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의 균형 잃은 국제전략

2015-04-30     아크람 벨카이드

한 달 간 폭격을 한 후,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끄는 연합군은 예멘 위기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면 좋겠다고 선언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란과 대치하고 있는 와하브 왕국이 후티족 반군에 대한 지상 공격을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전망은 동맹국들 사이에서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4월 말 워싱턴은 늦은 봄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벚꽃의 개화나 기온의 상승도 연방수도를 지배하고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근심스럽고 당황스런 분위기를 완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의회 복도에서부터 매사추세츠 애브뉴나 코네티컷 애브뉴에 위치한 주요 연구센터의 회의실까지 “과연 근동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미국이 근동에서 다시 진창 속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똑같은 질문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시리아의 내전, IS(이슬람 국가) 조직의 살육 음모, 아랍 9개국 연합의 예멘 폭격은 매일 신문의 1면을 장식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도전들에 대응해야 할 미국의 전략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극한의 대립 상태에 빠진 마쉬렉(Machrek, 마그레브에 대응되는 용어로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쿠웨이트를 포함한 지역을 가리킴) 지역에서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다른 석유 왕국들, 이집트 혹은 이라크 같은 동맹국들의 안전을 제대로 보장해 주지 못하고 있다.

하이데르 알 아바디(Haider Al-Abadi) 이라크 수상의 최초 미국 공식 방문은 결국 이라크가 미국의 다른 파트너들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각인시켰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도 이 점을 인정하고 있는 것 같다. 워싱턴은 IS에 대한 전투로 인해 이주한 주민들을 돕기 위해 바그다드에 2억 달러를 제공하기로 약속했고, IMF를 통해 7억 달러의 차관도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이 돈은 이라크의 재정적자 악화를 보상해 주기 위해 쓰일 것이다. 이라크의 재정적자는 2015년 25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 액수는 같은 해 석유 수익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게다가 미국의 책임자들은 이라크의 대화 상대방들에게 이란 지도자들과 더 거리를 두라고 끊임없이 권고해 왔다. 오바마는 “이란은 이라크의 주권을 존중해야 하고 이라크 영토에 일방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그만둬야 한다”라고 말하며, 시아파 민병대를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테헤란을 비난하면서 힘주어 강조했다.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들은 바그다드 정부의 의견을 듣지도 않고 IS와 멋대로 싸우고 있다. 민병대들은 3월 말 티크리트(Tikrit)를 탈환할 때처럼, 시민들에게 약탈과 폭력을 행사했다는 비난을 주기적으로 받고 있다.

우선 알 아바디는 단지 100여 명의 군사고문단만이 이라크 땅에 존재한다고 확언하면서, 자국 내에서의 이란의 역할을 최소화했다. 그런 후 그와 수행관료들은 ‘이란 핵문제에서 이뤄진 외교적 진전’과 이 순간부터 6월 말까지 핵문제에 대한 궁극적 해결책을 찾아내야 한다는 워싱턴과의 ‘약속’을 동시에 잊지 않고 환영했다. “알 아바디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그는 미국이 소심하게나마 이란에 접근하면서 동시에 이라크가 이란의 동맹국이 되는 것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미국에게 말했다”라고 익명을 요구한 미국 외교관이 논평한다.

또 한편으로 이 아랍전문가가 볼 때 미국은 근동에서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추어야 할지 모르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미국의 동맹국들은 이와 같은 일관성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동맹국들은 우리의 행동에 대체적으로 순응했고, 우리도 그들에게 완벽하게 고분고분하라고 강요하지 않을 만큼의 여지를 충분히 남겼다.” 워싱턴에 본부를 둔 싱크탱크인 ‘이라크의 평화를 위한 청년 자율권 부여’(Empowering Youth for Peace in Iraq) 단체에 속한 정치학자이면서 그 자신이 이라크 출신인 아흐메드 알리도 이 의견에 동조한다. “오바마 행정부는 바그다드 체제가 계속해서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고자 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바그다드가 IS 그룹을 무찌르기 위해서는 이 무게 있는 두 당사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가까우며 리처드 네퓨(Richard Nephew)의 의견에 동조하는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의 또 다른 전문가들은 이라크와 예멘의 상황을 상기시키는 순간부터 다소간 호전적인 어투를 사용하면서, 이란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려는 의회의 모든 기도를 미국 대통령이 막아야 하는 명백히 역설적인 상황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알 아바디의 미국 공식방문은 특히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근동 지역 내부의 문제가 훨씬 더 골치 아프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의 후티족 민병대를 막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연합군이 수행한 공습을 상기시키면서, 이라크 수상은 그런 행동의 타당성에 대해 자문했다. 그는 “예멘 문제의 해결책은 우선적으로 예멘에서 찾아야 한다”라고 평가했다. 명확히 말해 바그다드는 후티족이 참여하는 민족 간 대화가 성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Abd Rabbo Mansour Hadi) 대통령이(1) 구상하는 연방 국가 계획안에 반대하여 후티족이 다시 무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훨씬 더 중요한 사건이 벌어졌다. 백악관에 초대된 국빈전용 영빈관인 블레어 하우스에서 맞이한 소수의 기자단 앞에서 이라크 지도자는 오바마 행정부가 자신과 동일한 의견을 공유하고 있다고 확실히 단언했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도 그와 마찬가지로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의 분파들 사이의 ‘휴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으로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선언에 대해 미국국가안전보장회의 대변인인 알리스터 배스키가 즉각적으로 반박했으며, 갑작스럽게 마련된 기자회견에서 미국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대사인 아델 알주바이르도 반박했다. 아델 알주바이르는 알 아바디가 선언한 내용에 ‘논리적 결함’이 많다고 맹비난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알 아바디의 말은 워싱턴을 놀라게 하거나 충격에 빠뜨리지도 않았다. 사실 워싱턴은 리야드(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가 군사 작전을 훌륭히 전개할 만한 능력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상당히 의심하고 있다. 3월 26일과 4월 20일 사이의 폭격에 의해 천 여 명이 사망하고 대부분의 사망자가 민간인이었던 폭격 결과는 아주 축소하여 발표된 것이었다. 워싱턴에 근무하는 한 아랍 외교관은 “사우디아라비아가 하디 대통령을 꼭 권좌에 복귀시키고, 후티족을 패퇴시키고자 한다. 그것은 이란의 영향력이 아라비아 반도에서 철저하게 분쇄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란에게 전달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그런데 미국은 예멘 위기가 정치적으로 해결되어야 하고, 특히 수니파일망정 새로운 대통령이 후티족의 인정을 받은 사람으로 선택되어야 해결책이 나오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워싱턴은 리야드로 하여금 타협을 받아들이게 할 능력이 없는 것 같다. 해당 지역 전체를 황폐화시킬 수 있는 군사 개입의 결과와 민간인 손실을 제한하기 위해 현재 미군은 연합군이 선별한 표적들에 대해 감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협력 국가들이 폭격할 목표들을 결정한다. 왜냐하면 펜타곤은 드론에 의해 수집된 정보들과 동시에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바레인의 작전 센터에서 처리된 정보들을 제공만 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방 자문관인 리처드 스타크가 지적하는 것처럼, 정보를 제공하거나 하지 않는 것이 “결국은 폭격해야 할 표적들에 대한 비토권을 행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우디를 돕는 미국의 목표

사우디아라비아의 군사 작전에 간접적으로나마 미국이 참여하는 것은 자국의 3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이 군사 작전에는 후티족 민병대로의 무기 공급을 방해하기 위한 해상 작전도 포함된다. 첫 번째 목표는 예멘 국경에 집결해 있는 약 15만 명의 사우디아라비아 병사들의 예멘 영토 침입을 가능한 한 늦추고, 더 나아가 막는 것이다. 인도주의적 혹은 평화주의적 신념에 의해 그런 것이 아니라, 단순히 워싱턴은 사우디아라비아 군대가 그 공격에서 패배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09년 11월 후티 반군에 대해 최초의 공격을 시도했는데 여기서 엄청난 손실을 보았다. 이 공격에서 교훈을 얻은 미국 지도자들은 이런 시나리오가 다시 펼쳐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는 2016년 대통령 예비선거 운동이 펼쳐지고 있는 시기에 미군의 지상군 개입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은 자국의 대리인이 될 수도 있는 2개 국가가 마지못해 거기에 합류할까봐 지상군 개입에 더욱 더 신중하다. 어쩔 수 없이 공습에 참여하고 있는 이집트도, 사우디아라비아와 걸프 만의 다른 군주 국가들이 결성한 연합군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한 파키스탄도(2) 지상군 개입을 구상하고 있지 않다. 특히 파키스탄에 대해 참여 압력을 넣어야한다는 리야드의 간청을 받은 미국이 현재까지 그 선을 넘지 않고 있는데, 이 점은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수상을 크게 안도시키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로부터 심한 비판을 받은 나와즈 샤리프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토가 위협받는다면 군사적으로 개입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파키스탄 군대는 파키스탄이란 국가의 이미지와 닮아 있다. 파키스탄은 시아파도 고려하고 있다. 리야드와 테헤란 사이의 영향력 싸움 때문에 파키스탄 군대가 내부적으로 폭발하는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파키스탄 정치학자이며 블로거인 칼리드 무하마드가 주장한다. 무하마드는 자신의 나라가 리야드의 ‘팽창주의적 공격’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토전쟁을 하지 말라고 사우디아라비아를 설득하면서 워싱턴이 추구하는 두 번째 목표는 이라크 상황과 연관되어 있다. 알 아바디는 미국을 방문했을 때 대화 상대방들에게 사우디아라비아가 영토전쟁을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줬다. 그렇지 않을 경우 와하브 왕국이 그 지역에서 “쿠웨이트를 침략하고 다른 이웃 국가들을 위협했던 사담 후세인의 역할과 유사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알 아바디는 평가했다. 2011년 대부분 시아파들로 구성된 엄청난 군중 폭동이 벌어졌을 때 그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가 바레인에 개입한 사실은 이미 이라크를 불안하게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라크는 차후에 시아파에 복종하는 중앙 권력이 들어설 경우, 언젠가는 자국 역시 사우디아라비아 군사작전의 표적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IS 그룹에 은밀히 재정지원을 해줬다고 이라크가 비난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바라는 최후의 상황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 사이에 긴장이 격화되는 것이다. 그런데 예멘 위기는, 리야드가 주도권을 잡기로 결정하여 자신의 경쟁자에게 차후에 리야드를 염두에 두게 만들고 있다”라고 워싱턴의 아랍 외교관이 명확히 말한다.

미국이 추구하는 세 번째 목표는 예멘에서의 군사 개입과 연관된 손실을 줄이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멘 지역이 수니파 세계의 맹주임을 주장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를 신봉하는 이란 사이의 대리전쟁 장소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도 역시 실용주의가 불가피하다. IS 군대와 직면하여 이미 이라크에 연루되어 있고, 시리아에서의 군사 행동을 옵션으로 갖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는, 상황이 악화되면 근동의 거의 모든 지역과 탄화수소의 전 세계적 공급처인 걸프만이 새로운 폭력의 진원지로 변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아랍 세계에 돌고 있는 소문은 미국이 걸프만과 근동에 대한 자국의 영향력을 더 확고히 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아파와 수니파 사이의 대립을 일상적으로 조장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이런 식으로 판도라의 상자를 연다는 것은 너무나 무모한 짓이다. 그것은 리비아 해안에서부터 인도까지 혼란을 파종하는 것이 될 것이다”라고 제네바에 소재한 ‘아랍·지중해 세계 연구센터(Cermam)’의 정치학자인 하스니 아비디가 평가한다. 이미 리비아에서 헤즈볼라의 사무총장인 하산 나스랄라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만들어낸 ‘조작과 분쟁’에 무슬림 세계가 맞서야 한다고 여러 번 호소했다. 이 호소는 이란 대통령의 발언에 반향을 주게 된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자국의 연례 군사 퍼레이드에서 특히 사우디아라비아가 시리아·리비아·이라크에서 테러단체에 자금을 제공하고 있다면서 망설이지 않고 비난했다.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사이가 악화될까봐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리야드는 잘 인식하고 있다. 수니파 고관들이 소셜네크워크를 통해 ‘이단의 시아파들’에게 끊임없이 욕설을 퍼붓고 있으면서도, 외무부 장관인 사우드 알 파이살 왕자는 자신의 국가가 ‘이란에 대항하는 지배권 전쟁이나 대리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주기적으로 반복해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후티 반군들에게 무기를 인도하지 말라고 테헤란 측에 호소했다. 작금의 지역 상황에서 그리고 2011년 2월 이집트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을 몰락시킨 미국을 용서할 수 없는 리야드와 워싱턴 사이의 불신 수준을 고려할 때, 사우디아라비아가 후견인인 미국의 소망을 거부하고 예멘 영토에 침입할 수도 있다. 적의를 품은 종교적·민족주의적 담론에 몹시 흥분되어 있는 대중 여론은 2009년의 쓰라린 기억을 지워줄 수 있는 무력시위를 기대하고 있다. 진창에 빠질 우려가 있는 것이다. “해당 지역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인해 보려는 이란이 기대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것은 일관된 전략을 가진 유일한 국가로 간주되는 이란을 강화시켜 줄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란과 협정을 맺으려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라고 버지니아에 살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한 사업가가 말하면서 불안해한다.

적어도 현재는 이슬람 공화국이 외교적 실수 없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고 평가하는 전문가들이 사실상 수없이 많다. 임시 핵협정을 체결한 것 이외에도, 테헤란은 터키와 파키스탄을 설득해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 폭격을 위해 결성한 연합군에 합류하지 못하게 했다. 이란은 또 다른 중요한 승리를 거뒀다. 러시아가 2010년 스스로 설정한 이란 무기 공급에 대한 제재를 사실상 해제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s-300유형의 대공포(對空砲) 공급을 위해 2007년 체결된 8억 달러 상당의 계약을 다시 추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및 서방과 어느 정도 다시 맺은 관계에서 힘을 얻고 있고,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나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친미 진영 내의 심각한 불화를 이용하고 있는 이란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지역 내 변화의 가장 큰 승리자인 것 같다. 심지어 평화주의자 진영에 자리를 차지하면서 이란은 외무부장관인 자바드 자리프의 목소리를 빌어, “이란은 250년 전부터 그 어떤 나라도 침략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있다. 예멘에서 평화 플랜을 시행하자는 이란의 호소는 연합군의 개입에 다소 적대적인 아랍 세계에서, 더불어 상당수의 연합군 참여 국가들 내에서도 상당한 점수를 얻었다.

2011년의 폭동으로 인해 생겨난 소요가 끊임없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3) 이란은 시아파임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혼란에 빠진 수니파 세계에서 갑자기 본받아야 할 국가로 등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란이 자국의 커다란 라이벌인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새로운 긴장 악화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글·아크람 벨카이드Akram Belkaid
주요 저서로 <알제리를 향한 조용한 시선>(2005), <오늘날 아랍인이라는 것>(2011) 등이 있다.

번역·고광식

(1) 전임자인 알리 압달라 살레가 협상에 의해 물러난 지 6개월 후에 대통령으로 선출된 하디는 처음에 항구도시인 아덴으로 피신했다가 3월에 예멘을 탈출하여 사우디아라비아에 정착했다.
(2) 대다수가 수니파인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은 오래전부터 사우디아라비아의 군사 동맹국이다. 예전의 소련 그리고 인도와 대립했던 리야드와 이슬라마바드는 1차 아프가니스탄 전쟁 시기에(1979-1989년) 서로 협력을 강화했다. 와하브교도 왕국(사우디아라비아)이 파키스탄에 대한 주요 출자자 중의 하나인 반면, 파키스탄은 사우디아라비아의 핵우산 역할을 해주고 있다.
(3) 히샴 벤 압달라 엘알라위(Hicham Ben Abdallah El-Alaoui), ‘아랍 정부들의 청각 장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5년 2월.


<보충기사>

이란에 가능성을 열어주는 합의

이란 핵협상 잠정타결은 일단 이란의 승리로 여겨진다. 물론, 원심분리기의 수와 우라늄 농축 정도 문제처럼 이전에는 협상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몇 가지 사안에 대해서는 이란이 양보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란은 그 대가로 서구, 특히 미국으로부터 협상상대자로 인정받는 위상을 확보했다. 이란이슬람공화국은 우선 경제적 차원에서, 그리고 어쩌면 장기적으로는 군사적, 정치적 차원에서, 지나날 이란을 험담하던 사람들과 새로운 협력 전망을 그려볼 수 있게 됐다. 비록 로잔에서의 잠정 타결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특히 대 이란 경제제재 해제에 관한 한 아직까지 이루어 진 것이 하나도 없고, 또한 중요한 견해차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협력의 전망은 가능하다.

사람들의 기대와는 반대로, 잠정 합의에 대해 이란의 지도자들은 크게 만족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신중한 자세를 보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족을 숨기지도 않았다. 이란 혁명수비군 사령관에서부터 참모총장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알리 라리자니 국회의장, 이란의 고위책임자들 모두 협상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알리 카메네이 최고지도자는 상당히 뒤늦게 “로잔 합의문이 최종적 합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며 이란인들은 “화낼 것도 축하할 것도 없다”는 평가로 입장을 표명했다. 그의 발언은 이후에 진행될 일에 대한 경계처럼 들린다. 그러나 카메네이 자신이 이란 측 협상대표단에게 양보를 허락함으로써 이런 결과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결국 이란 내 최고 강경파인 소위 ‘우려(Delvapassan)’ 운동을 중심으로 집결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전 이란 대통령 측근들만이 이 합의가 이란의 국익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했다고 비난하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을 뿐이다.  

이란 국민은 하산 로하니 대통령과 하나가 됐다. 로잔 합의의 성과는 협상팀을 지지해온 문화계 인사들의 위치 또한 견고하게 해주었다. 2014년 11월에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아쉬가르 파라디, 락샨 바니에테마드 감독을 포함해 6명의 영화인이 “합의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쁜 합의는 없다”는 주제로 캠페인을 벌였다. 이란의 지식인들이 이슬람공화국의 일에 이런 식으로 명확하고 긍정적으로 참여한 것은 30여년 만에 처음이다. 그와 동시에, 로잔 협상을 실패로 돌아가게 하려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술책 또한 민족주의적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민족감정을 자극하는 데 기여했다. 어쨌거나 착각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협상 타결로 이란에 만연해 있는 불안과 초조의 감정이 가라앉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가 인플레를 통제하고 있다고 발표하고는 있지만 경제상황은 대단히 어렵고 이란인들은 일상적인 물가폭등에 지쳐있다. 불만이 커져가고, 특히 자동차산업과 교육 분야에서 파업이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서구와의 화해는 이란에게 새로운 지정학적 문제를 만들어낸다. 협상을 통해 외교정책에서 이란의 통찰력이 드러났다. 많은 이웃국가들과 달리 이란은 아프가니스탄 북부의 중국 인접지역부터 지중해에 이르는 영향권을 형성해내면서 일관성 있는 지역 및 국제 전략의 비전을 펼쳐 보였다.(1) 그러나 서방 측 협상상대자와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어떻게 이 세력권을 유지할지가 문제다. 이란 외교관들이 이스라엘 인정과 같은 까다로운 문제와 핵 문제를 분리시키려고 주의해 왔기는 하지만 이란은 로잔 협정이 파국을 맞지 않도록 기한 내에 레바논, 이라크, 시리아, 예멘과의 대외정책을 수정해나가야만 할 것이다. 

핵협상 잠정 타결이 이란 국내체제를 변화시키는 데 기여할지는 두고 보아야 한다는 문제도 남아있다. 이란이 당면해 있는 잘못된 국가경영은 이란 정권의 역사 및 성격 자체와 깊은 연관이 있다. 이란에는 다양한 정치 경향이 공존하고 그들 중 어떤 세력도 다른 정치세력을 몰아내지 못했다는 특징이 있다.(2) 어쩌면 이란이슬람공화국 초기 성공의 수단이었던 것이 그 이후로 보수주의의 요인이 된 것은, 지도자들의 세력권 내에서 폭넓은 합의가 이루어져야 변화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최근 30년 동안의 근본적인 변화는 사회 문제에 있어서 국민들과의 항구적인 갈등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이란의 체제는 이슬람의 모양새를 보이는 정권과 급격히 도시화된 현대 사회의 발전 사이에 나타나는 모순에 대처하는 데 있어 점점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3)


2013년 6월에 치러진 대선에서 로하니 대통령은 1차 투표부터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질서를 건드리려 하지 않는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 집권 8년 동안 심각하게 약화된 국가 기구의 재건 외에 서구와의 관계 정상화, 그리고 이란의 고립 종식은 그의 주요한 임무다. 서구와 유럽과 직접적으로 대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전망에 안심하고 있는 이란 지도자들이 변화를 택한다고 가정할 때 막상 어떤 모델을 따를 것인가를 결정해야만 할 것이다. 개혁가들이 추진하던 ‘고르바초프 식’ 개방정책이 실패했기 때문에 그들은 정치적으로는 폐쇄적이면서 경제적으로는 자유주의적인 중국식 모델 쪽으로 기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란에서 산업자본주의의 출현은 대단히 불확실하다. 이란의 경제가 다변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체적으로 석유 관련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고된 이란 시장 개방이 이란의 산업을 강화하지 못하고, 화폐자본주의가 초국가적 대기업의 지역 안테나 역할을 하는 수많은 산유국과 마찬가지의 상황이 벌어질 위험도 있다. 많은 점에서 이란의 변화의 길은 아직까지 요원하다.

 

글·셰르뱅 아흐마디Shervin Ahmadi

번역·김계영
파리4대학 불문학 박사.


(1) ‘이란의 관점으로 보는 세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1월호 참조.
(2) 샤라레 오미드바, ‘분파와 연합’,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독일어판, 2009년 7월.
(3) ‘미디어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한 이란 정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7월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