달에 한 번 받고 있음에도, 그는 “사람들이 여기서 월 500유로를 벌기 때문에 불평할 수 없다”라고 확언한다.
해당 지역의 유일한 도시인 쿠커스의 주변 산은 폭발음으로 진동하고 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가 바위투성이 절벽에서 솟아오르고 있다. 공사 현장 노동자들은 몇 분 후면 여행객들이 쿠커스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을 뚫을 것이다. 여기 사람들은 고속도로 건설을 자랑스러워한다. “고속도로는 결국 수많은 투자자들을 끌어모으면서 프리즈렌과 코소보 전체의 교역을 활성화시킬 것이다”라고 바슈킴 샬라는 희망한다. 공산 독재가 몰락한 뒤 이 지역을 덮친 경제적 피폐가 큰 만큼 그 기대도 크다. 구리와 크롬 광산들은 자유주의 시장경제로의 변화를 견뎌내지 못했고, 목재 산업도 외진 산악 지역의 인구를 유지하는 데는 불충분했다.
1990년부터 지역 인구의 거의 50%가 티라나나 외국으로 이주해갔다. “밤마다 이 지역 상인들이 빠져나가자 마을이 사막화돼버렸다. 마을에는 1만2천 명이 안 되는 주민이 살고 있다. 새로운 교통축은 이 지역의 피폐화를 막기 위한 마지막 희망이다. 그리고 고속도로 건설의 경제적 이익이 이미 감지되고 있다. 3천 명 이상의 인원(그중 50%가 알바니아인)이 매일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라고 샬람 기자가 계속 이야기한다. 미국인 기술자들과 슬로베니아, 터키 혹은 마케도니아 노동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설치된 두 곳의 수용촌은 주변에 자리잡은 식당 경영자들과 상인들에게 돈벌이를 제공하고 있다. 이 지역의 빈곤 가정들은 ‘미국 사람들에게’ 음식을 구걸하러 아이들을 보낼 것이다.
미르디트 산맥에 의해 티라나, 슈코드라와 분리된 알바니아 북부 주민들은 코소보의 프리즈렌과 페자 시장, 두카진 평원 쪽으로 살길을 찾아나갔다. 오스만제국이 해체되기 전에는 알바니아 북부 목동들과 상인들이 평원에 위치한 대형 상업 도시에서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생산품 판로를 찾았다. 이런 사회·경제적 관계는 제2차 대전이 끝났을 때, 티토 원수의 유고슬라비아와 1948년부터 단절한 엔베르 호자가 권좌에 오르면서 갑자기 끊어졌다.
고속도로, 미래를 위한 탈출구?
1991년 스탈린 독재의 붕괴와 1992년부터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에 타격을 준 경제제재는 두 나라 산악 지역의 밀매를 급증시켰다. “1999년에 코소보전쟁이 발발했을 때 모든 물품이 밀매되었다. 쿠커스 주민들은 물을 석유에 첨가해 그 혼합물을 국경 너머로 운반했다. 밀매가 가장 왕성했던 통로 중 하나는 고라니인들이 통제하는 산악 지역이었다.(2) 코소보 형제들의 전투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양심을 속인 것이었고, 결국 대부분의 석유는 유고슬라비아의 병영으로 전달되었다. 그때는 황금시대였고 모든 사람이 밀매로 돈을 벌었다. 국경이 개방된 이래 우리가 무엇을 팔 수 있을까?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고속도로가 유일한 희망이다”라고 샬라 기자는 말한다.
2차 대전 중 이탈리아 사람들이 건설한 옛 도로가 쿠커스에서 시작해 (알바니아 쪽으로) 푸셰아레즈 같은 촌락을 지나 슈코드라를 향해 뻗어 내려가고 있다. 여기 사람들은 눈과 얼음 때문에 연안 쪽으로 내려갈 수 없는 조난 여행객들 덕택에 살아간다. 구리 광산이 폐쇄된 이후 일부 주민들은 초라한 구멍가게와 호텔을 운영하며 생존하고 있다. 옛 협동조합 내에 설치된 초라한 시장의 한 상인은 걱정거리를 털어놓는다. “고속도로? 그것이 아마 알바니아를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하겠지만, 우리 마을을 더 빨리 죽음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옛 도로로 지나가지 않을 것이고, 푸셰아레즈에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교통축으로부터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하고 세상과 단절될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까지 도착할 수 있는 어떤 접속 도로도 예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칼리마슈 터널은 이 지역을 소외시킬 것이다. 고속도로는 곧장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와 중요 항구인 두러스 쪽으로 건설될 것이다. 그런데 두러스 항구의 시설물은 낡아서 거의 작동되지 않는다. 특히 항구에는 모래가 많이 쌓여, 흘수(吃水)가 큰 선박들이 접안할 수 없을 것이다.
베리샤 총리의 자문관인 수자나 국스홀리 여사는 항구의 민영화가 현대화를 이룩하게 해줄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의 말을 따르자면 여러 외국 컨소시엄이 이미 관심을 표명했다고 한다. 두러스와 솅진이 곧 ‘코소보의 해양 출구’가 될 것이라고 그는 덧붙인다.(3) 현직 항구 수입업자는 항구의 민영화와 현대화 가능성에 대해 훨씬 더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항구 관리소장은 이 나라에서 가장 돈벌이가 되는 직책이다.
특히 히 관리소장들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바뀐다. 따라서 소장들은 가장 빨리 부자가 되는 방법만을 생각하고 있다.” 코소보와의 교역은 지극히 제한적일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약간의 곡물 유통이 두러스 항구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다. 두 나라의 현 경제 상황으로 보아 그 이상의 교역은 없을 것이다.” 경제위기가 이미 이런 드믄 상거래마저 꽁꽁 얼려버렸다. 경제위기 때문에 항구 민영화는 쉽지 않을 것이다.
고속도로 건설비 논란
고속도로 자금 조달 문제 때문에 알바니아 정치권이 끊임없이 요동치고 있다. “고속도로에 대해 논의하고 싶습니까? 내 서류들을 가져오겠습니다”라고 국회의원 에리온 브라스는 말한다. 이 키 작고 말 많은 남자가 사회주의 야당의 리더 중 한 명이다. 알바니아에서 심심치 않게 터지는 수많은 ‘물밑 거래’에 대해 베리샤 정부를 공격하는 사람이 바로 이 남자다. 사회주의자들은 모든 알바니아 사회에 퍼진 비판들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부패 고속도로’라고 기꺼이 조롱한다. 고속도로 구상이 2001년부터 사회당 소속의 판델리 마이코 당시 총리에 의해 개진되었음에도 말이다.
“원래 3가지 안이 제시되었다”라는 사실을 브라스는 상기시킨다. 첫 번째 안은 현 도로를 넓히는 것이었다. 두 번째 안이 선택되었지만 터널이 없는 노선을 채택했기 때문에 이 안은 겨울철의 적설 문제를 안고 있었다. 고속도로에 자금 지원을 하길 원치 않았던 세계은행은 망설였으나, 칼리마슈 터널을 포함한 타당성 조사는 2003년 10월 7일 받아들여졌다.공사의 자금 조달을 위해 여러 가지 선택지가 검토되었다. 2002년 마이코는 ‘마이코 세금’으로 알려진 특별세를 제안했지만, 이 방법은 국제통화기금의 비판을 받았다.
평가 방식에 따라 6천만에서 7600만 유로에 이르는 막대한 공사 금액을 결국 국가 예산으로 충당하게 되었다. 2004년 계약 회사들에 사업권을 양도하는 안이 검토되었다. 당시 사회당 정부를 이끌던 파토스 나노와 오스트리아 회사인 ‘스트라백 AG’ 사이에 계약이 체결되었다. 이 계약은 3억3500만 유로에 달하는 러셴~칼리마슈 구간의 사업권과 관계된 것이었다. 이 구간은 당연히 유료 구간이었지만 2005년 7월 선거에서 민주당(PD)이 승리함으로써 모든 것이 재검토되었다. 당선된 브리샤 총리는 오스트리아 회사와 맺은 계약을 무시하기로 했고, 정부는 2006년 공사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사업 둘러싼 부패 고리의 악취
사회당 의원 브라스는 기묘하게 공사를 서두른다고 고발한다. 2006년 7월 10일 자문위원회인 에코리스가 공사를 감독하기 위해 구성되었다. 경쟁입찰이 7월 14일 실시되었으며, 스트라백, 크로아티아의 콘스트룩토르, 터키 회사인 엔카와 컨소시엄을 구성한 미국 회사 벡텔 등 몇몇 토목회사들이 경쟁에 참여했다. 벡텔 컨소시엄은 러셴~칼리마슈 구간에 선정되었는데, 선정 기준이 공공사업 관련 법률에 어긋났다. “승인된 자금에 한도가 없다. 채택된 원칙은, 미국에서 실행되고 있는 것처럼, 사업 금액을 재평가하면서 동시에 공사에 착수하는 방식이다”라고 브라스는 개탄한다. 끊임없이 예산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그는 지적한다. “2006년 10월 6일 계약이 체결되었을 때, 공사 금액은 4억1800만 유로였다.
2007년 4월 3일부터 벡텔사는 공사 금액이 5억6천만 유로로 재평가돼야 한다고 요구했고 현재는 6억2천만 유로로 평가한다. 차후에 60km 구간에 10억2600만 유로가 소요된다고 말하는데 이 금액은 원래 금액의 2배가 넘는다.”
벡텔사는 세계적인 토목회사 중 하나로 미국 부시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기업을 선택하도록 티라나의 미국 대사관이 온갖 수단을 동원했을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알바니아는 루마니아에서 벌어진 공사 관련 정보를 얻어야 했다. 벡텔사는 루마니아에서도 엔카와 컨소시엄을 맺어 트란실바니 고속도로 건설에 참여했다. 이 고속도로는 브라쇼브와 헝가리 국경을 연결하는 400km 이상의 구간이다. 2004년 발주 당시 공사비는 22억 유로였다. 이런저런 사유로 공사가 지연되어 고속도로는 2013년 전에 개통되지 못할 것이고 최종 공사비는 70억 유로를 초과할 것이다. 루마니아 당국은 계약을 해지하려 했지만 그것 때문에 수십억 유로의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
알바니아 쪽에서는 자금을 어떻게 조달하느냐의 문제가 남아 있다. 공식적으로 그리스 알파은행이 알바니아 정부한테 3억 유로의 차관을 제공했지만 그리스 정부의 보증은 없었다. 남아 있는 방법은 국가의 모든 자원을 동원하는 것이다. “정부 투자 예산의 65%가 교통부에 배당되었고, 교통부 예산의 75%가 고속도로에 할당될 것이다. 그러나 세계은행은 교육과 건강 같은 다른 우선 해결 사항들의 처리를 제안했다”라고 브라스 의원은 지적한다.
2008년 11월 검찰은 공사 개시 시점에 교통장관이었던 룰짐 바샤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그사이 외교장관이 된 그는 코소보에서 자신의 경력을 시작했는데, 거기에서 그는 여러 해 동안 현지 국제기구에서 근무했다. 34살의 젊은 장관은 베리샤 총리의 최측근 참모 중 한 명이다. 브라스의 말을 따르자면 “전문가들은 벡텔사가 44%의 이윤을 취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전문가들은 이 젊은 장관과 벡텔사 사이의 은밀한 관계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조사는 긴장된 상황에서 시작되었다. 사실 바샤 장관은 보스니아 마피아인 다미르 파즈리크와의 관계 때문에 이미 고소된 바 있다. 파즈리크는 10월 초 사라예보에서 한동안 구금되었다. 그는 밀수와 돈세탁 혐의를 받고 있다. 그가 서류상 회사 두 곳을 알바니아에 만들었는데, 두 회사의 주소가 바샤 장관의 장인 집으로 되어있다. 이 집의 관리인은 다름 아닌 바샤 장관의 동서였다. 그럼에도 2008년 12월 15일 티라나 법원은 소송을 기각했는데, 바샤에게 직무 수행에 따른 면책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알바니아에 정치적 비난의 목소리를 들끓게 했다.
그러나 마이코 전 총리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고속도로를 둘러싼 논쟁들을 이용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고속도로 사업 지지자인 마이코는 부패 사건들의 소문이 퍼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 사회당 소속 전 총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와의 의회협력위원회 공동의장 사무실에서 근무한다. 그는 미래의 고속도로가, 특히 알바니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는 상황에서, 전략적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2009년 4월 1일 알바니아는 공식적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했다.
프리슈티나와 아드리아해를 연결하는 고속도로는 코소보 남서부에 위치한 본드스틸 캠프를 유럽에서 가장 큰 미군기지 중 하나로 만들어줄 것이고, 원양에서 항해 중인 미 제5함대와 바다에 안전하게 접근시켜줄 것이다. 코소보의 독립을 지지하고 독려했던 워싱턴은 결과적으로 유럽 대륙의 심장부에 안전하고 신속한 교통로를 갖게 될 것이다.
도로 아니라 민족 화합 필요
미국의 새로운 도로 지원이 자국의 전략적 목표에 부합하는 것일까? 티라나와 마케도니아의 스코페 그리고 그리스의 테살로니키를 연결하는, 유럽연합 지침 개요에 제시된 8차 개발사업 도로가 지극히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미국의 지원은 알바니아 민족의 두 지역을 연결하는 고속도로 건설에 결정적 구실을 했다.
그 고속도로가 ‘위대한 알바니아 건설’을 위한 고속도로라고? 대학교수인 에니스 술스타로바는 박장대소한다. “하나의 민족국가를 만드는 데는 도로가 아닌 다른 것이 필요하다!” 민족 신화를 해체하려 애쓰면서도 그는, 코소보와 알바니아 지도자들이 외국 지도자들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알바니아 민족문제’를 상기시키지 않을 뿐이지, 민족문제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국제관계 담당자들이 제기하는 논리는 코소보 독립이 지닌 모든 민족적 의미를 감추고자 한다. 별 의미도 없는 ‘다민족 코소보’가 출현한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그 사람들은 민족 상징 사용을 금지시켰다”는 점을 술스타로바는 인정한다. 사실 코소보 거주 세르비아인들은 코소보 독립을 거부하고 공공연하게 민족 간 분리 논리를 전개했다. 반면 알바니아인들은 새로 만들어진 코소보 국기 대신에 알바니아 민족의 검은 독수리가 각인된 빨간 국기를 흔들면서 신생국가의 독립을 축하했다.
고속도로는 코소보와 알바니아의 관계 발전에 도움이 되겠지만, 결과적으로 마케도니아의 50만 알바니아인들을 소외시키게 될 것이다. 마케도니아가 직면한 골치 아픈 정치 상황에서 마케도니아 내 알바니아 공동체가 또다시 급진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으며, 그런 선택은 알바니아 민족문제가 발칸 지역 차원에서 제기된다는 점을 상기시킬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알바니아-코소보 사이라는 단순한 관계 틀을 훨씬 벗어나게 될 것이다.
장아르노 데랑 Jean-Arnault Dérens, 로랑 제스랭 Laurent Geslin*
*두 사람은 최근에 <발칸반도 이해하기, 역사, 사회, 전망>(2008)을 출간했다.
번역·고광식 kokos27@ilemonde.com
<각주>
(1) 코소보해방군의 주요 지휘관 중 한 명인 리마이는 라푸스니크(Lapusnik) 수용소에 억류된 25명의 세르비아인과 알바니아인 포로를 학살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는 현재 하심 타치가 이끄는 코소보 민주당(PDK)의 부총재다.
(2) 고라니인들은 오스만제국하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슬라브인들이다. 이들은 알바니아-코소보 국경 양쪽의 고라 산맥 속에 살고 있다.
(3) 2009년 2월 코소보는 솅진(Shengjin) 항구의 자유 이용을 알바니아 당국에 공식적으로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