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대학경영 무엇을 남겼나

2015-04-30     최철웅

지난 두 달간 중앙대에는 격랑이 몰아쳤다. 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한 이후 네 번째 구조조정이 전격적으로 진행되었고, 예년과 달리 교수들이 적극적으로 저항하면서 학내 갈등이 심화되었다. 이번 구조조정의 방향은 특정학과가 아닌 학과제 자체를 폐지하는 것이었고, 학생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비인기 학과의 교수들은 교양학과로 재편된다는 것이었다. 본부는 학문간 융·복합을 도모하고 학생들의 전공 선택권을 넓히기 위함이라고 밝혔으나, 구조조정의 실제 목적이 비인기학과를 폐과하여 남는 정원을 인기학과로 돌리려는 것임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매 구조조정마다 그럴듯한 취지들이 나붙고 이런저런 제도들이 시행되었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였다. 인문·사회·자연·예술 계열의 학과들을 정리해 남는 정원을 취업률이 높은 경영대와 공대에 몰아주는 것. 그간의 구조조정을 통해 경영대 정원을 대폭 늘렸으니, 이번엔 공대 차례였다.

단과대별로 광역모집을 한 후 2학년 때 학생들이 전공을 선택하는 이번 계획안은 학생들의 손을 빌려 비인기학과를 동시다발적으로 없앨 수 있는 매우 획기적인(?) 방안이었다. 경영대와 공대를 육성하는 것이 대학발전의 지름길이라는 점에 대해 대다수 학생들의 암묵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이번에도 약간의 마찰은 있겠지만 학교본부의 뜻대로 진행될 태세였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교수들이 적극적으로 반발하기 시작했다. 학교본부는 이번 구조조정에 대해 사전에 학내구성원들과 아무런 협의도 거치지 않았고, 학장들조차 발표 2시간 전에 통보받았을 뿐이었다. 이에 교수들이 즉각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결성하여 본부의 밀실행정과 기초학문 파괴 시도를 거세게 비판하기 나섰다. 지난 몇 년간 재단과 본부의 위세에 눌려 학내 문제에 대해 철저하게 말을 아끼고 몸을 사려오던 교수들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교수 총투표를 실시하여 참석인원 92.4%가 본부의 구조조정안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단과대별로 연일 반대성명을 발표하는 등 조직적인 단체행동을 전개했다.

학내외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결국 학교본부는 지난 3월 24일 2016학년도부터 모집단위를 학과에서 단과대학으로 광역화하되 현행대로 학과·학부제로 유지하는 ‘학사구조 선진화 수정안’을 발표했다. 이로써 일단락되는 듯싶던 구조조정 사태는 불과 3일 후 검찰이 박범훈 전 총장의 특혜와 비리 의혹을 둘러싸고 중앙대 본부와 재단을 압수수색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박 전 총장이 MB정부 후반기 교육부 정책과 업무 등을 총괄하면서 서울캠퍼스와 안성캠퍼스 통합 및 적십자간호대학 인수 과정에서 중앙대에 특혜를 주고, 그 대가로 두산재단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정황이 검찰에 포착된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박용성 이사장이 총장 및 보직교수들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이 노출되면서 ‘막말 논란’마저 일었다. 박용성 이사장이 교수 비대위를 “악질강성노조”로 비유하며 모욕성 발언과 인사보복의 의지를 감추지 않은 것은 물론, 교수 총투표에 대한 방해공작 지시, 언론기사 및 학내 커뮤니티에 댓글공작 지시, 학생 사칭 현수막 게재와 중대신문에 대한 보도지침 지시 등 구조조정 전반을 배후에서 진두지휘하며 비교육적 행태를 일삼은 사실이 낱낱이 공개되었다.

결국 박용성 이사장은 즉각 중앙대 이사장직은 물론 두산중공업 회장직과 대한체육회 회장직마저 모두 내려놓았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권력자가 단 하루 만에 야인으로 추락하는 일견 드라마틱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박용성 체제의 유산들

박용성 전 이사장의 불도저식 개혁은 7년여 만에 불명예스럽게 좌초하고,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온갖 특혜와 비위 의혹으로 인해 법의 심판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그가 추구한 대학 기업화와 구조조정은 숱한 논란과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학개혁의 모범사례로 칭송되어 왔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그렇다면 박용성 체제가 남긴 유산은 무엇이며,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먼저 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한 후 외형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분명하며, 여전히 많은 학생들은 이를 두산재단의 업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외형적인 성장은 무엇보다 급변한 캠퍼스의 경관을 통해 잘 나타난다. 두산의 인수 이후 기숙사, 알앤디 센터, 100주년 기념관 등이 건설되고 기존 건물들에 대한 각종 리모델링이 실시되면서 캠퍼스가 환골탈태했다. 교수연봉제와 성과급제를 도입하고 연구 성과가 낮은 교수들을 징계하는 등 교수들을 압박한 결과 교수 1인당 논문생산 등 연구지표도 대폭 개선되었다. 전체 신입생 정원 4,400여 명 중 경영대 정원을 최대 1,200명까지 늘리겠다는 계획도 착착 진행되어, 2014년 모집인원 중 경영계열 인원이 550여 명으로 16퍼센트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외형적인 지표들의 성장은 각종 대학평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학생들은 이를 대학발전의 지표로 간주하며 환영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검찰 수사 결과 이러한 성장의 이면에 각종 불법적인 특혜가 제공되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사실 경영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중앙대의 발전에는 애초에 미심쩍은 구석이 한둘이 아니었다. 본·분교 통합으로 안성캠퍼스의 정원이 서울로 이전되었으나 그에 따른 추가적인 교지 확보는 이루어지지 않아, 서울은 콩나물 강의실이 되고 안성캠퍼스는 공동화되었다. 건물을 올리는 속도보다 학생들이 모여드는 속도가 더 빨라 대형 강의 비중이 늘어나는 등 수업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졌다. 검단과 하남에 제3캠퍼스를 짓는다는 야심찬 계획 하에 안성캠퍼스는 사실상 방치되었고, 안성캠퍼스에 다니는 학생들 사이에선 서울로 등록금을 퍼 나르는 ‘등록금 셔틀’이 되었다는 자조마저 나돌았다. 더욱이 처음부터 부동산 개발의 광풍에 편승해 현실적인 계획 없이 장밋빛 조감도만 놓고 진행되던 제3캠퍼스 건립 또한 이내 무산되었다. 결국 이처럼 무리한 조정이 가능했던 데에는 교육부가 본·분교 통합 과정에서 추가 교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조건을 빼주고 정원조정을 용인해 준 사실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음이 뒤늦게 밝혀졌다. 애초에 의혹어린 특혜가 주어지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구조조정이었던 셈이다.

박범훈 전 총장의 불법적인 특혜와 비리 의혹 및 박용성 전 이사장의 ‘막말 논란’은 단지 개인적인 일탈 행위에 그치지 않으며, 기업식 구조조정 자체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단기적이고 외형적인 성과를 추구하는 기업식 구조조정은 상명하달의 비민주적이고 강압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며, 어떠한 이견이나 협의의 여지도 남기지 않는다. 학교운영은 철저하게 재단 인사와 소수 보직교수들만의 밀실행정으로 이루어지고, 학교정책에 이견을 제시하는 학내구성원은 ‘적’으로 간주된다. 협의 과정을 생략한 강압적 리더십은 학교발전에 우호적인 포퓰리즘적 여론을 주된 지지층으로 삼으며, 이를 위해 여론조작마저 불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정책에 비판적인 대자보를 철거하거나 관련행사를 불허하는 등 행정 권력을 통한 지배는 이제 예사가 되었다. 사립학교법은 재단이 인사나 예산 외에 학교운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그런 형식적인 제약은 간단히 무시되었다. 이처럼 민주적인 협의나 견제를 허용하지 않고 결과를 위해 위법을 마다않는 무소불위의 권력은 언제든 부패할 여지가 있었고, 중앙대의 경우는 정권의 비호 하에 극단으로 치닫다가 결국 곪아터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박용성 체제는 비록 불명예스러운 귀결을 맞이했지만, 기업식 구조조정의 여파는 더욱 심원한 차원에서 깊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박용성 전 이사장은 대학의 주인이 교수나 학생이 아닌 재단임을 분명히 했고, 강압적인 학교운영을 통해 그것을 실제로 구현시켰다. 실적만을 앞세우면서 교수들의 학문과 연구의 자유는 위축되었고, 학생들의 자치활동을 위한 공간과 여지는 봉쇄되었다. 한마디로 교수들은 일개 회사 직원으로, 학생들은 소비자의 지위로 격하되었다. 그는 대학이 자유로운 학문의 전당이 아니라 취업을 위한 직업훈련소가 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노골적으로 실행에 옮겼고, 취업과 생존의 불안에 휩싸인 학생들은 이를 적극 반겼다. 박용성 전 이사장이 스스로 책임을 통감하고 물러난 이후에도 일부 학생들은 이를 교수 비대위와 인문대의 탓으로 돌리며 학교발전에 악재로 작용할까봐 두려움에 떨고 있다. 박용성 체제가 대변하는 학교발전 지상주의, 즉 불법과 비리를 통해서라도 학교발전만 이루어지면 된다는 식의 태도야말로 그가 남긴 가장 씁쓸한 유산이 아닐 수 없다.
 

사립학교의 전횡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박용성 전 이사장의 사임과 검찰 수사의 진행은 중앙대에 새로운 전기를 불러올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중앙대 이사회는 서둘러 후임 이사장으로 김철수 전 세종대 총장을 선임했다. 역시나 학내구성원들과의 사전협의는 전혀 없었으며, 신임 이사장은 박용성이 추진했던 구조조정의 방향을 계속 이어갈 것임을 천명했다. 헌데 공교롭게도 김철수 신임 이사장은 2001~2005년 세종대 총장을 맡으면서 사학비리로 교육부 징계를 받은 전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세종대 재단은 법인 소유 토지를 처분하고 매입하는 과정에서 교비를 부당 집행하고, 대학시설 사용료·임대료와 기부금을 법인회계로 잡은 다음 이를 학교회계에 이전하는 편법으로 법인 전출금 실적을 늘리고, 400억 원대 학교 건물 공사를 부당하게 수의계약한 점이 적발되어 징계를 받았다. 모두 이번 중앙대의 검찰 수사 결과 제기된 의혹들과 거의 유사한 사안들이다. 중앙대를 인수한 이후 두산은 총 1,580억 원을 법인에 출연했으나, 두산건설에 그보다 700억 원이나 많은 2,457억 원의 일감을 수의계약으로 몰아줬다. 그 결과 재정은 오히려 악화되어 2009년 67억여 원 수준이던 부채는 지난해 말 672억여 원(추정)으로 5년 사이 10배가량 급증했다. 학교 돈을 법인으로 가져다 쓰고, 법인의 출연금은 모기업의 건설회사로 다시 흘러들어 가며, 늘어난 부채는 학생들의 등록금을 통해 메워진다.

이처럼 동일한 패턴이 반복된다는 것은 이것이 현재 한국의 사립대학을 둘러싼 구조적 병폐임을 알려준다. 사학재단의 족벌체제가 유지되고 전횡이 용인되는 데에는 교육부의 방조와 묵인이 존재하며, 현재 추진되고 있는 대학 기업화 또한 교육부의 신자유주의적 대학 구조조정 방침에 공명하는 것이다. 학생운동의 퇴조와 더불어 학내에서 비판적인 담론과 세력이 사라지자 신자유주의적 대학 기업화에 우호적인 학교발전 이데올로기가 헤게모니를 형성했다. 그 결과 대학의 공공성과 학문의 자유에 대한 가치가 쇠락한 자리엔 천박한 서열주의와 신자유주의적 경쟁논리가 들어섰다. 박용성 체제는 이처럼 위로는 교육부의 지원과 아래로는 학생들의 우호적인 여론을 등에 업고 번성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조건들이 혁파되지 않는 한 대학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대학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것도,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대학이 취업교육을 전혀 도외시할 순 없겠지만, 급변하는 산업수요에 맞춰 장기적인 학문의 지평을 조정하겠다는 시도는 본말이 전도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청년층의 고용을 늘릴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은 도입하지 않으면서 대학과 학생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고, 사학재단은 구조조정을 명목으로 대학을 사적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전가되고 있으나, 취업경쟁에 내몰린 학생들은 개별적인 생존에만 몰두하고 있는 형편이다. 결국 이 체제의 피해자인 학생들이 싸움의 전면에 나설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대학의 미래를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글·최철웅
중앙대학교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문화연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계간 『문화/과학』의 편집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고, 인문학 플랫폼인 ‘자유인문캠프’를 기획하고 있다. 공저로 <감시사회>(철수와영희·2012)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