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우경화의 길로 나선 독일
독일 정책 중 하나인 임금철칙 법률은 프란츠 조세프 스트라우스의 공이 크다. 본 공화국의 기둥이자 기독교민주연합(CDU)의 자매정당인 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CSU)의 대표인 스트라우스는 1986년 “CSU의 우파진영에서 민주적으로 합법성을 인정받는 정당이 생겨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30년이 지난 지금, 그의 이 같은 발언은 시행착오였을까? CDU는 1945년 이후 처음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신생 우파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정당(Alternative fur Deutschland, AfD)과 경쟁하고 있다.
아헨의 정치학 연구소의 알반 베르너는 “전례 없는 성공이다. 신생당이 이렇게 단시일 내에 선거에서 5% 가량의 득표율로 연방의회에 의원을 배출한 적은 없었다”고 말한다.
2013년 4월에 출범한 AfD는 5개월 후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서) 4.7%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2014년 독일 동부권 3개 지역, 즉 작센, 튀링겐, 브란덴부르크의 유권자들은 AfD에 각각 9.7 %, 10.6%, 12.2%의 표를 몰아주며 AfD에 의사당 문을 열어줬다. AfD는 또 2015년 2월 중순, 독일 서부 함부르크에서도 (6.1%의 득표율로) 간신히 의원을 배출했다. 한편, AfD는 2014년 5월에 치른 유럽의원 선거에서는 7%의 득표율로 유럽의원 7명을 당선시키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AfD가 우선적으로 내세우는 “대안”은 독일의 주요 정당들의 동의로 독일정부가 2010년부터 시행 중인 그리스 구제 금융정책과 통합화폐제도(유로화)에 대한 반대입장이다. 따라서 이 정당의 플랫폼은 2013년 총선 때 “유로존의 해체”와 “자국화폐의 재도입 또는 유로존보다 작고 안정적인 화폐그룹존의 창설”을 요구했다. AfD는 또 “독일 마르크의 재도입을 터부시할 필요가 없다”며 “유럽 조약을 수정해 각 회원국에 유로존 탈퇴를 허락하고, 각국은 자신의 화폐를 민주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뿐만 아니라 베를린은 모든 새로운 그리스 원조 계획에 반대해야 하며, “이른바 ‘구제금융’ 정책의 비용을 국민의 세금으로 지불해서는 안 된다. 은행, 투기펀드, 대형 민간 투자기업들이 구제금융 정책의 수혜자들이니, 이들이 가장 먼저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fD의 강령
AfD는 유로의 위기가 고조에 달했을 때 “그리스인들이 고통 받는데, 독일인들이 그 대가는 치르고, 돈은 은행들이 챙기고 있다고 용기 있게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포스터를 내걸며 정치판에 뛰어 들었다. AfD는 출범 이듬해 치른 유럽의회 의원선거 때 단일화폐(유로)가 유럽에 해로우니, 유럽을 북과 남 둘로 나눠야하며 더 나아가 유로를 포기해야 한다(1)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정당은 연방과 주의원 선거에 후보를 내며 자신의 정치개입 영역을 안보, 이민, 가족 심지어 외교로까지 확대했다. AfD는 유럽 문제를 비롯한 각양각색의 민감한 현안들뿐만 아니라 당론과 배치되는 주제들도 다루고 있다. 뒤스부르크의 언어 및 사회 연구소의 세바스찬 프리드리히는 신당에 대한 매우 교육적인 자신의 첫 저서(2)에서 AfD를 세 진영으로 나누었다. 첫째, 프라우케 페트리가 주도하는 작센의 “포퓰리스트” 기업인들. 둘째, 법조인 알렉산더 가우란트가 이끄는 브란덴부르크의 “보수주의자들.” 마지막으로 베른트 루케 교수가 대표로 있는 함부르크의 “신자유주의자들”로 구분했다. 루케 교수는 이 세 진영 사이에서 “가교”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최근 정당대회 땐 주로 지도부 문제만 논의했기 때문에, 여전히 (전 국민을 아우르는) 국가 프로그램 없는 이 정당은 2015년 12월로 예정된 브레멘 정당대회 땐 당 프로그램을 새로 짜야한다.(3)
“번역자는 반역자(Traduttore tradittore)”란 이태리 속담이 있다. 우리와 인터뷰한 모든 사람들은 AfD를 극우파로 칭하길 거부한다. 프리드리히는 “AfD는 독일 민족민주당(NPD)이나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신나치를 연상시키지만 그건 아니고 단순히 CDU-CSU보다 우파성향이 강한 정당이다”라고 주장한다. 유럽의회 의원들도-창당 준비 중인-극우교섭단체나 나이절 패라지 영국독립당(UKIP) 대표가 출범시킨 극우그룹에 합류할 생각이 없다. 이들 유럽의원들은 영국의 토리당과 폴란드의 법과정의당과 같은 유럽의 보수 및 개혁 진영을 더 선호해 그곳에 포진되어 있다. 물론 AfD의 3명의 대변인 중 한명인 페트리는 “우리가 유럽의회 의원들보다 유럽연합과 유로에 대해 덜 비판적이다”라고 주장한다.
AfD의 지도부가 건넨 정보에 따르면, 당원 2만 1,000명 중 남성이 60%를 차지하고 이들이 중·고등 교육을 받았다는 특징이 있다. 페트리는 우리에게 이들의 정치적 행보에 대한 정확한 수치를 제공하며 “당원 60% 이상은 다른 정당에 가입한 적이 없다. 10%는 CDU-CSU에서 그리고 5%는 자유당(FDP)에서 유입되었다. 나머지는 좌파당(Die Linke)과 녹색당에서 이동해왔다. 우리는 유일하게 NPD의 전 당원들은 당원으로 받지 않는다. 보시다시피, 우리는 각양각색의 정치문화를 아우르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아는 바에 따르면, 이들의 유권자 층도 각양각색이긴 매한가지이다. 여태까지는 기권하거나 소규모 정당에 투표를 했던 많은 유권자들이 AfD에 표를 주었다. 여러 여론조사에 의하면, AfD 유권자들은 주로 중산층들인 반면에 NPD는 서민층을 공략하고 있다.(4) 하지만 브란덴부르크에서 선거를 치른 경험이 있는 가우란트는 “난 내 선거구내 서민지역에서 부자지역에서보다 두 배가 넘는 표를 얻었다”고 반박한다. 일간 모르겐포스트(Morgenpost)(5)가 발간한 독일 경제연구소 디맵(Dimap)의 조사에 따르면, 2013년 연방의원 선거 때 AfD는 FDP를 비롯한 CDU-CSU과 녹색당 그리고 사민당(SPD)과 좌파당의 전 유권자를 각각 33만 명과 23만 명 그리고 15만 명과 7만 명을 끌어 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AfD의 모순적 행보
그러나 AfD의 지도부는 독일 사회를 급속히 강타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언급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사민당 대표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때맞춰 추진한 “개혁”의 대가를 독일 사회가 이제야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대략 1,250만 명의 실업자와 근로자 그리고 퇴직자가 빈곤에 허덕이고 있으며, 빈곤율이 15.5%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6) 그래서 올해 도입한 최저임금제는 아주 중요하다. 가우란트는 다른 근심거리들이 좌파당(Die Link)의 유권자들을 AfD쪽으로 끌어들인다고 말한다. 그는 “전 공산당원들이 나와 내 친구들이 옹호하던 안보 담론과 반미정책과 행동을 답습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일간 <타게스차이퉁(tageszeitung)>의 AfD 담당 기자 사빈은 “이 같은 이질감은 AfD의 운신폭을 좁힌다. 예를 들면, 페기다(Pegida, 유럽의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독일 극우단체-역주)와 관계가 이를 반증한다. 동부지역의 프라우케 페트리와 알렉산더 가우란트는 잠재적인 AfD의 지지층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반해, 서부지역의 베른트 루케는 AfD의 기회를 무산시킬 수 있는 과도한 우경화에 반대한다”고 말한다. CDU는 우경화에 대한 반대의견을 보다 분명히 하고 있다. 안자 마이에르 <타게스차이퉁> 기자는 “누구든 페기다와 대화를 하면 즉각 처벌한다. 예를 들면 반유대인주의에 대한 일탈 발언에 즉각적인 조치를 취한다. 페이스북도 예외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AfD 내에서) 검열과 자기검열이 동시에 취해지고 있는 셈이다. 포츠담에 위치한 브란덴부르크 의회에서 우리를 맞은 가우란트는 “우리는 극우파와는 무관하다. 우리의 노선은 극악무도한 범죄와 독일을 패망으로 이끈 끔직한 나치 독일의 경험을 일깨우는 데 있다. 우리는 최근에 반유대인주의 성향을 드러낸 프랑스의 극우전선과 달리 반유대인주자들이 아니다”라고 못 박는다. 하지만 장님이 아니라면 신나치들의 등장과 진배없는 페기다 시위에 AfD의 우파성향의 지도자가 참가한 걸 다 목격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가우란트는 “그건 오해이다. 우리는 단순히 시위대의 시위 동기를 파악하기 위해 그곳에 간 것이다”라고 항변한다.
독일 정치학자들은 AfD의 선거 성공으로 인해 프랑스의 국민전선(FN)이 오래전부터 제기하고 있는 질문에 눈을 돌렸다. 즉 ‘왜 (유권자들은) 항의성 혹은 찬동투표를 할까?’라는 질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프리드리히는 AfD가 “경제위기로 타격을 입기 시작했거나 틸로 사라진(Thilo Sarrazin) 같은 반이슬람 선동가에 심취된 정치성향이 강한 중산층"을 끌어들인다고 말한다. 틸로 사라진은 200만부의 판매고를 올린 저서 <망해가는 독일 (Deutschland schafft)>(7)의 저자로도 유명하다. 페기다의 정신적 아버지의 한 명인 독일연방은행의 전 이사 사라진은 여전히 SPD의 당원임에도 불구하고 AfD의 전당대회에 참가한다! 예컨대 SPD는 자신의 진영에 고등교육을 받은 계층의 출산율 저하와 무슬림 이민자들의 쇄도로 독일이 패망의 길을 걷고 있다고 주장하고, 한편으로는 “유대인 유전자”에 대한 모호한 이론을 유포하는 선동가를 둔 셈이다.
베르너는 “AfD를 체제에 순응하는 정당들에 대항하는 유일한 정당처럼 소개한다. AfD는 구조적인 선택에 있어서 쉽게 동요하는 서민들의 분노를 서핑하고 다닌다”고 말한다. 한편, AfD가 젊은 신당인데다 연방정부 차원의 프로그램 부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치적 문제를 점진적으로 확대하고 있어, 이 정당 당원들의 당지지에 신중함이 요구되는 것도 사실이다. 2017년에 예정된 차기 연방의원 선거만이 이 정당에 대한 보다 확실한 판단을 내리게 해줄 것이다.
AfD의 지도부는 (비례대표 선출) 마지노선인 5%의 득표율을 넘기 위해 조커로 여당과의 연정도 염두에 두고 있다. FDP의 붕괴로 인해,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SDP와 동맹을 맺었다.(8) 메르켈 총리는 또 중도의 길을 걸으며 우파 진영으로도 정치적 입지를 확장했다. 우파진영의 수십만 명의 유권자들은 유로위기를 비롯한 범죄의 증가와 이민 확대 그리고 이른바 “이슬람화”와 가족 모델의 다양화 등과 같은 문제로 심각한 혼란에 빠졌다고 생각한다. 가우란트는 “금기를 깨고, 우경화를 멈칫거릴 필요가 없다. 또 그게(우경화가) 정치적으로 옳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정부에 순응하는 정당들처럼 함구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일갈한다. 페트리도 가우란트와 같은 의미의 논지로 덧붙여 말한다. “난 야당의 역할을 할 것이다. 그래서 난 베른트 루커와는 다르다. 그는 아마 빠른 시일 내에 내각에 진입하고 싶어 할 것이다.”
물론 각국은 늙은 대륙의 보편적인 성향이라고만 볼 수 없는 특정한 정치적 풍경을 지녔다. 그래서 AfD의 경우가 예외적인 것도 아니다. 극우파가 유럽 전역에서 득세하고 있다. 유럽 15개국에선 극우파의 득표율이 10%대를 넘나들고 있고, 5개국에선 20%를 넘어섰다. 한편, 영국과 이태리 그리고 독일 등에선 이른바 “회의적인 유럽(eurosceptiques)”을 기치로 내건 정당들이 의미심장한 약진을 하고 있다.
글·도미니크 비달 Dominique Vidal
역사가이자 기자. 베르트랑 바디와 함께 <레타 뒤 몽드>(L'Etat du monde·라데쿠베르트 출판사·파리)를 출간했다.
번역·조은섭 chosub@hanmail.net
파리7대학 불문학박사. 알리앙스 프랑세즈에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독해 강의.
(1) 2013년 총선 통화정책 프로그램인, ‘www.alternativefuer.de’와 2014년 5월 유럽의회 의원선거 프로그램, ‘Mut zu Deutschland. Fur ein Europa der Vielfalt’ 참고.
(2) Sebastian Friedrich, ‘Der Aufstieg der AfD. Neokonservative Mobilmachung in Deutschland’, Bertz + Fischer, Berlin, 2015년.
(3) 2015년 12월부터 루커가 이 정당의 유일한 당수가 되었다.
(4) 2013년 9월 NPD는 1,28%의 득표율 얻는데 그쳤다.
(5) ‘4,7 Prozent, Wo wurde die AfD eigentlich gewahlt?’, Hamburger Morgen Post, 2013년 9월 23일, www.mopo.de.
(6) ‘1250만 명이란 기록적인 인구가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독일(Allemagne, 12,5 millions de personnes sous le seuil de pauvrete, un record’, Les Echos, 파리, 2015년 2월 20일.
(7) Thilo Sarrazin, <망해가는 독일(L’Allemagne disparait)>, Editions du Toucan, 파리, 2013년.
(8) 2009년도 연방의원 선거에서 14,6%의 득표율을 기록했던 FDP는 2013년에는 4,8%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연방의원 배출에 실패했다. 한편, 좌파당과 녹색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가운데 SPD는 우파와의 연정을 선택했다.
<보충기사>
허수아비가 된 이슬람
히틀러풍의 콧수염을 달고 사진촬영을 한 사람이 정치판에서 성공하기란 녹록치 않다. 특히 독일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유럽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유럽 애국자 모임의 독일판인 페기다의 창시자인 루츠 바흐만이 불행이도 이 같은 경험을 했다. 2014년 드레스덴 페기다 전당대회 땐 2만 5천명에 달했던 참가자들이 2015년 3월 말엔 3천명으로 그 수가 급락했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 정기집회인 페기다 월요집회도 거의 사라졌다. 페기다 집회 참여자 수보다는 반페기다 집회 참여자 수가 더 많다. 게다가 페기다 집회는 신나치의 등장으로 종종 불법집회로 끝나기 일쑤다.
베를린에서 기자생활을 하고 있는 파스칼 티보는 작센의 수도 드레스덴이 페기다의 본거지로 쓰이는 이유를 설명한다. “첫째, 드레스덴은 항상 극우파의 산실이었다. 1930년대부터, 드레스덴은 나치당의 영지였다. 둘째, 1945년 2월 13일과 15일 사이에 있었던 연합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도시가 붕괴되고 3만 5천명이 사망하며, 일부 시민들은 비나치화의 ‘뽕 주사’의 미망에서 깨어났다. 마지막으로 독일 통합 이후, 드레스덴은 전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의 모든 주요 도시들이 그렇듯 한때 방치된 도시로 전락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슬람혐오증이 시위대가 집결한 주요 요인이긴 하지만, 정치계의 무관심에 대한 반발감도 이들의 집회에 한몫하고 있다. 그래서 1989년 가을 이들은 “우리는 국민들이다”이란 슬로건을 외치며 공산주의 시스템의 민주화와 전복을 외쳤다.(1) 4분의 1세기가 지난 지금, 이들의 이런 외침은 국민들과 단절된 생활을 하고 있는 엘리트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페기다, 즉 “국민들은” 독일의 쇠퇴를 부추기는 모든 것을 공격한다. 이를테면, 독일이 구제 금융을 지불하고 있는 남유럽 국민들을 비롯해 정치 망명 신청자들과 독일의 안보를 위협하는 독일 이주 노동자들 그리고 부패한 엘리트들과 미디어 등등을 공격한다.(…)
이민자 수를 급격히 감축하자는 이들의 주장은 도덕적인 문제만 있는 게 아니라 독일의 이해관계에도 배치된다. 왜냐하면 가임 여성 1인 당 1.4명의 출산율(프랑스는 2명)로, 독일은 위험한 수준의 인구 감소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럽 통계청에 따르면 지금부터 2050년까지 독일 인구는 꾸준히 감소해, 현 8천 7백만 명에서 6천 5백만 명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드러났다.(2) 매년 수십만 명씩 이주 노동자가 유입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러한 인구학적 붕괴는 논리적으로 인구의 고령화를 수반한다. 2050년부터 노동 인구가 2배가 감소하며 예견 가능한 일련의 재난을 야기시킬 것이다. 예를 들면 탈산업화와 사회보장기금 부족으로 연금을 지불하지 못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게 될 것이다.
대규모의 이민 실종으로 인해, 2000년대 중반쯤엔 프랑스가 인구학적 측면 뿐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독일을 능가하게 될 것이다. 요컨대 수십 년간 이민을 거부했던 독일이 현재 이민을 허용하는 게 놀라울 게 전혀 없는 셈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독일은 이주노동자들을 “초대 노동자(Gastarbeiter)”라 불렀다. 2000년 이후, 독일은 속인주의를 토대로 운용하던 국적법에 속지주의를 가미시켰다.(3) 따라서 독일에서 태어난 외국인도 출생 즉시 독일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이로 인해 50만 명, 즉 독일에 거주하는 터키인의 4분의 1이 독일 국적을 취득했다. 독일은 유럽에서 이민자를 가장 많이 받아들이는 국가이다. 2013년 독일에 새롭게 유입된 이민자 수는 45만 명을 웃돈다.(4)
대다수의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지속적인 외국인의 독일 정착이 절박한 인구 감소의 유일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독일인들은 저출산 문제가 대부분 자녀들 양육 때문에 벌어지는 경력단절과 종종 연관이 있다고 토로한다. 비록 베를린의 대연정정부가 유급 육아 휴가의 확대, 보육원과 유치원 증설, 가족수당 인상 등 가족 정책을 강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출산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요컨대 독일의 현실은 국가수호를 기치로 내세우며 페기다 추종자들이 퍼붓고 있는 즉각적이고도 단순한 정치공세와는 거리가 멀다. 만약 이들의 주장이 적용된다면 독일의 생존이 위협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작센의 (페기다) 바람은 이미 잦아지고 있지 않던가? 만약 페기다가 지고 있다면 그건 분명, 이 세력의 계승자인 독일을 위한 대안정당(AfD) 때문일 것이다.
이 정당 대변인 중 한명인 프라우케 페트리의 말을 경청하면 이런 사실에 확신이 생길 것이다. 그는 “우리는 시민들의 시위가 폭력적이지만 않으면 절대로 시위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꼼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극우세력에 거리를 두고 있다. 바흐만은 문제가 많은 인물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이 사람이 페기다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또한 통합 실패와 과도한 정치 망명자들의 수용 그리고 이슬람 정치의 위험을 규탄한다. AfD는 페기다와 공통점이 있지만 저들과의 연관성은 없다. 우리는 저들의 정치적 동지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글·도미니크 비달 Dominique Vidal
번역·조은섭 chosub@hanmail.net
(1) 슬로건 ‘우리는 국민이다(Wir sind ein Volk)’은 독일 통합의 의제로 기록된다.
(2) 유럽 통계청(Eurostat)의 대차 대조표와 인구 통계 지표 참고, 12 월 8 일 2012년 12월 8일.
(3) Benoit Breville, ‘왜 당신은 절대로 중국인이 되려하지 않는가?(Pourquoi vous ne deviendrez jamais chinoi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1월.
(4)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통계 참고.