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자당의 승리가 리스본에서 더블린까지 끼친 영향?
누가 시리자당의 뒤를 이을 것인가? 알렉시스 치프라스의 총선 승리는 다른 유럽 국가들의 좌파 정당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나?
적어도 한 가지 부분에서 신임 그리스 총리와 브뤼셀 EU 본부는 의견을 같이한다. 바로 그리스가 균형을 잃은 도미노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점이다. 그리스의 이러한 불안정한 상태는 이제까지는 경제 붕괴의 결과로만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지난 1월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총선에서 승리한 이후 또 다른 시나리오가 고개를 들고 있다. 긴축 정책은 전혀 쓸모가 없다는 생각이 그리스 국민들 사이에서 퍼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그리스 국민들이 그것을 바라고 있다.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국면이 펼쳐질 것인가? 이제 세간의 시선은 그리스의 금융 위기와 유사한 상황을 겪고 있는 나라들, 그리스를 포함하여 흔히 ‘PIGS’라는 약어로 통칭되는 나라들로 쏠리고 있다. ‘PIGS’에는 포데모스당이 있는 스페인과 함께 유럽의 주변국인 아일랜드와 포르투갈이 포함된다.(1) 이들 모두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구제 금융’ 계획에 따라 긴축 정책을 강요받고 있다. 아일랜드와 포르투갈의 경우에는 곧 총선이 치러질 예정이다.(2)
아일랜드와 포르투갈은 모두 우파 정권이 집권하고 있지만 브뤼셀 측이 제시한 기준들을 완화시키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마이클 누난 아일랜드 재무장관은 ‘우리는 그리스가 아니다!’라고 거듭 주장하며 ‘이 메시지가 담긴 티셔츠를 제작’까지 하였다.(3) 2014년에 아일랜드는 EU에서 가장 높은 경제 성장률(4.8%)을 기록하였고,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에 따르면 포르투갈 역시 ‘최근 몇 년 동안 실행된 정책들 덕분에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4) 엔다 케니 아일랜드 총리는 “그리스는 아일랜드를 본받아야 한다”며 “어쨌거나 아일랜드가 제일 우등생”이라고 자평한다.(5)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의 발언을 떠올린다면 이는 포르투갈에도 적용 가능한 표현이다. 스페인 일간지 <엘 파이스>의 보도에 따르면, 라가르드 총재는 2월 16일에 열린 재무장관 회의에서 포르투갈을 ‘우등생’으로, 그리스를 ‘열등생’으로 빗대었다고 한다(2015년 2월 17일자).
엄격한 긴축정책을 실시한 포르투갈
페드로 파소스 코엘료 포르투갈 총리는 ‘위기에 대처하는 전통적인 방식이 통했다’고 해석한다.(6) 그러나 리카르도 파에스 마메드 경제전문가는 ‘최근 몇 년 사이에 포르투갈은 과거로 뒷걸음질 쳤다’고 반박한다. ‘부 창출은 10년 전 수준으로, 고용은 20년 전 수준으로, 미래의 성장을 준비하는 투자는 30년 전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해외 이민은 살리자르 독재정권(1933-1974) 하에 있었던 40년 전 수준에 버금갈 정도입니다.’
이러한 과거로의 회귀는 리스본 지하철 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리스본 시민들은 승강장 앞쪽에 몰려 있고 여행객들은 그 반대쪽으로 밀려나 있다. 열차가 도착하자 리스본 시민들이 왜 그랬는지 그 이유가 드러난다. 도착한 열차의 객차 개수가 절반 밖에 되지 않아 여행객들은 열차에 오르려면 승강장 앞쪽으로 달려와야 한다. 파에스 마메드는 “전기를 절약하기 위해서”라며, “긴축 정책의 일환”이라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포르투갈이 겪고 있는 상황이 유독 가혹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리스나 아일랜드와는 달리 포르투갈의 경제 위기는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유로 위기로 인해 포르투갈 경제의 가벼운 헛디딤이 대형 사고로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유럽 집행위원회의 조사 결과 포르투갈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사회복지예산을 유럽 내에서 가장 큰 폭으로 삭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건비’ 부문에서는 경이로운 성과를 냈다. 관련 조사를 진행한 앙드레 프레이르 정치학자는 2006년과 2012년 사이에 ‘총 경제활동 인구 50만 명 중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 수는 13만 3천명에서 40만 명으로 증가하였다’고 밝혔다.(7) 실업률은 30%에 달한다.(8)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르투갈 정부는 현재의 정책을 고수할 계획이며, 포르투갈의 경제 일간지 <Jornal de Negocios>는 심지어 이를 크게 반기고 있다. <Jornal de Negocios>는 포르투갈이 2014년 3사분기에 ‘EU 내에서 인건비가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며 자축하였다(2015년 3월 20일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포르투갈 역시 부채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고 파에스 마메드는 한탄한다.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은 2010년 96.2%에서 2014년 128.9%로 늘었다. 이 때문에 빚을 갚는 데만 매년 GDP의 4.5%가 들어간다. 그리스의 경우 이율이 낮기 때문에 포르투갈이 상환해야 하는 금액은 그리스보다도 더 많다. IMF은 최근 연구에서 포르투갈이 예산 조약, 즉 재정적자를 GDP의 3% 이하로, 공공부채를 GDP의 60% 이하로 유지해야 하는 기준을 준수하지 못할 것으로 내다보았다.(9)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구제책들은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파에스 마메드는 말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어려움 상황 속에서 포르투갈이 부채 상환 조건의 완화나 부채 탕감을 요청할 가능성, 즉 그리스의 행보를 지지할 가능성은 없을까? 대답은 ‘없다’이다. 포르투갈 총리는 더 먼 앞날을 내다보고 행동해야 한다며, ‘경제 개혁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삶의 방식을 도입하고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한다.(10)
부채가 감소세에 있는 아일랜드
Nevin 경제 연구소(NERI)의 경제 전문가 톰 맥도넬은, ‘아일랜드 모델’에 관심이 많은 한 국제 언론지가 언급한 아일랜드의 경제 회복은 ‘지나친 과장’이라고 평한다.(11) ‘물론 상황이 개선된 것은 맞지만 그것은 그 이전의 경제 위기가 워낙 심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정도 높이에서 떨어뜨리면 아마 죽은 고양이도 다시 뛰어오를 것’이라는 비유도 덧붙였다. 2008년과 2010년 사이에 GDP가 12% 이상 하락하는 동안 ‘아일랜드 내 일자리의 1/7이 사라졌다. 그리고 새로 생긴 일자리들은 대부분 보수가 낮거나, 시간제이거나, 혹은 수도 더블린를 중심으로 집중되어 있다.’
사실 2014년에만 해도 아일랜드의 높은 경제 성장률은 프랑스, 포르투갈, 그리스의 질투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미국의 잡지 뉴스위크가 시사했듯이, ‘개혁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빛을 발한 게 아니었을까? 파에스 마메드는 그렇지 않다고 일갈한다. “포르투갈, 그리스와 아일랜드가 다른 점은, 포르투갈과 그리스는 유럽 경 제에 속해있고 아일랜드는 미국 경제에 속해있다는 사실이다.”
1986년 EU 회원국들 간의 관세장벽이 철폐되자 미국 기업들은 유럽 기업들과 동일한 혜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에 고심하였다. 아일랜드는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게다가 영어에 능통한 고학력 인력을 제공하고 매력적인 세제 조건을 내걸기까지 했다. 맥도넬은 아일랜드 더블린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아일랜드의 경제는 어떤 부분에서는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포르투갈 경제와 비슷하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고학력 인력이 풍부한 미국 경제와 비슷합니다.” 유럽연합이 경제 침체에 빠져있는 동안 미국은 2014년 경제성장률이 2.4% 증가하였고, 아일랜드도 미국의 길을 어느 정도 뒤따라간 셈이다.
긴축 정책은 아일랜드의 미국식 경제는 건드리지 않았지만 나머지 부분들은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지난해 10월 제라드 크로티 병원 고문 협회 회장은 ‘보건 예산의 삭감’을 비판하며 ‘병원 입원을 위해 대기하다 사망하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12) 근무 시간을 정해 놓지 않고 주당 15시간 이상 고용주가 원하는 시간에 일을 하는 ‘0시간’ 계약이 확산되고 시간제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근로자의 1/6이 빈곤층으로 내몰렸다. 수도 더블린의 일부 부촌에서는 ‘켈틱 호랑이’의 귀환을 엿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외 지역에서는 호랑이의 포효가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그리스와 포르투갈이 부채에 허덕이고 있는 것과는 달리 아일랜드의 부채는 감소세에 있다. 경제성장률 덕분이다. 2013년과 2014년 사이에 아일랜드는 유럽연합 국가들 중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였다. 국가 부채 비율은 지난해에 비해 9.4% 떨어진 114.8%였다. 그러나 맥도넬의 의견은 다르다. “아일랜드의 GDP 수치는 허상에 불과합니다. 다국적 기업의 비중이 커서 해외로 빠져나가는 금액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GDP는 실제 생산보다 과장되게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일랜드의 부채 상환 능력은 정부의 차용증서 발행이라는 요술 덕분에 가능했는데, 신기하게도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빈사 상태에 빠진 은행들을 구하기 위해 시장에 자금을 공급할 방안에 골몰하던 아일랜드 정부는, 2010년 어려움에 빠진 기업들을 대상으로 차용증서를 발행하여 이 기업들이 아일랜드 중앙은행에 자금을 조달하게 했다. 총 310조 유로, 아일랜드 GDP의 19%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결국 부채를 화폐 발행을 통해 해결한 셈으로, 중앙은행은 그냥 310억을 새로 찍어낸 것”이라며 맥도넬이 한마디로 정리한다. 사실 이는 유로존 내에서 불법행위였다.
“ECB는 물론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당시에는 브뤼셀 측의 압박이 있더라도 일단 우리 은행들의 부채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통일아일랜드당(우파)과 연립정부를 구성한 노동당(중도 좌파)의 의원 오미닉 한니간은 말한다. 2010년 1월, 장-클로드 트리셰 ECB 전 총재는 당시의 아일랜드 재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무조건 은행들을 구하라’고 요구하였다. “어떤 측면에서는 아일랜드가 유럽의 나머지 국가들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략은 다행히도 효과가 있었어요.” 한니간의 설명이다. 하지만 2015년 같은 전략을 시도했던 그리스는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ECB는 아일랜드가 신속히 현 상황을 해결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반면 아일랜드는 해결 시점을 최대한 미루고자 한다. 그렇다면 왜 아일랜드는 그리스와 함께 브뤼셀 그룹과 독일 측에 부채 상환 조건 완화를 요구하지 않는 것일까? 션 카인 통일아일랜드당 의원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아일랜드가 이미 긴축정책을 상당 부분 실행하고 있는 상태에서 다른 나라가 특혜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지요.’ 다시 말해, 그리스가 긴축정책의 무용성을 입증하고 아일랜드보다 더 빨리 회복되는 모습을 보는 것 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것을 택하겠다는 의미이다.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좌파 진영의 분석은 당연히 다르다. 아일랜드에서 그리스 시리자당에 가장 가까운 당은 과거 IRA의 정치 조직이기도 했던 신페인당이다. “치프라스의 승리는 우리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정당도 집권당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골웨이 시의 신페인당 의원인 메리드 패럴의 설명이다.
아일랜드와 포르투갈의 정치 상황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아일랜드 역시 유로 위기가 시작되면서 정계의 지각 변동이 감지되었다. “1932년부터 2002년까지, 우파인 통일아일랜드당과 공화당은 아일랜드의 양대 정당을 형성하면서 매 선거 때마다 75% 가량의 표를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노동당이 약 10%를 차지하였지요. 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일랜드 국정은 2.5개의 정당으로 운영되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어요.” 키어런 앨런 사회학자가 말한다. 이러한 변화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신페인당으로, 신페인당은 아일랜드의 주요 정당으로 단숨에 떠올랐다. 2011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총 의석수 166석 가운데 14석을 확보했으며, 지난 3월에는 지지율이 사상 최초로 25%를 기록하였다. 유로 위기가 있기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아일랜드보다 인구 측면에서 그리스와 더 유사한 포르투갈은 정치적 상황이 다소 특이하다. 양대 정당이 중심이 되는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현재로서는 ‘급진 좌파’가 정권을 잡을 만한 능력이 없어 보인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이웃나라 스페인에서 포데모스당의 약진이 관측되면서 현재 포르투갈 내부에서는 ‘세수’를 줄이기 위한 여러 정책들이 중구난방으로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바로 ‘15-M 운동’이라 불리는 전 국민적인 시위가 포르투갈에는 없었다는 점이다. 즉, 모두들 통일을 외치고는 있지만 각자 자신의 목소리를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좌파의 경우에도, 1923년에 설립된 공산당, 1999년에 설립되었고 시리자당과 오랜 동맹 관계에 있는 좌파블록뿐 아니라 2014년에 설립된 Tempo de Avancar당, 2015년에 설립된 Agir당, 포데모스당이 난립하고 있다. 치프라스의 아류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브뤼셀 측을 위협할만한 세력은 아직 부재한 상태이다.
그리고 사회당과 사회민주당으로 구성된 전통적인 양대 정당 구도가 당분간 유지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바로 ‘트로이카(유럽의회, 유럽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가 요구한 목표치를 초과 달성’하려고 하는 우파의 알 수 없는 행보 때문이다. 파소스 코엘료는 2011년 6월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후 이를 공표한 바 있다. 사실, 프랑스의 사회당만큼 포르투갈의 사회당도 규제를 완화하고 민영화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아 부었다.(13) 게다가 ‘트로이카’와의 협약에 서명한 것은 현재 부패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 가 있는 주제 소크라테스 사회당 대표였다. 그러나 사회당 출신으로 장관을 지낸 주제 비에이라 다 실바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좌파의 비판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사회당은 파소스 코엘료가 이끄는 사회민주당과 절대로 ‘동일한 정책’을 구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사회민주당은 더 이상 사회민주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사회당의 계획은 무엇일까? 비에이라 다 실바는 ‘긴축정책은 괜찮지만 지나친 수준까지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사회당의 이렇듯 유연한 입장은, 그리스 사회당이나 지나치게 ‘극단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는 시리자당으로부터 자신을 차별화하면서, 기존 정당들과의 ‘단절’이라는 희망을 유권자들에게 심어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사회당을 포함한 포르투갈 좌파에게 그리스의 총선 결과는 집권에의 희망을 되살려 주었다. ‘다른’ 정당이 집권하여 ‘다른’ 정책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브뤼셀 측과 독일은 이를 좌시하지는 않을 태세이다. 시리자당의 대표 치프라스가 총리가 되었다고 해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그가 선거 때 내걸었던 공약을 그대로 실천하도록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스와 독일 간의 협상이 어떻게 진행될지가 가장 큰 관건입니다. 많이 걱정이 됩니다.” 선거 사전 조사에서 10%의 지지율을 보인 포르투갈 공산당의 지지자 옥타비오 테익세이라는 말한다. “치프라스가 자신의 의견을 밀어붙인다면 반-긴축 세력들에게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타협에 나서거나 지나치게 양보를 한다면, 유럽에는 긴축정책 말고는 다른 정책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게 되는 셈이 되겠지요. 아주 끔찍한 일입니다.”
만약 그리스가 계속해서 고집을 부리다가 결국 유로존까지 탈퇴하게 된다면 상황은 또 달라질 것이다. 이는 신페인당이 꺼려하는 시나리오 중 하나이다.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면 우파가 기뻐할 것입니다. ‘신페인당을 뽑을 테면 뽑아라. 그리스처럼 될 것이니!’라면서 말이에요.” 신페인당의 전략가 중 한 명인 에오인 오브로인은 분석한다. 제리 애덤스 신페인당 대표는 3월 초까지 신페인당과 시리자당 간의 ‘우애’를 강조할 수 있는 기회가 없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브로인의 설명에 따르면 “얼마 전부터 시리자당과의 관계에 대해 쉬쉬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미국 시장과 유럽 시장 간의 중재 역할을 넘어서서, 아일랜드는 과세 측면에서 ‘아주 지저분한’ 세법을 이용하여 큰 이득을 얻고 있다. 법인세율는 12.5%에 불과하고(2014년 유로존 국가들의 평균 법인세율은 25.9%였다), 과세를 피할 수 있는 각종 구멍들을 만들어 놓았다. 아일랜드는 현재 버뮤다제도에 버금가는 조세피난처로 평가될 정도이다. 맥도넬은 “아일랜드가 다른 나라의 국고로 들어가야 할 돈들을 빼앗아오는 이기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고 요약한다. 현재로서는 유로가 아일랜드에게 이득이 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더 정확하게는, 아주 큰 이득이 되고 있다.
아일랜드 신페인당의 약진
“신페인당은 아일랜드의 EU 가입에 반대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EU를 탈퇴하게 된다면 엄청난 후폭풍이 있을 겁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신페인당은 이 부분에 있어서 신중한 입장을 보인다. “유럽연합의 예산 조약은 경제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절대로 유지될 수가 없어요.” 오브로인은 주장한다. 그렇다면 재협상이 필요한가? “우리는 예산 조약을 전체적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아일랜드는 EU의 중심 국가가 아닙니다. 유럽 집행위원회에서는 우리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지요. 우리의 계획은 프랑스와 같은 EU 중심 국가들과의 연대를 통해 예산 조약의 보다 유연한 적용을 꾀하는 것입니다.”
신페인당은 아일랜드의 과세 제도를 수정하지 않으면서 예산 조약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신페인당의 다음 선거 계획은 무엇일까? “돈 있는 사람들과 고용 창출 능력이 있는 기업들의 경제적 안보를 보장할 수 있는 계획”이라고 오브로인은 설명한다. 한 마디로 ‘정당한 사회, 신뢰할 수 있는 경제, 책임감 있는 과세제도’를 만드는 계획으로, 신페인당이 주축이 될 수만 있다면 우파 정당과의 연정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지나치게 신중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말이 맞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좌파의 경우 일단은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골드만 삭스에 따르면 ‘신페인당의 약진은 아일랜드 경제 성장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14) 아일랜드 좌파들은 은행가들의 우려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신페인당은 1998년 체결된 성 금요일 협약 이후 북아일랜드에서 연합주의자들과 연정을 형성하고 긴축정책을 실행하지 않았던가? 이에 오브로인은 다음과 같이 해명한다. “북아일랜드 정부는 주권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런던 측에서 정책 실행을 지시하면 우리는 그것을 좀 더 늦게 실행에 옮기거나 수정해 보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이는 대부분의 유로존 국가들이 EU 본부의 요구에 대응하는 방식과 묘하게 닮아 있다. 그러나 오브로인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북아일랜드의 평화를 되찾기 위해 긴 시간 협상을 진행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아일랜드에서 시리자당과 가장 가까운 신페인당은 호전적인 수사학을 사용하지 않는다. 포르투갈에서도 치프라스가 기댈 곳은 없어 보인다. 포르투갈의 사회당은 다음 선거에서 승리를 거둘 방법을 찾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회당 측은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신당 등과도 연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프랑스의 지지를 등에 업고 브뤼셀 측과 협상을 벌이기 위해?”라고 좌파 블록의 전 의원이었던 프란시스코 로사는 묻는다. 현재 포르투갈 언론에서는 ‘올랑드화’를 ‘항복’과 동일어로 취급하고 있다.(15) “미친 짓입니다. 그리스의 사례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유로존이 좌파 정권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리자당도 하지 못한 일을 사회당처럼 중도파 정당이 포르투갈에서 과연 해낼 수 있을까요? 유럽을 바꾸기 위해 사회당을 바꾸겠다는 발상은 말도 안 되는 전략입니다. 유일한 방법은 시리자당과 포데모스당이 그랬던 것처럼 사회민주주의와 결별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사회민주주의와의 결별인 동시에 유로와의 결별이다. 사실 로사는 그가 좌파 블록을 이끌 당시에는 이러한 극단적인 입장에 격렬하게 반대했었다. 그러나 ‘그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생각을 바꾸었다.
“유로는 유럽 복지국가를 파괴시키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경제가 무너질 때 정부는 단 한 가지 정책, 즉 임금 삭감을 통한 내적 평가 절하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경제성장률이 회복된 후 이를 바로잡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계획은 해당 지역을 지속적인 디플레 상태에 놓이게 하는데, 이는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파에스 마메드 경제전문가가 말한다.
포르투갈 좌파 연합의 현 상황은 치프라스의 승리 이후 몇 달 동안 반-긴축정책 주창자들이 처해있는 사면초가의 상태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브뤼셀과 독일 측이 아예 협상 자체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유럽연합의 정책에 대한 비난, 양당 체제, 부패도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이제는 결단을 내릴 때가 왔다. 언제 전투를 개시할 것인가? 그리고 전투를 개시한다면, 결국 유로존 탈퇴까지 갈 것인가? 포르투갈의 앞날은 불투명하기만 하다. 포르투갈에게 EU 가입은 오랜 기간 지속된 살라자르의 독재 시대를 뒤로 하고 민주주의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한편 ‘선진국’으로 향하는 문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전략인지 확신인지 모르지만, 좌파 블록은 아직 ‘좋은 유로’에의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유로존 탈퇴를 분명하게 주장하는 공산당과, 장-클로드 융커 신임 유럽집행위원장의 취임 이후 EU의 노선 변경을 기대하고 있는 사회당 사이에서, 좌파 블록은 브뤼셀 측과의 힘겨루기를 해나가야 한다. 그 와중에 시리자당은 선거 때 내걸었던 공약들을 하나 둘씩 철회하고 있다. 다음 총선에서도 시리자당이 승리할 것으로 예측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한편 브뤼셀 측은 포르투갈과 EU 간의 관계를 변화시켜 보고자 노력 중이다. “최근에 있었던 노동 시장 개혁으로 포르투갈은 값싼 노동력의 공급 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럽은 포르투갈로 하여금 하급 국가에 머무를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이네스 드 메데이로스 사회당 의원은 설명한다. 이성에 의거한 비관주의인가, 의지에 입각한 낙관주의인가? “아직 EU를 믿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상황은 계속해서 어려워지고 있어요. 젊은이들에게 계속해서 ‘위험을 무릅쓰지 않아야 너희들의 미래가 보장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유럽은 이제 도미도보다는 미카도 게임과 더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모든 참여자들은 쌓아놓은 막대기들을 쓰러뜨리지 않으면서 조심스럽게 막대기를 하나씩 꺼내고 있다.
글·르노 랑베르 Renaud Lamert
저널리스트. 프랑스 미디어 관찰기구(Observatoire francais des medias)를 공동 설립하였고, 공동저서 <청부 경제학자(Economistes a gages)>를 집필했으며(2012년 Les liens qui liberent & Le Monde diplomatique에서 출판), 2012년 발표된 <집지키는 개들(Les Nouveaux Chiens de garde)>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다.
번역·김소연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5년 1월호 기사 ‘포데모스, 스페인을 뒤흔들다’ 참고.
(2) 포르투갈의 경우 9월 14일부터 10월 14일까지, 아일랜드의 경우 2015년 10월부터 2016년 4월까지
(3) <누난 : “우리는 그리스가 아니다…이 메시지를 티셔츠에 씁시다.”>, 인디펜던트, 더블린, 2011년 6월 23일
(4) Sergio Anibal, <Mario Draghi apresenta Portugal como exemplo da retoma europeia>, 푸블리코, 리스본, 2015년 3월 24일
(5) 마크 폴, <그리스 측에 여전히 가식적인 누난>, 아이리쉬 타임즈, 더블린, 2015년 3월 6일
(6) 피터 와이즈, ‘Greek crisis opens Portuguese faultlines over future of eurozone’, <파이낸셜 타임즈>, 런던, 2015년 2월 16일
(7) 앙드레 프레이르, 마르코 리지, 이오아니스, 안드레아디스, 호세 마누엘 라이트 비에가스, <구제금융 시대의 정치적 대표성 : 포르투갈과 그리스의 사례를 들어>, 사우스 유러피언 소사이어티 앤 폴리틱스, 제19권, n.4, 런던, 2014년
(8) <Barometro das Crises>, Observatorio sobre Crises e Alternativas, 리스존, 2015년 3월 26일.
(9) IMF 국가별 보고서, n.15/21, 워싱턴, 2015년 1월.
(10) Diario de Noticias, 리스본, 2015년 3월 18일.
(11)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10월호 기사 ‘이론 대신 신화가 된 아일랜드 모델’ 참조.
(12) 마틴 월, ‘입원을 기다리며 “불필요하게 죽어가는” 환자들’, <아이리쉬 타임즈>, 2014년 10월 4일
(13) 1983년부터 1985년까지, 1995년부터 2002년까지, 2005년부터 2011년까지 집권당이었음.
(14) 콤 키나, ‘경제전문가들이 말하길, 신페인당의 성장은 경제 성장을 위협하는 요소이다.’, <아이리쉬 타임즈>, 2015년 3월 18일.
(15) ‘Passos e Tsipras. Cada qual com o seu “conto de criancas”’, <엑스프레소>, 리스본, 2015년 1월 28일.
<보충기사>
국회 의석을 가진 주요 정당들
아일랜드
통일아일랜드당(우파)
공화당(우파)
노동당(중도 좌파)
신페인당(좌파)
사회당(좌파)
포르투갈
사회민주당-국민당(우파)
사회민주당(우파)
사회당(중도 좌파)
녹색당(중도 좌파)
좌파 연합(좌파)
공산당(좌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