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동남아 이민자들

2015-04-30     알렉시아 예쉔느

매년 홍콩은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출신 여성 가사도우미 수천 명을 불법 해고하고 있다. 임신한 게 이 여성들의 잘못일까? 하지만 가사도우미들의 왕성한 노동력을 탐하는 홍콩은 이들이 가정을 꾸리는 것을 거부한다. 일자리를 잃은 여성들은 2주 내에 홍콩을 떠나야 한다.

크고 검은 눈을 가진 3살배기 아들 이브라힘이 딸랑이 장난감을 흔들어대며 엄마 세닐의 고운 목소리를 듣기위해 귀를 바짝 곤두세웠다. 검은 스카프로 얼굴을 감싼 이 젊은 필리핀 여성(31세)은 2002년 자신의 고향을 떠났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비자(FDH)를 발급받아 홍콩에 온 것이다. 30만 명을 웃도는 동남아 여성들이 새로운 삶, 즉 홍콩 가정에서 가사 도우미로 일하기 위해 세닐처럼 FDH비자를 받았다. 인도네시아 자바섬과 필리핀 출신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세닐은 10년 동안 홍콩 가정에서 머물며 주당 6일씩 꾸준히 일했다. 요리, 세탁, 청소 등은 물론이고 다른 가정의 보육까지 책임졌다.

매주 일요일이면 홍콩은 고층빌딩 숲속의 마닐라나 자카르타로 변한다. 가사도우미들이 귀중한 휴식시간을 틈타 공원 잔디밭에서 진을 치고 대부분의 남성 이주노동자들이 이들과 합류하기 때문이다.(1) 서로 헤어져 사는 커플들은 흰색의 대형 이슬람사원 뒤편에 있는 구룡 공원의 가로수 길에서 서로 조우한다. 쉐닐은 2012년 파키스탄 난민 남성을 만나 아이를 가졌다. 그녀의 삶은 이브라힘의 탄생과 함께 급변했다. 우리는 그녀를 아이 엄마가 된 가사도우미를 돕고 있는 현지의 소규모 비정부기구 사무실에서 인터뷰했다.그녀는 “아이를 호적에 올리러 갔는데, 직원은 내 비자가 말소된 것을 알려주었다”고 했다. 그녀의 고용주가 불법으로 그녀와의 계약을 해지한 것이다. 현행 노동법은 가사도우미로 고용되어 10개월 이상 근무 중인 여성한테는 10주 간의 육아휴가를 주도록 되어 있고, 임신한 가사도우미의 해고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노동계약 해지가 합법적이건 아니건 간에, 노동계약을 해지 당한 도우미들의 여권은 즉각 말소된다. 쉐닐은 “난 2주 안에 필리핀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한숨을 내쉰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이 같은 부당대우를 받는지 공식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이주노동자 보호단체들은 부당대우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크리스티나 제부아는 10년 넘게 가사도우미들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이른바 자신의 “고객”의 운명을 위해 쉼 없이 투쟁하고 있는 이 인도네시아 여성은 “처음엔 우리의 투쟁은 최저임금과 휴가권 보장 그리고 폭력규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리고 2006년부터는 이주노동자들은 임산부나 갓 출산한 여성들의 해고와 비자말소를 규탄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후, 이주노동자들은 패스파인더(Pathfinder)라는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한 단체를 창설해 매년 6백 명이 넘는 가사도우미들을 돕고 있다. 제부아는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다. 여성 가사도우미들의 평균 연령과 보고된 사례를 바탕으로 추정컨대 매년 수천 명의 여성들이 (임신 또는 출산으로) 부당대우를 받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들과의 접촉이 무척 어렵다”고 토로했다.

아이를 두게 된 가사도우미들에 대한 연구를 장기간 진행해온 피츠버그 대학의 인류학자 니콜 칸스터블은 “인도네시아 여성들은 홍콩에서의 긴 투쟁의 역사를 자랑하는 필리핀 여성들에 비해 젊고 교육수준이 낮다. 그리고 이들은 영어나 중국어를 읽을 줄도 모르고 또한 인터넷을 쓸 줄도 모른다. 이런 요인들 때문에 이들은 자신들의 권리에 무지하고 부당해고에도 무척 취약하다”(2)고 말한다. 한편, 사회 활동가들은 이민 열풍에 휩싸여 최근에 홍콩에 도착한 버마, 방글라데시, 태국 또는 스리랑카 출신 여성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거나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자인한다.

홍콩과 가사도우미들 간의 역사는 대략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대, 필리핀 대통령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직업소개소를 통해 시골의 젊은 여성들을 번영하는 인근 국가로 송출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정책은 실업률과 불안전고용을 낮추고, 해외 여성 이주노동자들의 본국 송금을 높이는 두 가지 장점이 있었다. 이보다 10년 늦게 자국의 젊은 여성들을 중동으로 송출하기 시작한 인도네시아는 1997년 경제위기 이후부터는 홍콩으로 이 여성들을 파송하며 필리핀의 발목을 잡고 있다. 당시 제3차 산업이 부흥한 홍콩은 여성들을 고용해야만 했다. 패스파인더의 홍콩인 직원 앨비 첸은 “(홍콩에서의) 부족한 보육인력과 보육비용을 감안해 볼 때, 어린이와 노인을 돌보는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출신) 가사도우미 고용은 값싼 해결책 이었다. 이들이 없었다면, 부부가 같이 맞벌이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해가 거듭될수록, 이들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곧 홍콩에 꼭 필요한 성장 동력이 되었다. 아시아 이주센터는 2006년 이후, 이 여성들이 소비를 비롯해 어린이와 노인 돌봄 서비스를 통해 홍콩 경제에 공헌한 경제규모가 홍콩 국내총생산(GDP)의 1%에 해당하는 138억 홍콩 달러(1홍콩 달러는 대략 140원에 해당)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했다.
 

임신 때문에 잃는 일자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콩은 이들에 대한 임시 거주만 허용하고 있다. 고용주의 집에 거주해야 되는 가사도우미들은 가족들을 고국에 남겨두고 와야 한다. 이들은 다른 외국인들과 달리, 7년 거주 외국인에게 부여되는 홍콩 영주권도 취득할 수가 없다. 2013년 3월, 홍콩 대법원은 씁쓸한 법정 다툼으로 번진 이 같은 불평등 대우에 대한 판결을 내렸다. 당시 홍콩 거주 27년째인 필리핀 출신 가사도우미 에반젤린 발레호스는 영주권을 요구했지만 기각 당했다. 이 소송 이후, <뉴욕타임스>(3)와 인터뷰한 홍콩 입법의원 크리스토퍼 청은 “홍콩에 도착한 외국 여성들의 유일한 목적은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에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제부아는 “가사도우미 고용 가정들은 이들이 여가생활이나 성생활도 없이 일만 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이 여성들의 임신은 고용 가정의 기대를 저버리는 셈이다. 따라서 홍콩 사회가 이들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상당수의 고용주들은 탐욕이나 무지로 인해 이들의 출산권리를 짓밟고 있다. 외국인을 위한 온라인 포럼(4)을 방문하면 고용주들의 황당한 사고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일부는 “잘못을 저지른(임신한)” 가사도우미를 처리하는 방책을 서로 교환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들은 토론 중에 “모든 책임을 가사도우미에게 떠 넘겨야 한다. 그러다보면 운 좋게 그녀를 자를 수 있다,” “가사도우미가 임신을 한 게 당신 탓은 아니다,” “그녀는 임신을 피할 수 없었을까?,” “항공사에 연락해 임신 몇 주째까지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는지 문의 해봐라,” “낙태를 제안하고 추후에 수술비를 돌려받아라” 등과 같은 조언을 주고받는다.

대부분의 부당해고는 처벌받지 않았다. 2014년, 1,913명의 가사도우미들로부터 임신과 관련한 부당해고 민원을 접수 받은 노동부는 이중 14건만 위법성을 인정했다. 노동부의 대변인은 “법정 소송으로 이어진 9건은 조정을 통해 해결되었고, 5건은 법정 판결로 종결되었다”고 했다. 제부아는 “직업소개소는 가사도우미들에게 고용주를 고소하면, 다른 일자리를 못 찾는다며 이들에게 고용주에 대한 고소를 말리고 있다. 직업소개소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그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근면하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은 가르치는 것이다”며 안타까워한다.

많은 여성들은 일단 해고되면 비자가 말소되기 때문에 홍콩에 머물며 숨어 지내고 있다. 왜냐하면 한 번 추방당하면 다시는 되돌아 올 수 없기 때문이다. 첸은 “난 해고된 여성들을 찾아다니다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도시 젠사쥐 지구에 위치한 거대한 건물 청킹맨션(Chungking Mansions)을 발견했다. 사회운동가들은 2007년부터 이곳의 후미진 곳에 숨어 지내고 있는 임산부들과 조우하고 있다. 네온사인 불빛이 빛나는 미로 같은 복도는 인도양 출신 이주노동자들의 베이스캠프로 쓰이고 있다. 다른 이주노동자들은 심천 근처 신제(新界, x?n jie)에서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홍콩의 이 수직 도시(신제) 건물들 옥상엔 누추한 오막살이들이 들어서 있다. 체류증이 없는 여성들은 가재도구라고는 달랑 매트리스 하나 갖춰 놓고 오막살이에 거주한다. 첸은 “태풍이 불면 판자 사이로 물이 스며들어 집을 새로 지어야 한다”며 한숨 짓는다.

사회활동가들은 여성들의 은둔생활을 말리고 있지만, 이들에겐 다른 방도가 없다. 자바섬 출신의 니르말라(5)는 7년 전에 홍콩에 왔다. 그녀의 무릎에 앉아 있는 두 살배기 아들은 아프리카 출신 아버지의 곱슬머리와 어머니의 아몬드형 눈을 닮았다. 이 젊은 여성은 자신을 고용한 부부로부터 해고되자 해고철회 민원을 냈다. 불법체류자들이 이민국을 찾아가 해고철회 민원을 넣거나 망명신청을 하면, 이민국은 이들의 서류를 검토하는 동안 이들의 추방을 일시 중단한다. 하지만 행정절차가 수개월에서 수년씩 걸리는데, 이 기간 동안 해당 여성들의 노동은 금지된다. 칸스터블은 “일이 금지된 기간은 모든 게 불확실하다. 여성들은 의식주를 친구들이나 사회단체에 의존하게 된다”고 말한다. 또 여성들은 저축한 돈을 본국으로 송금했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여기저기에서 불법노동을 한다고 했다.

해고의 고통과 더불어 이 같은 기대(본국 송금)가 이들을 특히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 니르말라는 “주인으로부터 해고당했을 때, 완전히 나락으로 추락했다. 휴가도 없이 밤낮으로 일했건만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쫓겨났다. 난 3개월 간 친구 집에서 기거한 뒤, 술집을 전전하며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고 했다. 니르말라가 하던 말을 중단한다. 매춘 문제는 터부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완차이 홍등가에 위치한 “호스티스” 바에서 일하고 있는 전 가사도우미들과 마주치는 게 드문 일이 아니라고 귀띔한다.

이 여성들의 망명신청은 소수를 제외하곤 대부분 기각 당했다. 홍콩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일하는 캐나다 출신 유명 변호사 마크 댈리는 “전체 이주 노동자들의 수를 감안하면, 망명신청 허용률은 과도하게 낮다. 그런데 가사도우미들에 대한 허용률은 더더욱 낮다. 이들은 망명신청을 너무 늦게 하거나 제때 신청을 해도 ‘거짓’ 망명을 신청한다는 편견에 시달린다”고 했다. 이들 중 홍콩을 떠날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만약을 위해 망명신청을 해야만 출국 준비기간을 가질 수  있다. 홍콩 사법부는 홍콩 거주 27년 차인 발레호스가 영주권을 신청하자,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본국과 “성실”한 관계를 유지할 의무가 있다는 판결로 이를 거절했다. 하지만 이 이주여성들의 현실은 생각보단 훨씬 복잡하다.


니르말라는 인도네시아로 되돌아갈 수 없는 실정이다. 그녀는 풀죽은 목소리로 “우리 가족은 내가 송금을 중단 뒤로 날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했다. 싱글맘들 또한 (가족들로부터) 따돌림 당하고 있다. 제부아는 일부 가족들이 “그곳에서 일해서 돈벌어오라 했더니, 애를 가져! 거기서 무슨 짓을 한 거니? 여기저기서 자고 다닌 거니?” 등과 같은 홍콩인들과 진배없는 조롱을 하는 것에 이골이 났다고 했다.  


쉐닐은 아이 아빠가 자신과 합류하겠다는 약속을 하자, 고국으로 귀국했다. 하지만 아이 아빠는 연락을 끊었다. 그녀는 “애를 혼자서 키워야 할 판이었다. 게다가 가족들은 날 부끄러워했고, 이웃들과 부모님은 날 모욕하고 죽이겠다고 위협했다”고 했다. 쉐닐은 결국 관광 비자를 발급 받아 홍콩으로 되돌아왔다. 그녀는 앞으로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자신의 체류신분을 합법화하기 위해 홍콩 당국을 찾아갈 셈이다. 그녀는 꿈에 찬 시선으로 이브라힘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우리는 어쩌면 이 애가 좀 더 크면 필리핀에 돌아갈 것이다. 우리는 둘이서 같이 살 것이다. 우리 아들은 아버지 덕분에 홍콩 거주자이다. 적어도 우리 애는 손에 모든 선택권을 쥐고 있다”고 했다.

 


글·알렉시아 예쉔느 Alexia Eychenne

번역·조은섭 chosub@hanmail.net

(1) Julien Brygo, ‘가사도우미 직업’,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septembre 2011년 11월.
(2) Nicole Constable, <Born out of Place, Migrant Mothers and the Politics of International Labor>,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Oakland, 2014년.
(3) Keith Bradsher, ‘Hong Kong court denies residency to domestics’, <뉴욕타임스>, 25 mars 2013년 3월 25일.
(4) Asiaxpat, http://hongkong.asiaxpat.com.
(5) 이름은 가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