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않은 독일의 헤게모니

2015-04-30     볼프강 스트레크 l 맑스 플랑크 사회연구소 초빙연구원

전후, 독일 연방은 통합 유럽 프로젝트에 기여한 적이 없었다. 정파를 막론하고 독일의 모든 정치 지도자들은 자기 나라는 이웃 국가들과는 달리 (하나의 유럽에 통합되기에는)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통합을 염원하기에는 너무 크고 (통합된 유럽 내에서 다른 국가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기에는) 너무 작다는 것이었다. 그럼으로 독일은 예컨대 프랑스와 같은 다른 국가들과 함께 지휘할 보다 넓은 하나의 ‘전체’ 속에 통합되기를 원했다. 외국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확실한 전진 기지를 가지고 있고, 원자재를 확실하게 공급할 수 있고 대량 생산된 제품들을 수출할 수 있는 한, 독일은 국제  무대에서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헬무트 콜 (Helmut Kohl (1982-1998)) 총리는 하나로 통합된 유럽이라는 커다란 테두리를 특별히 중요하게 간주해 해당 국가들 사이에 불협화음이 발생할 때마다 물질적으로 지원함으로써 (다른 말로 하면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하나의 유럽이라는 통일성을 구하려고 노력했었다.

그러나 오늘날, 안젤라 메르켈 정부는 완전히 다른 상황에 처해 있다. 아직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금융위기가 시작된 지 7년이 지난 후, 통합 유럽 내 뿐 아니라 전 세계의 다른 국가들도 독일이 하나의 해결책, 아마도 콜식의 해결책을 강구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지갑을 열어서 해결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막중하다. 메르켈과 그 전임자와의 차이는 통합 유럽의 정신적 지주가 되겠다는 (메르켈의) 열망만이 아니다. 그녀가 원하거나 원하지 않거나 간에 시대적 상황이 통합 유럽이라는 무대의 전면에 나서려면 무대 뒤 대기실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기에는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유럽 차원에서 통합이 정치, 경제적 재앙으로 변해버렸다. 이 모든 ‘악’에 상당한 책임이 있는 주범으로 간주된 독일은 치료책을 제시하기에는 (국가의 규모가) 너무 작다. 독일 내부적으로는 중도연합이 붕괴될 위험이 있다.

금융위기가 시작된 후 몇 년 동안 전후 독일 정부가 주변 국가들에 대해서 어렵게 쌓아온 호감이 훼손되었다. 지중해 연안 국가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프랑스에서도 독일은 1945년 이후보다 더 혐오스런 국가로 간주되었다. 나치 문장을 단 독일 국방군 제복을 입은 정치 지도자들의 풍자화는 셀 수도 없을 만큼 흔하다. 좌, 우파를 막론하고 입후보자들이 독일과 그 총리를 비판하는 것을 가장 확실한 유세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유럽 남부에서는 유럽 중앙은행의 양적 완화(1) 조치가 베를린에 대한 승리로 간주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마리오 드라기가 비록 골드만삭스의 전 간부이며 신자유주의의 열렬한 옹호자라 하더라도 그가 수차례에 걸쳐 ‘독일을 속여 먹였다’는 것만으로도 전 국가적 차원에서 영웅 대접을 받는다. 국수주의가 유럽 전역에서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 같은 현상은 예전에는 가장 덜 국수적이었던 독일에서조차 나타나고 있다. 차후로 남부 유럽 국가들의 외교정책은 국가의 이익, ‘유럽의 연대성’, 나아가 인류 전체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독일로부터 양보를 받아내려고 하는 시도로 요약될 것이다. 독일과 이탈리아나 그리스 같은 나라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통합 유럽으로 인해 야기된 상처를 치유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총리도 피해가지는 못할 역사의 아이러니에 의해서, 경제, 화폐 통합(EMU)은 통합 유럽을 결정적으로 확고하게 만드는 것이지만 현재로서는 오히려 통합을 와해시킬 위험으로 작동한다. 독일의 정치 지도자들은 이 갈등에 있어서 그리스라는 국가나 프랑스 (혹은 독일의) 은행들을 구하는 것만 관련된 것이 아니고 또한 능숙한 피상적인 개입이 통합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 같다. 반대로 유로존 자체의 구조에 주목한다. 유로존에는 균일하지 않는 다양한 사회와 상이한 문화와 상이한 관행이 존재하는 다양한 사회와 근대 자본주의와 사회 사이의 관계를 제어하는 이질적인 사회적 계약이 상존하는 다양한 제도로 구성되어 있다. 이처럼 다양한 정치경제적 상황에는 역시 다양한 화폐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유로존 남부와 북부의 이질적인 경제상황

간단하게 보면, 지중해 연안 국가들은 성장이란 우선 먼저 국가의 내부적 필요성 위에 근거하는 자본주의 모델을 발전시켜왔다. 필요하다면, 특히 공공 분야에서 고용안전을 보장하는 강력한 노조와 공공부분 재정적자에 의한 인플레이션도 감수한다. 인플레이션은 채무총액을 평가절하 함으로써 국가가 쉽게 돈을 차용할 수 있도록 한다. 더욱이 이들 나라들은 강력하게 통제되는 공공 혹은 반-공공 은행 체제를 갖추고 있다. 이 모든 요소들이 이론적으로는 노동자들과 고용주들의 이익 사이의 조화를 보장한다. 특히 내수 시장에서의 판매를 주목적으로 생산하는 중소기업의 경우가 그렇다. 반대로 이렇게 해서 얻어진 국내의 사회적 평화는 그 대가로 해외시장에서는 경쟁력 하락을 가져온다. 그 결과 적자가 누적되며 이를 상쇄하기 위해서 때가 되면 국가의 화폐를 평가 절하해서 수출을 주로 하는 기업을 희생시켜 균형을 맞추어야만 한다. 물론 이 같은 정책은 화폐 주권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독일을 필두로 한 북유럽 국가들의 경제는 다른 방법으로 작동된다. 이들 국가들은 해외 시장에서의 성공에 의존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에 적대적이다. 이는 오늘날 노동자들이나 노조에게도 마찬가지다. 생활비가 상승하면 이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경제는 신용 하락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지중해 연안 국가들은-어떤 면에서는 프랑스까지 포함해서- 과거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유연한 화폐정책을 취해온 반면, 독일 같은 나라들은 매우 긴축적인 정책을 견지해왔다. 이런 이유로 이들 국가는 현재 매우 낮은 수준의 부채를 지고 있음에도 국가 부채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당연히 이자율도 낮은 편이다. 이들 국가들은 유연한 화폐정책이 필요치 않기 때문에 기존의 판을 깰 수 있는 모든 위험성을 피하고자 한다.  결국 이러한 정책은 국민 대다수인 예금자들에게 유리하다. “저축하라, 그런 다음 구매하라(Erst sparen, dann kaufen)”는 속담은 독일의 정치, 경제 제도가 고수해온 전통적인 태도를 잘 요약해 준다.

통합된 단일 화폐 제도는 북유럽 국가처럼 투자와 저축에 기반을 둔 경제에 유리하게 작동된다. 반면 남유럽 국가들은 공공 지출과 대출에 기반을 둔 경제를 지속하고 있다. 서로 다른 이 두 체제가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느 한 체제가 다른 체제에 근접하게 다가서야 하며 생산 체제와 동시에 생산 체제가 근거하는 사회적 합의를 개혁해야 한다. 현재는 긴축 화폐 재정의 옹호자인 독일의 보호 하에 지중해 연안 국가들이 보다 ‘경쟁적’이 되어야 한다고 조약이 강제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이는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이들 국가들의 정부가 바라지 않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양립하지 못하는 이 두 ‘전선’이  유로존 내에서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는 셈이며 이는 비단 생존 수단에 있어서 뿐 아니라 주민들의 삶의 방식에 있어서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게으른 그리스인’과, (통합유럽) 조약과 자신들의 자본주의의 틀을 옹호하는 갤리선의 에누리 없는 노예 감독관처럼 ‘살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기 위해서 산다’는 ‘금욕적인 독일인’이라는 대조적 표현이 이 상황을 단적으로 요약해준다. 자신들의 경제를 지탱해주는 근거가 되는 예전 수준의 인플레이션과 공공 부분 적자 폭으로 되돌아가도록 허용해줄 유로의 유연한 화폐정책을 얻으려는 남부 유럽 국가들의 시도는 지중해 이웃들에게 돈을 대주는 최후의 대부업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북부 유럽 국가들과 그 유권자들의 반대에 좌절되고 만다.

유로존 국가들의 의견 수렴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그렇다고, 적어도 현재까지는 존에서 탈퇴하려는 국가도 없다. 북유럽 국가들은 고정환율을 숭배하는 반면, 남유럽 국가들은 북쪽 이웃들이 시장보다 관대하기를 바라는 희망을 품고서 예산 적자 폭의 상한선을 받아들이는 대신 가능한 한 낮은 이자율을 선호한다. 현재로서는 칼자루를 쥐고 있는 쪽은 독일과 그 연맹국들이다. 장기적으로는 그 누구도 전장에서 패배하기를 원치 않는다. 패하는 쪽은 경제정책을 완전히 다시 짜야 할 것이며 미래가 불확실하고도 내적으로도 온통 소란스러운 긴 과도기를 거쳐야만 할 것이다. 남부 유럽 국가들은 북부 유럽  같은 노동시장을 받아 들어야 할 것이며 독일은 이웃들이 파괴적이고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는, 긴축에 집착하는 태도를 버려야 할 것이다.

이런 명분에서라면 공식적으로 인플레이션 비율을 2%대로 되돌려 상향 조정한 중앙은행의 양적 완화 조치는 지중해 연안 국가들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전략에 속한다. 게다가 이 조치 이후 즉각적으로 단일 화폐의 환율이 낮아졌다. 엔리코 레타(Enrico Letta) 이탈리아 총리가 재임 시(2013년 3월-2014년 2월) 이탈리아의 경기 회복을 가로막는 소위 ‘빌어먹을 유로’를 신랄하게 비난했던 것을 알고 있다. 문제는 화폐 가치 하락은 특히 독일과 같은 수출국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경제적 상황이 허약한 나라에서는 아무것도 개선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더 거시적으로 보면, 이런 정책은 전 세계적으로 소위 평가절하 전쟁을 낳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수출 기업들이 만일 경쟁력을 추가적으로 더 높이지 않으면 예금자들은 매우 오랫동안 마이너스 이자율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유럽 화폐 제도의 미래에 관한 논쟁은 윤리적인 만큼 기술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차원에서 자본주의의 어떤 특수한 형태가 다른 어떤 형태보다 더 우월한 것은 아니라는 것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가 사회에 정착하는 것은 즉흥적인 것으로서 타협이 필요한 것이며 그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자기 나라의 고유한 모델을 옹호하는 자들이 자신들의 모델이 가장 합리적이고 자연스럽고 고양된 사회적 가치에 가장 잘 부합하기에 다른 모델은 버려야 한다고 판단하는 것까지 막지는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이 그리스에게 낭비와 부패를 끝장내고 그리스의 경제를 ‘개혁’하라고 강요 했을 때, 그것은 곧 그리스에게 그리스 사회에 뿌리 깊은 부패를 또 다른 부패, 즉 현대 자본주의의 내부에 깃들어 있는 골드만 삭스류의 현대판 금융 부패로 대치하라고 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이다.

 

유럽의 국수주의를 부추기는 갈등들

오늘날 유럽을 갈라놓고 국수주의를 부추기는 경제적, 이념적 갈등의 끝은 아직 멀리 있다. 긴축이 남부 유럽을 보다 경쟁적인 국가로 만들 것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이는 채무가 있는 국가에서는 생활수준이 2008년 이전 상황에 비해 20 내지는 30% 후퇴하는 효과를 야기할 것이라 추정한다. 시장을 자유화함으로써 경제가 강화되고 그렇게 해서 뒤쳐진 것을 따라 잡을 수 있고 수입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보장하면서 그러한 체제를 강요한다는 말인데 그것은 이들의 시장에서 작동되는 축적된 기득권들의 힘을 과소평가한 완전한 공상일 뿐이다.(3)

긴축에 의해서 악화된 지역 간 불균형은 이탈리아가 메초조르노(Mezzogiorno) 지역을 위해서, 독일이 새로운 랜더(Lander)를 위해서 채택한 바 있는 재분배 모델에 따라서 정치적 해결책에 의해 유로존 내부로 흡수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두 지역에 투여된 두 나라 국내총생산의 4%가 지역 간 소득 격차를 줄이는 데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했다.(4)

경제적 불균형은 유로존 국가들 사이에서 그리고 존 내부적으로도 갈등을 야기할 것이다. 남부 국가들은 유럽의 전체적 통일성의 유지와 단일 시장에 가입한 대가로 성장 프로그램, ‘유럽판 마샬 플랜’, 물질적 연대감과 경쟁적인 인프라 건축을 도울 지역정책을 요구할 것이다. 북부 국가들은 정치, 경제적인 이유로 필요한 자금의 일부만 제공할 것이다.(5) 그리고 그 반대급부로 북부 국가들이 자신들의 돈이 어떻게 공정하게 쓰였는지 감시할 권리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는 자신들의 내부 정치적 필요성 때문이지만 언젠가는 낭비와 부패와 인기 전술을 비난할 것이다. 그러면 지중해 연안 국가들은 북부 국가들이 수전노처럼 굴면서 국가 주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비난할 것이다. 독일은 존 내부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큰 국가이기에 별반 한 일도, 한 짓도 없으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이기적으로 굴며 정치적으로는 제국주의적으로 행동한다고 비난 받을 것이다. 그러면 독일 유권자들은 조건 없이는 남부 국가들을 돕지 말라고 정부를 압박할 것이며 이미 동독을 위해 많은 세금을 지출한 경험이 있는지라 유럽의 지역 정책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을 거부하게 할 것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메르켈의 연립정부가 독일 유권자와 유럽 파트너들을 둘 다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인가? 조만간 인내와 자원이 고갈될 것이다. 독일의 수출 기업들과 그 노조들은 화폐 통합을 추진하는 것을 일차적 우선순위로 놓았고 유럽-이상주의적 좌파의 지지로 유로를 신성시했다.(6) 언제나 지지자들의 말을 경청하는 편인 총리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유로가 실패하면 (통합) 유럽도 실패합니다.”(7) 이 말은 곧, 특히 의회에서 그리스 ‘구조계획’ 투표 시, 고통스럽고 모욕적인 양보는 하지 않겠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독일 정부는 마치 수출 기업들의 이사회처럼 작동되는 바, 유로의 존속을 위해서 희생할 준비는 되어 있다. 그러나 유럽 통합에 대한 합의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통합유럽 회의주의가 갑자기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정당인 독일 대안당(AfD)이 우파인 기독-사회연합(CDU)을 위협하고 있다.(도미니크 비달의 기사 참조) 이에 대응하려면, 사회민주당을 포함한 중도 노선의 당들이 다른 국가들이 독일에 요구하는 양보를 경계해야만 한다. 현재까지는 통합 유럽이나 유로존으로의 기금의 이전은 대부분 지역 및 유럽 사회 기금 속에 포함되어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리스 구조를 위해서 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화폐가 통합되고 그 양이 막대한 것에 비추어 보면 이 같은 ‘숨기기’가 더 이상은 불가능하다.  

헌법재판소에 계류된 많은 고소장들이 통합 유럽을 정치적으로 이슈화하고 독일 여론을 각성시키려 하고 있다. 한동안은 메르켈 정부는 존 내 국가로 직접적인 자금 이동을 금지한 조치를 창의적으로 우회한 유럽 중앙은행의 조치-이에 대해 독일 중앙은행이 격분한 바 있다-를 용인했었다. 그러나 유로존 국가들 사이에 분배의 갈등이 곧 시간문제가 되고 화폐 통합에 따른 정치적, 경제적 비용이 과도하게 되고, 특히 독일 국민들이 긴축으로 인해 고통을 겪게 되는 상황에서는 정부가 더 이상 이를 감추거나 옹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독일이 비록 유로를 신성시하고는 있지만 원칙적으로 독일은 유로 없이도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 효용성의 균형을 위해서라면 유럽 연합 내 국가들에게 일정 수준의 화폐 주권을 부여하고 남부 국가들(존으로 들어오기를 원하는 동, 남부 유럽 국가들)에게 엄격하게 단일 화폐의 범주 속에 머물게 하기보다는, 상당한 운신의 폭을 넓혀 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 제도의 생존가능성에 대한 회의가 독일에서조차 일기 시작했다. 요컨대, 어떤 조건하에서는 긴축이 건강한 경제에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한 독일인들이 옳다고 가정하더라도 해당 국가 화폐의 평가 절하 조치를 동반하지 않고는 한낮 기적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8)

유로존의 단결은 더 이상은 존이 붕괴되면 야기될 결과에 대한 두려움에 의해서만 유지되지는 않는다. 화폐통합이 이루어지도록 독일 유권자들을 설득하기에는 이것으로 충분치 않을 것이다. 국수주의가 기세를 올리고 있는 상황에 맞서 정치 엘리트들은 더 이상 통합 유럽과 화폐통합을 동일시하지 않는 것을 선호하고 독일에서도(9) 1980년대에 시행되었던 적이 있는 유럽화폐 정책, 즉 덜 획일적이고 더 유연한 화폐 제도를 언급하는 많은 경제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한다.(10) 물론 이 해결책이 만병통치약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여러 층으로 내부적 모순이 중첩되어 부담이 가중되는 자본주의 경제 하에서 이상적인 하나의 해결책이 존재할 리 만무하다. 독일의 수출은 한동안은 잘 나갈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의) 납세자로서의 숙명과 이웃들에 대한 독일의 명성은 점차 개선될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핵에너지에 대한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줄 알았다. 그녀가 통합 화폐라는 악몽으로부터 통합 유럽을 구해낸 여자 총리로 역사에 기록될 가능성도 여전히 배제할 수 없다.

 

글·볼프강 스트레크 Wolfgang Streeck
맑스 플랑크 사회연구소 초빙연구원. <부채의 시대, 끝나지 않는 민주자본주의의 위기>(갈리마르, 파리, 2015)의 저자.

번역·이진홍
파리7대학 불어불문학 박사

(1) 유럽 중앙은행이 디플레이션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2015년 1월 결정한, 매 달 600억 유로 규모에 달하는 국, 사채 매입 프로그램. 달리 말하면 중앙은행이 조폐 판을 돌리기로 한 조치임.
(2) 찰스 비트 블랜커트(Charles B. Blankart), 〈오일과 식초 Oil and Vinegar ? 유로의 위기에 관한 긍정적인 관세 이론 A Positive Fiscal Theory of the Euro Crisis〉, Kyklos, Zurich, vol. 66, n° 3, 2013.
피터 홀(Peter Hall), 《유로 위기의 정치와 경제 The Economics and Politics of the Euro Crisis》in 〈German Politics〉, Chemnitz, vol. 21, n° 4, 2012.
(3)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가 그의 〈21세기 자본 Le Capital au XXIe siecle〉(Seuil, Paris, 2013)에서  언급한  축적된 특권과 혹은 ‘마티유 효과’는 부익부 빈익빈을 의미한다.
(4) 볼프강 스트레크와 레아 엘사서 (Lea Elsasser), 《화폐의 불통일, 유로 랜드의 내부정치 Monetary Disunion : The Domestic Politics of Euroland》, MPIfG Discussion Paper 14-17, Max Planck Institute for the Study of Societies, Cologne, 2014, www.mpifg.de
(5) 이탈리아와  독일에서의 경험에 근거한 추정에 의하면 유로 존 내부의 수입격차를 메꾸기 위해 필요한 자금의 이전은 독일과 프랑스 네덜란드가 공동으로 지불할 수 있는 액수를 과도하게 초과한다. 볼프강 스트레크와 레아 엘사서 앞의 자료.
(6) 이는 전후 독일인들의 생각 속에 각인된 오래된 유산이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화폐 혹은 유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가 ‘애국적인 도이치 마르크 D-Mark Patriotismus’라 불렀던 것과 동일시한다.
(7) 하원에서의 연설, 2011년 9월 7일.
(8) 마크 블리스(Mark Blyth), 〈긴축. 그 위험스런 생각의 역사 Austerity. The History of a Dangerous Idea〉, 옥스퍼드 대학 출판사, 2013.
(9) cf. 하이너 플라스베크(Heiner Flassbeck)와 코스타스라파비차스(Costas Lapavitsas), 〈트로이카에 저항하다. 유로존의 위기와 긴축 Against the Troika. Crisis and Austerity in the Eurozone〉, Verso, Londres & New York, 2015.
(10) 프레데리크 로르동 (Frederic Lordon), 《유로에서 탈퇴하다?Sortir de l’euro?》,in 〈Le Monde diplomatique〉, aout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