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의 늪에 빠진 베네수엘라

2015-04-30     라당 세르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가게 진열대가 텅 비어 있는 이유는 물품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상인들은 다양한 상품 대신에 같은 상품을 몇 미터씩 겹겹이 쌓아놓고 있다. 그러나 우유나 세제를 사기 위해 몇 시간째 줄을 서 있는 세실리아 토레스는 쌓여 있는 치약이 전혀 기쁘지 않다. 그녀는 이렇게 빈정댄다. “연금술이라도 부려 치약을 우유로 바꿔야 할 거예요.”

정부는 상인과 대규모 수입업자들이 이런 상황을 야기했다고 비난한다. 이들이 1970년대 초반 칠레 민영기업들이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취했던 전략과 유사한 전략을 썼다고 말이다. 곧 기초생필품을 공급하지 않음으로써 민중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려는 것이다. 이에 따라 2015년 2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경찰에게 슈퍼마켓 체인 ‘디아 아 디아’의 매장 36개소를 점거하고 ‘민중의 이익에 반하는 식품전쟁’에 참여한 혐의로 경영진을 체포하도록 명령했다.(1)

아마도 이같은 생필품 부족현상은 지난 15년간 베네수엘라가 겪었던 최대의 경제위기에서 비롯된 것일 터이다.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2013년 3월 사망) 정권에서 기획재정부장관을 지낸 마르크주의 경제학자 호르헤 지오르다니조차 경제위기를 걱정한 바 있다. “우리는 남미의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상황이 안 좋을 때, 온도계가 40도를 가리킬 때, 어떤 이들은 온도계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 우리는 베네수엘라 경제가 위기에 처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2) 위기상황을 인정한다고 해서 그 위기가 사라지지는 않는다.(3) 대신 암시장에서의 외환거래를 근절시키는 것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암시장에서의 외환거래를 근절시키는 것이 시급

“볼리바르화(베네수엘라 화폐단위-역주)의 가치가 바닥을 쳐서 볼리바르화가 가득  찬 수레 몇 개를 외국의 광장에 내다버려도 아무도 주우려고 하지 않을 거다. 심지어 모노폴리 게임에도 쓰지 않을 것”이라며 베네수엘라 중북부 마라카이에서 가게를 하는 안드레스 레드너는 탄식한다. 볼리바르화 환율이 결정되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바로 공식환율과 비공식환율인데, 무려 30배가 넘게 차이가 난다.

이처럼 엄청난 환율차이 때문에, 손쉽게 이익을 거두려는 기업과 개인은 머리를 쓰려고 한다. 공식환율로 달러를 확보해 암시장에서 되팔면 엄청난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물가급등으로 인해 때로는 이 방법이 필요하다. 63%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로 생필품 부족현상을 더욱 악화시킨다. 예를 들어 지난 2월 카르카스에서 품귀현상을 보인 콘돔 1통 판매가는 대략 4,700볼리바르. 한 달 최소임금은 4,900볼리바르다.

달러거래 암시장 투기 동기는 다양하다. 그렇지만 물론 달러를 구할 수 있어야 한다. 야당성향 일간지 <엘 나시오날>의 저널리스트인 프란츠 폰 베르겐은 귀중한 달러화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소개한다. “먼저 작은 규모로 서민 또는 중산층이 여행을 위해 할당받은 달러화를 은밀히 되파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공식환전소에 접근할 수 있는 수입업체 또는 고위공무원이 연루된 훨씬 더 구조적인 교묘한 술책도 있다. 이들은 거액을 움직인다.”

투기꾼들은 거미줄 같은 정부의 통제를 요리조리 피한다. 공식적으로 달러화를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는 국립대외무역센터(Cencoex)이다. Cencoex는 용도에 따라 다양한 환율을 적용해 볼리바르화를 매도한다. 예를 들어, 식품이나 의약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은 최저공식환율인 달러당 6.3볼리바르를 적용받는다.

그러나 정부의 통화정책은 끊임없이 바뀌고 있다. 가장 최근인 2015년 2월에는 볼리바르화 평가절하 정책이 시행됐다. 일부 수입품목에 대해서는 달러당 6.3볼리바르 환율이 유지되었지만, 여행목적일 때는 12볼리바르로 인상됐다. 특히 신설된 자유환전시스템(Simadi)이 달러당 170볼리바르로 시작하면서, 정부는 이를 통해 암시장이 근절되길 기대했다. 그러나 현재로서 암시장은 여전히 건재하며, 달러화는 암암리에 달러당 190볼리바르에 거래되고 있다. 이번 조치는 최근 수년간 인플레이션을 잡기위해 시행된 수많은 개혁조치 가운데 하나일 뿐, 너무나 문제가 복잡한 까닭에 그 효과는 미미하다. 컨설팅회사 ‘에코노메트리카’의 경제학자 헨켈 가르시아는 “이러한 조치들에는 어떠한 경제적 합리성도 없으며 시스템을 훨씬 더 비효율적으로 만들 것이다. 볼리바르화에 대한 과대평가가 계속되는 한 투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마라카이시의 상인인 레드너씨도 “이 시스템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이해가 안 가며 과연 상황이 호전될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인다.

뿐만 아니라 Cencoex는 해외여행을 가는 모든 자국민에게 일정분의 달러화를 할당 지급하는데, 목적지와 기간에 따라 그 금액이 다르다. 1주일간 쿠바로 가는 경우에는 3,000달러(환율:달러당 12볼리바르), 마이애미는 700달러이다. 따라서 가능한 한 많은 달러를 남겨 베네수엘라로 돌아와 암시장에서 되팔 수 있게 되면서, 베네수엘라 국민의 화폐여행이 일상화되어버렸다. “작년에 멕시코에 갈 때 300달러를 허가받았는데, 지금 암시장 환율로 따지면 55,000볼리바르로 1년 임금에 맞먹는다. 사람들이 암거래를 하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한 학생은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한다. 
  
Cencoex가 개입해 허용 액수를 줄이기(2006년 3,000달러에서 현재 300달러) 전에는 온라인구매사이트를 통해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다. 당시 인터넷사이트들은 전문적으로 개인들이 소지한 달러화를 재판매했다. 군소 범죄조직들은 이 사이트들을 모아 대규모 거래에 나섰다. 최대 장점은 여행에 나설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 “진짜 쉽게 돈을 벌 수 있었던 거다. 당신에게 필요한 모든 건 바로 파나마에 있는 친구가 온라인판매사이트로 만들고, 이렇게 해서 당신이 이 사이트에서 가짜로 구매를 하면 당신의 친구가 수수료를 떼고 당신에게 달러를 준다. 이제 당신은 은밀하게 이 달러화를 되팔기만 하면 되는 거다. 사실상 정부는 암시장을 먹여 살리는 가상거래에 수백만 달러를 지원한 것”이라고 카라카스의 한 은행직원은 설명한다.

정부는 이러한 상황에 맞서 달러에 대한 접근을 제한했다. 한 예로 2014년 베네수엘라 정부는 콜롬비아로의 달러화 송금을 금지했다. 이 조치는 베네수엘라 암시장에 달러화를 재유통시키는 결과를 낳았다.(4) 새로운 장벽이 생기면 똑같이 이득을 볼 수 있는, 유사한 유통망을 먹여 살리기 위한 새로운 묘수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정부기관이 가장 부패한 기관으로 전락

달러화에 접근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기업체와 고위관리들이 행하는 대규모 부정행위에 비하면 개인들의 불법거래 금액은 아주 작다고 할 수 있다. 2013년 공권력이 결부된 부패스캔들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관련 문제가 아주 심각하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여러 경로로 달러가 새나가자 조사가 진행되었고 Cencoex의 전신인 Cadivi(베네수엘라 외환통제위원회)가 결탁 공모한 기업들에게 달러화를 부정한 방법으로 지급하며 부패의 온상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됐다. 공식집계에 따르면, Cadivi에서 빠져나간 달러의 3분의 1 가량이 유령회사로 흘러들어갔다.(5) 당시 중앙은행 총재였던 에드미 베탕쿠르는 그 금액이 연간 2백억 달러, 국내총생산(GDP)의 4%에 달한다고 했다.(6)

조사 결과 Cadivi 자금의 부정 지급 방식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로는 기업들이 경비를 과다계상해서 국가로부터 더 많은 달러를 받아냈다. 둘째로는 실체가 없는 유령회사들이 달러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경제학자 제시카 그리산티는 “이런 상황에서 가장 힘들어진 건 진짜로 달러가 필요한 회사들”이라고 지적한다. 카라카스 외곽에 위치한 고무제품 수입업체 관계자는 “일하기가 참 힘들다. 특히 규정을 지키면 말이다. 모든 사람들이 수입업체는 쨈통에 양손을 넣고 있다고 생각한다. 달러를 지급받는다 해도 해외구매대금을 지불하기에는 충분치 않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이제 정부기관 내에는 만연한 부패만 남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고위관리는 한 가지 방법을 알려주었다. 석유 판매대금으로 받은 달러의 일부로 이루어진 정부기금을 관리하는 공무원이 있다고 치자. 100달러가 들어왔다고 기록할 때, 공식환율로 계산해 650볼리바르라고 적는다. 그리고 그의 주머니로 들어간 나머지 차액은 비공식환율로 계산하면 17,400 볼리바르나 된다.

지난 2월 마두로 대통령은 부정행위자들의 숨통을 죄기 위해 외환통제를 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반부패조치는 여전히 비효율적이다. 계속되는 스캔들과 언론의 추적은 반부패전쟁의 산발적 경향을 잘 보여준다. 공표는 엄격하지만 준엄한 처벌은 없다. TV로 중계된 일련의 담화를 통해 대통령은 일명 ‘cadivism’을 고발했다. 해당 기관(Cadivi)의 명칭을 Cencoex로 바꾸고 기업들을 압수수색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기관 내 부패는 암묵적인 동조와 결탁 공모에 기반해 계속되고 있어 마두로 대통령은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전임 대통령이 누렸던 국민적 지지기반이 없는 대통령이 자신을 지지하는 부패의 주범들을 처벌하지 않고 어떻게 부패를 청산할 수 있을까?

1983년 베네수엘라 정부는 환율을 차별적으로 관리하는 기관(Recadi)을 이미 설치한 바 있다. 산업발전과 국민들의 생필품 공급을 위해 핵심 제품 수입을 장려하기 위한 조직이었다. “Recadi는 얼마 지나지 않아 부정거래에 나서면서 아마도 6년의 존속 기간 동안 베네수엘라 역사에서 가장 심각한 부패의 원천이 되었을 거다. 이같은 관행이 국가가 부여한 사회적?경제적 목표를 수행하는 데 있어 이 기관의 모든 가능성을 가로막았을 것”이라고 스티브 엘너 연구원은 주장한다.(7) 이같은 불행한 경험을 통해 신자유주의자들은 환율 관련(그리고 기타 경제 분야에서도) 규제완화를 부르짖을 수 있게 되었다.

가르시아는 차베즈 대통령 치하에서는 부패가 없었다고 강조한다. “우리에게는 국가 발전을 꿈꾸게 하는 모델, 원유 의존성을 대신할 모델이 없다. 이것이 가장 큰 불행이다.”

 

글·라당 세르 Ladan Cher

번역·조승아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마두로 대통령, 슈퍼마켓 체인 ’디아 아 디아‘ 매장 36개소 점거 명령(Maduro ordena la ocupacion de los 36 ’Practimercados Dia a Dia)’, <El Universal>, Carcas, 2015년 2월 2일.
(2) ‘Venezuela becoming ’laughing stock’, ex-Chavez economic guru says’, <Reuters>, 2015년 2월 3일.
(3) Gregory Wilpert 기사 참조: ‘원유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베네수엘라(Le Venezuela se noie dans son petrol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년 11월.
(4) 새로이 허가된 월별송금한도는 200달러. 이전에는 900달러였다.
(5) Andrew Cawthorne, Patricia Velez, ‘Venezuela says 40 percent of dollar buyers are shell companies’, <Reuters>, 2013년 12월 12일.
(6) ‘Presidenta del BCV: Parte de los $59,000 milliones entregados en 2012 fueron a ‘empresas de maletin’’, www.aporrea.org.
(7) Steve Ellner, <Rethinking Venezuelan politics>, Lynne Rienner Publishers, Boulder,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