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눈먼 베르나르앙리 레비

2009-06-03     글린 모건 |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

173년 전 토크빌의 ‘미국 예찬’을 어설프게 흉내내
예상보다 과격한 우파에 당황… 알맹이 없는 조언

베르나르앙리 레비가 ‘공공의 적’을 자처하긴 하나, 매번 출간이 될 때마다 그의 책들이 프랑스 언론을 움직이는 건 사실이다. 공산주의, 유일신론, 실존주의, 이슬람 공격에 나섰던 레비가 이번에는 미국으로 관심을 돌렸다. 앞선 토크빌의 행보를 따른 것이었을까? 미국인의 반응으로 판단해보건대, 그의 책은 미국인들에게 가르침보다는 즐거움을 준 것 같다.

1831년 미국을 방문한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스스로에게 중대한 정치적 임무를 부과했다. 민주적 평등이 자리잡은 미국에서 평등이 개인의 자유에 미치는 영향은 다른 곳에서보다 덜 끔찍했다. 토크빌은 미국인들이 어떻게 이런 결과에 이를 수 있었는지 알고 싶었다. 그로부터 173년이 흘러 베르나르앙리 레비는 토크빌의 뒤를 따라 미국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레비가 중대한 정치적 임무에 투신한 건 아니었다. 그는 시사 월간지 <애틀랜틱 먼슬리>의 취재 요청으로 그곳에 간 것이었다. 잡지사에서는 레비에게 차 한 대와 기사 한 명을 내주었고, 화제의 인물들과 4차원적 인물들 및 미국의 지식인으로 여겨지는 사람들로 화려한 만남 일정을 만들어주었다. 책 속에서 레비는 토크빌과 마찬가지로 붓 가는 대로 글을 써내려간다. 하지만 예의 그 토크빌이 보여줬던 시상과 심리적 깊이, 사회적 농도는 결여돼 있다.(1)

저자가 여행을 한 2004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레비 역시 ‘반미주의’에 관심을 갖는다. 그해 반미주의는 미국에서든 해외에서든 특히 두드러진 감정이었다. 하긴 공화당원들은 이라크전쟁에 대한 비판 여론은 무조건 반미로 몰아붙였으니 말이다. 자신의 오른팔 딕 체니 부통령의 위험한 영향을 받은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은 이 나라를 불필요한 전쟁으로 몰고 갔고, 전쟁 때문에 미국은 동맹국도 잃고 재정 출혈도 극심했다. 조지 부시와 그의 몰지각한 자문위원들이 했던 약속과는 달리, 이라크에서 미 점령군은 자유의 수호자로 받아들여지기는커녕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됐다. 얼마 전에는 대테러 전쟁이 상황 수습을 위해 고문, 불법 감시, 심지어 고문이 일상화된 제3국으로 전쟁 포로를 보내어 ‘하청’ 처리를 하는 ‘이상한 송환’이라는 방법을 사용했음이 알려졌다. 혐의자에 대한 이런 신병 인도 방식을 이용하면, 은밀한 뒤처리가 쉽게 이뤄질 수 있다. 같은 해 11월 부시 대통령에게서 헤어나려던 우리의 꿈은 거짓, 부패, 정보 조작이 극에 달한 선거운동 이후 산산조각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요컨대 2004년은 미합중국의 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병적 사회현상까지 극찬

베르나르앙리 레비라는 방문객은 미국의 가장 충격적인 병적 측면을 과도할 정도로 예의 바르게 보여줬다. 미국 사회에서 민감한 부분 가운데 하나인 교도소를 둘러보되, 그는 우리가 당황하지 않도록 (작가 스스로 얼마 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수감 인구 수치를 언급하는 친절함까지 베풀었다(그 후 이상하게도 2004년 226만7787명에 달했던 교도소 수감 인구는 계속해서 늘어나기만 한다). 저자는 미국식 사형제도의 비참함을 애써 외면했다. 고맙게도 레비는 미국을 찬양하기 위한 목적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의 눈에 비친 미국인은 개방적이고 호의적인 사람들이었으며, 프랑스인 혐오주의를 예상했으나 놀랍게도 이는 느껴지지 않는다.

미국에 대해 레비가 묘사해놓은 내용은 감탄을 자아낼 만하다. 그 핵심을 살펴보면 여행 전문지에나 나올 듯한 글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가령 저자는 그랜드캐니언을 매우 좋게 봤다. 네바다의 어느 창가에서 그가 이끌어낸 와인 빛깔 벨벳에서 알 수 있듯, 그는 내부 장식에서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애틀랜틱 먼슬리> 쪽은 그에게서 확실히 단순한 유람기와는 다른 걸 기대했다. 따라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지식인들 다수와 만남을 주선해준다. 안타깝게도 이 만남들이 순조롭게 이뤄진 건 아니었다. 하버드대 새뮤얼 헌팅턴과의 저녁 만찬에서, 저자는 멕시코 이민 문제와 관련해 헌팅턴 교수가 표명한 관점에서 벽에 부딪힌다. 윌리엄 크리스톨과의 만남도 저자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크리스톨과 다른 네오콘들에게서 레비는 일말의 고차원적 지성을 발견하고 싶어했으나, 부시 행정부의 충실한 아첨꾼인 크리스톨은 이라크전쟁에 대해서 한 치의 의심도 보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형제도와 낙태 반대법 및 부시의 사회적 의제 구실을 수행하는 구시대적 규정들을 열렬히 옹호함으로써 상대방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에 분개한 레비는 크리스톨에게 레오 스트라우스, 한나 아렌트, 쥘리앵 방다의 책을 다시 읽으라고 조언할 수밖에 없었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대학교수들과 제법 유순한 양이 되지 못하는 네오콘들 외에도 또 다른 놀라운 사실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인들이 생각했던 것만큼 뚱뚱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물론 로스앤젤레스에서 240kg 가까이 나가는 여성을 만나기는 했으나, 이는 예외적인 경우였다.

그렇다고 모든 게 예상을 빗나간 건 아니었다. 국민들 사이에 과체중이 널리 퍼져 있진 않았으나, 그는 경제적 비만, 공항의 비만, 교회의 비만, 주차장의 비만 등 다른 형태의 비대함에 주목한다. 저자가 ‘비만’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여기에서도 우리의 저자는 자신을 흥분시킨 현상에 대해 명확히 조명하지 못한다. 인구밀도가 상대적으로 낮긴 하나 인구가 꽤 많다는 게 그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공항, 교회, 주차장에 대해서는 이 설명이 적용된다. 하지만 알다시피 상세한 설명은 <아메리칸 버티고>를 쓴 작가의 강점이 못 된다.

알맹이 없는 미국식 ‘모델’ 제시

이 책의 허접함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던 건 책의 마지막 부분, 저자가 미국식 ‘모델’을 관통하는 몇 가지 결론을 써보려고 발악한 대목이었다. 토크빌이 미국을 이해하려 했던 건 유럽의 운명이 미국식 민주주의의 조건에 달려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반대로 레비는 미국이 유일할 거라고 믿는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이런 예외성이 어떤 성격을 지니는지 명시하지 않는다. 이 성격은 분명 국가로서의 미국과 ‘공동체의 막대한 신성성’(이런 식의 표현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사이의 해소되지 않은 갈등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레비는 미국이 무너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소수의 횡포’로 인한 위기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이들 질문과 관련해, 레비는 더 이상 오류 속에 파묻혀 있을 수 없게 됐다. 사실 미국은 새롭고 유일한 정치 형태를 구현한다기보다 (물론 늘 그랬던 건 아니지만) 고전적인 국민국가라고 할 수 있다. 토크빌이 미국을 여행할 당시, 미국은 근본적으로 분권화되고 지역적으로 통치되는 새로운 정치 형태로 나아가는 걸로 보였다. 토크빌은 자기 눈앞의 이 나라를 높이 평가했다. 엄청난 크기의 나라였어도 미국은 다른 수많은 유럽 국가들에 없던 무언가를 이미 가진 상태였다. 다른 나라의 문명과는 구별되면서도 내적으로 단일화한 공통 문명을 가졌던 것이다. 그의 주장을 따르자면, 약 1600km가량 떨어진 메인주와 조지아주의 차이보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떨어진 노르망디 지방과 브르타뉴 지방의 차이가 더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분명 다양해 보이기는 하나, 오늘날의 미국은 이민자 집단 상당수를 동화시키고 있다. 정치적·도덕적 가치를 공유하는 독실한 영어권 미국인으로 이들 모두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소수의 횡포’를 걱정해야 할 건 미국이 아닌 유럽이다. 유럽은 서로 다른 집단들을 하나의 단일화한 국가적 공동체로 묶어주지 못했다. 이 상대적 실패를 이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정치적 과업도, 지식 과제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우리는 확실히 레비의 책보다는 토크빌의 책에서 배울 점이 훨씬 더 많다.



<각주>
(1) 베르나르앙리 레비, <American Vertigo: Travels in Toqueville’s Footsteps>, 2006.(한국어 번역본 <아메리칸 버티고>, 김병욱 역, 2006.)

글린 모건 Glyn Morgan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
번역 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