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발행 국제여권을 위하여

2015-04-30     클로에 모렐

프랑스의 정치지도자들은 ‘이슬람주의자’를 상대로 프랑스국적을 박탈하는 방안에 대해 거론하며 새로운 무국적자 양산 위험을 부추기고 있다. 반면에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뉴욕에 사는 불법체류자들에게 시 정부 신분증을 발부해주었다. 이 같은 행보는 제1차세계대전 종전 이후에 탄생한 난센여권을 떠올리게 한다.

자신이 거주하는 국가에서 법적 신원을 지니지 못한 채 살고 있는 시민이 전 세계적으로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유럽에서는 수십만 명에 달하는 불법체류자가 매순간 유럽 대륙에 있는 총 390여개 구금시설(CRA) 가운데 한 곳에 갇힐 위험에 처해 있다. 중국에서는 더 나은 미래와 일자리를 찾아 정부 허가 없이 무단으로 합법적 거주지를 벗어난 2억 5천만 명의 민공들이 교육이나 의료 서비스 혜택을 누리지 못한 채 이등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캐나다에서도 시민권을 박탈당한 ‘잃어버린 시민들’(대개 1947년 제정된 시민권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주류를 이룬다)이 조국의 국적을 박탈당한 채 무국적자 신세로 전락하기도 했다. 한편 쿠웨이트의 ‘비둔’(‘bidoun’은 ‘없다’는 뜻으로, ‘국적이 없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비둔’이란 1961년 쿠웨이트가 독립하면서 창설된 국적위원회에 자국민으로 등록되지 못한 베두인 출신의 거주민들을 의미한다.(1) 발트해 국가의 경우에도 러시아인 거주자나 혹은 러시아 출신의 거주자는 비시민으로 간주되어 소외나 배척의 대상이 되고 있다(라트비아의 경우 인구의 15% 이상을 차지). 한편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보스니아를 꼽을 수 있다. 이 나라에서는 세 개 공동체(보스니아계 무슬림교도, 세르비아계 정교도, 크로아티아계 카톨릭교도)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을 이른바 ‘타인들’로 분류하여 모든 정치적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

물론 앞에서 언급한 이들의 상황은 저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다. 가령 모두가 거주국에 합법적인 신원을 가지고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불법체류자들은 국적을 보유한 반면에 ‘비둔’이나 ‘잃어버린 시민들’은 법적으로 무국적자이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는 공통점도 있다. 신원을 증명할 수 있는 적절한 서류를 보유하고 있지 않아, 많은 정치·경제·사회적 권리를 자유롭게 누릴 수 없다는 점이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최근 뉴욕에 거주 중인 불법체류자들에게 합법적 신분증을 제공하기 위한 독창적인 행보에 나섰다. 지난 1월 이후 뉴욕의 불법체류자들은 시 정부가 발급한 신분증 덕에 일부 공공서비스(도서관, 병원 등)나 은행, 혹은 신분증이 있어야만 출입이 가능한 기타 기관들을 이용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렸다. 또한 시 정부 신분증을 보유하는 경우 합법적인 일자리에 지원하는 것이 가능하고, 30여개 문화시설(브루클린 식물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을 무료로 이용하거나 약품 등을 구매할 때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다. 2014년 6월 뉴욕 시의회가 통과시킨 시 정부 신분증은 현재 열광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 수천 명의 불법체류자들이 이 5년 만기 신분증을 얻기 위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이같은 뉴욕시장의 아이디어는 얼핏 난센여권을 떠올리게 한다. 난센여권은 제1차세계대전 종전 뒤 국제연맹이 발급한 신분증으로, 처음 아이디어를 낸 노르웨이인 프리드쇼프 난센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지었다. 과학자이자 극지방 모험가, 외교관이자 공직자, 뛰어난 통찰력을 자랑하는 마음 따뜻한 인도주의자였던 난센은 1920년 국제연맹 노르웨이 대표단을 이끄는 단장이 되었다. 그는 당시 45만 명에 달하는 전쟁 난민을 고국으로 송환하는 일을 담당했다(최초의 인도주의 임무를 맡은 대표단이었다). 이 임무를 성공리에 완수한 그는 1921년 국제연맹의 난민고등판무관직도 역임했다. 그는 고국에서 쫓겨나 헝가리로 피난 온 마자르족이나, 그리스에서 추방된 이슬람교도, 터키에서 도망 친 기독교도 등에 이르기까지 전쟁으로 인해 타지를 헤매는 수십만 명의 난민들을 위해 헌신했다. 난센은 난민들에게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신분증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1~2년 만기의 갱신 가능한 여권을 구상해냈다. 난센여권은 난민의 국제적 보호를 위해 사용된 최초의 법적 신분 증서였다. 이 같은 구상 덕에 난센은 192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데 이어(2), 1938년에는 난센국제난민사무국도 똑같은 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을 수 있었다. 난센여권은 양차 대전 사이의 기간 동안 약 45만 명의 난민들에게 발급됐다. 기아와 내전을 피해 달아났다 1922년 12월 법령에 의해 무국적자 신세로 전락한 러시아 난민들이나 혹은 오스만제국의 옛 소수민족 일원들이 이 난센여권의 혜택을 톡톡히 입었다. 그들 가운데는 이름 모를 범인들도 수없이 많았지만, 더러 유명 인사들도 끼어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발레리나 안나 파블로바,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화가 마르크 샤갈,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 등이었다. 그들은 난센여권 덕에 무국적자로 전락하지 않고 자유롭게 여행을 즐기며 많은 권리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은 망명국 사회에 쉽게 편입할 수 있었다. 국제연맹이 사라지면서 난센여권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나 오늘날 국제연합도 과거 난센여권을 본 따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명에 이르는 무국적자들에게 합법적인 신분과 기본권을 부여해주는 것은 어떨까. 

 

글·클로에 모렐Chloe Maurel
주요 저서로 <지구사 교과서(Manuel d'histoire globale)>(2014)가 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Alain Gresh, ‘괄시받는 쿠웨이트의 무국적자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년 6월.
(2) Bruno Cabanes, <The Great War and Origins of Humanitarianism, 1918~1924>, 캠브리지 대학출판부, 20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